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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59화 (59/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59화

오해

이스탄불에 대한 공격이 멎으며 도시를 포위하던 러시아군이 점점 줄어들자 오스만 제국은 곧장 이 소식을 서방에 알렸다.

도시를 공격하던 러시아군이 포위를 풀고 어딘가로 이동 중이라고 말이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피에르 보스케 장군은 러시아군이 남하할 것이라 직감하고는 주변이 탁 트여 있는 두러스를 요새화하고 인근의 도시인 티라나를 점거했다.

그가 이 도시를 점거한 이유는 도시를 둘러싼 높고 험준한 산맥 때문이었다.

사람이 쉽게 넘을 수 없는 이 산맥을 방어선 삼아 주요 길목에 병력을 배치하여 러시아의 대군을 좀 더 효율적으로 막아서고자 한 것이었다.

하지만 병력이 너무 부족했다.

프랑스군 도착 이전부터 해변을 지키던 3만 명의 사르데냐 군은 여러 전투로 인해 이미 전투력을 상실하여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부대는 2만 명 정도였다.

거기에 6만의 프랑스군을 합치면 연합군의 총 병력은 8만 명가량이었는데, 이들만으로는 도시로 밀고 들어오는 모든 길을 틀어막을 수가 없었다.

“적은 언제쯤 이스탄불을 떠났다던가?”

“못해도 일주일은 되었다고 합니다.”

“일주일……. 일주일이라…….”

보스케 장군은 돋보기를 들고 테이블 위에 펼쳐진 지도에 자를 가져다 댔다.

“이 지도에 그려진 길이 정확하다면…….”

그러고는 러시아군이 도착할 날짜를 계산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지도와 자, 그리고 컴퍼스를 가지고 끙끙대던 보스케 장군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하길.

“……대략 40일에서 45일 정도가 걸리겠군.”

“그럼 일주일 전쯤에 출발했다고 하면…….”

“대략 한 달 정도 남은 것이지.”

“그렇다면 본국에서 지원군을 보내기 충분한 시간입니다!”

보스케 장군의 말에 그의 휘하장교들은 살았다는 듯이 안도하며 저들끼리 웃었지만, 보스케 장군은 그러지 못했다.

다들 웃고 있었음에도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저주에 가까운 넋두리를 흘렸다.

“본국에 그럴 병력이 남아 있다면 말이지…….”

* * *

그의 말처럼 프랑스 국내에는 당장 그에게 보낼 병력이 마땅치 않았다.

아무리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면서 친위쿠데타를 성공시키고 내부의 불만을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돌린다고 해도 그에게 불만을 가진 세력이나 정적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힘을 합쳐서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비난했으며 무력으로 권좌를 찬탈한 그를 독재자라며 무력행동을 준비했다.

프랑스 내부가 불안정해지니 루이 나폴레옹 역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는 프랑스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는 발칸으로 보내려던 병력을 프랑스 각 지역으로 파견하여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을 탄압했다.

이러한 혼란 중에 수많은 사람이 파리로 끌려가 고문받거나 목숨을 잃는 통에 파리에 설치된 단두대에는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방의 보스케 장군에게 지원군 요청이 오자 나폴레옹은 화를 냈다.

“뭐? 지금 프랑스 내부의 문제를 처리하는데도 골치가 아프거늘……. 보스케는 무얼 했기에 전투에서 이기고도 지원군을 요청하는 것인가!”

“대승을 거뒀다고는 해도 적의 군세가 아군보다 거대하니 전력을 보강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그것 하나 모를 것 같은가?”

정권의 이인자이며 부통령인 앙리 조르주 불레는 괜히 한마디 했다가 나폴레옹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들의 목적은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네, 그리고 보스케 장군은 이를 훌륭하게 해냈지! 그렇다면 된 것이 아닌가!”

“하, 하지만 대규모의 러시아군이 아군의 교두보를 파괴하기 위해 남하한다지 않습니까.”

“그럼 보스케가 알아서 막아야지!”

나폴레옹의 말에 조르주는 당황했다.

분명 그 역시 군대에서 복무했던지라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을 것인데도 나폴레옹은 보스케 장군을 도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가, 각하 그렇게 되면 아군은 큰 피해를…….”

“그렇다고 지금 지방에서 군대를 빼내면 반대세력들이 들고일어날 것인데, 그럼 어쩌라는 건가!”

“그것은 그렇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병력을 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으음…….”

조르주의 계속되는 설득에 나폴레옹도 고민했다.

그의 말대로 원정군을 내버려 두면 큰일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군대를 빼면 당장 자신의 권좌가 흔들릴 터였다.

“…….”

한참을 고민하던 나폴레옹은 이내 결단을 내렸다.

“주아브를 보내지.”

“주아브라면……. 알제리부대 말씀입니까?”

“그래, 어차피 식민지의 소요는 많이 줄어들었으니 그들을 지원군으로 보내면 될 것이야……. 그리고 영국놈들에게 빨리 군대를 보내라고 재촉하게…….”

그렇게 나폴레옹은 급하게 병력을 쥐어짜 내어 주아브 10개 대대 중 6개 대대 7,000명의 병력을 발칸으로 급파했다.

하지만 이 정도 병력으로는 언 발에 오줌을 누는 것으로 생각한 나폴레옹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스트리아 황제에게도 슬슬 공식적으로 러시아에 선전포고하고 우리 쪽에 붙으라고 압박하게, 그들을 너무 내버려 뒀어.”

“알겠습니다!”

* * *

한편, 나는 다른 이유로 조금 골치를 썩였다.

“요제프, 지난번에 봤던 바이에른의 자매들…….”

“오늘 저녁은 주방장이 솜씨를 발휘했다는데 기대가 되네요.”

“지난번에 봤던 애들이 편지를 보내왔지 뭐니?”

“제가 글자만 보면 머리가 핑하고 돌아서…….”

“바이에른의 공녀들이 쉰부른을 방문한다는구나.”

“저는 외유가 있네요.”

내가 공식적으로 회복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정무에 복귀하자마자 어머니는 끈질기게 달라붙으시며 내게 결혼을 독촉하셨다.

아무래도 지난번의 암살시도 때문에 내가 후계자 없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드신 모양이었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알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굉장히 귀찮았다.

“요제프?”

“요제프!”

“요제프…….”

어머니께서는 정무를 보는 중에도 휴식을 하는 와중에도 심지어는 식사시간에도 은근슬쩍 결혼 이야기를 꺼내시며 나를 압박하셨다.

이전까지만 해도 그저 산들바람처럼 오가며 드문드문 언급하시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어떻게든 결혼을 시키겠다고 본색을 드러내신 것이었다.

“결혼이 싫으면 약혼이라도 하지 않으련?”

“어머니……. 지금 러시아와 서방국가들이 전쟁을 벌인다고 시끄러운데 결혼이 웬 말입니까.”

“그러니 약혼이라도 해두자는 것이잖느냐. 지금 제국 내부사정이 불안한 것 역시 네 옆자리가 비어 있어서 그런 것이란다.”

“제가 혼자인 것과 제국 내부사정이 불안정한 것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분간 결혼은커녕 약혼할 생각도 없고요.”

보통 이쯤 하면 어머니도 뜻을 굽히시며 슬쩍 물러나시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아주 단단히 작심하신 것인지 강경하게 나오셨다.

“제국의 미래를 책임일 후사를 잇는 것 역시 황제의 책임이란다.”

“어머니, 며칠 뒤면 제 나이가 고작 스물이잖습니까? 이제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나이인데 왜 그리도 급하십니까?”

“요제프, 이건 내 성격이 급하거나 참을성이 부족하여 그런 것이 아니란다. 제국의 뒤를 이어줄 튼튼한 후계를 낳는 것이 황족의 본분이라는 것을 어째서 몰라주는 거니.”

어머니의 말도 옳았다.

내가 아무리 제국을 살려놓는다고 해도 후계 구도가 안정되지 않으면 내가 만든 제국은 다시금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머니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어머니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당장은 결혼보다 나랏일이 우선입니다.”

“그러니 약혼식이라도 올리자는 거잖니.”

“그럴 시간이 없다고 했잖습니까…….”

그렇게 둘러대려 했지만, 어머니께서는 오늘에야말로 끝장을 보겠다는 듯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셨다.

어머니를 그리 오래 본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니께서 저런 표정을 보이신다는 것은 자기 뜻대로 밀어붙이겠다는 뜻이었다.

[내게 생각이 있네.]

‘예? 그게 뭔데요.’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폰 비스텔바흐 양을 황후로 맞이하겠다고 말하게.]

‘그건 또 누군데요?’

[지난번에 봤던 꼬마를 기억하는가?]

‘제가 길거리에서 꼬맹이들을 얼마나 많이 봤는지 아시면서 그렇게 물어보시는 겁니까?’

[……비스마르크와 만났던 연회 때 소녀 말이야.]

‘그때라면…….’

그러고 보니 평소엔 근엄하니 표정 변화도 별로 없으신 영감님이 어떤 소녀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펑펑 울었던 일이 있었다.

영감님이 말씀하시는 분은 아무래도 그때 만났던 소녀인 것 같았다.

분명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제 열두 살쯤 되었던 거로 기억했다.

‘걔는 너무 어리잖아요.’

[그러니 그녀를 선택하라는 것이네, 아무리 어머니라고는 해도 그렇게나 어린아이와 결혼하라고 닦달하지는 않으실 테니 말이야.]

‘오……. 괜찮은 것 같은데요?’

영감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내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며 감탄했다.

아무리 유럽 왕실에서 조혼이 흔하다고는 하지만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어린아이를 결혼시킬 정도로 경우가 없진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그녀를 선택한다면 그 소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러니까 대충 5년 정도는 어머니의 잔소리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거기에 5년 정도면 소녀도 주변 사람들을 두루두루 만나며 마음속에 품은 사람이 있을 것이니 자유롭게 보내주면 그만일 테고 말이다.

‘역시 영감님이십니다!’

[……그녀를 잘 대해주게나.]

‘아유……. 물론이죠! 당분간 어머니의 잔소리를 봉인시켜줄 고마운 분인데, 때가 되면 제가 자유롭게 보내드리겠습니다.’

[글쎄…….]

영감님은 의미 모를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자꾸만 잔소리를 쏟아내시는 어머니를 설득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머니,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결혼 말입니다. 결혼! 어머니 말씀대로 약혼식인지 뭔지도 하겠습니다. 단! 전쟁이 끝나고 하겠습니다.”

“그건 너무 오래 걸리는데…….”

“그럼 전쟁 끝나자마자 바로 식을 올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러려무나. 그럼 바이에른 쪽에는 내가 서신을 보내서 이 기쁜 소식을 알리마.”

내가 한발 물러나는 태도를 보이자 어머니께서는 무엇이 그리도 기쁘신 것인지 방긋 웃으셨다.

하지만 어머니의 미소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저도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조건……? 말해보려무나.”

“저는 바이에른의 공작이신 막시밀리안 요제프 공의 둘째 따님과 혼인하고 싶습니다.”

“둘째라면……. 시씨를 말하는 거니?”

“네.”

어머니께서는 내 말에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시더니 이내 혀를 차셨다.

“아버지나 아들이나 어린 것을 좋아하는 건 달라지지 않는 모양이로구나.”

“그런 거 아닙니다!”

“그렇겠지, 음……. 그래도 둘째인 엘리자베트는 성인식까지 시간이 미뤄질 텐데…….”

“상관없습니다! 기다리면 그만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잠시 두어 번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시더니 이내 나를 쏘아보시며 물었다.

“둘째는 너무 어리잖느냐.”

“괜찮습니다. 까짓거 5년이고 10년이고 기다리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지금 반항하는 것이더냐?”

“그걸 리가요.”

어머니께서는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시더니 목 뒤가 서늘해질 정도로 싸늘한 목소리로 내게 말씀하셨다.

“오늘은 이만 넘어간다만……. 엘리자베트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만 알아두거라.”

“어머니, 그러시지 마시고…….”

“내가 안 된다면 안 되는 것이야. 어째 너는 그런 점을 네 아비를 닮은 것인지 모르겠구나.”

물론 어머니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아무래도 뭔가 착각하시는 모양인데……. 반박하려 했지만, 어머니께서는 이미 집무실을 나간 지 오래였다.

“뭐……. 그래도 당분간은 잔소리가 없으니까…….”

이제는 정말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모르게 억울하다는 감정이 가슴속에서 복받쳐 올랐다.

“에이 씨…….”

고작 5년을 편히 지내려고 많은 것을 잃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기분이 울적해져 있을 때, 바깥에서 헨리가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부올 백작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부올이? 들어오라 하게.”

러시아에 보냈던 부올이 가져온 소식은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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