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61화 (61/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61화

불청객?

하이나우 경이 제시한 해결책……. 아니, 미봉책은 참으로 간단했다.

“지난 헝가리의 반란 당시에 감히 폐하와 제국의 통치에 의문을 품고 들고일어난 이들이 있잖습니까?”

“그렇지.”

“그들은 감히 제국에 대한 반역을 저질렀음에도 저 바다보다 드넓은 폐하의 아량으로…….”

“요점만 말하게.”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지요. 그리고 그들은 지금 각자 노동현장에서 일하며 그 죗값을 씻고 있으니……. 그들을 무장시켜 나라에 헌신케 하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헌신……. 헌신이라…….”

그러니까 하이나우의 말은 지난 내전 당시에 제국의 통치에 반발하며 들고일어났던 헝가리 군대, 그러니까 헝가리 방위군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러시아를 막기 위해 반역자를 이용하자는 그의 말이 너무나 황당하여 공작을 돌아보니, 공작은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이 아닌가?

“폐하, 괜찮은 의견인 것 같습니다.”

“괜찮다고? 지금 러시아 놈들을 막겠다고 반역자들을 불러들이자는 건가?!”

순간 공작이 미친 건가 싶었다.

아무리 상황이 다급하다지만 한때 반군이었던 이들에게 다시 무기를 쥐여준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하지만 공작은 그런 내 염려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차분하게 날 설득하려 했다.

“그들은 한때 반역자라는 이름으로 우리와 맞섰습니다. 어째서 그랬겠습니까?”

“그야……. 숙부님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헝가리의 독립을 위해 그런 것이 아닌가?”

“물론 그렇습니다만……. 좀 더 심층적으로 파고들자면 조국의 독립뿐만이 아니라 고향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든 이들도 있습니다.”

“고향을 지킨다고?”

“예, 그렇습니다. 일례로 그들이 처음 반란을 일으켰을 때는 동조하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부다와 페스트 두 도시의 시민들이 주도하여 들고일어난 것일 뿐이지요.”

공작의 말을 듣다 보니 어느샌가 그의 말에 집중하게 되었다.

“계속하게.”

“예, 그렇기에 우리도 군대를 보내어 그들을 빠르게 진압하려 들었던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우리 군이 국경을 넘자 다들 무기를 들고 맞서 싸웠지요.”

“그럼……. 자네는 그들이 고향을 위해 다시금 무기를 들게 하자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쓰읍…….”

공작의 말을 들으니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영 내키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상황이 매우 급하다고는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서로 죽이겠다고 총구를 들이밀던 이들을 군에 끌어들이자니…….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다른 의견은 없는가?”

“제가 한 말씀 올리고자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옐라치치로군. 좋아 말하게.”

그러자 이번엔 옐라치치 중장이 손을 들며 발언권을 청했다.

“러시아도 러시아지만 저는 제국 내의 슬라브인들 역시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현재 제국 내에 존재하는 슬라브인들 중에 몇몇 무리가 러시아의 범슬라브주의에 찬동하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들었습니다.”

“뭐라고?!”

안 그래도 러시아와의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와 머리가 아팠는데, 이제는 제국 내의 슬라브인까지 말썽이었다.

안 그래도 제국 내의 슬라브인은 지난번 헝가리 반란과 사르데냐와의 전쟁을 처리한다고 바쁜 와중에 남부영토에서 문제를 일으키던 녀석들이었다.

지금 러시아가 한창 승승장구하며 잘나가고 있으니 그들이 주장하는 범슬라브주의인지 뭔지 하는 것에 편승하여 각자 독립해 보겠다는 뜻이겠지.

정말 하나같이 개판이었다.

한쪽 문제를 해결했다 싶으면 다른 쪽에서 문제가 연이어 터져 나오며 내 골치를 썩였다.

도대체 영감님은 이런 나라를 어떻게 유지한 것인지 의문을 넘어 존경심마저 들 정도였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간을 보며 나름대로 이득만 쏙쏙 챙겨 먹으려 했지만, 러시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말이 안 통하는 상대였다.

거기에 제국 내의 소수민족들은 내 통치에 딱히 불만도 없으면서 단지 자신들의 국가를 가지겠다는 열망으로 내부의 불안요소를 만들고 있었다.

“…….”

“폐하, 지금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결단은 무슨 놈의 결단.”

이런 상황에서 내가 헝가리 놈들을 못 쓰겠다고 반대하면 그냥 러시아에 나라를 넘겨주자는 것과 같았다.

어차피 영국과 프랑스가 달라붙었으니 전쟁에서는 이기겠지만 그 뒤에 제국엔 뭐가 남을까?

이쯤 되니 내가 그들을 쓰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것이 헛된 똥고집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쯧……. 그래, 공작의 뜻대로 하지.”

“그럼 당장 노동형에 처한 헝가리인들을 재무장시켜 제국군 휘하에 배속시키겠습니다.”

“아니, 본래 소속대로 복귀시키게.”

“본래 소속이라 하시면……. 헝가리 방위군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맞네.”

제국이 싫다고 반란까지 일으킨 이들인데 우리를 위해 싸우라고 하면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괜히 지휘문제로 골머리를 썩일 바에는 차라리 지휘관급 인물들까지 전부 복귀시키는 것이 괜찮을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들을 따로 편제하는 것은 반란의 위협이…….”

“그러니 저들에게 목적을 부여해야지.”

“목적이라 하심은…….”

세상사라는 것이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 역시 있어야 했고 일을 시키면 보수를 줘야 했다.

지금 포로로 잡혀 노동형에 처한 병사들에게 대뜸 제국을 위해 싸우라고 총을 쥐여주면 우릴 위해 싸울 리가 없었다.

싸운다고 하더라도 반란 당시에 보여줬던 모습은 어디 가고 한심한 모습만 보여주겠지.

그러니 의욕을 잃고 느슨해진 그들의 민족정신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전선으로 보내야 했다.

다행히도 나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고 영감님의 기억 속에서 필요한 것들도 어느 정도 조사해둔 뒤였다.

원래대로라면 한 10년 뒤에 슬슬 일을 진행해 보려 했는데……. 상황이 매우 급하니 어쩔 수 없지.

“헝가리왕국의 독립…….”

“그건 안 됩니다!”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공작이 반발했다.

“그들의 반란을 어찌 진압했는지 아시면서 저들을 독립시키겠다니요?! 그럼 지난 전쟁 기간 병사들이 흘린 피를 기억해 주십시오…….”

“말은 끝까지 듣게, 짐은 그들을 독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독립에 준하는 자치권을 주려는 것이네.”

“결국, 저들을 놓아주시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지……. 그게 아니야……. 음…….”

머릿속에 있는 것을 설명할 만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잠시 고민했다.

헝가리왕국이 독립국에 준하는 자치권을 가지되 그 결과로 더욱 제국의 울타리 안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는 그런 정치체계를 뭐라 설명해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중제국 어떤가.]

‘오……!’

그러던 차에 영감님이 멋들어진 단어를 즉석에서 만들어내셨다.

아니, 그냥 생각하신 것을 그냥 내놓으신 건가?

아무튼.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공존하는 이중제국체제라고 하는 것이 맞겠군.”

“이중제국체제가 정확히 무엇입니까? 그게 헝가리를 독립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겁니까.”

“으음……. 이걸 일일이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대강 설명하자면 헝가리에 자치권을 주되 우리의 영향력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게 만드는 것이네.”

내 말을 들은 공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너무 간략하게 설명한 것인가 싶어 공작에게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저들이 지난 전쟁 당시에 우리에게 요구한 것들이 무엇인가? 그들의 독립과 더불어 급진적인 개혁을 요구하지 않았던가.”

“그랬지요.”

“그러니 우리 쪽에서는 이를 받아들이되 우리의 입맛에 맞게 수정하여 저들을 우리의 권역 안으로 끌어들이자는 것이네.”

잠시 고민하던 공작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뜻 듣기로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오갈 것 같은 문제로군요.”

“원래 사람들은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하잖나.”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 그렇다는 말은 이 모든 것은 전쟁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논의할 사항이란 뜻이로군요.”

공작의 말에 나는 말 없이 웃었다.

역시 내 생각을 제일 잘 읽는 것은 공작뿐이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렇게 급하게 열린 긴급안보회의 결과 지난 헝가리 전쟁 당시에 포로로 잡힌 헝가리 방위군 병사들과 장교들의 사면과 함께 그들의 재무장이 결정됐다.

이제는 동쪽과 남쪽에서 몰려들 러시아군을 막아설 차례였다.

“폐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공작.”

“헝가리 방위군을 부활시킨다면 그들을 지휘할 장군은 누가 되는 것입니까? 그들의 지휘관인 괴르게이 아르투르도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공작의 물음에 나는 웃으며 답했다.

“짐이 생각해둔 것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자네와 다른 이들은 가서 헝가리 방위군을 재무장시키되 사상이 불순하다거나 문제가 있는 병사와 장교들을 솎아내는 데 집중해 주게.”

* * *

괴르게이는 그날도 교수의 까다로운 논문심사를 받고 저녁에는 헝가리인들의 권익향상을 위한 모임에 참석하여 사람들과 주말에 광장에서 나눠줄 전단의 내용을 구상했다.

이 모든 일을 끝내니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에그그……. 허리야.”

괴르게이는 오랫동안 앉아 있던 탓에 살짝 구부러진 허리를 쭉 펴면서 기지개를 켰다.

안 그래도 하는 일이 있는데, 다른 일도 같이하려니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아델이 사과가 먹고 싶다고 했었지?”

오늘은 오랜만에 돈이 좀 생겼으니 부인이 좋아하는 과일을 사 가려고 상점가를 경유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이쿠. 또 오셨군요. 박사님.”

“박사는 무슨……. 아직 석사라고 했잖습니까.”

“하하하, 그럼 척척 석사로군요.”

가게주인의 넉살에 반비례하는 유머 감각에 괴르게이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예전 성격이었으면 신랄한 비난을 쏟아내며 가게주인을 몰아붙였겠지만,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며 성격이 제법 유순해진 탓인지 그는 멋쩍게 웃었다.

“곧 척척박사가 될 겁니다.”

“으하하! 암! 물론이지, 자네는 크게 될 인물이고 말고? 그래서 오늘은 뭘 찾으시는가.”

“사과를 좀 사고 싶은데…….”

“아, 부인에게 주려고?”

“그렇습니다.”

가게주인은 곤란하다는 듯이 텅 비어 있는 가판대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사과는 전부 팔렸네.”

“아……. 그렇군요.”

순간 다른 가게로 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 시간에 과일을 파는 가게는 집 주변에선 이곳뿐이었다.

그렇다고 마차를 타고 다른 구까지 가서 사과를 사 오자니 시간이 너무 늦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그냥 들어가자니 아침에 사과가 먹고 싶다던 부인의 표정이 마음에 밟혔다.

“이를 어쩐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고 있으니 가게주인이 다시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괴르게이를 불렀다.

“이보게 헝가리 친구.”

“예?”

“가족들과 먹으려고 따로 빼둔 사과는 조금 남아 있는데……. 어떻게 이거라도 좀 가져가겠는가?”

가게주인의 말에 괴르게이의 안색이 밝아졌다.

“아, 그렇습니까? 그건 얼마…….”

“허허, 자네가 그동안 우리 가게에서 팔아준 게 얼마인데 이런 것까지 돈을 받겠나? 그냥 가져가게.”

“아니 그래도…….”

괴르게이는 갑작스러운 가게주인의 친절에 당황하였으나 정작 주인은 호탕하게 웃으며 종이봉투에 사과를 한가득 담아 건네주었다.

“조만간에 아이가 태어난다지? 그 기념으로 내가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받게.”

“아……. 감사합니다.”

“그럼 나중에 또 오게!”

가게주인이 담아준 사과는 가스등 불빛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을 냈다.

겉에 윤기가 흐르는 것을 보아하니 정말 가족들과 먹으려고 따로 빼둔 상등품을 자신에게 내어준 모양이었다.

이런 뜻밖의 친절이 당황스러웠으나 괴르게이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사과를 받고 기뻐할 아델의 모습을 상상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서둘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 근처에 도착하니 입구에는 누군가가 병사들을 대동하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먼 아르투르.”

그는 그가 아주 잘 아는 인물이었다.

“……폐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