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66화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빈을 떠난 괴르게이는 황제가 그를 위해 특별히 배정해 준 급행열차를 타고 부다로 향했다.
그가 부다로 향하는 동안 빈에서 보낸 전보를 통해 괴르게이가 다시 헝가리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도시 전역에 퍼졌고, 시민들은 다시 돌아온 영웅을 보기 위해 역으로 몰렸다.
그리고 꼬박 하루를 내달린 그가 역에 발을 내딛자마자 역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혁명 영웅의 귀환을 반겼다.
“괴르게이! 괴르게이!”
“혁명의 영웅!”
“역전의 용사 괴르게이!”
“장군님께서 돌아오셨다!”
역사에 수많은 시민이 몰렸으나 혼란은 없었다.
왜냐면 괴르게이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참전용사들이 다시금 군복을 꺼내입고 그를 마중 나와 현장의 질서를 바로잡았으니 말이다.
“언드라시.”
“장군님.”
괴르게이는 오랜만에 보는 자신의 부관과 웃으며 악수했다.
“다른 이들은 대부분 전선에 가 있다고 들었는데……. 자네는 아닌 모양이로군.”
“제국 놈들은 우릴 전부 사로잡았다고 생각했겠지만……. 무사히 도망친 녀석들이 더 많았으니까요.”
“하하하, 그건 그렇지.”
한편,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헝가리 총독이었던 바흐 남작은 예정에 없던 대규모 집회에 화들짝 놀라 다급히 군대를 이끌고 부다 역으로 달려왔다.
“죄인 괴르게이는 순순히 투항하라!”
“쯧……. 또 제국 놈이 설치는군요.”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당장 처리하겠습니다.”
괴르게이의 부하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흐 남작을 노려봤다.
명령을 내린다면 당장에라도 그를 말에서 끌어 내려 그대로 곤죽을 만들어놓을 것 같은 분위기에 괴르게이는 껄껄 웃으며 그들을 제지했다.
“가만히 있게, 내가 재밌는 걸 보여주지.”
“예?”
괴르게이는 그리 말하고는 천천히 바흐 남작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앞을 가로막던 인파는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만들었고, 그럴 때마다 불안한 눈빛으로 괴르게이를 지켜봤다.
하지만 괴르게이는 여유를 잃지 않고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바흐 남작에게로 향하더니 그의 앞에 섰다.
“제국을 어지럽혔던 반역자 괴르게이 아르투르, 네놈이 무슨 낯짝으로 이곳에 온 지는 모르겠으나 네 녀석은 두 번 다신 떠오르는 태양을 보지 못할……. 흐어어억!”
바흐 남작의 괴르게이가 품속에서 꺼낸 것을 보고는 하던 말도 잊어버리고 말까지 더듬었다.
“네, 네가 그걸 어떻게……?!”
그가 꺼내 든 것은 황제의 군기였다.
합스부르크 가문과 황제를 상징하는 군기를 그가 들고 있다는 것은 제국의 황제 폐하께서 그에게 전권을 내리셨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허, 지금 황제 폐하께서 직접 임명하신 헝가리군 총사령관 앞에서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있으려는 것이오 총독?”
“끄응…….”
바흐 남작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천천히 말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괴르게이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어서 오시지요 괴르게이 경…….”
“각하께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폐하께서도 이를 언제나 걱정하고 계시니 이제는 쉬엄쉬엄하시지요.”
괴르게이는 그리 말하며 바흐 남작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긴 후에 그대로 그를 지나쳐갔다.
그동안 엄격한 규율과 잣대를 들이대며 삶을 억압하던 총독이 괴르게이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을 치켜본 시민들은 다들 소리죽여 웃었다.
다들 소리를 죽인다고 죽였지만, 사람이 한둘이 모인 것이 아니어서 이곳저곳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점점 커질수록 바흐 남작의 얼굴도 붉게 달아올랐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사람들을 해산시키게…….”
그저 힘 빠진 목소리로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명령을 내리고는 다시금 총독관저로 돌아갈 수밖에…….
사람들의 환호 속에 헝가리로 돌아온 괴르게이는 시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는 것과 동시에 황제가 하사해 준 황실 군기를 사람들 앞에 내보이며 자신이 황제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렸다.
그렇게 부다에 도착한 괴르게이가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혁명 당시에 헝가리 국민의회를 이끌었던 러요시 코슈트의 저택이었다.
“오랜……. 푸흡……. 실로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군. 괴르게이.”
괴르게이는 잘 관리되어 매끈한 그의 머리를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머리와 수염을 밀리셨다길래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던 모양이로군요.”
“……이 악독한 제국 놈들이 내 머리카락이 조금 자라기만 하면 죄다 밀어버리더군.”
“크흠……. 그것참 큰일이시군요.”
그리 말하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는 괴르게이의 모습에 짜증이 치밀어오른 코슈트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이곳까지는 무슨 일인가? 내 모습을 보고 비웃으려고 찾아온 것이라면 실컷 비웃게.”
“하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이전에도 말했지만 저는 각하의 정치적인 성향이나 행동이 싫은 것이지 인간 자체가 싫은 게 아닙니다.”
“허, 그것참 고맙군. 그런데 이걸 어쩌나? 이미 혁명은 엎어져 버렸는데 말이야.”
퉁명스러운 그의 말에 괴르게이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되물었다.
“황제 폐하께서 각하를 포함한 동지들의 가택연금을 해제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
가택연금이 해제된다는 말에 코슈트의 내면에 놀람과 기쁨, 그리고 의문이 단번에 피어올랐다.
“……죽을 때까지 이곳에 갇혀 지내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군.”
“그에 더불어 폐하께서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끝난 이후 헝가리 왕국에 독립에 따르는 자치권과 함께 제국을 새로이 재편하실 것이라고도 하셨지요.”
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대부분 사람은 러시아와의 전쟁이라는 부분에 집중했지만, 코슈트는 제국을 새로이 재편한다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새로이 재편한다고?”
“예, 듣기로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별개의 국가로 인정하되 제국이라는 하나의 큰 틀 아래에서 동등한 권리는 나눠주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렇다는 말은……. 형식뿐이던 헝가리 의회에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건가?”
“듣자 하니 의회는 하나로 통합하고 투표를 통해 의원과 총리를 선출하겠다고 하시더군요.”
물론 이 모든 것은 괴르게이의 창작이었다.
그는 황제로부터 개혁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도 전해 듣지 않았으나 그저 코슈트라는 대어를 낚기 위해 미끼를 드리운 것이었다.
그런 사정을 전혀 몰랐던 코슈트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자신이 권력의 중심에 복귀할 방법들을 하나둘씩 떠올렸다.
어차피 독일인이라고 해봤자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고 단결력도 낮았다.
하지만 헝가리는 어떤가?
자체적으로 독립을 이루고자 혁명을 일으킬 정도로 단결력이 높았고 독일계보다 숫자도 훨씬 많지 않은가?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동지들을 잘 설득하면 내가 그 자리를 꿰찰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되면 그가 원했던 국가를 만들 힘에 근접하게 되는 것이었다.
모든 헝가리인이 더는 검열과 탄압을 걱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웃고 떠들며 모두가 평등한 그런 세상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코슈트는 조금 전에 짜증 섞인 얼굴은 어디 가고 평소의 근엄한 모습으로 돌아와 괴르게이에 물었다.
“내가 뭘 도와주면 되겠는가?”
“병력이 필요합니다. 비상 연락망을 가동하여 헝가리 전역에 있는 방위군을 불러모아야 합니다.”
“사흘 정도면 전부 연락을 돌릴 수 있네.”
“상당히 오래 걸리는군요.”
“그만큼 안전하고 확실한 루트지.”
코슈트의 말에 괴르게이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작전계획을 일부 수정했다.
원래 그의 계획은 부다에서 병력을 결집해 러시아군이 빈으로 몰려들기 전에 지원을 보내는 것이었는데, 사흘은 너무 오래 걸렸다.
‘국경의 러시아군이 언제 밀고 올지 모르는데 사흘이나 시간을 버릴 수는 없지……. 그렇다면…….’
괴르게이는 그 자리에서 기존의 방어계획을 전면 수정하여 대대적인 반격작전을 기획했다.
“부를 수 있는 병력의 숫자는 어느 정도입니까?”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테니 그건 자네가 더 잘 알겠지.”
“그렇군요.”
원하는 것을 전부 얻었다고 판단한 괴르게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말했다.
“그럼 다른 이들에게도 이 소식을 전해주시지요.”
“자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저는 조금 바빠서 말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괴르게이는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 * *
괴르게이가 병력을 구하느라 바쁘게 이곳저곳을 뛰어다닐 때, 오스트라바에 방어선을 차린 옐라치치의 부대는 러시아군의 전면적인 침공을 받아내고 있었다.
옐라치치와 휘하의 크로아티아 사단은 끝도 없이 몰려드는 러시아군을 상대로 용맹이 맞서 싸웠지만, 압도적인 숫자의 폭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장군, 최전선의 부대가 적의 집중포격으로 돌파당했습니다! 당장 후퇴해야 합니다!”
“사흘 버텼군.”
“장군!”
“알았네, 23연대가 후방을 지키면서 아군이 퇴각할 시간을 버는 동안 나머지는 이곳에서 반나절 거리에 있는 브라슈네까지 물러난다.”
처음부터 옐라치치는 자신이 러시아군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수도에서 지원이 오거나 전황이 바뀔 때까지 최선을 다해 지연전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오스트라바에서 시작된 전투는 올로모우츠를 거쳐 보헤미아의 중심지인 브르노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쯧……. 쥐새끼 같은 놈들이 오래도 버티는군.”
독일 전역을 지휘하던 멘시코프는 그런 옐라치치의 모습이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투에 임하면서 한쪽이 끝장날 때까지 승부를 벌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물러나기 전에 최대한 피해를 주겠다는 것이 참으로 괘씸했다.
“예비대는 뒀다 무얼 할 것인가? 당장 남아 있는 예비대를 더 투입하게!”
“예, 각하!”
멘시코프는 이 전쟁을 오래 끌고 싶은 생각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가 이곳에서 시간을 끌수록 발칸 쪽에 있는 파스케비치의 부대는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해서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거기에 자신의 조국인 러시아는 이런 대규모 전쟁을 견딜 정도로 튼튼한 경제력을 가진 국가가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기에 다소 무리하게 병력을 운용하더라도 어떻게든 수도를 함락시키고 오스트리아의 항복을 끌어내야만 했다.
“쥐새끼 같은 놈들…….”
하지만 옐라치치의 부대는 러시아군의 맹공에도 좀처럼 무너지지 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덕분에 러시아군의 행군속도는 날이 갈수록 더뎌졌고 오스트라바에서 브르노까지 나흘이면 충분할 거리에 2주라는 시간을 쏟아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을 버린 러시아군의 앞에 보헤미아 지역의 주요 도시자 수도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브르노시의 요새가 보였다.
“……미치겠군.”
한눈에 보기에도 튼튼해 보이는 브르노의 요새는 쉽게 적군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단단히 방비를 다진 뒤였다.
적당히 높으면서도 시내를 전부 내려다볼 수 있는 작은 동산 위에 지어진 두꺼운 요새는 러시아인의 피를 갈구하고 있었다.
숨넘어갈 듯이 아찔한 요새의 굴곡을 본 러시아 장교들은 멘시코프에게 브르노를 버리고 빈으로 직행할 것을 권했다.
“각하, 아무래도 저 요새는 쉽사리 함락시키기 어려울 것 같으니 이곳은 건너뛰고 곧장 빈으로 직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으음……. 그렇지만 이곳을 비워뒀다가 저 쥐새끼 같은 녀석들이 요새를 치고 나와 우리의 후방을 휘저으면 큰일이잖나.”
“그렇다면 부대를 나누어 저들이 쉽사리 나올 수 없게 부대를 주둔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흠…….”
한참을 고민하던 멘시코프는 길 위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버렸다고 판단하고는 결국 브르노를 건너뛰기로 했다.
그날 저녁 러시아군은 야음을 틈타 브르노에 최소한의 병력을 남겨둔 채 빈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이 브르노를 벗어난 다음 날 아침.
먼저 길을 정찰하라고 보낸 전령에게서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보고! 이곳에서 이틀 거리에 있는 마을에서 제국군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