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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70화 (70/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70화

빵과 화약?

괴르게이가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었다.

그것도 수만 병의 병력과 수십 문의 대포까지 이끌고서 말이다.

소수의 국경수비대와 경비병력만 남아 있던 크라쿠프는 갑작스러운 헝가리군의 침입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각지에 흩어져 있던 병력은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이 모든 것은 괴르게이가 산악지역을 넘은 지 불과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크라쿠프를 해방한 괴르게이는 지체 없이 기수를 남서쪽으로 돌려 부대를 오스트라바로 이동시켰다.

“각하, 차라리 바르샤바로 진군하여 폴란드인들의 지원을 받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겠습니까?”

이 상황에서 언드라시는 바르샤바로 진군하여 폴란드를 해방할 것을 주장했다.

어차피 러시아군의 후방을 막는 것은 소수의 부대만 가도 충분했으니 주력은 폴란드를 해방하여 러시아에 출혈을 강요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우위를 가져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괴르게이는 이를 거부했다.

“뒤통수가 간지러운 것은 사양일세.”

“하지만…….”

“그리고 우리 옛 친구에게 도움이 필요한 것 같으니 도와주러 가는 것도 있고 말이야.”

“친구……?”

언드라시는 괴르게이가 언급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분명 그가 기억하기로 괴르게이가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단 한 명도 없다.

그가 기억하는 괴르게이는 존경받는 사람이었지 친근한 사람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언드라시의 내면에는 의문이 가득했지만, 굳이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 * *

전장을 꼼꼼하게 살펴보던 멘시코프는 연합군이 선점하고 있는 고지를 둘러보며 말했다.

“걱정했던 것처럼 높고 가파른 언덕은 아니군.”

“자세한 것은 측량해 봐야겠지만……. 언덕의 높이는 대략 2~300m 정도로 추측됩니다.”

현재 연합군이 자리 잡은 능선은 경사가 완만하고 높이도 그리 높지 않은 것이 올라가는데, 그리 힘이 들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거기에 병사들의 움직임을 방해할만한 장애물도 없었으니 공격이 시작되면 금세 고지를 탈환하여 승리를 거두리라 생각했다.

“저기 홀로 떨어져 있는 고지의 방어선이 허술해 보이니 저곳을 점령하여 포대를 설치하면 다른 곳의 공략이 쉬워지겠군.”

“그렇다면 저곳을 먼저 점령하여 포대를 설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러시아군은 기세등등하게 부대를 정렬하고 선봉대를 투입했다.

하지만…….

“전진! 전진하라고 머저리들아!”

분명 처음 병력을 내보낼 때만 하더라도 금방 언덕을 올라 적들을 밀어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적군은 총과 대포를 쏘아대며 격렬히 저항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정면에서만 날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각 고지에 설치된 포대에서는 서로 간에 지원을 해주며 병사들을 괴롭혔다.

특히 폴란드 군단이 위치한 고지를 공략하려던 러시아군의 피해가 컸는데, 그들은 언덕 초입부터 적의 집중사격을 얻어맞으며 대열이 완전히 깨졌다.

그들이 먼저 진격을 멈추니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긴 폴란드 군단의 포병대는 곧장 다른 고지를 지원했고 이내 다른 고지에서도 러시아군의 공세가 하나둘씩 돈좌되며 부대가 주저앉았다.

아무런 엄폐물도 없는 언덕을 걸어 올라가던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집중포화에 다급히 몸을 숙이거나 바닥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다들 지금 무엇을 하는 건가! 빨리 올라가! 올라가지 않으면 다 죽는다!”

“여기 있으면 다 죽는다! 빨리 올라가라!”

현장을 지휘하던 장교들은 어떻게든 병사들을 움직이고자 그들을 강제로 일으키고 등 떠밀었으나 겁에 질린 병사들은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그렇게 선봉대의 발이 묶이자 이를 지켜보던 멘시코프는 이마를 찌푸렸다.

“지금 다들 무엇을 하는 건가? 병사들이 언덕 초입에서 발이 묶였잖은가.”

“저, 적의 반격이 만만찮은 모양입니다.”

“누가 그걸 모르는가? 그렇기에 적의 기세를 꺾어놓고자 선봉대를 투입한 것 아닌가.”

멘시코프는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전력상으로는 이쪽이 우위였고 전장 역시 저들이 고지를 선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으로 불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군은 추태를 계속 보이며 빌빌대고 있었으니 답답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뭣들 하는 건가? 당장 병사들을 총살해서라도 당장 진격시키게!”

“알겠습니다!”

상부의 압박까지 내려오자 현장의 지휘관들은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오죽했으면 대대장이 직접 최전선까지 찾아와 병사들에게 호통을 쳤으니 말이다.

“다들 무얼 하는 건가! 이 거리에서는 코끼리도 쏘아 맞힐 수가 없다는 걸 모르는…….”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대대장은 자신의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언덕 위에서 날아온 총탄에 머리가 꿰뚫리며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부대장의 죽음을 본 병사들은 분기탱천하며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힘찬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그러고는 한 명도 빠짐없이 힘차게 자신들의 진영을 향하여 언덕을 뛰어 내려왔다.

“뭐 저런…….”

그 모습에 멘시코프는 할 말을 잊었다.

* * *

괴르게이와 폴란드 군단, 로마공화국의 합류로 매우 급했던 전선에 여유가 조금 생겼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황이 우리에게 유리해졌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여유가 생겼을 뿐이었다.

“공작, 국내 상황은 어떤가.”

“급한 고비는 넘긴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전쟁 때문에 주식시장이 잠시 휘청거리긴 했지만……. 다행히도 큰 문제 없이 넘어갔습니다.”

“그건 다행이로군.”

혹시라도 전쟁 때문에 어렵사리 유치한 외국자본이 일시에 빠져나가는 것은 아닐까 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긴 지금이야 러시아가 잘나간다고는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가 손을 잡았으니 이번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하는 것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무기와 탄약 생산에는 차질이 없는가?”

“예, 지난 전쟁 당시에 생산해놓은 비축분이 남아 있기도 했고 노동자들이 이전에 영국으로부터 차관을 대신에 하여 들여온 신형공작기계에 적응한 덕분입니다.”

“그거 다행이로군.”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얼추 만든 인구조사표를 통해 제국 전역에 있는 만18세 이상에서 25세 미만의 독일계 남성을 전부 징집한 덕분에 제국군은 전선에 보낸 병력을 제외하고 30만이나 되는 병력을 훈련 중이었다.

물론 이들을 훈련하느라 국가재정은 연일 피를 토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괜찮았다.

어차피 전쟁에서 이기면 러시아 놈들에게 청구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조금 무리하여 전쟁예산을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대규모 공적 사업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제철소에서는 연일 오스트리아와 보헤미아에서 생산된 철광석으로 강철을 뽑아냈다.

그렇게 생산된 강철은 다시금 제국 전역으로 흩어지며 제 몫을 톡톡히 해냈고 말이다.

“마치 제국 전역이 잘 만들어진 정교한 기계처럼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공작은 그리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제국의 이러한 상태가 허술해 보이기만 했다.

당장 병력을 징집하는 것만 하더라도 오스트리아의 독일계뿐만이 아니라 제국 전역에 징집령을 내렸다면 60만에서 80만 명 사이의 인력이 튀어나왔을 것이었다.

물론 아직 허약한 제국의 산업으로는 그들을 전부 무장시키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제국 전역의 산업단지와 건설현장으로 보내어 인력을 활용할 수는 있지 않은가?

제국 내의 경제 상황 역시 문제였다.

제국은 전쟁이 시작된 지 석 달이 지났음에도 아직 전시체제로 전환하지 못했다.

[이미 충분히 전시체제로 전환하지 않았나.]

‘영감님, 원래 전쟁이라는 건 최후의 한 명까지 총을 쥐거나 공장에서 무기를 만드는 거라고요!’

[……?]

본래 전쟁이라는 것은 내가 죽거나 상대가 죽을 때까지 끝없이 몰아붙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제국 내의 분위기를 보자면 귀족들은 마치 재밌는 유희 거리가 생겼다는 듯이 설쳤고, 시민들은 전쟁이 벌어지건 말건 자신들의 일에 집중했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이건 모두 중앙의 힘이 약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내가 잊고 있던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되살아나는 기분이로군.]

영감님은 오랜만에 기운을 되찾으신 것인지 다시금 내게 잔소리를 쏟아내셨다.

[모름지기 전쟁이란 것은 그렇게 극단적으로 흘러가는 일이 드물다네, 오히려 서로 간에 몇 번 전투를 치르고 전황이 기울면 외교관을 보내 신사적으로 전쟁을 끝내는 것이 보통이지.]

‘……?’

평소에도 영감님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오늘은 더욱 이해가 되질 않았다.

‘세상에 그렇게 싸우는 이들이 어딨습니까?’

[그게 유럽의 방식이네.]

영감님의 말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푸핫!’

[왜 웃는가.]

‘영감님이 옛날 사람이라는 걸 다시 깨달으니 웃음이 절로 나오는 걸 어쩌겠습니까.’

[으음……. 옛날 사람이라니…….]

영감님은 옛날 사람이라는 말에 당황하신 듯했지만 나는 이보다 좋은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당장 전쟁에 대한 것만 하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전쟁은 한창 학교에서 배웠던 한국전쟁처럼 국가총생산량과 인력을 갈아 넣어 서로 최후의 한 명까지 쥐어짜 내어 서로를 공격하는 그런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영감님은 마치 귀족들이 체스를 두듯이 서로 병력을 운용하며 전투를 벌이다가 승패가 정해지면 신사적으로 협상하는 그런 것을 떠올리셨고, 말이다.

영감님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전쟁은 영감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흘러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이후도 그렇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영감님.’

[왜 부르는가.]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대뜸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군.]

‘에이……. 그만큼 제가 영감님을 좋아한다는 뜻이니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드문드문 영감님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이 시대 지도층이 어떻게 생각할지, 그리고 무슨 이유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전까지의 영감님은 그저 연륜에서 묻어나는 조언을 해주는 데 그쳤다면 이제부터는 조언을 넘어 격동하는 이 시대를 대변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러기에 영감님이 좋았다.

마치 태어나서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아버지와 함께한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곁에 있으면 안심되었다.

[……그러니 지금 전쟁은 자네의 말마따나…….]

잔소리는 여전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늘 그렇듯이 영감님의 잔소리를 뒤로하며 공작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전에 영국의 원정군이 출발했다고 들었는데……. 그들이 본격적으로 전선에 투입되려면 얼마나 걸리겠는가?”

“아무리 늦어도 이번 주 안에는 아드리아해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작전을 벌일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목적지는 아무래도…….”

“발칸이겠지요.”

“으음…….”

공작의 대답을 예상하긴 했지만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우리 상황도 매우 급하긴 했지만 발칸 쪽의 상황은 풍전등화였으니까 말이다.

“발칸 쪽의 프랑스군은 큰 피해를 보고 해안으로 밀렸다던데……. 그렇게나 상황이 안 좋은 건가?”

“그것이…….”

* * *

시선을 잠시 남쪽으로 돌려 오늘날 알바니아의 수도인 티라나에 자리 잡은 피에르 보스케 장군의 프랑스 원정군은 본국으로부터 이렇다 할 지원도 받지 못하고 러시아군을 맞이해야 했다.

보스케 장군은 알바니아의 험준한 산악지형을 이용한 세밀한 방어계획을 세웠지만, 파스케비치는 이를 우직하게 힘으로 뚫어냈다.

“제1, 2, 3번 방어선이 돌파되었습니다!”

“적이 티라나 외곽방어선에 도착했습니다!”

“북쪽 방어선에도 대규모의 적군이…….”

보스케 장군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방어선은 우직하게 밀어붙인 러시아군의 공세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준비 기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도 이유였지만 가장 큰 이유는 병력 부족에 있었다.

“쓰읍……. 역시 모든 곳을 틀어막으려 했던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군.”

“각하, 적들이 슬슬 도시로 밀려들 겁니다.”

“알고 있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잠시 고민하던 보스케 장군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후반의 예비대를 투입하여 전선의 구멍을 막고 최전선의 부대를 교체하게, 그리고 교체된 부대는 후방의 두러스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새로운 방어선을 만들도록.”

“알겠습니다.”

그렇게 보스케 장군의 프랑스 원정군과 사르데냐 원정군은 러시아군의 공세에 큰 피해를 보고 물러나야 했다.

물론 방어선을 두들긴 러시아군의 피해 역시 상당했지만 그런데도 파스케비치의 부대는 여전히 수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다만…….

“각하……. 슬슬 아군이 보유한 화약량이 바닥을 보입니다.”

“뭐? 분명 본국에서 새로 보급받은 지 두 달밖에 안 되었거늘 벌써 다 썼다는 말인가?”

“예, 워낙 격전이었던 것도 있지만……. 본국에서 보내오는 화약의 양이 크게 줄었습니다.”

“허허……. 본국에서 오는 보급이 줄었다고?”

러시아의 허약한 경제와 그 토대에서 만들어진 빈약한 생산력으로는 두 개의 전선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당장 발칸 쪽에 투입된 병력의 뒤를 대주는 것만 해도 힘들었는데, 오스트리아 쪽 전선까지 열어버렸으니 보급선에 무리가 오는 것은 당연했다.

“거기에 식량 사정도 좋지 않아 인근 지역에 병사들을 파견하여 징발하고는 있습니다만……. 현지 주민들의 반발이 거센지라…….”

“으음……. 큰일이로군.”

아이러니하게도 파스케비치의 군대를 막아선 것은 서방의 군대가 아니라 빵과 화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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