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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72화 (72/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72화

준비

헝가리군이 돌연 러시아군의 후방에 나타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괴르게이 아르투르가 이끄는 헝가리 방위군이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어 러시아군의 후방을 공격했다.

당연하게도 제국에 가용 가능한 병력이 없으리라 판단하여 후방경계를 게을리했던 멘시코프의 허를 찌른 기습이었다.

여기서 끝났다면 멘시코프도 부대를 잘 정비하여 어찌어찌 방법을 찾아봤겠지만……. 그의 상대는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번번이 제국군을 골탕 먹였던 괴르게이였다.

“부대를 둘로 나누어 오스트라바와 올로모츠를 동시에 공격하겠다.”

“각하,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오스트라바를 넘지 못하면 올로모츠로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부대를 둘로 나눈 것이 아닌가? 한쪽이 오스트라바를 공격하는 동안 다른 쪽은 올로모츠를 공격하는 것이지.”

“그렇다면……. 각하께옵서는 오스트라바와 올로모츠를 동시에 공격하자는 말씀이신지요……?”

“그렇다네.”

괴르게이의 계획은 이러했다.

“자네가 본대를 이끌며 오스트라바를 공격하는 동안에 내가 기동성을 중심으로 기마 포병과 기병대를 이끌고 올로모츠를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브르노에서 재합류하는 것이지.”

“하지만……. 적의 대군이 기수를 돌려 이에 대응한다면 각개격파 당할 수 있습니다.”

언드라시의 조언대로 러시아군이 부대를 돌려 둘로 나누어진 헝가리군을 공격한다면 각개격파 당할 위험이 컸으나 괴르게이는 허허 웃으며 말하길.

“그것은 걱정하지 말게, 저들은 자신들이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네.”

“저들이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걸렸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일세, 저들은 날카로운 송곳으로 무른 버터를 찌르듯이 단번에 빈으로 찔러 들어갔지.”

괴르게이는 두 손으로 날카로운 무언가를 찔러넣는 모습을 보였다.

“크로아티아 녀석들이 러시아군을 상대로 시간을 끌긴 했지만, 저들은 그들의 저항을 분쇄하며 제국 깊숙이 들어왔지.”

“크흠……. 각하 손동작이 조금…….”

세상 진지한 얼굴로 괴상망측한 손동작을 선보이는 그의 모습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심히 우스운 행동이었으나 정작 당사자는 아무 생각도 없어 보였다.

“한창 신나서 안으로 파고들 때는 생각지 못했겠지만……. 저들이 제국 내부로 깊숙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보급선은 늘어지고 아군의 저항은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지.”

“나폴레옹처럼 말입니까?”

“맞아! 바로 그것과 같지.”

괴르게이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남사스러운 손동작을 멈췄다.

“아무리 용맹하고 강한 군대라고 하더라도 사시사철 그 기세를 유지할 수는 없는 법이야. 거기에 저들은 단기전을 예상하며 작전을 준비했을 테니 슬슬 보급품도 부족해질 시점이지.”

“그러니 우리는 그들의 후방을 기습하여 저들의 보급선을 끊고 천천히 압박하여 들어가자는 말씀이로군요.”

“역시 하나를 알려주면 잘 알아듣는 친구답군.”

하지만 언드라시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그럼 조금 전에 말씀하신 저들이 스스로 함정에 걸어 들어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각하께서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저들의 공세가 종말점을 향했다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닌듯한데…….”

그의 질문에 괴르게이는 한 손에는 지도를 다른 한 손에는 연필을 들고서는 지도에 표시했다.

“지금 우리 쪽 정보에 따르면 아군은 브르노의 요새와 그 인근에 있는 평원에 자리 잡고 있지, 그리고 그사이에 러시아군이 있다네, 그리고 우리는 이쯤이겠군.”

표시를 마친 괴르게이는 제국군이 각자 위치한 곳을 선으로 이었다.

그걸 지켜보던 언드라시는 무언가 알아차렸다는 듯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아!”

“이제 좀 알겠는가?”

지도위의 러시아군은 괴르게이가 이어놓은 포위망 안에 갇힌 상태였다.

그들의 앞뒤에는 제국군이 자리 잡은 탓에 움직임이 조금 불편했는데, 이젠 북쪽에서 헝가리군이 나타나 그들의 보급선을 끊어놓았다.

러시아군이 부대를 뒤로 물려서 활로를 뚫어낼 수도 없는 것이 당장 그들과 대치 중인 제국군이 그걸 가만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부대를 나누면 괴르게이가 이걸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체스에서는 이런 상황을 뭐라고 불렀지?”

괴르게이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언드라시에게 묻자 그는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체크메이트지요.”

* * *

멘시코프는 대홍수처럼 물밀 듯이 밀려들어 오는 보고에 미치기 직전이었다.

“크라쿠프, 오스트라바에 이어서 올로모츠까지 공격받고 있다는 건가?”

“……조금 전에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앞의 두 도시는 이미 함락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올로모츠도 적의 수중에 떨어졌겠군.”

“…….”

러시아 지휘부의 분위기는 처참했다.

매일같이 밀려들어 오는 보고는 암울하기 그지없었고 그나마도 얼마 못 가 더 끔찍한 보고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쯤 되니 쓸데없는 정보가 너무 많아져서 지휘부는 현재 후반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지휘부에 있는 모든 이들이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감을 알았고 빨리 후퇴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임을 잘 알았다.

하지만 누구도 이걸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아니, 못했다.

이미 이전의 일 때문에 다들 사령관의 눈치만 살피며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이대로 가만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몇몇 장교들이 멘시코프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긴 했지만…….

“각하, 차라리 부대를 나누어 포위망을 돌파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좋은 의견 같습니다. 어차피 저들이 우릴 포위했다고는 하나 숫자가 적어 포위망이 얇지 않습니까? 그러니 부대를 보낸다면 충분히…….”

“안 될 일이야. 지금 부대를 나누기 전에도 코앞에 잇는 제국군을 어쩌지 못했는데, 여기서 부대를 나누면 아무것도 못 하고 식량만 축낼 것이야.”

“으음…….”

돌아오는 것은 멘시코프의 날 선 대답뿐이었다.

그러니 그들도 곧 입을 다물 수밖에…….

멘시코프 역시 이 상황이 상당히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있다가는 정말 아무것도 못 하고 부대가 적에게 포로로 잡힐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그간의 전투로 인해 병사들이 지치기도 했고 사기도 크게 꺾인 탓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으며 보급품을 까먹으면 그 이후는 재앙뿐이었다.

“후…….”

그나마 폴란드를 쥐어짜며 보급품을 받아내고 있었는데, 이제 그마저도 막혀버렸으니 앞으로가 큰 걱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멘시코프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세가 적에게 넘어갔음을 인정하고 적에게 투항하거나 전 병력을 이끌고 후퇴하여 활로를 뚫는 것.

마지막으로 가용 가능한 자원을 박박 긁어모아서 최후의 전투를 벌여보는 것.

병사들을 위해 자신의 명예를 버리느냐 명예를 위해 병사들을 버리느냐……?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명예와 실리 사이에서 고민하던 멘시코프는 마음을 굳게 다지며 결단을 내렸다.

“당분간은 병사들을 푹 쉬게 하며 부대를 재편하고 재정비하여 다음 전투를 준비하게.”

* * *

라데츠키는 요 며칠 무작정 병사들을 밀어 넣던 러시아군이 잠잠해진 것에 의아함을 느꼈다.

“적이 너무 잠잠해.”

“조용하면 좋은 것이 아닙니까? 오히려 이쪽 부상자를 돌보고 전열을 재정 비할 수 있으니 오히려 좋은 것이지요.”

“그간 저들이 무리하게 공세를 지속하다가 힘이 빠져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라데츠키 휘하의 여러 장교가 저마다 의견을 내놓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간 저들이 무리한 공세를 벌인 것은 사실이나 그것 때문에 공세가 멈췄다고는 생각할 수 없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간단하네! 적은 단기전을 생각하며 우리를 뚫고 지나가야 하는데, 돌연 공격을 멈추는 것이 맞는가?”

라데츠키의 물음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

“그럼 각하께서는 저들이 공격을 멈춘 것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라데츠키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별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그저 조금 쉬었다가 다시 공격하려는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조금 전에는 저들이 공격을 멈춘 것이 다른 이유가 있어 그런 것이라고…….”

“세상에 사연 없는 무덤이 없는 것처럼 저들이 멈추어 선 것에도 전부 이유가 있을 것이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저들이 다음 공격을 위해 힘을 비축하려는……. 쿠흠, 커흠…….”

한창 말을 하던 라데츠키는 마른기침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기침에 휘하 장교들이 살짝 걱정된다는 듯이 물었다.

“각하, 괜찮으십니까?”

“으음……. 늘 있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말게.”

라데츠키는 손수건을 꺼내 손과 수염에 묻은 것을 닦아내며 말을 이어갔다.

“……적이 힘을 비축하려는 것은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승부를 보려 함일세.”

“그렇다면 이쪽에서는 방어진지를 보강하여 더욱 굳건히 버텨야겠군요!”

“굳건히 버텨? 자네 미쳤는가?! 지금은 치고 나가야 할 시간이네.”

라데츠키는 고개를 돌려 본대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홀로 나부끼는 폴란드 깃발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며 부관에게 말했다.

“저쪽에 있는 반군 대장도 내 생각과 같을 것이네.”

라데츠키의 말처럼 폴란드 군단을 이끄는 뎀빈스키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보게 벰.”

“왜 부르는가.”

“러시아 놈들이 지금 공격을 멈췄다는 건……. 보통 내부 문제가 크게 터져서 그런 것이 아닌가?”

“보통은 그렇지, 그게 아니라면 외부에서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고 말이야.”

“외부문제란 말이지…….”

뎀빈스키의 입꼬리가 살살 올라갔다.

그런 그의 모습에 요제프 벰은 히죽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러시아 놈들 뒤꽁무니를 걷어차 줄 생각.”

“어련하시겠나……. 그래, 이번엔 어떻게 걷어차 줄 생각인가?”

“고지를 비울 생각이네.”

“그다음엔?”

뎀빈스키는 나뭇가지를 주워와서는 땅바닥에 무언가를 끄적이며 설명했다.

“여기가 우리고 이곳이 제국 놈들이 위치한 곳이라고 했을 때, 우린 살짝 돌출되어 있지 않은가.”

“그렇지, 그래서 이쪽으로 적의 공격이 집중되었던 것이 아닌가.”

“그러니 다음에 저들이 공격해 오기 전에 이 고지를 버리고 뒤쪽으로 물러날 생각이네.”

“버린다고? 흠…….”

갑작스레 고지를 버린다는 말에 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그동안 아군의 피해가 제법 누적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싸울 수 있잖은가.”

“알고 있네, 그렇기에 뒤로 물러나려는 것이야.”

“……자네에게 무슨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빼지 말고 시원하게 설명해 보게.”

“하하하, 참을성이라고는…….”

뎀빈스키는 웃으면서 다시금 땅바닥에 대충 그려놓은 전투 지도를 끄적였다.

“우리가 고지에서 물러나면 저들이 어찌하겠나?”

“그야 점령하려고 들겠지.”

“그렇지! 그럼 적의 우익이 고지를 점령하는 동안 우리는 산길을 지나 적의 좌익을 뚫고 지나가 적의 중앙을 싹둑 잘라먹어 각개격파하는 것이지!”

“흠……. 우리끼리 그럴만한 전력이 되겠는가? 미안한 말이지만 적들이 약체화되었다고는 해도 아직 우리보다는 숫자가 많네.”

벰의 지적에 뎀빈스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길.

“우리끼리라면 말이지.”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오른쪽에 있는 라데츠키의 진지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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