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74화
재회?
오스트리아령 헝가리왕국의 총독 알렉산더 폰 바흐 남작은 우울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충성을 바치던 황제 폐하께서 자신이 아닌 헝가리 반역자를 중용하셨다는 사실이 그에게 큰 충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 반역자 놈을…….”
거기에 헝가리인들이 모인 곳에서 괴르게이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으니 앞으로 총독직을 이어가는 것도 많은 애로사항이 생겨날 것이었다.
그동안 법과 질서로 그들을 다스리기 위해 공포를 이용했는데, 이젠 누구도 총독을 무서워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젠 끝이로군.”
영지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총독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다.
분명히 이 소식도 황제 폐하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니 상부에서 자신을 해임하겠다는 명령서가 내려올 것이 분명했다.
바흐 남작은 그리 생각하며 자신을 해임하겠다는 통지문이 오면 곧장 떠날 수 있도록 짐을 챙기고 마음의 준비를 끝내놓았다.
그러자 곧 그가 떠난다는 소식이 헝가리 전역에 퍼져 나갔고 전쟁 중임에도 축제가 열릴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상부 오스트리아의 총독이자 그의 동생인 에두아르트가 찾아왔다.
“형님, 폐하께서 보내셨습니다.”
“이제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도 되겠군.”
바흐 남작은 마치 그동안 총독직이 자신에게 너무 과분한 짐이었다는 것처럼 행동하며 동생을 맞이했다.
“그래, 네가 새로운 헝가리 총독이더냐.”
“일단은 그렇습니다.”
“허허……. 폐하께서 나에 대한 신뢰는 거두셨어도 우리 가문에 대한 신뢰는 여전하신 모양이로구나.”
“신뢰요?”
바흐 남작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생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이 자리는 내가 맡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직책이었다. 나는 이 자리에 있을수록 내 한계를 깨닫…….”
“예? 형님 조금 전부터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바흐 남작은 동생이 자신의 말을 끊자 살짝 이마를 찌푸리며 그를 노려봤다.
“……동생아 이 형님께서 중요한 말을 하고 있는데, 중간에 끼어들어서야 쓰겠느냐?”
“형님, 지금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급하게 형님을 찾으셨습니다.”
“나를 찾으셨다고?”
남작은 순간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갑자기 황제가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상을 내리거나 벌을 받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헝가리를 관리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던 적이 별로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황제께서 자신을 처벌하기 위해 부르는 것이 분명했다.
“…….”
“형님?”
“아우야……. 오늘이 너와 내가 마지막으로 만나는 날이 되겠구나……. 형님과 오토, 그리고 부모님께 내 안부를 전해다오.”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형님 누가 들으면 죽으러 가는 거로 오해하겠습니다.”
동생은 기특하게도 자신을 다독여줬지만, 그는 그것이 헛된 희망임을 잘 알았다.
그가 알고 있는 황제 폐하는 공과 사가 분명하신 분인 만큼 그의 실수에 합당한 처벌을 내릴 것이었다.
대관식 준비도 미처 끝내지 못했고 그렇다고 헝가리인들을 잘 관리하지도 못했으니 그 죄는 죽음으로써 갚아야 할 것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 개소리인가.”
“개, 개소리……?!”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황제는 피로에 찌든 모습으로 대충 자신의 옆에 마련된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축하하네, 지금부터 자네가 임시 총리 겸 내무부 장관일세.”
“초, 총리 말입니까?”
“그래, 전쟁 끝나고 본격적으로 개헌 내각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자네가 고생 좀 하게.”
“하지만……. 저는 헝가리의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는데, 어찌 이런 큰일을…….”
그의 물음에 황제는 짜증 난다는 듯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거야 짐이 무리하게 자네를 그 자리에 앉히기도 했고,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여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대충 내 잘못으로 하고 자네는 거기 앉아서 빨리 밀린 업무나 처리하게.”
“폐하…….”
황제는 왜 바쁜데 귀찮게 그러는 것이냐고 투덜거렸지만 남작은 그것이 황제의 배려임을 알았다.
황제 폐하께서는 괜히 자책감을 가질까 봐 자신에게 나름대로 신경을 써주시는 것이었다.
헝가리에서 처참한 실패를 맛본 자신을 질책하기는커녕 더 높은 직책을 하사하는 황제 폐하의 모습에 감동한 바흐는 마음속으로 영원한 충성을 다짐했다.
* * *
[바흐 남작이 감동한 모양이로군.]
‘어휴……. 저럴 시간에 일이나 할 것이지.’
[너무 그러지 말게, 어찌 되었건 공작을 대신하여 일해줄 성실한 친구잖나.]
‘대충 알아들었으면 앉아서 일이나 할 것이지 저거 보십시오. 지금 일하기 싫다고 제게 시위하는 거 아닙니까?’
[진정하게.]
지금 공작이 쓰러진 탓에 요 며칠간 먹지도 씻지도 못하고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평소와는 다르게 작은 일에도 예민해졌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밖에서 시종들과 시녀들이 지나다니며 내는 발소리와 근위병들의 교대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괜스레 짜증이 치밀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바흐.”
“예, 폐하.”
“브루크 경이 일주일 전에 올린 부다 시내 도로확장 공사 예산보고서가 어디 있는지 아는가?”
“조금 전에 온지라 잘 모르겠…….”
“모르면 찾아오게.”
“…….”
급한 대로 바흐 남작을 데려오긴 했지만, 업무처리는 여전히 더디기만 했다.
물론 그가 무능해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바흐 남작은 공작이 자신의 후계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업무처리능력이 좋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단지 이전에 함께 일하던 공작의 능력이 다른 이들보다 훨씬 뛰어나서 그런 것이었다.
“바흐, 졸리나?”
“아, 아닙니다!”
“졸리면 가서 눈 좀 붙이게, 괜히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신경 쓰여서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
새벽까지 이어진 업무 때문에 피곤했던 것인지 바흐 남작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공작은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저게 정상적인 모습이라네.]
‘잔소리 좀 그만하십시오. 지금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습니다.’
[이보게 지금 자네가 제국의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인 것을 모르는가?]
‘그 말이 안 되는 걸 제가 하고 있네요.’
[이보게……. 후우……. 아닐세, 나중에 하지.]
영감님은 무언가를 말씀하시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면서 가버리셨다.
그렇게 나는 서류의 파도 속에 머리를 파묻고서는 일을 처리했다.
그렇게 당장 급하게 처리해야 할 문서들을 처리하고 기지개를 켜니 캄캄했던 주변이 무척이나 환해져 있었다.
“아침인가 보군.”
바흐 남작을 힐끔 돌아보니 그는 이미 서류 더미에 머리를 파묻고는 쓰러진 뒤였다.
다행히도 숨은 쉬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죽은 것은 아니었다.
일을 얼추 처리하고 나니 그동안 한쪽으로 치워뒀던 공복감이 몰려들었고 몸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올라왔다.
“헨리.”
“부르셨습니까.”
“시장하구나.”
“식사를 준비하라고 말해두겠습니다.”
“그래, 우선은 좀 씻어야겠다.”
“예, 폐하.”
사람답게 살기 위해 움직이기 전에 마지막으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보헤미아 쪽 전선으로 가는 보급품량이 늘었던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평소라면 영국과 프랑스 놈들의 눈탱이를 힘껏 후려치며 발칸 전선 쪽에 대줬을 보급품이 보헤미아 전선으로 밀려들어 갔다.
단순히 방어용이라고 하기엔 그 양이 어마어마했던지라 뭔가 이상했다.
‘설마 러시아군을 밀어내려는 건가?’
그런 생각도 해봤지만 이내 웃음이 터졌다.
“그럴 리가 없지.”
아무리 러시아제국이 오랜 전쟁으로 슬슬 지칠 때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유럽 전통의 육군 강국이었으니 말이다.
* * *
보헤미아의 러시아군은 궁지에 몰려 있었다.
분명 폴란드 군단이 고지를 포기한 것을 확실하게 확인하고는 재빨리 부대를 보내 점령하고 그곳에 포병 진지를 구축하게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적들의 계략이었다.
“각하, 적군이 아군의 우익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아군의 전열이 붕괴할 겁니다!”
“……아군 포병대는 아직인가?”
“이제야 고지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자리를 잡고 포격 지원을 시작하려면 빨리 움직인다 해도 반나절은 걸릴 겁니다.”
“그럼 우리 군은 화력의 열세 속에서 적의 공세를 막아내야 한다는 말이로군.”
멘시코프의 말에 회의장이 침묵에 잠겼다.
전쟁의 신이라고 불리는 나폴레옹은 신은 가장 강력한 포병대가 있는 자의 편이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포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회의실에 모인 여러 장교도 동의했다.
포병 화력이 강할수록 적의 전투 의지는 꺾일 것이고 적들이 접근하기 전에 아군이 우위를 점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나 중요한 포병대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풀 쪼가리들만 있는 작은 고지 하나를 차지하고자 보내버린 탓에 지금은 운용 가능한 포대가 단 하나도 없었다.
그 말인즉 러시아군은 초병의 지원 없이 오스트리아군에 맞서야 한다는 뜻이었다.
더 쉽게 설명하자면 X 됐다는 뜻이었다.
“각하……. 지금이라도 진형을 잠시 뒤로 물리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미 물러나기엔 늦었네, 지금 물러났다가는 이도 저도 못 하고 큰 피해만 입을 것이야……. 차라리 예비대를 모두 투입해서 저들의 예기를 꺾는 것이 좋을 것이네.”
멘시코프는 우선 예비대를 투입하여 적의 공세를 막아서고자 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폴란드 군단의 집념은 무서울 정도였고 수십 년간의 전쟁경험은 그들을 유럽에서 손에 꼽는 정예병으로 만들었다.
“신과 조국, 그리고 폴란드를 위하여 전진!”
“와아아아-!”
포병대의 지원을 받은 폴란드 군단이 용맹하게 러시아군의 전열을 흐트러뜨리고 적의 진형에 구멍을 뚫어놓자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라데츠키는 지체 없이 부대를 내보냈다.
“가리발디 경.”
“알겠습니다.”
가리발디가 이끄는 로마공화국의 붉은 셔츠 단도 그에 못지않은 용맹함을 뽐내며 러시아군을 신나게 몰아붙이며 구멍을 확장했다.
폴란드 군단과 붉은 셔츠단이 뚫어놓은 구멍으로 제국군이 일시에 투입되니 러시아군의 진형은 정확히 둘로 나뉘었고 병사들 역시 포위당한다는 두려움에 빠져 하나둘씩 무기를 내던지고 도망쳤다.
“자리를 지켜라! 제자리를 지켜 멍청한 놈들아!”
“도망치지 마라! 도망치는 놈은 즉결처형이다!”
러시아 장교들과 부사관들이 병사들을 다독여봤지만 그런다고 이미 겁에 질린 병사들이 돌아올 리가 만무했다.
지금 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제국의 승리니 명예와 영광 같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목숨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장교들은 다소 험악한 방법까지 써가면서 병사들을 붙들었다.
“내 뒤로 물러나는 녀석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
“자리를 지켜라! 어차피 가만히 있다 죽으나 도망치다가 내 손에 죽으나 죽는 것은 똑같지 않더냐!”
그렇게 병사들을 진정시키고 강제로라도 전열에 집어넣자 제국군에 유리하게 기울던 전황이 미궁에 빠져버렸다.
“아직 살아계셨구려.”
“그대도 여전히 질긴 목숨이 붙어 있군.”
전장 한가운데서 만난 뎀빈스키와 가리발디는 서로를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러시아 놈들이 본진에 남아 있는 예비대란 예비대는 모조리 끌고 온 것 같소.”
“내 생각도 그와 같네, 아무래도 이번 공격은 실패로 돌아갈 것 같군.”
“그렇다고 적이 우리가 도망치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진 않을 것이오.”
“그렇겠지…….”
뎀빈스키는 전장을 둘러봤다.
사방에서 피어오른 뿌연 연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전황이 불리하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우리 중에 누군가는 뒤에 남아야겠구려.”
“그렇겠지…….”
“그럼 그 영광은 내가 맡고자 하오만.”
가리발디는 자신이 직접 나서며 뒤에 남겠다고 했지만, 뎀빈스키는 이를 거절했다.
“어찌 영광을 독차지하려고 하시는 건가? 당연히 후방을 지키는 것은 우리 폴란드 군단의 일이야.”
“그대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야지 않소. 그러니 이번에는 우리에게 양보하시오.”
“허허, 겁쟁이처럼 돌아갈 바엔 용감하게 싸우다가 관짝에 실려서 돌아가는 것이 낫네!”
뎀빈스키는 그리 말하며 전선에서 열심히 싸우는 자신의 병사들을 돌아보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이 작전은 내가 기획한 것이네, 그러니 실패했을 때의 대처와 책임도 내가 하는 것이 맞지.”
“……그리 말씀하시니 제가 할 말이 없군요.”
“먼저 가게, 조금 뒤에 따라가겠네.”
뎀빈스키의 굳건한 얼굴을 본 가리발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행운을 빕니다.”
“자네야말로 행운을 빌지.”
그렇게 제국군과 붉은 셔츠단이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멘시코프는 곧장 명령을 내렸다.
“적이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물러나는구나……. 이 전투는 우리가 이겼다! 당장 기병대를 내보내 도망치는 적의 뒤를 치게 하여라!”
전투 내내 진지 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러시아 기병대는 우리에서 풀려난 맹수처럼 단숨에 전장을 가로질러 후퇴하는 제국군의 뒤를 노렸다.
하지만 이것을 예상했던 뎀빈스키 역시 기병대를 풀어 그들을 저지한 탓에 그들은 목표했던 바를 이룰 수 없었다.
그렇게 되니 결국 분노의 화살은 뒤에 남겨진 폴란드 군단으로 향했고 그들은 러시아군의 집중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밀리고 밀린 폴란드 군단은 인근의 자그마한 마을에 몸을 숨겼고 전투로 인한 흥분에 사로잡힌 러시아군이 마을을 포위했다.
“퇴로가 막혔습니다!”
“사방에 루스 놈들이 가득합니다!”
“큰일이로군.”
이런 상황에서 뎀빈스키는 자리에 주저앉아 여유롭게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하지만 오전 내내 말 위에서 병사들을 지휘했던 탓인지 아니면 곧 다가올 죽음의 공포 탓인지 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성냥조차 제대로 켤 수 없었다.
“쯧쯧……. 사람 참 칠칠찮긴.”
그러자 그의 오랜 친우인 벰이 다가와 담뱃불을 붙여주며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적의 포위망을 뚫어야지.”
“가능하겠나?”
“……해봐야지.”
그와 병사들은 본능적으로 이곳이 자신들의 무덤이 될 것을 눈치챘으나 누구도 이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저 죽은 전우들의 시신에서 탄약과 화약을 꺼내오고 다친 이들에게 남은 총을 쥐여주며 마지막 전투를 준비할 뿐이었다.
그런 병사들을 바라보던 뎀빈스키는 마지막으로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이고는 꽁초를 바닥으로 내던져버렸다.
“그동안 내 밑에서 다들 고생 많았다. 그대들은 국가의 부름에 충실히 응답하였으니 이만 돌아가라.”
사실상 투항을 허락하겠다는 말이었지만 이를 들은 병사 중 누구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뎀빈스키는 그런 병사들을 보며 말했다.
“오늘 그대들은 최선을 다했다. 나아가 적과 싸우면 그들을 무찔렀고 루스 놈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공포를 심어줬지,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 이른 것은 모두 내 잘못이다!”
그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그러니 그대들은 무기를 버리고 루스 놈들에게 투항하여 목숨을 건지도록! 이건 내가 그대들에게 내리는 마지막 명령이다.”
“그럼 장군께서는 어찌하시려고요?”
한 병사의 질문에 뎀빈스키는 말없이 웃었다.
“파벨, 나는 내 의무를 다할 것이야.”
“에이……. 그럼 저도 안 가렵니다. 어차피 자식새끼들도 다 컸고 제 마누라도 이제 늘그막에 젊은 놈 만나서 새 삶을 살아야죠.”
“푸핫!”
“파벨, 네 마누라를 누가 받아주겠냐?”
“아서라 그냥 네가 데리고 살아.”
“뭐 인마?!”
덕분에 무거웠던 분위기가 깨지며 병사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뎀빈스키와 벰 역시 그러한 병사들을 보며 속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고, 말이다.
결과적으로 폴란드 군단의 병사 중 누구도 러시아군에 투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뎀빈스키의 말은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줬고 그들은 보헤미아의 어느 이름 모를 마을에서 마지막 싸움을 준비했다.
“이보게 벰.”
“왜 부르는가.”
“그동안 내가 자네에게 고맙다는 말을 못 했던 것 같군. 괜히 나를 따라와서 자네 신세만 망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
“허허, 내가 원해서 한 것이니 쓸데없는 말은 삼가시게나 친구.”
“……그러지 친구.”
이윽고 러시아군의 함성이 들려왔다.
“전원 전투준비!”
폴란드 군단은 곧 마을로 짓쳐들어올 적군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다들 총을 움켜잡았고 그마저도 없는 이는 칼이나 벽돌을 손에 쥐고 적을 기다렸다.
누가 다가오든 간에 한 놈을 데려가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러시아군은 오질 않았다.
그렇게 다들 의아해하고 있을 때, 뎀빈스키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장에서 다시 보게 되니 정말 반갑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