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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77화 (77/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77화

해방!

보헤미아를 침공한 러시아군이 격퇴되었다는 소식은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내의 주요신문사에 특종으로 대서특필되었다.

그동안 지지부진하게 시간만 끌던 전쟁에서 눈에 띌 만한 전과가 나오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오스트리아가 악마의 군대를 쓰러트렸군!”

“역시 타타르로부터 유럽을 지키는 방벽이로다!”

그동안 승리에 목말라 있던 서방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승전소식에 환호하며 그들을 찬양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제일 먼저 접한 발칸 전선의 사령관 이반 파스케비치 대공은…….

“멘시코프가 무참하게 패했다더군.”

“…….”

“듣자 하니 포로만 해도 5만 명은 된다더군.”

“…….”

“다들 왜 말이 없는가? 좋은 생각이 있으면 내 눈치 보지 말고 자유롭게 말해보게.”

“…….”

파스케비치는 평소의 여유로움과 장난스러움은 어디로 가고 진중하고 무거운 모습으로 장교들을 압박했다.

그만큼 지금 상황이 좋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각하……. 제가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해보게.”

“가능하다면 오스트리아군이 움직이기 전에 군대를 뒤로 물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파스케비치는 아쉬움을 느꼈다.

“흠…….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서방 원정군을 아드리아해로 밀어 넣을 수 있을 텐데…….”

분명 자신과 병사들은 부족한 보급상황에서도 적군을 연달아 격파하며 승기를 굳히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아군이 패한 것으로 인해 물러나야 했다.

“으음…….”

“각하, 이제는 이기고 지는 것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스트리아가 군을 정비하여 러시아로 밀려들어 오기 전에 방어선을 정비해야 합니다.”

“자네 말이 옳군.”

아쉬움이 남았지만, 참모장의 말이 옳았다.

이곳에서 적군을 무찌르며 대승을 거둔다고 해도 그 뒤에 오스트리아군이 퇴로를 막아버린다면 큰일이었다.

“후우……. 아쉽군.”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오스만을 몰아붙이며 이스탄불을 공격할 당시만 하더라도 갈망의 땅을 손에 넣을 것이란 희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당장 멀쩡히 러시아로 돌아갈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하나 있다면 자신은 전선에 있다는 것이었다.

“황궁에서는 피바람이 불겠군.”

* * *

보헤미아에서의 패전 소식은 전투가 벌어진 지 두어 달쯤 지난 뒤에야 러시아의 황궁에 전해졌다.

“졌다고?”

“예, 폐하.”

“그냥 패한 것이 아니라 아예 전멸을 당했다고?”

“……그렇습니다.”

“허…….”

러시아제국의 황제 니콜라이 1세는 보헤미아에서 날아온 패전 소식에 할 말을 잃었다.

철저하진 않더라도 프로이센을 끌어들여 오스트리아의 허를 찌르는 계획을 세웠고 이를 실행하는 데까진 성공했다.

멘시코프는 적의 취약점을 제대로 찔렀고 그대로 오스트리아의 수도를 향해 진군하면 끝날 일이었다.

“어째서인가? 멘시코프는 무얼 했기에 그걸 전부 말아먹을 수 있느냔 말이야!”

단숨에 오스트리아를 전쟁에서 이탈시키고 서방의 전쟁 의지를 꺾어버리겠다는 대전략이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서방에 선전포고하고 본격적으로 전쟁에 돌입한 것이 재작년의 일이었다.

설탕과 소금을 사재기하여 얻은 이익을 전쟁비용으로 모조리 쏟아부었지만, 러시아의 경제는 장기전을 견디기엔 너무나도 허약했다.

그렇기에 낌새가 좋지 않은 오스트리아를 빠르게 전쟁에서 이탈시키고 서방세계와 협상에 들어가고자 한 것인데……. 보기 좋게 실패해 버렸다.

이제 전쟁은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이 되어버렸으며 주요 전선도 오스트리아나 발칸이 아니라 러시아가 될 터였다.

그야말로 악몽과도 같은 상황에 니콜라이는 화도 내지 못하고 허탈하게 웃었다.

“멘시코프……. 이런 아둔한 자 같으니라고…….”

“폐하…….”

“또 있는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소식이 있었다.

“……오스트리아군이 폴란드 영내로 진입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허, 이젠 오스트리아의 어린 황제가 폴란드까지 욕심을 내는군.”

니콜라이는 어린 황제의 욕심을 비웃었다.

그가 경험했던 폴란드인들은 그들만의 나라를 되찾고자 언제나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오스트리아 놈들도 고생깨나 하겠군.”

그렇게 생각하니 잠시지만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궁정 신하의 말에 니콜라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폐하, 그 선봉에 있는 것이 지난 1830년경 폴란드에서 일어난 봉기에 참여했던 폴란드 군단이라고 합니다.”

“뭐?”

그들이 왜 오스트리아군과 함께한다는 말인가?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와 함께 폴란드를 나눴던 나라로 폴란드인들에게는 원수나 다름없는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오스트리아와 함께하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폴란드 임시정부의 수장을 자처하는 헨리크 뎀빈스키라는 인물이 폴란드 왕국의 부활을 선언했고……. 오스트리아가 이를 공식적으로 승인하였습니다.”

“뭐?! 그놈들이 무슨 권한으로!”

* * *

나폴레옹 전쟁 이후 바르샤바 공국을 다시 편입한 러시아는 폴란드 왕국을 부활시키고는 동군연합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러시아의 일원으로 엮었다.

하지만 폴란드의 시민들과 귀족들은 러시아의 황제가 자신들을 다스리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고 러시아의 황제 역시 그런 이들을 탄압하며 권력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렇게 몇 번의 혁명과 소요사태를 겪은 폴란드 왕국은 명목상으로나마 남아 있던 자치권을 모조리 빼앗기고 이제는 그냥 이름뿐인 국가가 돼버렸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러시아의 철권통치에 사람들은 불만을 느꼈지만, 그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서방세계와 러시아가 전쟁을 벌인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몇몇 용감한 젊은이들은 폴란드 독립을 위해 일을 꾸미다가 잡혀들어갔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한 희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이 믿었던 서방국가들은 러시아를 무찌르기는커녕 그들의 진격을 막아서지도 못했다.

그렇게 서방국가들은 발칸이 러시아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그쯤에서 대부분의 폴란드 사람은 독립에 대한 희망을 반쯤 접었다.

어차피 노력한다고 해봤자 바뀌는 것은 없었고 이쯤 되니 과연 독립을 한다 해서 이전과 달라질지도 의문이었다.

차라리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폴란드인들의 머릿속에 스멀스멀 피어날 무렵.

러시아가 오스트리아를 침공했다.

사람들은 조국 폴란드의 은혜를 원수로 갚은 오스트리아가 곤경에 빠지는 것을 보며 조소했다.

몇몇 사람들은 오스트리아를 징벌하는 러시아를 찬양하며 그들을 지지하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폴란드인들 중 누구도 오스트리아가 승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황은 변했다.

오스트리아를 빠르게 전쟁에서 이탈시키겠다는 러시아의 도박 수는 실패했고 연합군은 단숨에 폴란드 남부를 해방하고 바르샤바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그 선두에는 폴란드 군단이 있었다.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젊음의 혈기에 몸을 던진 젊은이들은 흰머리와 흰 수염이 희끗희끗한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들을 기억해 주는 이도 환영해 주는 이들도 없었지만, 그들은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산새들이 노래한-다 수풀에서~”

“아가씨들아 숲으로 가자 풀을 베자~”

“트랄 랄라라 트랄랄라라~”

연주 없이 제멋대로 노래를 불러대니 음정과 박자 모두 엉망이었지만 누구 하나 인상 쓰는 이 없이 다들 흥겹게 노래를 불렀다.

거리를 전세 낸 것처럼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그들의 모습은 자연스레 폴란드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저기 저놈은 방앗간 집 셋째잖아?”

“걔는 죽었잖아!”

“올가 아주머니 오랜만입니다!”

“으잉?! 정말로 얀이로구나!”

행군 도중에 병사들은 가족이나 친지들과 재회의 기쁨을 맞이하기도 했다.

뎀빈스키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그러자 그의 친구 벰이 물었다.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돌아오니 참으로 기분이 좋군.”

“동감일세.”

뎀빈스키는 잠시 두 눈을 감고선 고향의 공기를 양껏 들이마셨다.

그건 무척이나 달고 시원했다.

갑갑했던 속을 뻥 뚫어줄 정도로 말이다.

“거의 20년 만이로군.”

“하하하, 처음 폴란드를 떠날 때는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몰랐는데 말이야.”

“그러게나 말이야…….”

처음에는 시민들도 폴란드 군단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점점 바르샤바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을 알아보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들이 바르샤바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로 인해 병사들이 지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

“폴란드 만세!”

“자유 폴란드 만세!”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폴란드 깃발을 들고서는 머리 위로 흔들며 자유의 투사들을 환영했다.

이런 상황에서 뎀빈스키나 벰은 대열의 선두에서 병사들을 이끌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법도 했지만 둘 다 이를 거부했다.

“우리가 뭘 잘했다고 앞장서는가? 그 자리는 우리가 아니라 형제들의 자리일세.”

“옳으신 말씀.”

몇 번이나 권했지만, 대답은 똑같았다.

“거참……. 고집은……. 애들아 들어라!”

“어, 어어……?!”

“이게 뭣들 하는 짓인가!”

“가만히 계십시오. 허리 나갑니다.”

하지만 병사들과 장교들은 한마음이 되어 그들을 들쳐서 목말을 태우듯이 떠받들고는 사람들이 가득 찬 거리를 행진했다.

하늘에서는 그들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꽃송이를 던져줬고 거리의 사람들은 폴란드의 깃발을 흔들며 열띤 환호성으로 맞이해 줬다.

매번 꿈으로나 상상해 보던 모습을 두 눈으로 보게 된 헨리크 뎀빈스키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

“하하하, 자네 우는가?”

“누, 누가 운다고 그러나!”

“그럼 자네 눈에서 떨어지는 것은 무엇인고?”

“…….”

뎀빈스키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렇게 흘러내려 온 눈물이 옷깃을 적실 정도였으나 뎀빈스키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하길.

“날이 더워서 땀이 흐르는 것이네.”

“땀이라! 오늘따라 유달리 후덥지근하군.”

그의 오랜 친우인 요제프 벰의 두 눈도 어느샌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두 노인은 그렇게 병사들의 어깨 위에 올라탄 채로 바르샤바 시내를 돌았다.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뎀빈스키와 벰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두 눈에서 뜨거운 땀을 흘리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도 활짝 웃을 수 있었다.

* * *

“내 동생 막시밀리안.”

“형님, 소름 돋게 왜 그러시오.”

“너……. 왕 해볼 생각 없느냐?”

“왕이요?”

왕이라는 말에 막시밀리안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뭐……. 시켜주면 할 생각이 있긴 한데…….”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지.”

“그런데 갑자기 왕은 무슨 놈의 왕입니까?”

“아, 폴란드의 왕좌가 비어 있으니 이걸 채워줘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네게 이 자리를 맡겨볼 생각이다.”

“폴란드요?”

막시밀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형님, 왜 갑자기 저를 폴란드로 보내시려는 겁니까? 제가 뭘 잘못하기라도 했습니까?”

“하하하, 네가 잘못한 건 없단다 동생아……. 비록 네가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며 아랫도리를 휘젓고 다닌 탓에 여기저기서 말이 나오긴 했다만……. 뭐 그 정도야 이해할 수 있지.”

“그건…….”

막시밀리안은 변명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나는 들어줄 생각도 시간도 없었다.

“어머니께서도 네 자유분방한 아랫도리에 심히 걱정이 많은 것 같더구나.”

“…….”

“긴말 않겠다. 작센의 공주와 결혼하여 폴란드 왕위에 오르든가 아니면 순결서약을 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가거라.”

수도원이라는 말에 충격받은 것인지 막시밀리안의 안색이 푸르딩딩해졌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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