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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78화 (78/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78화

비스텔바흐

보헤미아에서의 전투가 끝난 뒤 한 달 동안 우리 군은 폴란드를 확보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다행히도 폴란드를 지키던 러시아 국경수비대와 러시아 휘하의 폴란드군은 이미 소식을 들은 것인지 오스트리아군이 진군하자 알아서 항복했다.

물론 개중에 저항하는 몇몇 부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현지 주민들의 손에 붙들려서 끌려오거나 아군에게 분쇄되었다.

그렇게 한 달 만에 폴란드 전역을 점령하는 데 성공한 우리는 폴란드 군단을 앞세워 폴란드 왕국의 독립과 부활을 선포했고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당연하게도 러시아는 입에 게거품을 물고선 이를 부정하며 우릴 공개적으로 비난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유럽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러시아의 평판보다는 서방의 평판이 더 중요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되었으니 프랑스에서도 폴란드의 독립을 인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흠……. 폴란드의 독립이라…….”

이제는 공화국에서 조금 많이 멀어진 프랑스 공화국의 독재자 나폴레옹 3세는 폴란드의 독립승인을 조금 꺼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독립한다면 프랑스의 식민지들에도 영향이 가진 않을까 걱정했다.

“일단 그 건에 대해서는 전쟁이 끝나고 답변하는 것이 좋겠군.”

“흠……. 그렇게 해도 되겠지요.”

이는 영국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폴란드의 독립은 섣불리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으니 전쟁 이후에 논의토록 하지요.”

“그렇군요.”

상황이 이리되니 처음엔 우리의 저의를 의심하던 폴란드인들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서방국가들은 애초에 자신들의 독립에 관심이 없었고, 그나마 관심을 두는 것이 원수인 오스트리아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희망이 됐다.

오스트리아마저 폴란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면 어렵사리 이룬 독립의 꿈은 한여름 밤의 추억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오스트리아의 다소 무리한 부탁에도 쉽사리 거절할 수가 없었다.

“……황제의 동생을 폴란드 왕국의 새로운 국왕으로 추대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을 하시는군요.”

“내가 하는 건 아닐세, 우리 상층부에서 그리 결정한 것이야.”

“결국, 그게 그것이지요.”

폴란드 임시정부의 대표인 뎀빈스키는 라데츠키로부터 황당한 제안을 들었다.

그 내용은 오스트리아 황제의 동생인 막시밀리안 대공을 폴란드 왕으로 옹립하자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명분으로 그런 제안을 하시는 것인지 그 저의가 궁금해지는군요.”

“그것은 나중에 본국에서 올 외교관에게 전해 듣도록 하게, 어차피 지금 급한 것은 러시아군을 몰아내는 것이잖나.”

“그건 그렇지요.”

라데츠키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직 하나.

오스트리아의 적을 분쇄하라는 황제의 명이었다.

“우리 군이 바르샤바를 점령하여 폴란드 서부를 해방하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그 이후가 문제일세.”

“이후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비스와강 너머에 있는 러시아제국 말일세.”

“그들을 왜 걱정하십니까? 어차피 러시아로 가는 길은 뻥 뚫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밀고 가면 그만이라는 뜻이지요.”

실제로 폴란드 쪽에 배치된 러시아 병력은 전부 합쳐야 겨우 3만 명쯤밖에 되질 않았다.

그나마도 넓은 국경지대 이곳저곳에 분산 배치되어 있는 까닭에 부대 간의 연계는커녕 적군에 맞서 제대로 대응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이라면…….

“강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우린 매 순간 러시아의 인내심을 시험하게 될 걸세.”

“러시아의 인내심을 시험하다니요?”

“간단하네, 우리가 비스와강을 넘어 동쪽으로 계속 진군한다면 러시아에서 이걸 어떻게 보겠는가?”

지금의 오스트리아 제국과 폴란드, 로마공화국 등의 연합군은 지속해서 신병을 모집하고 새로이 부대를 편성하는 등 전력을 증강했다.

그렇게 모인 병력이 대략 8만 명으로 이 중 대부분이 헝가리 방위군이었고 그다음이 오스트리아 제국군이었다.

반면에 러시아는 수십만의 대군이 한 번에 사라진 후유증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 것인지 새로운 부대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보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치고 나간다면 승리야 떼놓은 당상이겠지만 그만큼 러시아를 자극하여 저들을 분노케 할 수도 있었다.

안 그래도 폴란드가 독립을 선포함으로써 러시아의 분노를 일으켰는데,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며 동진하면 뚜껑이 열려 버린 러시아가 대군을 이끌고 와서 폴란드를 짓밟아놓을 것이었다.

중부유럽의 강대국인 오스트리아가 그들의 편이라고는 하지만 그들 역시 단독으로 러시아를 상대하는 것은 무척이나 버거운 일이었다.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니 내 생각은 이렇다네.”

라데츠키는 유럽 전역이 그려진 지도에서 발칸 쪽을 가리키며 말하길.

“발칸 쪽의 서방군대와 합류하여 러시아가 무력으로 합병한 베사라비아와 몰도바를 공격하지.”

“잠깐만……. 지금 발칸이라고 하셨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폴란드와 오스트리아 전선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곳을 비우고, 발칸이라니요!”

뎀빈스키는 돌연 전선을 비우자는 라데츠키의 말에 살짝 화를 내며 그에게 따져 물었다.

“아무리 러시아가 보헤미아에서 있었던 전투로 대군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만한 부대는 또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알고 있네.”

“그렇다면 우리가 발칸으로 간 사이에 적이 부대를 수습하고 다시금 훈련해 군대를 일으키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그렇기에 우리가 발칸을 치려는 것이네.”

라데츠키는 늘 그렇듯이 무심한 얼굴로 지휘봉을 들더니 다시금 발칸을 가리켰다.

“이곳은 러시아의 영토일세.”

“본래는 오스만의 영토이지요.”

“러시아로서는 그들의 영토일세, 그렇기에 무력으로 여길 합병한 것이 아니겠는가?”

“으음……. 그건 그렇지요.”

“그러니 연합군이 여길 공격하여 점령한다면 러시아로서는 큰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네.”

“위협이라면……. 그 뒤에 있는 우크라이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뎀빈스키의 질문에 라데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크라이나 지방의 흑토지대는 러시아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곳이네, 러시아가 이곳을 빼앗기면 당장 이번 겨울을 버틸 수가 없을 것이야.”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만……. 어차피 그곳에는 러시아의 대규모 부대가 주둔 중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새로이 편성되는 부대는 북쪽으로 돌려 폴란드와 오스트리아를 도모할 수도 있잖습니까.”

뎀빈스키의 지적은 차가운 이성으로 도출해 낸 지극히 합리적이며 적절한 지적이었다.

다만 그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들의 상대는 러시아라는 것이었다.

“물론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자네의 말이 옳았을 것이네, 적들은 다시금 북쪽을 노리면서 오스트리아를 전쟁에서 이탈시키려 했겠지.”

“……하지만 러시아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란 말씀이시군요.”

“어디까지나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일세.”

“그런 것치곤 확신에 차신 것 같군요.”

그의 물음에 라데츠키는 굳어 있던 얼굴 근육이 사르르 풀리며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러시아니까.”

* * *

동생 막시밀리안을 작센의 공주와 맺어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어머니께서는 대로하시며 나를 찾아오셨다.

“네가 왜 동생의 결혼사에 관여하려는 것이냐!”

“어머니, 전부 제국을 위함입니다. 막시밀리안도 합스부르크의 사람이니 그런 것쯤은 이해해야지요.”

“이미 내가 정해놓은 곳이 있으니 이 결혼은 무르도록 해라.”

“후우……. 이미 작센 쪽에 사람을 보내놨습니다. 그쪽에서 호의적인 답변이 온다면 진행할 생각입니다.”

“요제프!”

어머니께서는 몹시 화가 나신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의 자식 중에서 가장 아끼는 아들인 막시밀리안의 결혼은 본인의 손으로 해결하려 하셨을 텐데, 내가 이걸 가로채서 대충 정략결혼으로 묶어버렸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지.

하지만 이건 꼭 필요한 일이었다.

“어머니, 그놈만 희생하면 선조들이 그토록 바라셨던 폴란드 땅이 합스부르크의 것으로 넘어오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셋째도 있지 않더냐.”

어머니께서는 내 말을 들으시더니 의미심장한 얼굴로 내게 말씀하셨다.

물론 어머니의 말씀대로 셋째를 보낼 수도 있었지만 둘째에 집착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살짝 오기가 생겨버렸다.

“형보다 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것은 궁중 예법에 크게 어긋나는……. 헙!”

내가 말하고서도 움찔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서 어머니를 바라보니, 어머니께서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이 상냥하게 웃으시며 내게 말씀하셨다.

“하긴……. 네 결혼식도 아직인데, 동생을 먼저 결혼시킬 수야 없지 않겠느냐?”

“…….”

어머니의 술수에 그대로 넘어가 버렸다.

‘어디서부터 어머니의 계략이었던 거지? 처음에 화를 내셨을 때부터? 아니면 막시밀리안 대신 카를을 보내자는 것부터?!’

어머니께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나를 강하게 압박하셨다.

“요제프, 나는 네가 먼저 결혼한다면 막시밀리안을 작센의 왕녀와 결혼시키는 것도 괜찮단다.”

“어, 어머니……. 저는 비스텔바흐의 엘리자베트 양과 약혼하기로 바이에른 왕과 협의했잖습니까…….”

나는 엘리자베트 양의 나이를 거론하며 슬쩍 문제를 넘기려고 했지만, 어머니께서는 아주 작정하신 듯이 나를 몰아붙이셨다.

“헬레네가 있잖니, 언니 쪽과 결혼하겠다고 하면 바이에른에서도 별달리 불만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

나는 다급히 영감님을 불렀다.

‘영감님! 도움! 도움! 도움!’

[으음……. 어머니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헬레네 양을 참으로 좋아하시는구나.]

‘그건 상관없고 빨리 좀 도와줘요!’

영감님께서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시며 어머니를 바라보시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네가 작센의 공주와 혼인하겠다고 해라.]

‘예?! 아니, 영감님 저는 결혼하기 싫…….’

[자네보고 정말 하라고 등 떠미는 게 아니니까 일단 내 말대로 하게.]

‘끄응…….’

독일의 일개 소국인 작센 왕국의 공주가 독일전통의 강대국인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후가 된다?

이건 주변에서 말이 나올 수가 있었다.

내 동생들이 작센의 공주와 결혼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질 않았다.

어차피 그 녀석들은 내게 자식이 생기는 순간 황위 계승권에서 멀어지니까 말이다.

하지만 황제인 나는 달랐다.

황제의 옆을 지킬 사람은 어느 정도 급이 맞는 가문이어야 했다.

그렇기에 어머니께서는 합스부르크만큼이나 역사와 전통이 깊은 바이에른의 비스텔바흐 가문의 여식과 나를 맺어주려 한 것이었다.

그러니 내 말을 듣는다면 어머니께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어머니.”

“왜 그러느냐?”

어머니께서는 승리를 예감하신 듯이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로 나를 돌아보셨다.

하지만 그 미소가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럼 제가 작센의 공주와 결혼하겠습니다.”

“뭐……?”

갑작스러운 내 반격에 한 방 제대로 맞은 것인지 어머니는 잠시 넋을 놓고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그럼 해결되는 것 아닙니까?”

“……작센의 왕녀와 결혼하겠다고?”

“예, 생각해 보니 어머니의 말이 옳은 것 같습니다. 제 옆자리가 비어 있는데 동생들에게 결혼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심 굉장히 긴장했다.

이대로 어머니께서 받아들이시기라도 한다면 꼼짝없이 작센의 왕녀와 결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다못해 엘리자베트나 헬레네 양은 얼굴을 보기라도 했지 작센의 왕녀는 이름도 모르는 남이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고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타인과 결혼한다면 그게 행복할까?

[자네도 막시밀리안을 결혼시키려고 했잖나.]

‘그건 그놈이 하도 정신 못 차리고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니까 그런 거지요.’

이에 영감님이 감탄하셨다.

[이따금 드는 생각이네만……. 자네는 지금보다도 좀 더 과거에 태어났다면 훌륭한 군주가 되었겠군.]

‘칭찬이죠?’

[그럼! 마키아벨리도 감탄하며 자네를 진정한 군주라고 칭송했을 것이야.]

영감님의 말투는 칭찬보다는 비꼼에 가까웠다.

‘허어, 영감님…….’

[조용히 하게,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려는군.]

어머니께서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시더니 이내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며 내게 말씀하셨다.

“조금 전의 일은 잊거라……. 황제쯤 되는 사람이 작센의 여인과 맺어질 수야 없지.”

“막시밀리안은 되겠지요?”

“……카르를 보내는 것이 좋겠구나.”

“그럼 그렇게 하지요.”

살짝 아쉬움이 들었지만, 어머니께서 한발 물러나셨으니 나도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자네는 어쩜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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