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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79화 (79/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79화

개싸움?

러시아군이 발칸반도에서 물러나기 시작하자 영국에서 보낸 원정군이 드디어 도착했다.

때는 전쟁이 시작된 지 3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래글런 남작이오.”

“……피에르 보스케입니다.”

거기에 영국군의 지휘관인 래글런 남작은 마치 자신들이 연합군의 수장인 것처럼 행동하며 다른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럼 이제부터 저기 있는 프랑스인들을 몰아내는 것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겠지요?”

“……?”

“저들은 프랑스가 아니라 러시아군입니다.”

“아, 내 실수이니 잊어주시구려.”

짧지만 강렬했던 첫 만남이 끝나고 자신의 군영으로 돌아온 프랑스군의 지휘관 피에르 보스케 장군은 앞으로의 일이 힘들어질 것을 예감했다.

“저런 모지리가 사령관이라고?”

“웰링턴 공작의 군사 비서로 활동하면서 이베리아에서 워털루까지 웰링턴이 나폴레옹 황제를 무찌를 동안 함께했다고 하더군요.”

“제기랄……. 나폴레옹은 무슨 놈의 나폴레옹? 그리고 워털루전투는 30년도 더 된 이야기잖나!”

보스케가 군 생활 내내 알제리에서 원주민 반군을 때려잡으며 실전경험을 쌓았던 것에 비해 래글런 남작의 경력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멈춰 있었다.

그는 딱히 외국에서 반란군과 싸웠다거나 하는 것도 없었고 전쟁 이후에는 줄곧 영국에서 시간을 보내며 진급한 인물이었다.

“외팔이가 전쟁을 망쳐놓진 않을까 두렵군.”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군.”

“……?”

그의 부관이 웃으며 말하길.

“곧 본토에서 생 아르노 각하께서 지휘하시는 프랑스군 본대가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긴 한데…….”

그런데도 보스케의 걱정은 쉬이 사라지질 않았다.

* * *

지난 독일 전 지역에서 벌어진 혁명 이후 처음으로 열린 독일연방의회 국방회의는 분위기는 엄숙하고 무겁게 착 가라앉아 있었다.

부올 백작은 본격적인 회의에 앞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다른 독일의회의 회원국들은 그런 부올 백작의 흡연이 끝날 때까지 서로 잡담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돌연 프로이센의 대표가 파이프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담뱃잎을 채워 넣고 성냥까지 꺼내 드는 것이 아닌가?

그런 프로이센 외교관의 도발적인 행태에 부올 백작도 피우던 담배를 잠시 내려놓고 흥미롭다는 듯이 젊은 외교관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러자 프로이센의 외교관 비스마르크는 성냥이 잘 켜지지 않자 그냥 던져버리고는 부올에 자신의 파이프를 내밀었다.

“불 좀 주시겠습니까?”

“…….”

대놓고 자신과 맞먹겠다는 프로이센 외교관의 행동에 부올 백작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벽에 걸려 있는 촛대를 떼와 그의 앞에 내밀었다.

마치 이거면 충분하다는 듯이 말이다.

“쓰시지요.”

“감사합니다.”

비스마르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불을 붙이고는 부올 백작과 맞담배를 피웠다.

그러자 이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독일국가의 대표 중에 몇몇이 자신의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부올이 고개를 돌려 그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런데도 그들을 꿋꿋하게 담뱃불을 붙였다.

‘하노버와 작센, 그리고 메클렌부르크까지……. 북독일 지역은 전부 프로이센의 편으로 넘어간 모양이군.’

바이에른과 뷔르템부르크 같은 남독일지역의 대표들은 담배 파이프만 꺼내놓은 채 불을 붙일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 바이에른의 대표는 비스마르크가 담배를 피워대자 제일 먼저 자신의 담배 파이프를 꺼내든 사람이었다.

부올 백작은 그런 남독일 지역의 대표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면서 그들을 만류했다.

마치 불을 붙이면 그 행동을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는 듯한 부올 백작의 시선에 남독일 지역의 맹주인 바이에른 왕국의 대표가 먼저 담배 파이프를 내려놓았고 다른 이들도 하나둘씩 내려놓았다.

이렇게 되니 회의 장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오스트리아의 대표인 부올 백작과 프로이센의 대표인 비스마르크, 그리고 북독일지역의 대표뿐이었다.

“담배 맛이 좋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부올 백작과 비스마르크는 서로를 바라보며 담배를 뻑뻑 피워댔고 그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로 회의장이 가득 찰 정도였다.

‘프로이센 녀석들이 단단히 작정한 모양이군.’

‘남독일에서는 아직도 강한 영향력을 뽐내고 있는 모양이로군.’

그렇게 한참 동안 담배를 피우던 둘은 비스마르크가 먼저 담뱃재를 털어내는 것으로 긴 대치상황을 끝내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현재 오스트리아 제국이 러시아제국과 전쟁 상태에 돌입한 것은 다들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부올 백작의 말에 대표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오스트리아는 슬라브인들의 공격으로부터 독일민족의 정당한 강역을 지켜내고자 그들과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다들 긴장하며 부올 백작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우리 독일연방이 하나 되어 싸운다면 저 슬라브인들을 몰아내고 독일의 진정한 자유를 가져올 수…….”

“개소리는 그쯤 하시지요.”

갑작스러운 거친 말에 대표단들이 뜨악하며 그 말을 꺼낸 이를 돌아봤다.

다리를 꼰 채로 한껏 양아치처럼 건들거리는 자세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은 프로이센의 대표 오토 폰 비스마르크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하자 비스마르크는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자연스럽게 부올이 서 있는 연단 앞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 나갔다.

마치 그곳이 원래 자신의 자리였다는 것처럼 여유롭게 말이다…….

그러고는 살짝 얼굴이 붉어진 부올 백작을 뒤로하며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작금의 이 사태가 누구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일입니까? 오스트리아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오스트리아를 위해 피를 흘려야만 합니까?!”

“저, 저자가 미친 건가?”

“요즘 프로이센 녀석들이 눈에 뵈는 게 없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군.”

“……또 프로이센이로군.”

비스마르크의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에 다들 부올 백작의 눈치를 살피며 그를 욕하면서도 귀를 쫑긋 세우며 비스마르크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의 전쟁이 비단 러시아만의 문제입니까?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와 동맹을 맺어놓고도 전쟁이 벌어졌을 때 친구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제 살길만 찾기 바빴지요!”

“으음…….”

“맞는 말이지.”

“오스트리아가 러시아를 외면하긴 했지…….”

비스마르크는 대표들의 마음을 천천히 휘어잡으며 회의장을 지배했다.

이를 말렸어야 할 부올 백작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가 떠들 수 있게 단상을 비워주며 연설에 집중했다.

오스트리아의 대표가 그리 나오니 프로이센을 욕하던 대표들도 어느샌가 입을 다물고는 비스마르크의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러시아는 그들의 신뢰를 배신한 오스트리아를 단죄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스트리아의 대표는 이런 사실을 숨기고 자신들은 러시아의 압제로부터 독일민족을 수호하는 수호자를 자처하며 우리를 전쟁터로 내몰려 합니다!”

잠시 숨을 고르던 비스마르크는 고개를 돌려 부올 백작을 바라봤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입니까?”

그의 말이 끝나자 회의장에 모인 독일지역의 여러 왕국과 공국의 대표들은 저들끼리 조용히 쑥덕거리며 부올 백작을 돌아봤다.

비스마르크는 분위기가 자신에게 넘어왔음을 확신하며 쾌재를 불렀고 말이다.

‘이젠 어떻게 나올 거지?’

순식간에 오스트리아는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주변국들도 이용하려는 사악한 제국이 되어버렸지만, 부올은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했다.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생각했다.

‘X 됐네…….’

비스마르크가 자신의 연설시간을 가로챈 것에 분노하여 단상을 내려온 것을 후회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래 얼마나 잘 떠드는지 한번 지켜보겠다는 심정으로 그리한 것인데, 차라리 저 미친놈의 입을 틀어막았어야 했다.

“부올 경! 제 말이 틀렸습니까!”

기세를 잡은 프로이센의 대표는 자신에게 목소리를 높이며 압박을 가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부올 백작은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했던 말이 전부 사실이었는데, 어찌 반박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여유로움을 가장하며 어떻게든 이 상황을 돌릴 방법뿐이었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그렇게 필사적으로 머릿속을 뒤지던 부올 백작에게 한 가지 생각이 팍하고 떠올랐다.

그러자 부올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뭐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세상에…….”

“오스트리아가 정말로 그랬다는 건가……?”

“이럴 수가……!”

부올의 말에 대표들이 기겁했다.

다들 프로이센 대표의 말이 사실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누군가 주장하는 것과 당사자가 인정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가 인정함으로써 오스트리아는 순식간에 필요에 따라 동맹국도 버릴 수 있는 국가라는 꼬리표가 생겨버렸다.

“이보시오 부올 경!”

“어허, 그럼 필요하면 우리도 버릴 수 있다는 것이 아니오?!”

“오스트리아 놈들은 믿을 만하지 않는다더니만…….”

당연하게도 부올 백작을 향한 비난이 물밀 듯이 쏟아졌으나 정작 그는 여전히 여유로움을 잃지 않으며 담배 파이프에 담뱃잎을 넣었다.

그리고 그가 파이프에 불을 붙이자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할 말들은 다 하셨습니까?”

굉장히 여유로워 보이는 그의 모습에 조금 전까지 오스트리아를 비난하던 각국의 대표들은 입을 다물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부올은 담배 연기를 뿜으며 비스마르크를 봤다.

“우리가 필요에 따라 동맹들을 버릴 수도 있다……. 아주 좋은 말씀이십니다. 저는 이 사실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독일연방의 존재가치도 부정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는지요?”

“뭐 편한 대로 생각하시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에 부닥친 동맹을 외면하긴 해도 어려움에 부닥친 이웃의 등에 칼을 꽂는 개새끼는 아닙니다.”

부올 백작은 그리 말하며 비스마르크의 얼굴을 슬쩍 살폈으나 그는 방긋 웃으며 그에게 되물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지금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군요. 어차피 오스트리아 제국은 동맹의 어려움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데 말입니다.”

부올도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 모인 국가들이 다 그렇지않습니까? 유럽……. 아니, 전 세계의 어느 국가를 가더라도 다들 타국보다는 자국을 우선시할 겁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부올을 그리 말하며 조금 전에 자신처럼 담배를 피웠던 북독일지역의 국가대표들을 노려봤다.

그들은 부올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리면서 시선을 회피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던 부올 백작의 시선이 멈춘 곳은 프로이센의 대표 비스마르크였다.

“안 그렇습니까? 비스마르크 경.”

“대부분은 그렇겠지요. 하지만 우리 프로이센은 동맹을 함부로 버리지 않습니다. 이는 지난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서도 프랑스군이 우리의 수도를…….”

“아, 나폴레옹이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로군요. 분명 프로이센은 그때도 프랑스와 결탁했었지요.”

“……말이 심하시군요. 우린 그들에게 강제로 점령당한 상태였습니다.”

“그렇습니까? 이것 우연이로군요. 그건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말입니다.”

비스마르크는 부올의 도발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쓸데없는 말로 주제를 바꾸려 들지 마시지요. 지금 중요한 것은 오스트리아가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며 우리를 전쟁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문제 삼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요. 프로이센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부올은 씩 웃으며 비스마르크에게 말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이 프로이센이라니 조금 우습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그건 본인이 잘 알고 있을 테니 굳이 여기서 다 까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러고는 다른 대표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여기 있는 다른 소국들의 대표였다면 프로이센의 말은 믿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가 상대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정도라면 프로이센은 상대의 어려움을 이용하면서 등에 칼을 꽂는 이들이니 말이지요.”

그 말을 끝으로 부올은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그러자 대표들은 부올 백작이 남긴 말을 곱씹으면서 비스마르크를 바라봤다.

마치 해명을 요구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비스마르크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이만 돌아들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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