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82화
동기화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하지만 호시탐탐 그의 자리를 노리던 이들은 시체에서 온기가 사라지기도 전에 활동을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서로 잘 협력하던 부서들의 연계가 깨지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외무부와 내무부는 본격적으로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거기에 어머니께서는 본격적으로 황궁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넓히시며 다시금 정치에 관심을 보이셨고 말이다.
이 모든 것이 공작이 죽은 지 이틀 만에 벌어졌다.
“……그렇단 말이지.”
“예, 폐하…….”
나는 웃는 얼굴로 임종을 맞이한 공작에게 새하얀 국화 한 송이를 선물했다.
그러고는 공작의 앞에서 다짐했다.
“펠릭스 공, 나는 그대가 생각했던 것처럼 유능하고 어진 군주는 되지 못할 것 같소.”
그의 관에 손을 올려 마지막으로 공작에게 예를 표하는 고는 몸을 돌리며 헨리를 불렀다.
“제국을 위해 헌신했던 펠릭스 공이 영면에 들었는데, 어찌 신료들은 얼굴조차 비추질 않는 것인가?”
“어찌할까요.”
“공작은 내게 든든하게 중심을 지켜달라 했지만, 그건 내 성격상 맞지 않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네.”
“그렇다면……?”
어차피 나는 공작처럼 타협하고 서로의 이해관계를 맞춰주며 천천히 일을 진행할 만한 능력이 없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그리 생각하며 헨리를 불렀다.
“헨리.”
“부르셨습니까? 폐하.”
“고대 그리스의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대왕께서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베어냈지.”
나도 그리할 생각이었다.
공작의 사후 정국은 혼란스럽고 각자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뒤엉킨 실타래와도 같았다.
이전까지는 이 모든 것을 공작에게 넘기고 나는 문제를 처리하는 데만 집중했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내가 직접 조율하고 일일이 관리해야 하는 것이었다.
공작을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밤.
밤새 잠도 이루지 못하며 고민했다.
내가 공작의 빈자리를 제대로 메울 수 있을까? 공작의 빈자리를 채워줄 만한 인재를 찾을 수 있을까?
밤새 고민하다가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각료회의를 소집하게.”
* * *
갑작스러운 회의 소집이었음에도 공작의 사후 황제가 직접 주관해서 여는 회의였던지라 다들 빠짐없이 참석했다.
“이게 누구신가? 바흐 남작이구려!”
“오랜만이군요. 부올 경.”
공작의 사후 각자 내무부와 외무부를 주관하고 있던 부올과 바흐의 주도권싸움이 치열했다.
대놓고 서로를 비난한다거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위해를 끼치지는 않았지만 서로 간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듣자 하니 지난 철로 개척사업에서 실수하여 폐하에게 한 소리 들으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군요.”
“으음…….”
부올의 선제공격에 바흐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걱정 고맙습니다만……. 제가 듣기로는 부올 경께서도 지난 독일연방의회에서 상당한 결례와 함께 제국에 해가 되는 발언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폐하께서도 심히 걱정이 많으시다던데…….”
“크흠…….”
서로서로 잘 알고 있었기에 입을 열 때마다 서로에게 치명타가 되었다.
거기에 바흐 남작은 헝가리 문제, 부올 백작은 대러 외교실패라는 아킬레스건을 가지고 있었기에 서로 이 점을 집요하게 물고 뜯으며 난전을 이어갔다.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목줄을 쥐고 있는 황제의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폐하를 뵙습니다.”
“오늘 공작의 장례식에 손님이 적더군.”
“…….”
황제는 회의장에 들어오자마자 신료들에게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생전에 그렇게나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었건만……. 죽고 나니 찾는 이도 없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크흠…….”
“흠흠…….”
황제는 천천히 회의장을 돌아보며 신료들을 한 명 한 명 주의 깊게 살펴보셨다.
하지만 그들은 황제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떨구거나 다른 곳으로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뭐……. 다들 공사다망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지.”
“그, 그렇겠지요.”
“저도 업무가 바빴던지라…….”
“그래? 그럼 오랜만에 업무보고를 들어야겠네.”
“…….”
바흐 남작은 갑작스럽게 업무보고를 요청하는 황제의 말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준비해 오지 않은 건가? 허허, 오늘 회의를 연다 했으니 그 정도는 미리 준비해 왔어야지.”
“죄,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바흐 경이 긴장하여 잊어버린 모양이로군요. 저래서야 업무를 제대로 처리할 수나 있을는지 모르겠군요.”
부올 백작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그의 실책을 물어뜯었고 황제는 이번엔 그에게 물었다.
“자네는 독일연방의회에서 적과 아군을 구분하라는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했던 모양이더군.”
“하하하……. 전부 폐하께서 의도하신 대로 진행하였나이다.”
“그런데 왜 쓸데없는 말을 하여서 주변국들의 신뢰 관계에 금이 가도록 한 것인가?”
“예?”
“자네가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은 바람에 오스트리아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동맹도 버릴 수 있다는 이미지가 생겨버렸잖나.”
“아…….”
황제의 지적에 부올 백작의 입이 다물어졌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저들이라고 공작의 죽음을 아쉬워하지 않는다거나 슬퍼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들을 이곳까지 이끌어준 사람이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이었으니 말이다.
그 말인즉.
공작이라는 든든한 방패를 잃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생전 공작은 적이 많았다.
하지만 혁명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갔으며 내 총애를 받았기에 다들 불만이 있어도 그냥 참고 넘어갔다.
하지만 이젠 그 공작이 없으니 저들은 공작의 적들에게 무방비하게 노출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울뿐인 내무장관직이나 외무장관직 같은 건 아무런 지지기반이 없는 그들에게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귀족들이 힘을 합쳐서 저들을 찍어누르려고 한다면 저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찍혀나가야 했으니……. 저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결국엔 내 지지를 받아야만 했다.
나는 이 점을 이용하고자 했다.
“내 오늘 급하게 신료들을 불러모은 것은 공작의 사후 국정운영을 의논하고자 함이오.”
“…….”
“…….”
바흐와 부올, 그리고 구석에서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던 브루크 경까지 숨죽이며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당분간은 여기 있는 바흐 경과 부올 경이 각각 내정과 외무를 담당하여 나를 보조할 것이고 전쟁 이후에는 새롭게 선출될 개헌 내각이 들어설 것이오.”
다들 개헌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눈빛에 생기가 돌아오며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와 같은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바흐 남작은 자신이 들은 것이 확실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내게 이렇게 묻기까지 했다.
“폐하, 개헌 내각이라는 것은……. 제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는지요……?”
“그렇소.”
회의실에 모인 이들은 금방이라도 기쁨의 함성을 지를 것 같은 얼굴이 됐다.
그러고는 흥분하여 저마다 내게 질문을 던졌다.
“폐하, 그 개헌이라는 것은 정부의 체계를 변혁하는 개혁도 동반되어 있겠지요?”
“그렇다네.”
“외무부 역시 그렇습니까?!”
“그 역시 포함되어 있네.”
신료들은 내가 원하는 것이 단순히 보여주기식의 개혁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임을 깨달았다.
“짐은 사회 전반의 개혁을 원하네.”
“……반대가 심할 겁니다.”
“그런 것을 걱정했다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네.”
반발이 있을 거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혁명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사르데냐와 프로이센, 그리고 러시아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물리치고 제국에 평안을 가져온 자이지.]
‘……이번 전쟁에서 이긴다면 그렇지요.’
지금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나 그에 따르는 결과를 얻을 수만 있다면 제국 내에서 감히 내 권위에 도전할 이는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머릿속으로 구상만 해뒀던 일들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헝가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일세, 그들에게 전쟁 이후 독립에 준하는 자치권을 부여한다고는 했지만 그리했다가는 내부에서 폴란드처럼 독립하자는 말이 나올 걸세.”
“그 점에 대해서는 바흐 경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부올 백작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바흐 남작에게로 향했다.
갑작스럽게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게 된 바흐 남작은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헝가리에 대해서는 제가 전문가이지요.”
바흐는 호언장담했지만, 영감님은 혀를 차셨다.
[바흐의 말은 너무 믿지 말게, 저 친구는 헝가리를 관리하는 것은 잘 알아도 헝가리인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바흐 남작은 이내 진중한 얼굴로 천천히 자기 생각을 말했다.
“헝가리인들은 본디 성격이 포악하고 성질이 사나워 다른 이들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 하지요.”
“어허…….”
“역시 마자르인들은 포악하구려.”
바흐 남작은 헝가리인들이 얼마나 포악하며 다른 이들의 말을 안 듣는지, 그리고 그곳 사람들이 얼마나 게으른지에 대해 설명하며 자신의 실정을 정당화하려 했다.
그의 말을 찬찬히 듣고 있던 부올 백작이 물었다.
“헝가리인들이 그렇게나 부족하고 포악한 이들이라면……. 그들에게 처참하게 패한 우리 제국군은 그들보다 못하다는 말이오?”
“……그럼 부올 경께서는 제국군을 진두지휘하셨던 폐하의 지휘가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라 받아드려야 하는 겁니까?”
부올의 공격에도 바흐는 침착하게 맞받아쳤다.
그렇게 불똥이 내 쪽으로 튀자 부올 백작은 다급히 나를 돌아보며 변명했다.
“폐, 폐하……. 그런 것이 아니오라…….”
“부올.”
“예, 폐하.”
“나는 헝가리의 문제를 어찌할지에 관해 물었지, 지난 전쟁에서 내 지휘에 관해 물어본 것이 아닐세.”
“…….”
내 지적에 부올은 입을 다물었다.
“대답은?”
“죄송합니다. 폐하…….”
“좋아, 그리고 바흐.”
“예, 폐하.”
“그대가 헝가리 총독 재임 시절 그들을 통제하는 데 실패하고 문제가 생겼던 것은 전부 내 책임으로 넘어가겠다고 했던 거로 기억하네만.”
“……그렇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고 넘어갈 것이지 왜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며 변명을 하는 건가?”
한참 다투던 둘이 내 꾸짖음을 듣고는 깨갱 하며 입을 다물자 조용히 구석에서 기회를 엿보던 브루크 경이 손을 들며 내게 말했다.
“폐하,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헝가리에 관한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만……. 러시아와 프로이센 간에 기묘한 흐름이 생겨서 그렇습니다.”
“둘 사이에 기묘한 흐름? 그게 무엇인가.”
브루크가 갑작스레 내 관심을 끌자 바흐 남작과 부올 백작이 그를 노려봤지만 정작 당사자는 관심도 주지 않으며 미리 준비한 서류를 꺼내 들었다.
“이것을 좀 봐주시겠습니까?”
그가 건네준 문서에는 프로이센과 러시아가 스웨덴을 거쳐 어떠한 물품을 거래했다는 정황을 알리고 있었다.
그 물품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표면상으로는 중립국인 스웨덴을 거쳐 거래해야 할 정도로 은밀한 물건임은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거래 자체를 숨겨야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 말이다.
어느 쪽이건 프로이센은 서방세계를 속이고 러시아와 접촉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요것 봐라……?”
“아무래도 이는 쉽사리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흠…….”
프로이센이 러시아와 모종을 거래를 주고받는다는 정황이 발견되었지만, 쉽사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어설프게 프로이센을 공격했다가는 똘똘한 비스마르크가 상황을 반전시켜 오스트리아를 공격할 수도 있었기에 신중해야 했다.
프로이센을 치기로 마음먹었다면 엄청 빠르고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쳐야 했다.
“흠……. 프로이센이 러시아와 거래를 텄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부올 백작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우렁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폐하! 저를 프로이센에 보내주십시오!”
“자네를?”
“예, 폐하! 제가 프로이센에서 놈들이 어떤 사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알아 오겠습니다!”
“흠…….”
그동안 부올 백작은 나를 실망하게 한 적이 없긴 했다.
그는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에는 약했지만 목표를 정해주고 그걸 이루라고 하면 어찌어찌 해내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이번 일은 부올에게 맡기는 거로…….”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바흐 남작이 나섰다.
“폐하, 부올 경은 이미 많은 업무를 한 번에 수행하느라 정신이 없잖습니까? 이 건에 대해서는 다른 이에게 한번 맡겨보시지요!”
“다른 이? 누구를 말하는 건가.”
바흐 남작은 부올을 돌아보며 말하길.
“제가 기억하기로는 헝가리 혁명 당시에 서방 측을 돌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했다던 외교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자를 이용하지요.”
“그러니까 누구?”
“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