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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84화 (84/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84화

보호합시다!

“소수민족 보호법……?”

“갑자기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요.”

내무대신인 바흐와 외무대신인 부올이 빠진 국정 회의에서 갑작스레 내가 소수민족 보호법 이야기를 꺼내자 신료들은 난색을 보였다.

“헝가리인들을 사랑하는 폐하의 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미 저들은 충분히 대접받는데, 여기서 더 대우해 주려 한다면 독일계에서도 반발이…….”

하지만 그들은 뭔가를 착각하고 있었다.

“자네들이 뭔가를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로군.”

“……오해하고 있다고요?”

“저희가 무얼 오해했다는 말씀이신지…….”

다들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당당히 말했다.

“허허, 자네들은 소수민족을 알고 있나?”

“뭐……. 트란실바니아의 작센인이나 갈라치아-로도메니아의 폴란드인 같은…….”

“아니, 아니……. 그런 것 말고 소수민족이라는 뜻에 대해 알고 있냐는 말이었네.”

내 말에 신료들은 내가 무슨 의도로 이 말을 꺼낸 것인지 파악하려는 듯이 서로를 돌아봤지만 그런다고 내 속뜻을 알 수 있을 리가.

결국,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후후……. 소수민족이란 국가 내에서도 소수로 분류되는 족속들이 아니던가?”

“그렇지요……?”

신료들은 해가 동쪽에서는 뜨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들에게 인구분포도가 그려진 제국지도를 보여주며 말을 이어갔다.

“다들 이걸 봐주겠나?”

“이게 무엇입니까? 폐하?”

“언뜻 보기엔 도표 같아 보이는데…….”

“맞네, 이건 제국 내의 여러 민족의 분포를 알려주는 지도일세.”

그렇게 다들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옆에서 조용히 이를 지켜보던 브루크 경이 내게 물었다.

“이건 폐하께서 직접 만드신 겁니까?”

“기존에 있던 자료들을 짜깁기해서 만든 것이네, 그렇기에 중간에 다소 부정확한 자료들도 몇몇 섞여 있지만 말이야.”

“대, 대단하시군요……. 지난번의 인구분석표나 이번 민족분포표까지…….”

브루크 경은 감탄하며 할 말을 잊은듯했다.

다른 이들 역시 지도를 보며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허어……. 이렇게 보니 확실히 제국 내의 슬라브인과 헝가리인의 비율이 높다는 것을 확실히 알겠군요.”

“제국 내 슬라브인 비율의 거의 절반을 넘어가는 것 같은데…….”

“그뿐만이 아닙니다. 헝가리인들의 숫자도 독일계를 넘어선 것 같습니다.”

그들이 본 지도에서 독일계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은 전체의 10% 안팎이었다.

독일인들이 본다면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수치였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다소 ‘부정확한’ 자료들이 섞인 물건이었다.

[허허……. 수백 년 전 자료를 들고 와서 저들을 속여먹을 줄 몰랐네만…….]

‘어허, 수백 년 전 자료라니요? 이건 존경스러운 합스부르크 가문의 선조이시어 보이자 제게는 고조할머니 되시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시절에 만들어진 물건이니, 아무리 많아봤자 백 년밖에 안 된 겁니다.’

[그게 그것 아닌가? 자네 나라의 격언 중에는 십 년이면 강산이 뒤바뀐다는 말도 있는데, 하다못해 백 년이면…….]

그 뒤로 영감님의 잔소리가 줄줄 이어졌지만 나는 이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내가 만든 지표에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몇몇 부분을 과장한 것도 사실이지만 독일계가 다른 민족들에 비해 숫자가 적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뭐……. 여기 나오는 대로 전체인구의 10%까지는 아니고 20~30% 정도는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지금 중요한 것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계가 주류민족에서 밀려나게 생긴 것이었다.

“이번 전쟁 때도 병력을 소집하는 데 어려움이 있더라니만……. 다 이유가 있었군요.”

“어쩐지 거리에서 독일어를 듣기 어려워진 것 같더라니……. 이것 참…….”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슬라브인이나 헝가리인들에게 제국을 홀랑 넘겨주게 생겼잖습니까.”

신료들은 눈앞의 상황에 당황하며 반쯤 공황상태에 빠지려 하고 있었다.

“흠흠……. 다들 진정하게, 대책은 있네.”

나는 그런 신료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지금 제국 내에서 독일계는 다수는커녕 소수민족으로 쪼그라들고 있다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금이라도 공격적인 독일어 교육을 통해 독일계 인구를 늘려야 합니다!”

“더불어 다른 민족의 언어를 이용한 수업도 제한하여 저들이 자연스레 독일어를…….”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하나같이 공격적이면서 살벌하지 그지없는 것들이었다.

저들의 말을 들어줬다가는 얼마 못 가서 대대적인 내전이 일어날 정도로 말이다…….

“크흠……. 나는 그렇게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네.”

“그럼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폐하, 이대로 가면 독일어는 역사책에나 등장하는 언어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호들갑을 떨 줄 알았으면 이런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멋쩍게 웃으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소수민족 보호법을 도입하고자 하네만.”

“소수민족 보호법이라면…….”

“독일인이 소수민족이 되었으니 그에 합당한 보호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

신료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폐하, 아뢰옵기 송구스럽습니다만……. 지금 폐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간단하네, 독일계를 소수민족으로 지정하여 그들을 보호해 줄 법령을 마련하는 것이지.”

“……?”

“폐하, 독일인의 숫자가 적은 것은 사실이오나……. 이미 지배층 대다수가 독일계인데, 그들을 소수민족으로 지정하신다면 분명 반발이 생길 것입니다.”

내 설명을 들은 신료 중 몇몇이 반대했다.

어차피 소수민족 보호법 같은 것으로 눈 가리고 아웅해 봤자 제국 내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헝가리인과 슬라브인이 지배층으로 올라오지 못한다면 이는 새로운 차별정책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이건 차별정책일세.”

“……?”

“???”

“예?”

“다들 표정이 왜 그런가?”

신료들은 자신이 방금 무얼 들은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개중에 몇몇은 정말 혼이 나가버린 것인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폐하?!”

“아잇 깜짝이야……. 왜 부르나.”

“이런 노골적인 차별정책은 슬라브인과 헝가리인의 반발을 불러올 것입니다!”

“이는 위험한 정책입니다. 폐하!”

신료들은 입에서 피를 토하듯이 고함치며 소수민족 보호법의 도입을 반대했다.

“허허, 아직 상세한 내용도 들어보지 않고 무턱대고 반대하려는 것인가?”

“하지만 폐하께서 이는 노골적인 차별정책이라고 하셨잖습니까? 이는 제국의 혼란을 불러올 겁니다.”

“혼란이라……. 원래 세상이 바뀌려고 하면 혼란이 찾아오기 마련 아닌가?”

“폐하……?”

신료들은 뭔가 더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나는 그들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았다.

어차피 더 들어봤자 소용없는 이야기였으니까.

“내가 밀어붙이고자 하는 이 법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네, 제국 내의 소수민족을 배려하여 그들이 제국의 주류민족으로 올라설 수 있게 해주는 것이네.”

“…….”

“소수민족이 주류민족으로 올라설 방법을 고민해 봤을 때,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그건 바로 정치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네.”

신료들이 뜨악하며 물었다.

“그렇다는 것은…….”

“설마…….”

나는 웃으며 답했고, 말이다.

“아마 자네들이 생각하는 것이 맞을걸세, 나는 전쟁 이후에 프로이센을 본뜬 의회를 만들 것이네.”

다들 내 폭탄 발언에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짐은 그 의회에 그들을 위한 의석을 배정할 것이고 새로운 내각에서는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둘 것이네.”

“!!!”

쉽게 말하자면 그냥 의회와 내각에 독일인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정책을 밀어붙이면 제국 전역에서 군소리가 나올 수 있었기에 한 가지 조건을 달아야 했다.

“단……. 소수민족의 지위는 5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인구조사에 따라 언제든지 변동될 수 있고 이에 따라 기존의 권리 역시 제한되거나 변경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

“제한과 변경……?”

“아, 그렇다면 폐하께서 지난번에 추진하신 도서관건립사업도 이 일과 연계된 것이로군요.”

“으음……. 그, 그렇지.”

이것과는 전혀 연관 없는 일이었지만 브루크 경이 감탄하며 존경 어린 시선으로 날 보는 탓에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럼 인구조사는 어떤 기준으로……?”

“늘 그렇듯이 자신이 주로 쓰는 언어에 따라 민족을 분류하는 것이지.”

“그렇다면…….”

신료들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렇다면……. 인구조사는 무슨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민족이 갈릴 것이니 다들 기를 쓰고 상대의 언어를 배워 상대를 깎아내리려고 하겠군요!”

“하하하……. 설마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하겠는가? 다들 소수민족의 어려운 처지와 그들의 삶과 문화를 배워 서로 공존하려 들 것이네.”

[제국을 콜로세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로군.]

영감님과 브루크의 말처럼 이 법안이 만들어지는 순간 제국 전역에서 머리 좀 쓴다고 하는 민족주의자들은 분기탱천하며 어떻게든 자기 민족들을 소수민족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었다.

자신들의 동포에게 다른 언어를 가르쳐 다른 민족으로 바꾸는 것은 예삿일이오. 제국 내의 다른 민족들의 언어를 보호하는 데 앞장서서 나설지도 모를 일이었다.

특히 헝가리의 괴팍한 민족주의자들은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마자르인의 소양이랍시고 이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일지도 모를 일이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영감님의 말씀이 옳았다.

“제국 전역이 민족 간의 콜로세움이 되는 것이지.”

“허허허…….”

“어차피 서로 민족과 언어가 다르다고 싸울 것이라면 굳이 피를 흘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이건 내 진심이다.

제국에는 수많은 민족이 있고 언어가 있다.

당장 주류민족인 독일계와 마자르, 슬라브인을 제외하더라도 유대인과 발칸 등지의 여러 민족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제국 내의 주류민족인 독일계가 정치와 경제, 군사 등 오스트리아 제국의 주요부문을 전부 먹어치웠고 그들이 흘린 부스러기조차 헝가리인의 차지가 되었다.

그런 상황이 계속해서 지속하니 제국 내에서 무시 못 할 세력을 가진 이탈리아인이나 슬라브인들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부스러기를 받아먹던 헝가리인들 역시 분명 자신들은 독일계와 같은 처지임에도 불공평한 처우를 받는 것에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렇듯 독일계를 제외한 다른 민족들이 모두 불만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우리 쪽으로 포용하겠다며 동화정책을 밀어붙이면 저들이 좋다고 받아들일까?

“그러니 저들에게 위로 올라올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면서 적극적으로 동화정책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소수민족 보호법을 도입하는 것이지.”

“정리하자면……. 폐하께서는 독일인을 소수민족으로 분류하여 이권을 보장해 주시되……. 제국 내의 다른 민족들에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활로를 열어주시겠다는 뜻이로군요.”

“바로 그것일세.”

“음…….”

신료들은 독일인의 권리를 보장해 줬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지만 영감님은 아닌 모양이었다.

[……지금 자네는 제국 내부의 문제점을 한 번에 처리하지 않고 뒤로 미루겠다는 건가?]

‘그게 최선이니까요.’

[단순히 미루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네, 자네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겠지.]

‘그냥 미루는 게 아닙니다. 지금은 서로 간에 소통이 필요한 시점이잖습니까.’

[불필요한 소통으로 제국을 분열시키고자 함이 아니고? 지금 자네가 하려는 것은 통합이 아니라 분열일세.]

‘나눠서 지배하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그건 식민지에서나 적용되는 것이네.]

‘어허, 식민지라니요? 저는 제국민을 다 같이 잘 살게 만들기 위해 그런 겁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멱살 잡고 싸우는 사회가 잘사는 사회라고 할 수 있는가……?]

영감님의 말에 멋쩍게 대답했다.

‘뭐……. 그럭저럭 살 만하던데요?’

[세상에…….]

평소의 영감님이라면 이쯤 해서 한숨을 쉬고는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며 물러나셨지만, 오늘따라 무슨 바람이 분 것인지 계속해서 나를 꾸짖으셨다.

[제국에 필요한 것은 통합과 단결일세, 그런데 자네는 정반대의 길을 걸으려 하는군.]

‘통합이니 동화니 하는 데 시간과 열정을 쏟을 바에는 그들을 적절히 분류하여 서로 치고받고 싸우게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요.’

[허어……. 자네는 아직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가?]

‘영감님, 모름지기 한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서로 미워하며 질투하고는 합니다. 그런데 마을 이장이 어찌 사람들의 마음마저 전부 관리하겠습니까?’

[…….]

‘이장의 업무는 사람들을 잘 먹이고 쓸데없이 큰 싸움에 휘말리지 않게 보살피는 것이면 족합니다. 그들이 화해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란 말입니다.’

영감님은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아쉽게도 그 말을 들을 시간이 없었다.

“폐하! 폐하!”

이놈의 나라는 뭘 좀 해보려고 하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터져 나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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