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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89화 (89/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89화

Yes or No?

때는 1853년의 초봄이었다.

시베리아에서 불어온 찬바람이 러시아 전역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고 비까지 내리는 상황이었다.

신료들은 이런 날씨에 사열식을 강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여 황제를 설득했다.

“폐하, 아직은 날이 추운 데다가 비까지 내려 폐하의 건강에 이상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날을 조금 미루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니콜라이는 단호했다.

“어허! 사열식을 미루자니 그게 무슨 말인가? 지금 전선에서는 일분일초를 다투고 있잖나!”

“하지만…….”

“그만! 짐의 몸은 소금이나 설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세! 그깟 비 좀 맞는다고 녹아내리지 않아!”

니콜라이는 자신을 걱정해 주는 신하들에게 화를 내며 그들을 비판했다.

“그대들이 보기에 짐은 유약해 보이는가?”

“아닙니다. 폐하.”

“그럴 리가요!”

“좋아, 그대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니콜라이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기온은 영하로 떨어진 상황에서 사열식을 강행했다.

그것도 외투도 입지 않고 얇은 정복 하나만 입은 채로 말이다…….

“폐하! 이건 자살행위입니다!”

“외투라도 입으시지요…….”

“지금 내 앞에 있는 병사들은 곧 전선에서 조국 러시아를 위해 피를 흘릴 것인데, 내게 이깟 추위가 대수겠는가?”

“하지만…….”

“후우……. 병사들이 보고 있으니 그만하지.”

신료들의 걱정에도 니콜라이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사열식을 강행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선택은 얼마 가지 않아 전 러시아의 재앙으로 돌아왔다.

“커헉…….”

“폐하……. 정신이 좀 드십니까?”

“여긴……. 여긴 어딘가……?”

“겨울 궁전입니다. 사열식이 끝나자마자 폐하께서 쓰러지셔서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사열식이 끝나갈 때쯤부터 니콜라이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겁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황제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렇게 쓰러진 황제의 몸은 불덩이 같았고 그의 입에서는 연신 피가 섞인 기침이 튀어 나왔다.

황제가 정신을 잃고 되찾기를 반복할 때마다 궁정 의사의 심장도 멈췄다가 다시 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황제가 여섯 번쯤 정신을 잃고 다시금 정신을 되찾았을 때, 니콜라이는 자신의 마지막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이보게…….”

“폐, 폐하! 정신이 드셨습니까?!”

“물……. 물을 좀 다오…….”

“알겠습니다!”

니콜라이는 궁정 의사가 건네준 물을 몇 모금 마시고는 급하게 가족을 찾았다.

“가족들을 불러주겠나?”

“예……?”

궁정 의사는 황제의 명령에 의아함을 품었지만 일단 명령은 명령이었던지라 급하게 황후와 자녀들을 불러왔다.

“니키!”

“아버지!”

“으음…….”

니콜라이는 지끈거리는 한 손으로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다른 손으로는 황후의 손을 맞잡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알렉산드라…….”

“니키…….”

“그대에게 할 말이 정말 많지만……. 아쉽게도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전부 하지는 못할 것 같구료……. 그래도 이 말만은 하고 싶소.”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실 거라고 말씀해 주세요!”

황후의 애원에도 니콜라이는 창백한 얼굴로 멋쩍게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베를린에서 그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소……. 그건 내가 죽어서도 같을 것이오.”

“니키……. 니키……!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그대는 훌륭한 어머니이자 부인이었으며 황실의 모범이었소……. 그대가 남아 있으니 나는 이제 아무 걱정 없이 하느님의 땅으로 떠나려 하오.”

“니키…….”

니콜라이는 황후의 이마에 힘겹게 마지막 입맞춤을 남기고는 다시금 자리에 누웠다.

“후우……. 사샤……. 사샤 거기 있느냐?”

“예, 아버지.”

“이리 오거라.”

그는 제법 의젓한 청년으로 자란 황태자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며 말했다.

“꽉 잡아다오.”

“예? 무엇을 말입니까?”

“무엇이든.”

황제는 이후로도 자식과 손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남기고는 조용히 자리에 누웠다.

그의 곁에는 평생을 함께했던 황후 알렉산드라와 가족들이 함께였다.

러시아제국의 차르 니콜라이 파블로비치 로마노프는 어렸을 적에 귀족들의 손에 아버지를 잃고 까마득한 형님들을 아버지처럼 여기고 살아왔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나폴레옹이 몰고 온 자유의 물결 속에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며 살았고 커서는 귀족들과 시민들에게 끌어내려지진 않을까 두려워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다 무슨 소용인가?

지금 그에게 러시아니 제국이니 하는 것은 아무 상관도 없었다.

“형님……. 사샤 형님…….”

그게 그의 마지막이었다.

러시아제국의 차르 니콜라이 파블로비치 로마노프는 마지막으로 큰형님을 찾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니콜라이의 두 눈이 감기며 숨이 멎었다.

* * *

러시아의 황제가 죽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전선에서는 총성이 멎었고 유럽 각국에서는 애도를 표했다.

“폐하, 우리도 애도를 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국민들과 자국민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미치광이 전쟁광이 죽었으면 오히려 축제를 벌이는 것이 맞지 않는가?”

“폐하…….”

“농담일세, 그래도 한 국가의 황제가 죽었으니 애도를 표하는 것이 맞겠지…….”

별로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나라들도 다 하는데 우리만 빠지는 것도 모양새가 별로였다.

다만 누구를 보낼 것인지가 고민이었다.

“흠……. 부올은 이런저런 일로 바쁘고……. 언드라시인지 뭔지 하는 놈은 아직 코빼기도 안 보이는군.”

“막시밀리안 대공 전하나 카를 전하를 보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안 돼, 그놈들은 괜히 궁전의 영애들을 건드리고 다니면서 사고 칠 놈들이야.”

“그럼 프란츠 카를 전하는 어떻습니까?”

“아버지는 전선으로 보낸다고 하지 않았나.”

바흐 남작은 당황하며 내게 물었다.

“저, 정말 보내실 생각이셨습니까?”

“그럼 내가 농담하는 거로 보였나?”

“그건……. 아니지만……. 정말로 보내실 줄…….”

바흐 남작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하긴 세상천지에 어떤 미친놈이 자기 대신 아버지를 전쟁터로 보낸단 말인가?

“하긴……. 이젠 전쟁도 흐지부지될 텐데 아버지를 보내도 괜찮을 것 같긴 하군.”

“그, 그렇죠!”

“흠……. 그럼 아버지 옆에 딸려 보낼 적당히 무게감도 있으면서 눈치도 빠릿빠릿한 외교관도 하나 붙어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럼……. 생각해두신 인물이 있으신지요?”

바흐 남작의 물음에 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

“있지.”

* * *

각국에서 보낸 조문단이 러시아제국의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하나둘씩 도착했다.

이 자리는 전대 황제인 니콜라이를 조문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황제가 전쟁을 그만둘 것인지 계속할 것인지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유럽의 이해 당사국들은 조문단의 인선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여차하면 러시아와 협상할 마음으로 말이다…….

그건 오스트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들 아는 얼굴이구먼.”

“……메테르니히 각하?”

오스트리아에서는 자신의 저택 정원이나 가꾸면서 말년을 보내던 메테르니히를 보냈다.

“아, 아니……. 각하께서 여기까진 무슨 일이신지요?”

“응? 당연히 조문하러 왔지, 돌아가신 폐하께서 어렸을 적에 선대황제이신 알렉산드르 폐하의 손을 꼭 잡고 있던 게 엊그제 같거늘…….”

“흐암……. 이보시오 메테르니히.”

“예, 전하.”

“오랫동안 마차를 탔더니 몸이 조금 찌뿌둥하여 말 좀 타고 오겠소.”

“다녀오시지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의 질서를 개편했던 거물이 모습을 드러내자 서방의 외교관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그의 옆에 있는 것은 현재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의 친부인 프란츠 카를 대공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이런 거물들을 내보냈다는 것은 러시아와 직접 협상을 할 의사를 내비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오스트리아의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건가?’

‘일전에 전염병과 암살시도로 황제가 쓰러진 전적이 있었지……. 지병 때문에 전쟁을 서둘리 끝내려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황제는 결혼도 늦어졌지…….’

의심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메테르니히는 외교관들의 이런 의심을 대충 눈치챘으나 괜히 입을 열지는 않았다.

지난 세월 동안 유럽을 주름잡는 외교관이자 재상으로 활동하며 때로는 침묵이 금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황제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메테르니히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황제의 아버지인 프란츠 카를 대공은 공식 일정이 끝나면 칼같이 말을 타러 나가거나 사냥을 나갔다.

오스트리아의 내부사정이 궁금한 이들은 많은데, 정작 이를 설명해 줄 사람은 없으니 궁금증은 커져만 갔고 온갖 흉흉한 소문이 흘러나오며 서방 외교관들을 긴장하게 했다.

“으음……. 오스트리아가 협상에 나설 것인지 아닌지를 확신할 수가 없으니 원…….”

“지금이라도 메테르니히와 접촉하여 저들의 심중을 떠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허, 메테르니히가 어떤 사람인지 잊은 것이오? 지금이야 뒷방늙은이 소릴 듣지만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전 유럽을 한 손에 쥐고 흔들었던 거물이잖소! 그런데 그 사람을 떠보겠다고요?”

“끄응…….”

서방의 외교관 중에서 메테르니히와 말을 섞을 정도로 용감한 자는 없었다.

그리고 그건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이시며 헝가리왕국의 계승예정자이시며 크로아티바 보스니아, 보헤미아 왕국……과 토스카나, 베네치아-롬바르디아 공국……의 보호자이시며 티롤, 크라쿠프 자유시…… 등의 보호자이신 황제 폐하를 대신하여 그분의 애통함을 대신 전하겠나이다.”

“으음……. 고맙구려.”

이제 막 보위에 오른 러시아의 젊은 황제는 무심하게 오스트리아 황제가 지닌 여러 직위를 읊어대는 메테르니히의 모습에 질려 버렸다.

보통은 여러 직함이 적힌 문서를 든 하인이 읊어주는 것이 관례였지만 메테르니히는 그냥 통으로 외워서 암송해 버린 것이었으니 말이다.

‘처음부터 강하게 나오는군.’

새로이 러시아의 황제가 된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는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며 오스트리아 대표단을 환영했다.

“생전에 아버지께서도 오스트리아인의 영특함과 번뜩이는 머리를 칭찬한 적이 있으셨지요……. 실제로 보니 과연 그러하군요.”

“감사합니다.”

“허허…….”

황제의 칭찬을 그저 감사하다는 몇 마디 말로 대신해 버리는 메테르니히의 모습에 주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해졌다.

‘그게 끝?’

‘오스트리아는 협상이 아니라 전쟁 지속으로 무게추가 기울어진 모양이로군……!’

‘젊은 황제는 아직 전쟁을 바라고 있어!’

오스트리아를 대표하여 여기까지 온 메테르니히가 저런 말을 한다는 것은 오스트리아는 아직 전쟁을 멈출 생각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판단했다.

정작 당사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할 말을 이어갔다.

“앞선 황제 폐하는 저와도 인연이 깊으신 분입니다. 지난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 유럽의 질서를 재편하며 많은 도움을 주고받았지요.”

“그렇군요…….”

“선대황제께서는 어렸을 적에도 나이에 맞지 않게 침착하셨으며 장성하시고서는 두 눈에 총기가 흘러넘치시는 분이었습니다.”

메테르니히의 말에 러시아제국의 새로운 황제 알렉산드르 2세는 떠나간 아버지를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메테르니히도 젊은 황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과거에는 이처럼 사이가 좋았던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서로 칼을 겨누게 된 상황에 대해서는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으음……. 그건 짐도 마찬가지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속히 양국 간에 평화가 찾아왔으면 합니다. 전하께서도 그러시겠지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가 대뜸 메테르니히의 질문을 받은 프란츠 카를 대공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화는 좋지.”

그의 대답에 메테르니히는 웃으며 러시아의 젊은 황제를 돌아봤다.

그 모습은 러시아의 황제가 메테르니히의 요구에 압박당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오스트리아는 전쟁을 바라는 것인가? 아니면 협상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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