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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91화 (91/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91화

전쟁의 시대?

영국의 총리 존 러셀은 집권 이래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를 여왕이나 의회의 허락 없이 승인한 것과 끝도 없이 계속되는 전쟁에 막대한 전비를 불태우는 것 때문에 여왕과 의회가 그에게 큰 불만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러셀 경, 도대체 전쟁은 언제 끝나는 것이오?”

“……전하, 조만간 래글런 남작이 좋은 소식을 보내올 것이니 기다려주시지요.”

“경께서 그리 말한 지도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런데 래글런 남작은 무얼 하기에 아직도 아무 소식이 없단 말이오?”

“죄송합니다. 전하.”

여왕에게 쓴소리를 듣는 것은 그나마 나았다.

그래도 빅토리아 여왕은 나름대로 총리의 체면을 세워준답시고 험한 말은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의회는 총리의 체면이니 위신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 대단하신 총리께서는 벌써 연합왕국의 오 년분 예산을 허공에 뿌리신 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덕분에 전염병 대책을 위한 예산이 크게 줄어들어 거리에는 시체가 넘쳐난다지요?”

“병력을 투입해도 이렇다 할 활약도 없고……. 성과도 없고……. 그렇다고 러시아를 굴복시키지도 못했으니……. 허허……. 이것 참 재밌구려.”

나름 신사답게 그를 힐난하는 이도 있었지만.

“총리는 도대체 무엇을 했기에 지난 3년간 아무것도 못 했느냔 말이오! 당신 자리에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노동자를 데려다 놔도 그것보단 잘하겠소!”

“경제도 못 살리고 전염병에 잘 대응하는 것도 아니고 시민들의 불만만 불러일으키는 무능한 총리는 그냥 물러나는 게 어떻소?”

보수당의원들은 대놓고 그의 실책을 씹어대며 그를 공격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러셀의 속을 박박 긁어놓는 이가 하나 있었으니…….

“야당 대표……. 벤저민 디즈레일리 경, 앞으로 나와 연단에 서주시오!”

의장의 말에 주변이 시끄러웠음에도 침착하게 자리에 앉아 있던 이가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러고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총리와 여당인 자유당을 향해 선전포고를 날렸다.

“지난 세월 동안 총리의 통치가 실패의 연속이었다는 것은 반박할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우우!!”

“보수당 떨거지 새끼야 나가라!”

“뭣도 모르는 새끼가 어디라고 기어 나와!”

주변의 야유성에도 디즈레일리는 무표정을 고수하며 덤덤하게 자신의 말을 할 뿐이었다.

“자유당 신사분들께서 아무리 흥분하여 개처럼 짖으신다고 해도 이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러셀 경의 지난 재임 기간 내내 연합왕국은 대륙세력의 끝없는 도전을 받아왔습니다.”

“저, 저저……. 저 새끼 말하는 것 좀 보래!”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무능이란 관성과도 같아서 무능한 자는 끝없이 무능해지며 국가를 파멸의 길로 몰고 가고는 합니다. 러셀 경 또한 그렇지 않습니까? 지난 통치 기간 내내 총리께서는 실패만을 반복해 오셨고 덕분에 연합왕국은 실패만 겪어야 했지요.”

“저 새끼 끌어내!!!”

“의장은 뭘 하는 거야! 저 새끼 당장 끌어내!”

“무수한 실패 끝에 연합왕국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제 눈앞에는 끝없는 절벽만이 보이는군요.”

디즈레일리는 그 말을 끝으로 연설을 끝마치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에 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대부분의 자유당 의원들이 디즈레일리의 도발에 제대로 걸려들어 가서는 그에게 극찬(?)을 보내고 있을 때, 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이도 있었다.

“이야……. 디즈레일리를 내보낼 줄이야.”

“그만큼 보수당에서도 이번에야말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지요.”

자유당 의석에 앉아 있던 노인이 곁에 있던 중년인에게 물었다.

“러셀이 버틸 것 같은가?”

“힘들 겁니다. 이미 아일랜드의 일이나 경제불황에 전염병까지 겹친 탓에 국민의 지지도 예전 같지가 않고 여왕의 신임마저 잃었잖습니까.”

“끌끌……. 러셀 경이 고생 좀 하겠군.”

“그만큼 강한 분이니 견뎌내실 겁니다.”

중년인의 말처럼 영국의 총리 존 러셀은 디즈레일리의 말에도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그의 말을 받아쳤다.

“지난 내 통치 기간에 대한 피드백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연합왕국의 실패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개소리 집어치워!”

“빨리 내려와 실패자야!”

“늙은이가 욕심만 많아서는……!”

그의 말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보수당 측에서 온갖 비난이 쏟아졌지만, 그는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저는 여러 번의 실패를 겪었지만, 하늘에 맹세코 그것에 굴복한 적은 없습니다. 언제나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금 도약할 계기로 만들었고 그러한 시도 끝에 연합왕국을 부흥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부흥은 무슨 놈의 부흥!”

“개소리 말고 내려가라!”

“조용! 신사분들 예의를 갖춰주시길 바랍니다.”

결국, 보다 못한 의장이 의원들을 제지했으나 어디 의원들이 그런 것을 들을 사람들인가?

그들은 오히려 더 신나서 소리쳤다.

“우우!”

“실패자 존 러셀!”

“패배자!”

“러시아 스파이!”

이에 흥분한 자유당 의원들까지 나서서 개싸움에 끼어드니 의회는 순식간에 개판이 되어버렸다.

의장은 이 상황을 진정시키고자 의사봉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정숙! 정숙하시오! 다들 신사답게 행동합시다. 신사답게 말이오!”

“이게 신사다운 겁니다!”

“……정숙하시오!”

다들 한참을 떠들어대고서야 겨우 조용해졌다.

하지만 언제고 터질 수 있는 화약 더미 위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 같은 긴장감이 계속됐다.

“후우……. 총리께서는 발언을 계속하시겠습니까?”

“물론이지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러셀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이 적막에 잠긴 의회를 쓱 둘러보고는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조금 전에 디즈레일리 경이 제 정치는 관성이라고 하셨지요. 그건 저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

자신을 말린 오징어처럼 잘근잘근 씹어대던 디즈레일리의 말을 인용하는 러셀의 말에 다들 숨죽이며 집중했다.

“저는 재임 기간 내내 한번 정한 정책은 뚝심 있게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비록 그 결과가 좋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 결과가 좋았던 것도 많았지요.”

러셀의 말에는 점점 힘이 실렸다.

“공장에서 푼돈을 받고 노예처럼 일하는 여자와 아이들의 노동시간을 제한하고자 한 것이 누굽니까?!”

“존 러셀!”

그의 말에 자유당 의원들이 화답했다.

“더러운 하수도와 그로 인해 생긴 질병을 해결하고자 하수도 위원회와 공중 보건법을 건의한 것은 또 누구입니까?”

“존 러셀!”

“……아일랜드의 기근 문제에서 제 실패를 통감하며 새로운 빈민구제법을 의회에 상정한 것은 또 누군지 기억하십니까?”

“존 러셀!”

“경제에 어려움이 닥쳐 증권가가 흔들리며 시민들이 은행으로 달려갈 때, 이를 해결한 것이 누굽니까!”

“존 러셀!!”

그가 자신의 업적을 나열하며 여당의 지원사격을 등에 업자 보수당 측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러셀은 자신이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하며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아넣으려 했다.

“그리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연합왕국에 승리를 가져올 총리는 누구…….”

그때, 의회의 문이 벌컥 열리며 서기관이 급히 뛰어 들어와서는 의장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의장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고개를 들어 러셀을 바라봤다.

“초, 총리……!”

“…….”

의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러셀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디즈레일리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 *

바르나에서 크게 패한 연합군은 후방으로 크게 물러나 프랑스군 본대와 합류하여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러시아의 황제도 사망하여 전투는 소강상태에 빠져들었고 병사들 역시 곧 고향으로 돌아간다며 알게 모르게 철군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본국에서 전보가 왔소.”

래글런 남작의 앞으로 전보 하나가 도착했다.

“무슨 내용입니까.”

“연합왕국의 총리이신 존 러셀 경이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지점을 위해 러시아군을 공격하여 격파하라는군요.”

“이 전력으로 말입니까?”

“……예.”

프랑스 육군 원수이자 프랑스 원정군의 총사령관인 아르망 드 자크 르로이 드 생 아르노 장군은 기가 찬다는 듯이 혀를 찼다.

“쯧쯧……. 정 싸우고 싶다면 영국군끼리 알아서 하시지요. 우리는 다 끝난 전쟁에서 굳이 피를 흘리고 싶지는 않소.”

“다 끝난 전쟁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지금 전선의 러시아군은 아직도 우릴 위협하고 있잖소!”

“위협은 무슨……. 저놈들은 알아서 사지로 기어들어 온 머저리들이요. 지금은 보급품 부족으로 이도 저도 못 하고 있지.”

“그건 그렇지만…….”

“그러니 정 싸우고 싶거든 그대들끼리 알아서 하시오. 나는 이곳에서 무운을 빌지.”

생 아르노는 헛기침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흠……. 나는 프랑스의 청년들이 헛된 일에 피를 쏟게 할 수는 없소.”

“지금이 기회란 말이오!”

“어허, 지금은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해야지요.”

“지금 러시아군을 무찌른다면 프랑스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이오?”

래글런 남작의 간절한 부탁에도 생 아르노 원수는 이를 거부했다.

그로서는 이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전투에 힘을 쏟기보다는 전력을 온존하여 프랑스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고 봤기 때문이다.

‘괜히 전투를 벌여서 힘을 빼놓을 필요는 없지.’

그는 이곳으로 프랑스를 떠나기 전 절대로 앞에 나서지 말고 적당히 자리를 채우며 소소하되 확실한 전공만 챙기는 것으로 책임을 다하라는 대통령의 당부를 떠올렸다.

곧 종전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러시아는 더 프랑스의 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탈리아 문제에서 프랑스 편을 들어줄지도 모르는 존재였으니 최대한 그들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호감을 끌어내야 했다.

마침 나폴레옹 전쟁의 기억 때문에 프랑스에 적대적이던 전대 황제도 죽었으니 시기도 적절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 길이 없는 래글런 남작은 프랑스의 군의 이러한 행동에 발만 동동 굴렀다.

지난 전투로 상당한 피해를 본 영국군이 단독으로 러시아군과 맞서 싸울 수는 없었는데, 그렇다고 본토에서 지원을 받자니 지원군이 오기 전에 전쟁이 끝날 판이었다.

“허허……. 이를 어쩐다?”

래글런 남작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봤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총리는 당장 러시아군을 물리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지금 그들과 붙는 것은 달걀로 바위를 내려치는 것과 같았다.

차라리 시간을 좀 더 끌다가 저들의 보급품 부족 문제가 심각해졌을 때 공격하는 거라면 몰라도…….

하지만 그때가 되면 이미 종전협정이 이뤄졌을 것이란 거 문제였다.

“……큰일이로군.”

급한 것은 저쪽이니 이쪽에서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면 승산이 없었다.

적들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전에 재빠르게 군대를 휘몰아쳐 러시아군을 격파해야 했지만 이젠 너무 늦어버렸다.

프랑스군은 싸울 마음이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오스만이나 사르데냐를 끌어들이는 건……?’

사르데냐는 몰라도 오스만 쪽은 호응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이 저들은 러시아와 국경이 맞닿은 뒤로 쉬지도 않고 저들과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그리고 오스만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번번이 패배하며 저들에게 많은 땅을 내어줘야 했으니……. 이번에야말로 저들에게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

“술탄께서는 이슬람과 정교회가 서로 미워하며 피를 흘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

그의 바람과는 달리 연합군은 바르나에서의 패전 이후 이미 해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그에게 남은 것은……?

“……농사짓는 법이라도 배워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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