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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98화 (98/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9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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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의 전쟁이 생각보다 더 길어지는 상황에서 오스트리아가 러시아와 단독으로 종전 협상을 맺었다는 소식에 영국과 프랑스는 분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오스트리아에 직접적인 제재를 가한다거나 공식적으로 항의서한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들이 부랴부랴 러시아와 협상을 벌인 이유가 독일연방의 가맹국인 프로이센이 그들을 배신하고 러시아에 협력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이 러시아와 손을 잡았다.

연방의 다른 구성국인 오스트리아 러시아와 전쟁 중임에도 그런 것이었다.

같은 동맹의 등에 칼을 꽂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그들의 행위에 국제 외교계에서 프로이센의 위상은 크게 추락했으며 그들의 말은 신뢰도를 잃었다.

당연하게도 프로이센의 국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이 사실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비스마르크.”

“예, 전하.”

“분명 일전에 그대가 말하기를 우리와 러시아 간의 밀월관계는 들킬 수가 없다 하지 않았는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오스트리아 녀석들은 이걸 알아채고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군.”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지요. 모든 일은 제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국왕이 의심 어린 시선으로 물었다.

“그 말이 참인가?”

“예, 전하.”

“그렇다면 자네를 조금만 더 믿어보지.”

국왕과의 접견을 끝내고 집무실을 나선 비스마르크는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젠장……. 오스트리아 놈들이 어떻게 안 거지?’

분명 러시아와 거래할 때는 중간에 스웨덴과 미국 상인들까지 끼워 넣었기에 들키고 싶어도 들킬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는 모종의 방법으로 그들 위에 프로이센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이것으로 자신의 조국을 압박해 오고 있었다.

‘아니야……. 정신 차려! 지금 중요한 것은 저들이 어떻게 이 사실을 알아차린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야…….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비스마르크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영국과 프랑스와 전쟁 중인 러시아를 알게 모르게 지원했으니 앞으로 그들과의 관계는 악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에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오던 오스트리아와의 평화 관계도 완전히 끊어졌다.

이제는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피할 길이 없었다.

‘못해도 20년……. 아니, 30년은 착실히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안일하게 행동했다.’

비스마르크는 냉철하게 자신의 문제를 되짚었다.

그러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뒤로 역대 프로이센 국왕들의 초상화가 휙휙 지나갔으나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속도전이다. 오스트리아가 전쟁 준비를 끝내기 전에 우리가 먼저 놈들과 맞서 싸울 준비를 끝내야 해.’

비스마르크는 결의에 찬 얼굴로 궁전을 나섰다.

‘그 기회를 만들려면……. 우선 의심 어린눈으로 우릴 지켜보는 이들의 시선부터 돌려놔야 해.’

* * *

제국 전역은 한창 투표 준비로 들썩거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가 바로 투표권을 어디까지 허락하느냐였다.

헝가리의 혁명가들과 제국 내의 자유주의자들은 모든 계층에게 공정한 한 표를 주장했지만 제국 내 보수주의자와 기득권은 계층별로 차등적인 투표권을 주장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신으로부터 세례받아 평등함을 가지고 태어난다!”

“모든 인민에게 평등한 투표권을!”

“모든 이에게 투표권을!”

이 일을 주도하는 것은 지난 헝가리 혁명 당시 헝가리 국민정부를 이끌었던 러요시 코슈트와 이슈트반 세체니였다.

둘은 서로 힘을 합치고는 있었지만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달랐는데, 코슈트는 철저히 정부 개혁을 위한 자신의 지지기반을 위해서였지만 이슈트반은 순수히 만인의 평등과 자유를 위해 신분이나 경제적 지위와 관계없이 한 표를 선사하는 것이 맞는다고 본 것이다.

어찌 되었건 헝가리의 혁명가들과 제국 내 자유주의자들은 그동안 제국에서 소외당하던 남슬라브인들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며 그들을 끌어안았다.

제국의 남슬라브인들은 각자 민족 정체성도 달랐고 쓰는 말도 제각각이었지만 제국 내의 기득권이 되기 위한 열망은 같았다.

그들은 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을 이용하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기꺼이 그들의 뜻에 동조하여 한 표 운동에 뛰어들었다.

‘어차피 다 똑같은 표를 가지게 되면 결국 투표는 숫자가 많은 놈이 이기는 거야.’

‘웅가른 녀석들이나 슬라브 녀석들이 우릴 밀어줘서 의회를 자유주의자들이 점령한다면……. 전제군주정을 합법적으로 무너트릴 수 있어……!’

‘넴치와 마자르스카 녀석들……. 우리라고 단합을 모르는 줄 아는 모양이지?’

자유주의자-헝가리-슬라브 연합은 저마다 속뜻이 달랐지만 어찌 되었건 한 표 운동이라는 대의 아래 모두 힘을 합쳤다.

기존 기득권층은 당연히 극렬히 반대하며 세력을 결집했지만, 보수층 가운데에서도 그들의 뜻이 옳다고 보는 이들도 제법 많았기에 그들의 생각처럼 일이 흘러가지는 않았다.

“이제 어찌합니까?”

“이대로 헝가리, 슬라브 녀석들에게 제국을 가져다 바칠 생각이오?”

“그럼 어쩌잔 말이오!”

“……폐하를 찾아갑시다. 가서 폐하께 이번 선거의 부당함과 자유주의자들의 공작에 대해 아뢰고 그분의 지지를 받아냅시다!”

결국,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수는 황제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정작 선거 흐름이 그렇게 흘러가게 내버려 둔 것이 황제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한창 여행 중인 황제를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뭐라고?”

“폐하, 지금 간악한 무리가 폐하의 권위를 해치고 제국을 혼란에 빠트리고자…….”

“아니, 그러니까 지금 투표권 문제로 국론이 분열되었으니까 나보고 그대들을 지지해 달라는 말이 아닌가?”

“……예, 맞습니다.”

하지만 황제는 그들이 원했던 대답이 아닌 정반대의 대답을 내놓았다.

“투표야 시민들과 정부가 결정할 일이지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닐세.”

“폐하?”

“그리고 짐은 지금 휴식을 취하는 와중인데, 그대들에게 내 시간을 빼앗겨야 하겠는가?”

“하지만……. 지금 국정이 시급한데…….”

그때 응접실 바깥에서 들려온 여인의 목소리가 그들의 말을 끊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예요.”

“금방 가겠네.”

그리 대답한 황제는 귀찮다는 듯이 그들에게 손짓하며 축객령을 내렸다.

“됐네, 살펴들 가게.”

황제는 자신의 시간을 빼앗겼다는 것에 무척이나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축객령을 내린 황제는 지나가는 말로 그들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꼭 나랏일은 쥐뿔도 안 해본 것들이 괜히 나라가 어떠니 국가가 어떠니……. 으휴.”

“…….”

“이젠 어쩌지……?”

일부 기득권층의 반발에도 선거는 성별, 경제적 지위, 신분에 상관없이 공평하게 한 표씩 주어지는 것으로 결론 났다.

뒷말이 많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그동안 제국의 주류에서 배제되어 있는 남슬라브계나 지난 혁명의 실패로 침체되어 있던 헝가리와 자유주의자들은 이를 자신들의 위대한 승리로 여겼다.

그리고 그들은 선거관리위원회의 대표인 바흐 남작의 입에서 평등선거의 원칙이 발표됨과 동시에 언제 힘을 합쳤냐는 듯이 찢어졌다.

코슈트는 헝가리 내의 지지자들을 결집했고 남슬라브인들은 각자 자기 민족 이름을 앞세운 당과 대표를 들이밀며 투표에 열을 올렸다.

선거의 열기가 올라가고 제국 전역의 선거운동이 치열하게 벌어지면서 선거관리위원회의 바흐 남작은 죽을 듯이 갈려 나갔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 * *

“폐하, 라이너 대공께서 이번 선거에 출마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라이너 대공?”

[자네의 작은할아버지 되시며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총독이셨던 라이너 대공의 늦둥이일세.]

“아……. 그 라이너?”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독특한 이름이었기에 왕실 명부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당사자 앞에서는 그리 말하면 안 되네.]

‘에이……. 제가 그 정도로 경우가 없진 않습니다.’

[그 정도로 경우 없는 사람이니 걱정하는 것일세.]

헝가리나 보헤미아, 발칸으로 대비되는 제국 내 슬라브인들은 제국 전역에서 크고 작은 소요사태를 일으킬 정도로 선거운동에 전념했으나 정작 독일계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정확히는 누군가 나서긴 해야 했는데, 마땅히 나설 사람이 없는 것에 더 가까웠다.

결국, 보다 못한 황실에서 그나마 시민들에게 인기가 좋던 라이너 대공을 내세운 것에 가까웠다.

아무래도 즉 우 이후부터 제국이 겪은 여러 위기를 순조롭게 헤쳐나가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내 인기에 기대서 표를 모을 생각인 듯했다.

“흠…… 나쁘지는 않군.”

어차피 투표 전에 날치기로 통과시킨 소수민족 보호법이 있었기에 의회나 내각에서 일정 지분을 보장받았으니 열을 올릴 필요도 없긴 했다.

“다른 이들은 좀 어떻다는가?”

“예, 각지에서 선거운동에 열을 올리면서 어떻게든 자기 쪽 사람들에게 한 표라도 더 주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래? 그것참 다행이로군.”

다들 투표에 눈이 돌아가 있어서 소수민족 보호법 같은 것에는 신경을 못 쓰는 듯했다.

그래도 나중에 들통났을 때를 대비하여 충격을 줄여둘 필요는 있었기에 슬쩍 한 가지 주문을 더 했다.

“크흠……. 지난번에 실시했던 인구조사는 얼마 정도 진행되었다는가?”

“듣기로는 조사는 끝마친 지 오래고 이제 집계에 들어간 모양이었습니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예, 다들 투표 전에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하여 그다지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오히려 자기들 쪽 표를 한 표라도 더 늘리고자 산골짜기에 지내던 이들도 소개해 줄 정도라고 하더군요.”

유권자 조사를 겸해 제국 내 인구조사에 들어갔는데, 이게 아주 제대로 먹혀들어 간 모양이었다.

“하긴……. 다들 의회와 내각 총리직에 눈이 뒤집혀 있을 테니 그럴법하지.”

“아, 그리고 얼마 전에 조피 대공비께서 폐하를 뵙길 청했나이다.”

“바쁘다고 해.”

“예, 폐하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보나 마나 내가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시고는 엘리자베트를 치워내시려 나를 보자고 하는 게 분명했다.

아직 혈기왕성한 나이다 보니 타국의 여러 왕녀와 공녀들을 만나보면 생각이 바뀌리라 생각하시는 모양이었다.

[혈기왕성한 나이는 맞지 않은가.]

‘영감님 좀 조용히 해주세요.’

엘리자베트 쪽에서 먼저 내가 싫다고 떠나는 것이라면 몰라도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 없었다.

기왕이면 황제에게 버림받은 여인보다는 황제조차 거부할 수 있는 당찬 여인이라는 명성이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허허…….]

‘왜 또 그러십니까.’

[자네 모습이 참으로 우스워서 웃은걸세.]

‘제가 또 뭐가 우습다고 그러십니까? 제가 이래 봬도 집권 초기에 혁명도 진압하고 러시아와 전쟁도 판정승으로 끝내고 경제도 한껏 끌어올렸습니다. 세상에 이런 황제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내 말에 영감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자네가 못났다거나 해서 우습다는 말은 아니었네, 본인이 그동안 자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 것은 사실이나 그건 자네가 못 미더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까 봐 그런 것이네.]

‘오……. 갑자기 좋은 말씀을 해주시니 또 이번엔 뭐로 꼬투리를 잡으실까 두려워지네요.’

[크흠……. 자네는 다 좋은데, 어째 몇 년이 지나도 그 경박한 말투는 도통 고쳐지질 않는군.]

‘매일 나라 고치느라 수저도 못 들 정도로 바쁜데 말투 고칠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말에 영감님은 흐뭇하게 웃으셨다.

[그렇지, 자네 말이 맞아.]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무엇이 말인가.]

‘갑자기 그러시니 제가 좀 당혹스럽네요. 조금 전에는 제가 우습다고 하시더니 갑자기 칭찬하시는 건 조금…….’

[하하하, 그거야 매번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행동하던 사람이 자기 마음 하나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는 것이 우스워서 그런 것이라네.]

‘?’

영문모를 말에 그를 돌아봤지만, 영감님은 얄미운 미소를 지으시며 천천히 벽 속으로 사라지셨다.

[손님이 오는 것 같으니 본인은 이만 가보지.]

‘영감님이 그럴 때마다 진짜 유령 같으니까 제발 그러지 좀 마십시오.’

그렇게 영감님을 보내고 나니 익숙한 향이 풍기며 내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

“폐하!”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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