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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01화 (101/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01화

항상 충실하게?

선거에서 승리하고 총리 선출에 실패한 코슈트 러요시는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은 원래 제국의 총리가 돼야 했었으며 황실이 자기 자리를 뺏어갔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다.

“그렇지 않는가, 괴르게이?”

“이제는 되지도 않는 욕심을 내려놓으시지요.”

“허, 이게 어디 나 혼자 잘되자고 하는 일인가? 이게 다 헝가리인들을 위함이네.”

“쯧쯧쯧……. 그거야 지난 선거에서 선출된 의원들이 해야 할 일이지요.”

괴르게이의 말에 흥분한 코슈트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그게 문제라고 하지 않았나! 그들이 왜 날 뽑지 않았겠나? 황제가 손을 쓴 것이겠지!”

덕분에 괴르게이의 품 안에서 곤히 자고 있던 그의 딸이 코슈트의 목소리에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어허,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셔서 가만있는 애를 놀라게 하고 그러십니까?”

“그 아이도 황제의 이런 폭정에 슬퍼하며…….”

“쯧쯧쯧……. 어째 변한 것이 하나 없군요. 그렇게 무작정 폐하를 욕하시기만 할 거면 이만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결국, 코슈트는 차를 다 마시기도 전에 괴르게이의 집에서 쫓겨났다.

굳게 닫혀 있는 문을 바라보며 코슈트는 언짢은 얼굴로 모자를 더 깊게 눌러썼다.

“쯧……. 내가 그동안의 정을 생각하여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알리고자 한 것이거늘…….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에라이 황제의 앞잡이 같으니라고!”

코슈트가 화를 내며 뒤를 돌아보니 손에 막대사탕을 든 꼬마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빠! 저 아저씨 이상해.”

“뭐?!”

“알로이스!”

아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성이 다급하게 아이를 챙기고는 코슈트에게 사과했다.

“아직 아이가 철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으음…….”

“아저씨 왜 화내고 그러세요.”

“끄응…….”

코슈트는 천진난만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에게는 차마 화를 내지는 못하고 그저 말없이 머리나 두어 번 쓰다듬어주고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도대체 황제라는 작자의 생각을 모르겠군……. 분명 얼핏 보기엔 어리숙해 보이고 제 주장만 앞세우는 애새끼 같은데……. 정작 시일이 지나고 난 뒤에 일 처리를 살펴보면 그의 뜻대로 이루어져 있어.’

‘이번 선거만 해도 언뜻 보기엔 헝가리와 슬라브인들이 각자의 권리를 쟁취해 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따져보면 우리가 싸우는 동안 독일 놈들이 실리를 챙기지 않았는가?’

선거 이전에 황제가 밀어붙인 소수민족 보호법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제국 내에서 다른 민족보다 소수민족으로 밀려난 독일계와 정말 소수민족들이 의회에 대거 유입되었다.

독일계는 당연하게도 황제를 지지했고 소수민족 보호법으로 의회에 입성한 이들 역시 자신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준 황제를 지지했다.

결론적으로 선거기간 동안 미친 듯이 치고받았던 슬라브와 마자르인들이 열심히 차려놓은 밥상은 애초에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멍청한 놈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나보고 사회주의자니 뭐니 하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사회주의자로 몰린 것은 너무나도 억울했다.

“황제가 나를 묻으려고 단단히 마음먹은 모양이로군……. 허허……. 이를 어쩐다?”

코슈트는 괴르게이의 문 앞 계단에 걸터앉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멀뚱히 지켜보던 꼬마는 손에 들고 있던 막대사탕을 그에게 건네줬다.

“아저씨 힘내세요.”

“……?”

“아빠가 그랬는데 힘들고 슬픈 일도 언젠가는 끝이 온대요! 아저씨도 힘내세요!”

“허허…….”

기껏해야 여섯 살쯤 먹은 꼬마에게 위로 어린 선물을 받은 코슈트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막대사탕을 받아들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리되었을꼬…….’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주변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으나 총리선거에서 낙선하자마자 끈 떨어진 연처럼 혼자가 되어버렸다.

충성을 다짐하던 정치인들은 그를 버리고 앞장서서 코슈트를 욕했으며 자신을 후원하던 자본가들은 순식간에 돌아섰다.

돈도 친구도 지위와 명예까지 잃어버린 코슈트의 손에 남은 것은 손에 들고 있는 막대사탕 하나뿐이었다.

입에 넣으면 잠깐의 달콤함을 약속하지만 이내 사라져 버리는 그런 막대사탕 말이다.

‘내 꼴이 우습구나.’

그러고는 사탕을 꼭꼭 씹어먹으며 다짐했다.

‘오냐! 내가 여기서 포기할 것 같으냐? 비록 지금은 내가 이 모양 이 꼴이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것 같으냐?!’

코슈트는 입안의 사탕이 모두 녹아 없어질 때까지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내가 사회주의자라고? 그래, 너희들이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기꺼이 사회주의자가 되어주지! 그리고 기필코 총리가 되어 모든 것을 뜯어고치리……!’

하지만 세상을 향한 분노를 한 번에 쏟아내는 그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추잡하게 사탕을 먹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이내 사탕을 전부 먹어치운 코슈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이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꼬마야. 덕분에 이 아저씨가 힘을 낼 수 있게 되었구나.”

하지만 꼬마는 코슈트의 감사 인사에도 울먹거리더니 이내 눈물을 보였다.

“힝……. 한 입만 먹으라고 준 건데…….”

“그, 그렇니?”

“내 사탕…….”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코슈트는 당황하여 아이를 달랬지만 그런데도 속은 후련했다.

물론 멀쩡한 아이를 울려서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니었고 이제는 천천히 올라갈 일만 남아 있었기에 그런 것이었다.

‘페렌츠 요제프……. 네놈이 나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른다면 정말 그렇게 돼주마! 내가 그들을 이끌고 다시 총리직에 도전한다면 그때야말로 네놈을 끌어내려 주마!’

코슈트는 그렇게 다짐하며 아이를 달래줬다.

* * *

코슈트가 한창 순진한 어린아이의 사탕을 착취하고 있을 무렵 쇤부른 궁에서는 제국의 새로운 총리가 된 라이너 대공의 임명식이 열리고 있었다.

“축하하네, 당분간은 자네가 나를 보좌하겠군.”

“저는 그저 폐하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하하하, 그래! 가족 좋다는 것이 무엇인가?”

라이너 대공은 공적으로는 제국의회를 통솔하는 제국 총리이지만 사적으로는 사촌 관계였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대공의 부인되는 마리아 카롤리나 대공비도 내 사촌이었다.

그러니까 간단히 정리하자면 사촌 형님의 부인되시는 마리아 형수님은 내 사촌 누님이라는 것이다.

‘개족보도 이런 개족보가 따로 없네.’

[크흠……. 단어 선택에 주의해 주게.]

‘그럼 개족보를 개족보라고 하지 뭐라고 합니까?’

[어허!]

이러니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전병으로 고생하고 턱돌이니 뭐니 하며 놀림당하는 것이겠지.

[그러는 자네도 사촌 여동생과 약혼하지 않았나.]

‘어허, 저는 곧 파혼할 겁니다.’

[잘도 그러겠군.]

‘좀 믿음을 가져보시지요.’

[믿을 걸 믿지.]

영감님은 냉소적인 미소로 나를 비웃으셨다.

“으음…….”

“폐하?”

“아무것도 아닐세,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하겠네! 라이너 공.”

“성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그래……. 기왕 쇤부른까지 왔으니 어머님을 뵙고 갈 생각인가?”

“폐하께는 인사를 드렸으니 조피 대공비께도 인사를 올릴 생각입니다.”

“으음……. 그렇군.”

라이너 대공은 생각보다 심심한 사람이었다.

딱 시킨 것만 열심히 할 것 같은 사람처럼 보였다.

[실제로도 비슷했네, 란트베어 창설에 크게 이바지하긴 했지만 그걸 제외하면 별다른 성과도 없지.]

‘뭐……. 시키는 것만 잘하는 게 어딥니까.’

일을 시켰는데 제멋대로 날뛰다가 일을 망치는 것보다는 얌전히 시킨 대로 하는 것이 좋았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라이너 대공은 적어도 그럭저럭 밥값은 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겠지.

“후우……. 헨리.”

“예, 폐하!”

“오늘 오후 일정을 말해주겠나.”

“조금 뒤에 제국의회 개회식에 참석하셔서 기념 연설을 하시고 그 후에는 사관학교를 졸업하는 생도들을 축하해 주시고…….”

슬슬 연말이 다가와서 그런지 행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발칸에서는 러시아군과 서방의 군대가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이어갔고 프로이센은 아주 본격적으로 우리를 적대하는 상황이었다.

‘이대로면 내년이나 내후년쯤에는 정말로 프로이센이랑 붙어야 할 것 같은데…….’

프로이센이 산업혁명의 기류에 올라타 우리를 많이 따라왔다고는 하지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일단 내 목표는 프로이센과 최소한의 격차를 벌려두면서 시간을 끌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저들을 선제공격하여 전쟁을 빠르게 종결시킬 생각이었다.

다만 문제는…….

‘저쪽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텐데…….’

[비스마르크라면 분명히 그렇게 하자고 프리드리히 빌헬름을 설득하고 있겠지.]

‘그나마 다행이라면 비스마르크가 이번에 거하게 삽질한 거로 발언권이 줄어들었을 테니 주도권은 우리에게 있다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가 프로이센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정치, 경제적인 부분으로만 따져보면 우리가 프로이센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군사 부문으로 넘어가면?

[감히 프로이센에 비할 바가 못 되지.]

‘쓰읍……. 왜일까요?’

국토면적도 두 배나 차이 났고 인구로만 따져도 저들의 세 배에서 네 배는 되었으며 생산력으로 따지면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국력을 가졌음에도 프로이센을 압도할 수 없는 현실이 참으로 우스웠다.

이건 내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감님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놈들은 애초에 전쟁에 한해서는 독일에서 제일가는 녀석들이지.]

‘……그래도 군제를 개편하고 사관학교 체제를 조금 개편해서 내부에서 실력 있는 장교들을 고위직으로 끌어올리면 어느 정도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장기적으로는 그렇겠지, 하지만 비스마르크가 제국의 전력증강을 눈뜨고 가만히 지켜보겠는가?]

‘그것도 그렇네요.’

그렇다면 군사적인 방법으로 프로이센을 단기간에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도통 모르겠네.”

머리를 아무리 굴려봤지만 도통 방법이 없었다.

솔직히 국력을 모두 쏟아붓는다면 프로이센을 굴복시키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다만 프로이센을 상대하고 나면 그 뒤에는 이탈리아 지배권을 두고 프랑스와 한판 붙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게 프랑스까지 무찔러서 제국이 얻는 것은?

제국 영토의 확실한 지배권 확립.

그게 끝이다.

방대한 영토를 지키기 위해서 유럽 유수의 강대국들과 한 번씩 붙어야 하는 것이었다.

만약 이게 현실이 아니라 게임이었으면 진즉에 끄고 다른 일을 하러 갔을 정도로 짜증 나는 상황이었다.

“국력에 흠이 나지 않을 정도로 프로이센을 재빠르게 조지고 그다음에 프랑스와 전쟁을 준비해서 그들을 굴복시켜 이탈리아 지배권까지 확립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제국 내에서 시민들의 지지와 불만을 적절히 관리하며 경제지표의 우상향 그래프를 유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

“아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처음, 이 몸에 들러붙었을 때는 딱 헝가리 혁명만 처리하고 국력을 신장하여 중부유럽의 지역 강국 수준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걸 이루려면 유럽 내 대륙패권을 손에 쥐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진짜 저주받은 위치선정이네.”

[그건 동감하는 바이네.]

하다못해 발칸이나 이탈리아 정도였으면 어찌어찌 방법이 보였겠지만 주변의 강대국들이 죄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니 참으로 복잡했다.

“폐하, 개회식에 가실 시간입니다.”

“으음……. 안 가면 안 되겠지?”

“그래도 제국의 헌법을 개정하는 개헌의회인데……. 한번은 가보시는 것이 좋겠지요.”

“그럼 어쩔 수 없지.”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늘 그렇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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