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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02화 (102/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02화

정예신병

절대로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방심으로 외교적 자살을 하게 된 프로이센에 남은 선택지는 러시아와 가까워지는 것뿐이었다.

만약 러시아마저 그들을 버린다면 그들은 정말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러시아도 서방과의 전쟁이 격해진 탓에 프로이센을 도울 만한 여력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 혹시 프로이센에서 우리를 지원해 줄 수는 없겠습니까?”

오히려 프로이센에서 새로 얻은 동맹인 러시아를 먹여 살려야 할 판국이었다.

거의 4년 동안 이어진 러시아와 서방의 전쟁은 러시아의 경제를 완전히 파탄 낸 탓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러시아의 전쟁 수행능력은 바닥을 향해 수직 낙하했다.

“그……. 저희도 여유가 없는 탓에 그건 좀…….”

거기에 러시아와의 무기거래가 들통난 프로이센은 서방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었고 바다에서는 영국과 프랑스 연합함대가 프로이센 깃발을 달고 있는 배를 검문하며 압박해 오고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이런 기류가 계속된다면 그것도 조만간이었다.

아무리 프로이센이 오랜 군사전통을 가진 국가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프랑스와 영국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비스마르크 역시 그걸 잘 알았다.

그렇기에 그는 여기서 서방의 눈을 살짝 돌릴 만한 방법을 썼다.

“아니……. 우리는 분명 미국 상인들에게 물건을 넘겼을 뿐입니다. 그들이 스웨덴을 통하여 러시아와 거래한 것일 뿐입니다.”

비스마르크는 서방을 돌아다니며 자신들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시간을 벌었다.

당연하게도 서방국가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었지만, 비스마르크는 끈덕지게 달라붙어 프로이센의 무고를 주장했다.

“우리 프로이센은 미국인들에게 속은 것입니다!”

그의 주장은 이러했다.

프로이센은 이번에 신식무기를 도입하며 불필요해진 구식무기를 청산했을 뿐이고 거래는 미국 상인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거래는 미국 상인들을 통해 스웨덴 쪽에서 이루어졌으니 그의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누가 보더라도 대놓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그의 말을 믿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비스마르크도 그들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으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저들이 미국과 프로이센, 그리고 러시아 간의 모종 거래가 있었다고 믿게 만들 생각이었고 이건 어느 정도 성공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거래를……?’

‘하긴……. 프로이센이 미치지 않고서야 모든 부담을 떠안으려 하진 않았겠지…….’

‘그렇다면 정말 미국이 신대륙을 넘어 유럽정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인가?’

미국이 유럽패권에 관심을 가진다…….

영국과 프랑스로서는 코웃음을 칠 만한 이야기였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만한 것도 아닌 것이.

현재 미국의 국력은 무척이나 연약했다.

미국은 먼로주의를 앞세워 신대륙을 자신의 영향권에 두려 했고 고립주의 외교를 고수했다.

다른 유럽 열강들과 비교하면 국력이 부족했던 미국의 이런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삼각무역망을 지키기 위한 영국의 지지 덕분이었다.

그렇게 힘을 기른 미국이 유럽 내의 패권에 관심을 보이며 러시아와 가까이 지낸다는 것은 그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서방은 미국에 견제구를 던질 것이고 그럼 프로이센으로 향하던 압박은 조금 줄어들게 될 것이었다.

그것이 비스마르크가 노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를 아주 훌륭하게 해냈다.

이번 일로 프로이센과 미국의 외교 관계가 조금 험악하게 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감당할 수 있는 피해였다.

‘잠깐의 틈……. 그 틈을 만들어야 한다.’

잠깐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면 그 틈에 오스트리아를 향해 날카로운 일격을 날릴 것이다.

그리고 독일 내 패권을 재확립하여 프로이센은 통일 독일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게 비스마르크의 계획이다…….

* * *

개회식을 겸한 라이너 대공의 취임식은 지루했다.

따분한 철학 강의를 듣는 것보다도 더 지루했다.

내가 이 자리에서 얻은 것이 하나 있다면 라이너 대공의 연설 실력은 처참하다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저 정도면 충분한 편인데…….]

‘영감님.’

[왜 부르는가.]

‘끝나면 깨워주세요.’

[자네 정말 자려는 것은 아니겠지……? 지금 자네가 잠들면 라이너 대공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아, 그건 또 그렇네요……. 아이 씨…….’

사촌 형님의 명예를 위해 억지로 지루함을 참아가며 이야기를 들었지만 졸린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라이너 대공의 연설이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점점 내 두 눈이 감겨오며 꾸벅꾸벅 졸았다.

영감님은 옆에서 어떻게든 나를 깨워보시겠다고 노력하셨지만 졸린 것을 어쩌겠는가.

결국, 연설이 끝나고 박수 소리가 들릴 때까지 꾸벅꾸벅 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라이너 대공의 연설이 끝나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칠 때,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몽롱한 정신을 깨우며 손뼉을 쳤다.

“어후……. 졸려서 혼났네…….”

그리고 당사자가 연설을 끝내고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내게 말했다.

“폐하께서 제 연설을 그리 감명 깊게 들으실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뭐라고?”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그에게 물어보니 라이너 대공은 활짝 웃으며 대답하길.

“제가 연설하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시며 제 말에 맞장구를 쳐주시니 얼마나 힘이 되던지…….”

“크흠……. 그렇다니 다행이로군.”

“앞으로 최선을 다해 폐하를 보필하겠습니다!”

“흠흠…….”

무안하여 라이너 대공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쯧쯧……. 자네도 부끄러운 모양이지?]

영감님이 내 옆에 딱 달라붙어서는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정신이 몽롱하여 잘 들리지 않았다.

돌아가서 느긋하게 낮잠이나 자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귀빈석에 있던 중년인이 슬쩍 내게 다가와서는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입니다. 폐하.”

“으음……. 오랜만이로군…….”

얼굴은 익숙했는데 도통 이름이 기억나질 않았다.

분명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의 휘하에서 봤던 것 같은데…….

[안톤 리터 폰 슈머링 경이네, 바흐 남작 이전에 법무부 장관을 맡았던 인물이지.]

“……슈머링 경.”

“폐하께서 저를 기억해 주실 줄이야……!”

슈머링은 내가 자신을 기억해 준 것에 크게 감동한 것인지 눈물까지 글썽일 정도였다.

“크흠……. 그래, 그동안 잘 지냈나?”

“예, 폐하의 자비와 보살핌 덕분에 잘 지내다가 다시금 이번 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렇군.”

잠깐. 국무장관?

나는 다시금 슈머링을 돌아봤다.

“국무장관이라고?”

“예, 폐하.”

그렇다는 것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인물이 라이너 대공 다음가는 실권자라는 뜻이었다.

그 말인즉 시킨 일만 열심히 하는 라이너 대공을 대신하여 이번 정권의 실질적인 수장역할을 할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단 말이지…….”

바흐 남작도 선거관리위원회의 일로 이미지가 많이 훼손되어 당장 불러들일 수가 없고 라이너 대공은 자기 생각이란 것이 없어서 부리는 맛이 없었던 차에 슈머링이라는 인물이 툭 튀어나왔다.

그동안 여러 번 써먹어서 시들시들해진 노예들의 빈자리를 대신해 줄 파릇파릇한 새 노예가 등장했으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덕분에 잠기운도 싹 날아갔고, 말이다.

“허허, 이런 곳에서 귀인을 만날 줄이야.”

“예? 하하하……. 감사합니다. 폐하.”

“이럴 것이 아니라 같이 궁전으로 가지! 가서 앞으로의 일을 좀 논의하고 싶은데…….”

“알겠습니다. 폐하.”

그렇게 새로운 노예 슈머링 경과 함께 쉰 부른 것으로 돌아가며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보게 슈머링.”

“예, 폐하.”

“지금 내가 고민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자네도 한번 들어보겠나?”

“무엇이든 말씀해 주시지요.”

“흠……. 지금 제국 내의 주요문제 중 하나가 언어문제이지 않은가?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데,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더군.”

“언어문제라…….”

내 질문에 슈머링은 잠시 고민했다.

과연 그의 입에서 어떤 답변이 나올지 기대했지만 내가 기대했던 답변은 아니었다.

“뭐…….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고위관직에 진출하려면 독일어를 필수적으로 배우게 하고 차츰차츰 전 국민에게 독일어 교재를 보급하여 독일어 사용자 비율을 올리는 것이…….”

“그렇군.”

어떻게 보면 정석적인 대답이었지만 내가 원했던 대답은 아니었다.

나도 이 방법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 그에게 물어본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의 방식은 얼핏 보기에는 아주 합리적이고 편리한 방법처럼 보였지만 이는 제국 내의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방법이었다.

언어라는 것은 본래 인간이 태어나서 자라는 환경에 맞춰 사용되는 것인데, 평생 독일어를 접해볼 기회가 없는 사람에게 강제로 독일어를 배우게 시킨다면 당연히 거부감을 가지지 않겠는가?

그렇게 거부감을 가진 시민은 곧 자신을 다스리는 이들이 자신과는 다른 존재임을 인식할 것이고 그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여기에 아주 열정적인 민족주의자의 그럴듯한 말 몇 마디가 뒤섞이면?

그날부터 제국의 시민은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 제국에서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자신이 어떤 민족인지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과 그것이 별것 아니라고 믿게 만들어야 했다.

그렇기에 의회는 소수민족 보호법 같은 괴상한 법까지 만들어가며 각 민족을 경쟁시켜 서로 싸우도록 만든 것이었다.

그래야 이걸 지켜보는 사람들이 고작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교육을 접목하는 건 괜찮은 방법처럼 보이는데 말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국 내의 언어문제를 언제까지고 내버려 둘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처럼 평화로운 시기에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전쟁처럼 위급한 상황에서는 큰 불편을 일으킬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되……. 각 민족의 정체성을 건드리지 않아야 하는군.’

이건 손을 쓰지 않고 혀만 사용하여 종이학을 접으라는 이야기와 같았다.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쯧……. 어렵구먼.”

“죄,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것이 무엇인가? 그저 답이 안 나와서 답답한 것일 뿐이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오늘 슈머링 경의 말에서 교육이라는 큰 갈래를 잡았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교육……. 교육이라…….’

슬슬 교육문제도 한번 건드릴 때가 되긴 했다.

그동안에는 경제성장과 정부 개혁으로 정신이 없었지만, 이제는 경제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섰고 정부 개혁도 첫 삽을 떴으니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교육을 주무를 차례였다.

제국의 교육체계는 수십 년 전 내 증조할머니쯤 되시는 마리아 테러자 여왕께서 개편한 교육제도에서 별로 바뀐 것이 없었다.

물론 그만큼 테레지아의 교육개혁이 성공적이고 훌륭한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는 뜻이었다.

테레지아의 교육개혁은 제국 내 초등교육자의 수를 크게 늘리는 데 이바지했지만, 반대로 예수회 교회를 탄압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던 교육이라는 카드를 뺏어옴으로써 중등교육 기관이 많이 축소되는 결과를 낳았다.

거기에 여왕께서 퍼뜨린 초등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도 존재했으니……. 결론적으로는 제 국민의 절반은 여전히 문맹이었다.

‘우선은 문맹부터 퇴치하고 중등교육 기관을 개편해서 전문직업을 양성해야겠어.’

그동안 제법 많은 것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무척 멀었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을 대비한다면 군사부문도 내버려 둬서는 안 될 걸세.]

‘아.’

하긴……. 현재 제국군은 지난 헝가리 혁명이나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장교들은 슬슬 변화하기 시작한 전장의 흐름을 읽지 못했고 라데츠키 정도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인 이도 없었다.

“하……. 제기랄.”

머리가 참으로 복잡했다.

군사부문은 아는 것이 없는 문외한인데, 이건 또 어떻게 손을 댄다는 말인가?

[자네도 군대는 다녀오지 않았나.]

‘그거야 일반 사병으로 다녀왔죠.’

[흠……. 자네 기억을 훑어보니 네모난 기계 앞에서 연신 버튼만 누르던데…….]

‘그거야 행정병이었으니까 그런 거죠……?’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번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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