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03화
인간제로?
집권 초기부터 갑자기 유럽 강대국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된 미합중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조금 전에 전쟁도 불사하겠다던 프랑스대사의 말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저 친구가 뭘 잘못 먹은 건가? 그게 아니라면 정말 프랑스가 우리와 싸우겠다는 건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또 무슨 오해가 생긴 모양이로군……. 일단은 유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자세히 조사하고 프랑스에 사람을 보내 이 오해를 풀어야겠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통령 각하.”
하지만 뒤이어 영국대사까지 그들을 비난하니 그들도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는 곧장 유럽으로 정보원을 파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의 상황을 접하고는 분노를 터뜨렸다.
“우리가 러시아와 가까이 지낸다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도 있었던 건가?”
“제가 알기로도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럼 저들은 왜 우리를 의심하는 건가?”
“아무래도 프로이센 측에서 자신들의 외교적 고립을 타파하고자 술수를 부린듯합니다.”
“프로이센?”
안 그래도 신대륙 내 패권확장을 꾀하면서 그동안 불편한 관계였던 영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여 그동안 불분명했던 캐나다와 미국의 해안선 문제를 해결하고 안정을 추구하려 했다.
그렇게 지난 1년이라는 세월 동안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영국과의 관계회복에 집중했는데, 그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누구 때문에?
미국과 아무 연관도 없는 유럽의 한 국가 때문에 말이다.
“…….”
“대통령 각하, 지금부터라도 다시금 저들과 협상에 들어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금부터 영국과 협상에 들어간다고 치면……. 그걸 내 임기 내에는 끝낼 수 있나?”
“…….”
미합중국은 아직 성장 중인 국가였다.
군사력은 자국을 겨우 방어나 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었고 경제력으로는 유럽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현실은 군사력이나 경제력 면으로나 유럽의 강대국들과 비교하여도 별로 모자랄 것이 없는 국가였고 심지어 몇몇 부분에서는 그들을 넘어섰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그런 잠재력과 힘을 가진 이들이 자신들이 가진 것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니 프로이센의 공작에도 허둥지둥하며 그들의 뜻대로 놀아나는 것이고 말이다.
피어스 대통령은 어떻게서든 이 난관을 타개하고자 했지만 오랜 고립외교로 인해 유럽 내에서 그들의 편을 들어줄 국가를 찾기가 어려웠다.
딱 한 국가만 빼고.
* * *
“요것 봐라?”
[이번엔 또 무슨 일이기에 그리 흥미롭다는 듯이 그러고 있는 건가?]
“비스마르크가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덜어내려고 미국을 담가버렸네요.”
[담가버렸다는 게 무슨 뜻인가.]
“한번 쑥 찌른 걸 담가버렸다고 하죠.”
대충 날카로운 칼로 무언가를 찌르는 시늉을 보이며 말하니 영감님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자네 위치에 어울리는 언행을 해주게.]
“원래 황제는 규칙을 만드는 사람이지 그걸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어허……. 본인이 몇 번이고 설명했지만…….]
“폐하, 언드라시 줄러 경께서 뵙기를 청합니다.”
영감님은 다시금 잔소리를 늘어놓으려 하셨지만, 방해꾼이 나타나 버렸다.
“들어오게.”
“폐하.”
언드라시는 무척이나 다급해 보였다.
“자네도 소식을 들은 모양이로군.”
“예?”
“프로이센이 미국을 이용하여 서방의 감시가 약해졌다는 것을 말하려고 온 것이 아닌가?”
“아, 그것도 있지만 지금 프랑스에서 급보가 날아온지라…….”
“프랑스?”
그 개구리 놈들이 또 무슨 일을 벌인 건가?
“프랑스의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통해 황제에 올라 프랑스제국을 선포했습니다!”
“그래?”
생각보다 큰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가 쿠데타로 정권을 틀어쥐었을 때부터 그는 황제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굳이 국민투표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며 프랑스제국을 선포했다는 것은…….
“그만큼 본국 사정이 좋지 못하다는 증거이지.”
“프랑스의 사정이 좋지 않다고요?”
“오랜 전쟁과 생각처럼 나아지지 않는 경제 상황……. 이 두 가지만 놓고 봐도 새로운 황제를 싫어할 만한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거기에 나폴레옹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정적들은 잔혹하게 탄압해 왔고, 모든 언론은 황제의 나팔수로 만들어버려 자신이 원하는 말만 할 수 있으니 누가 이걸 좋아하겠는가?
차라리 전쟁이라도 빨리 끝냈으면 그걸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울 것인데 그것도 아니었으니…….
“골치 좀 아플 거야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프랑스의 인민들은 새로운 황제를 반기는 눈치였습니다. 실제로 투표에서도 대다수가 찬성표를 던졌잖습니까?”
“지금은 그렇지.”
프랑스의 인민들은 루이 나폴레옹에게 투표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비루먹은 땅꼬마가 아니라 그의 뒤에 있는 거대했던 프랑스의 좋았던 옛 시절……. 프랑스가 전 유럽을 지배할 뻔했던 과거의 영광에 투표한 것이었다.
[원래라면 2~3년 전쯤에 그놈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황제의 자리에 올랐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늦어졌군.]
그만큼 나폴레옹이 러시아와의 전쟁에 큰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는 말이 되었다.
‘자기 삼촌도 못했던 일을 자기가 해내고 황제가 되겠다고 하면 지지도가 확 올라갈 것 아닙니까.’
[흠……. 그렇긴 한데……. 그럼 왜 하필 지금처럼 애매한 시기에 황제가 된 것 같나?]
‘글쎄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냥 내부사정이 조금 힘들었겠죠.’
대관식을 치른다고 주변국들을 초대하지도 않고 날림으로 처리한 것을 보면 정말 내부사정이 매우 급하여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말고.”
“예?”
프랑스가 열심히 삽질해 준다면 우리야 좋았다.
그래야 우리가 프로이센과 싸우는 동안에 프랑스와 사르데냐가 손을 잡고 우리 뒤통수를 후려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프랑스제국…….’
그래도 영 찜찜하긴 했다.
지난번에 프랑스 놈들이 제국을 부르짖었을 때, 제일 먼저 얻어맞은 것이 오스트리아였다.
이번에도 그러지 말란 법이 없잖은가?
“우리도 축하사절을 보내는 것이 좋겠군.”
하지만 마땅히 보낼 만한 이가 없었다.
부올 백작은 독일연방을 돌아다니며 연방 내의 소국들이 프로이센에 붙지 못하도록 그들을 설득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언드라시는 서방과의 친목을 위해 런던을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쓰읍……. 진짜로 누굴 보내지?’
이렇게 보니 정말 보낼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흐 남작은 지금 완전히 기력이 쇠하여서 당분간은 쉬어야 했고, 슈머링은 내 옆에서 나를 보조해 줘야 했다.
그렇다고 라이너 대공을 보내자니 고작 이런 일에 제국 총리를 보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있으니 슬쩍 내 눈치를 살피던 언드라시 줄러 경이 자원했다.
“폐하,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자네가? 하지만 자네는 런던으로 가야 하잖나.”
“런던으로 가는 길에 파리를 들를 수 있으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말은 쉽지만 제한된 일정 안에서 한 번에 두 곳을 다녀오는 것인지라 굉장히 피곤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도 생각만 하고 말은 안 했던 것인데……. 본인이 저렇게 나온다면야…….
“그럼 자네가 수고해 주게, 파리의 분위기를 잘 살피고……. 기왕이면 영국과 프랑스 정부에 채무상환기한을 늘려달라고 요청하게.”
“알겠습니다.”
“아, 애원하듯이 매달릴 필요는 없네! 그저 우리 사정이 조금 매우 급해 보인다는 인상만 심어주면 충분하네.”
“예, 폐하.”
그렇게 언드라시를 보내고 나서야 다시금 이것저것 끄적이고 있던 서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으음……. 군제는 대충 국군 식으로 임무형 지휘체계를 도입하고……. 총력전체계를 대비해서…….”
[언어문제도 신경 써야지.]
“아, 씨……. 그것도 그렇네요. 그러면 여기서는…….”
내 고민은 좀처럼 끝날 줄을 몰랐다.
* * *
프랑스는 지금 연이은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정적들을 모조리 숙청하며 자신의 지지기반을 다지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프랑스의 혼란은 가라앉고 전쟁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점점 길어지면서 비대해진 군대로 들어가는 군비가 국가재정을 압박해 오며 경제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폴레옹의 휘하에서 숨죽이던 이들 가운데 불만을 토로하는 자가 하나둘씩 생겼다.
“이 빌어먹을 전쟁은 언제 끝나는 거야.”
“괜히 러시아를 공격해서는…….”
“우리 아버지도 러시아에서 돌아가셨는데…….”
당연하게도 나폴레옹은 자신에게 불만을 가진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이 계속되는 한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의 통치에 불만을 가지는 자는 점점 늘어날 것이고 언젠가는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루이 나폴레옹은 이 위기를 타파하고자 황제 즉위라는 방법을 강행했다.
자신의 삼촌이자 프랑스의 영웅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휘광을 등에 업고 다시금 프랑스 인민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기 위해 국민투표를 했다.
여느 독재자가 그러듯이 투표소의 분위기는 상당히 강압적이었고 찬성 칸과 반대 칸의 크기는 무척이나 차이가 났지만…….
그런데도 프랑스의 인민들은 나폴레옹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그만큼 그들은 그간 프랑스의 정치적 혼란을 잠재워 줄 강한 지도자를 원했고 그에 부합하는 인물이 나폴레옹이라고 생각했다.
겸사겸사 과거 찬란했던 나폴레옹 제국 시절을 그리워하며 찬성표를 던진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패하고 프랑스에서 쫓겨났던 루이 나폴레옹은 프랑스인들의 지지와 환호 속에 황제가 되었다.
어렸을 적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허겁지겁 프랑스를 떠나야 했던 소년이 황제가 된 것이다.
“폐하의 즉위를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오스트리아에서 온 건가?”
“예, 폐하……. 빈의 황제 폐하께서도 우리의 오랜 동맹인 프랑스의 새로운 별이 떠오른 것을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하하하, 그것참 고마운 말이로군.”
나폴레옹 3세는 자신의 황제 즉위 축하사절로 파견된 오스트리아의 외교관 언드라시 줄러의 말에 기뻐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를 경계했다.
‘오스트리아 놈들만 아니었어도 전쟁은 진즉에 끝났을 텐데 말이야…….’
그건 언드라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겉으로는 새로운 황제의 탄생을 축하했지만, 그와 동시에 프랑스의 분위기와 새로이 즉위한 나폴레옹이란 인물을 분석했다.
‘루이 샤를 나폴레옹……. 그전까지는 나폴레옹이라는 이름값을 잘 이용한 사람 같았는데……. 이렇게 보니 나름 대단한 인물이로군.’
그렇게 둘은 서로를 경계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듣자 하니 독일연방 내부 문제로 오스트리아가 곤욕을 치른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사소한 문제 정도야 항상 있었지만, 폐하께서 걱정해 주실 정도로 큰일은 아닙니다.”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 대립각을 세운다기에 걱정했는데……. 그렇게 말하니 조금 안심이 되는군.”
“폐하께서 독일연방의 사정에 관심이 많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둘은 서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빈틈이나 약점을 찾으려 했다.
나폴레옹은 프로이센의 일을 언급하며 독일연방 내의 결속력이 어떤지 파악하려 했고 언드라시는 이를 슬쩍 넘겼다. 그러고는 나폴레옹의 황제즉위를 칭찬하며 프랑스 내부의 분위기를 살피려 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렇구먼…….”
그리고 대충 여기저기 찔러보던 나폴레옹은 돌연 차관 문제를 언급했다.
“그러고 보니 슬슬 오스트리아에 빌려줬던 차관의 상환일이 다가오지 않던가?”
“그렇습니다. 폐하.”
“뭐 근래에 오스트리아가 조금 힘들다고는 하지만 차관을 상환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겠지?”
“그렇…….”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대답하려던 언드라시는 순간 나폴레옹의 말에서 위화감을 느끼고는 멈칫했다.
‘저쪽에서 먼저 차관 문제를 언급한다고?’
프랑스에서 빌려온 차관의 양이 상당하고 그 이자도 만만찮긴 했지만, 현재 오스트리아가 이를 갚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오스트리아의 황제는 하루라도 빨리 프랑스의 차관을 상환하여 저들과의 연을 끊고 싶어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스트리아가 아직 프랑스에 묶여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상환을 조금씩 미뤄왔던 것인데……. 저쪽에서 먼저 차관 문제를 언급했다?
이건 뭔가 구린내가 풍겼다.
“……지는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 그게 무슨 말인가.”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 제국은 근래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국토를 유린당하여 나라가 피폐해진 탓에 채무를 갚는 것이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갚기 힘들다……. 그렇군.”
나폴레옹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조금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언드라시는 그의 분위기가 살짝 변했음을 감지해 냈다.
‘황제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는 여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초조해졌어……. 그 말은……?’
나폴레옹이 차관상환을 바라고 있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