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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04화 (104/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04화

길들이기?

나폴레옹 역시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젠장……. 급한 마음에 실수했군.’

전쟁으로 지출되는 군비 압박이 너무 심해진 탓에 재정압박을 덜어보고자 오스트리아의 부채상환을 서두르려 한 것인데……. 너무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수는 없는 법.

나폴레옹은 웃으며 언드라시에게 물었다.

“그래도 국가 간의 약속이 있으니 정해진 기일 안에 돌려받았으면 하네만.”

“알겠습니다. 그건 제가 제국행정부에 잘 말해두겠습니다.”

“으음…….”

그것으로 나폴레옹과의 접견은 끝났다.

언드라시는 준비했던 선물을 전하고는 튈르리궁을 떠났다.

점점 멀어지는 그의 마차를 바라보던 나폴레옹은 가볍게 혀를 찼다.

“쯧……. 실수했군.”

나폴레옹은 자신의 조급함을 탓했다.

‘조금만 침착했으면 됐거늘…….’

러시아와의 전쟁이니 정적제거니 내부불안요소 제거니 여러모로 신경 쓸 것이 많았다.

그렇기에 안정적인 재정확보를 위해 오스트리아의 채무상환이 중요했는데……. 그것에 너무 정신이 팔렸는지 상대에게 이를 간파당했다.

“쯧……. 어쩔 수 없지.”

살짝 후회되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이런 것에 연연하기엔 그는 너무 바쁜 사람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휘청거리는 동안에도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과 경쟁하느라 이탈리아에 눈을 돌릴 시간이 없을 테니……. 당분간은 괜찮은데…….’

앞으로가 문제였다.

이탈리아에서 프랑스의 동맹이라고 할 수 있는 사르데냐는 전쟁 초반 큰 피해를 보고 또 전쟁이 예상외로 길어진 탓에 손해가 만만찮았다.

이대로면 오스트리아는커녕 전쟁 기간 무섭게 성장 중인 로마공화국에 밀릴 가능성도 있었다.

‘우선은 전쟁부터 끝낸다. 그리고 사르데냐를 지원해서 이탈리아의 구도를 재정립해야 해.’

오스트리아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이 나폴레옹을 휘감으며 그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의 기억 속의 프랑스는 유럽의 어느 국가보다도 위대한 국가였다.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다시 위대한 국가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프랑스를 다시 위대하기 만들기 위해서는 오스트리아를 꺾어야 했다.

‘……러시아와 협상해야겠군.’

나폴레옹은 천천히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오스트리아를 불편하게 만들면서 프랑스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판도를 짤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 * *

이건 영국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오스트리아가 전쟁에서 빠지자 영국 쪽 전선에 가해지는 부담이 늘어났다.

거기에 내부에서도 총리인 존 러셀은 사실상 레임덕 상태에 빠져 버렸고 의회에서는 새로운 총리를 내세워 협상을 할 것인지, 아니면 그 전에 협상을 할 것인지를 두고 치열한 토론이 오갔다.

“이번 일의 시작도 자유당이었으니 끝도 그대들이 맺는 것이 맞겠지요.”

“옳소!”

“자유당은 전쟁의 책임을 져라!”

보수당으로서 러시아와 협상은 필요하긴 했지만, 굳이 자신들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어찌 되었건 저들과 협상하는 것은 사실상 영국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것이니 누가 되었건 상대정당에 공격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다음 선거에서 보수당 출신 총리가 등장할 확률이 높았으니 보수당으로서는 어떻게든 이번 협상을 존 러셀에게 떠넘기는 것이 좋았다.

“러셀 경이 영국의 신사 중 하나라면 자신의 잘못은 스스로 해결할 줄 알아야 할 겁니다!”

그렇기에 다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존 러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당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미 여왕 폐하께서 의회 해산과 동시에 새로운 총선에 동의하셨는데, 어찌 지금 와서 그 결정을 번복하려는 것이오?”

“맞다! 존 러셀 경은 이제 총리가 아니다!”

“러시아와의 협상은 새로운 총리에게 맡기는 것이 맞지!”

논쟁은 치열했지만, 결과는 시들했다.

아무리 대영제국의 왕의 권한이 없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왕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버킹엄에서 의회 해산에 서명했는데 보수당이 떠들어봤자 바뀌는 것은 없었다.

“쯧……. 자유당 녀석들을 완전히 보낼 수 있었거늘…….”

“그놈들이 재빠르게 여왕 폐하를 구워삶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젠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긴……. 일단 우리 쪽 후보가 당선되도록 힘을 쓰면서 러시아와 접촉해야지.”

“……몰래 협상하시려는 겁니까?”

“저들의 패가 무엇인지 확인하려는 것이네.”

물론 이 모든 것은 보수당 지도부의 결정이다…….

총리직에 출마하는 더비 백작 또한 이 사실을 대충 전해 들었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렇게 보수당의 몇몇 의원이 아일랜드 현지의 사정을 살핀다는 명목하에 슬쩍 영국을 떠나 러시아로 향했고 자유당 역시 이러한 보수당의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하지만 자유당의 지도부는 이를 당장 터뜨리기보다는 상황 유지에 집중했다.

“각하, 보수당 녀석들이…….”

“내버려 두게. 지금은 총선에 집중해야 해.”

“하지만…….”

“어차피 저들이 무슨 짓을 꾸민다고 한들 우리가 그걸 이용할 방법이 없잖은가.”

고로 자유당은 총선에 집중했다.

전쟁으로 인해 떨어진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리고 이리저리 갈라진 당의 분위기를 수습하여 다다음 총선을 노리려는 것이었다.

* * *

영국의회가 새로운 총리선출로 바쁘다면 오스트리아 제국의회는 개헌문제로 정신없었다.

제국의회에서 주로 거론되는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황제 폐하께서는 법의 위에 존재하시는 분입니까? 아니면 법의 테두리 안에 계신 분입니까?”

“으음…….”

어느 쪽이건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황제가 법 위에서 군림한다면 의회는 아무 소용도 없는 존재였다.

그렇다고 황제가 법의 테두리에 묶인 존재라면……. 일반 시민들과 황제가 다를 것이 무어란 말인가?

“으음…….”

“허허…….”

“그건 잘…….”

다른 것에서는 극적 합의를 이뤄냈던 의원들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거야 아주 간단한 문제지요.”

딱 한 명을 제외하면 말이다.

“황제 폐하와 저는 신의 이름 아래 한낮 죄 많은 인간일 뿐입니다. 그러니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 권한을 제한해야지요.”

헝가리 인민당의 당 대표자이자 제국 내 헝가리인들의 대표를 맡은 세체니 이슈트반의 말에 의회가 발칵 뒤집혔다.

“?!?!?!?”

“!!!!”

“저, 저자가 미친 건가……!”

독일계 의원들은 물론이고 슬라브계 의원들과 헝가리계 의원들까지 모두 입을 모아 세체니를 비난하고 나섰다.

“저 미친 헝가리 놈이 드디어 일을 내는구나!”

“폐하께서 너희 반역자들을 살려준 것도 모자라 그 자리에 앉혀주셨거늘 은혜를 원수로 갚아?!”

“쯧쯧……. 이래서 헝가리 놈들은 안 된다니까.”

“아이고……. 세체니 경…….”

의원들은 황제를 향한 자신의 열렬한 충성심을 증명하려는 듯이 세체니를 비난하고 나섰다.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졌지만, 세체니는 묵묵하게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황제 폐하께서 그간 위대한 업적을 세웠다는 것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당장 꺼져 마자르 돼지 놈아!”

“……하지만 지금의 황제 폐하께서 언제나 위대한 업적을 세우리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반역자!”

“배신자는 꺼져!”

그가 말을 이어갈수록 의원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동조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그런데도 세체니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의 폐하가 아니라면 그다음의 황제가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그러한 사태를 미리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찬찬히 들어본다면 세체니의 발언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의원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특히 그동안 정치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하다가 황제의 배려 덕분에 의회에 입성한 남슬라브계 의원들은 앞장서서 그를 비난했다.

“자유? 평등? 듣기로는 그럴싸한 말이지만 헝가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잖은가.”

“헝가리에는 헝가리인과 외국인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왜 나왔을 것 같은가? 그런 자네들이 황제 폐하와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니 우습군.”

“황제 폐하께서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슬라브인들에게 손을 내밀어주셨는데, 우리가 어찌 그분을 버리겠는가!”

이제 막 정계에 입문한 슬라브인들이 보기엔 제국 정부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은 헝가리인들이 매번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저들은 자신들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 무언가를 더 원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세체니의 발언 역시 그들로서는 그저 제국 정부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자신들의 입지를 늘리려는 정치공작으로 보일 뿐이었다.

“헝가리 놈은 개소리 말고 꺼져!”

“정숙! 정숙하시오!”

“……이상입니다.”

세체니 이슈트반은 슬픈 눈으로 자신을 비난하는 의원들을 둘러보더니 이내 천천히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리에 앉자 이제 누구도 황제의 권한을 제한하자는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그동안 황제가 보여줬던 눈부신 업적들을 열거하며 그에게 국가운영의 주요한 권한들을 몰아주려는 움직임을 보이기까지 했다.

결국, 의원들의 만장일치로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는 법 위에서 군림하는 존재로 남을 수 있었다.

거기에 더불어 의회의 해산권과 정책 거부권, 그리고 선전포고권과 군대소집권 등등……. 여러 가지 권한이 황제에게 돌아갔다.

의원들은 자신들의 충성심을 보인 것에 만족하였지만 정작 당사자인 황제는…….

“이 새끼들이 진짜 미친 건가?”

[어허, 말조심.]

“아니, 안 그래도 일이 많아서 미칠 것 같은데……. 일을 더 쥐여주면 어쩌자는 거야!!”

안 그래도 많은 업무가 더 늘어났다.

즉위 이후부터 꾸준하게 내가 들고 있는 권한을 정부의 각 부처에게 떠넘기면서 어떻게든 일을 줄여왔는데, 이제 좀 살 만해지니 전부 초기화돼 버렸다.

이번에 선거로 뽑힌 의원 놈들은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중요 권한들을 전부 내게 떠넘겼다.

이로써 나는 합법적으로 길 가는 사람을 쳐 죽여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초법적인 존재가 됨과 동시에 길거리의 개미 한 마리가 굴러다니다가 다친 일도 보고받아 처리해야 하는 노예가 되어버렸다.

“으그극…….”

[그러다가 치아가 상할 것이네.]

“이렇게라도 안 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것 같은데 어쩌겠습니까……!”

[……그들도 사정이 있었겠지.]

“마음 같아서는 복도에 세워두고 전부 뺨 싸대기를 후려치고 싶습니다.”

내가 처리해야 할 서류가 너무 많았다.

군사, 경제, 교육, 행정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나 혼자 내 손으로 처리해야 했다.

그뿐인가?

내가 법을 만들고 싶으면 의회 동의 없이 그냥 선포하면 끝이었고 사형수 같은 중범죄자에 대한 최종판결권도 내게 있었다.

보통 이렇게 한 인간에게 권력이 몰린다면 좋아할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지금 내 눈앞에 쌓여 있는 일감을 보자마자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어쩌겠는가.

“후……. 오늘은 대충 간단한 일만 처리하고 시씨와 외곽으로 나들이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

“잠깐……. 의회해산권?”

[자네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의회를 싹 다 해산시키고 제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뽑으면 위협을 느끼고는 제 권한을 회수하지 않을까요?”

[그전에 자네 목부터 회수하지 않겠나?]

“아.”

아무래도 당분간은 이렇게 지내야 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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