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06화
폴란드는 우주로 갈 수…… 있나?
행정, 군사, 경제, 교육.
이 네 가지는 국가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성장시키는 데 있어 무척 중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뀜에 따라 이전에는 훌륭했던 정책들이 점점 빛을 잃고 쇠퇴하기 마련이었으니 새로운 지도자는 이를 시대에 맞게 바꿔가며 국가를 운영해야 했다.
“말은 쉽지…….”
실제로 이를 행동에 옮기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행정만 하더라도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것이었기에 자칫 잘못했다가는 대혼란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거기에 경제나 군사는 말할 것도 없었고 교육 또한 잘못된 정책으로 국가의 백년지대계가 무너질 수 있는 것이었다.
[경제는 얼추 해치웠으니 이제는 국방과 행정, 그리고 교육을 처리해야겠군.]
“끄응…….”
나폴레옹이라는 거대한 기둥이 쓰러진 자리에 자유주의를 비롯한 여러 ‘주의’가 우후죽순으로 튀어나오는 격변의 시대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해야 했다.
다른 이들은 이미 저 멀리 달려가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제 막 뛰기 시작한 셈이었다.
그래도 그동안의 혁명이나 전쟁 등 여러 가지 일을 겪고 해결하며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내달린 끝에 어찌어찌 앞선 이들을 턱 끝까지 쫓아올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단번에 넘어설 수는 없었기에 지금은 숨을 고르면서 다시금 뛸 힘을 모으는 중이었다.
“현재 제국의 행정시스템은 무척이나 낡고 오래되었으며 시대와도 맞지 않네, 거기에 군대 또한 나폴레옹 시절에 멈춰 있지.”
“그렇다면 폐하께선 군부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새롭게 바꾸려 하시는 겁니까?”
“허허,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제국군을 어떻게 바꾸고 싶으신 겁니까?”
“아주 좋은 질문일세!”
내 군대 경험은 일반병사로 제대한 게 전부였던지라 전략이니 전술이니 하는 것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런 내가 거창한 군제개혁방안을 떠올리는 것도 불가능했고 애초에 군대를 많이 바꿀 생각도 없었다.
딱 내게 익숙하고 편한 군대로 바꿀 생각이었다.
그게 뭐냐고?
……한국군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현시대의 기준으로 봤을 때 한국군은 전쟁이라는 목적에 잘 부합하는 군대였다.
한국군이 준비하는 전쟁이 무엇인가?
바로 총력전이다.
그럼 총력전이란 무엇인가?
가용 가능한 자원을 전부 전쟁에 꼬라박아서 적을 굴복시키고 승리하는 것이다.
추후 독일지역의 패권을 두고 프로이센과 프랑스와 맞서 싸울 때를 위해 제국군을 총력전에 유리한 체계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내 생각은 이런데, 자네들은 어찌 생각하는지 한번 말해주겠나?”
“음……. 임무형 지휘체계라면 프로이센에서 주로 시도한다던 그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총력전……. 총력전이라 하심은 지난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 프란츠 황제 폐하와 토스카나 대공이셨던 카를 대공께서 나폴레옹에 맞서셨을 때 했던 것과 비슷하군요.”
다들 임무형 지휘체계니 총력전이니 하는 것에 큰 거부감은 없어 보였다.
일단은 황제가 말한 것이기도 했지만 두 개념이 지난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이미 등장했던 것이었으니 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거기에 신료들 역시 조만간 프로이센과의 결전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지난 헝가리혁명과 러시아 전쟁에서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군부를 개혁하는 것에 동의하였고 말이다…….
다만 지난 헝가리 혁명전쟁의 영웅이자 이번 라이너 내각의 전쟁 장관인 프란츠 슐릭 경은 우려스럽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꾸는 것은 자칫 우리의 적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기회를 준다고.?”
“예, 모름지기 새로운 체계가 튼튼하게 자리 잡으려면 이것에 적응할만한 충분한 여유가 필요할 텐데……. 그 틈에 프로이센이나 사르데냐가 우릴 공격해 오면 어찌하겠습니까?”
그의 지적에 다른 신료들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아무리 프로이센이 서방의 눈치를 보느라고 운신의 폭이 제한되어 있다지만 그게 저들을 막아줄 방파제가 될 수는 없지.”
“프로이센 녀석들은 자신들에게 이득이라고 생각하면 일단 저지르고 보는 족속이니 말이야.”
“……그들도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움직여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전의 사례들을 생각해 봤을 때…….”
슬슬 프로이센의 위협이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군내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바였지만 아무래도 그 시기가 문제였다.
당장 군 편제를 뜯어고치고 내가 알고 있는 한 총력전에서 그나마 효율적이었던 한국군 체계로 개편한다면 넉넉잡아 5년 정도는 과도기를 거쳐야 했다.
과도기라는 것은 정책이 잘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이니 당연하게도 혼란이 뒤따를 것이었다.
그러니 신료들은 우리가 혼란에 빠진 틈에 프로이센이 우릴 공격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군제개혁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당장 급하게 처리할 만한 사항은 아닌 것 같네, 프로이센과의 일전이 끝나고 천천히 바꿔도 늦지 않아.]
영감님도 프로이센을 경계하며 군제개혁을 조금 뒤로 미루자고 하셨으나 내 생각은 달랐다.
“아니, 일은 예정대로 진행하겠다.”
“하지만 그리되면 프로이센이…….”
“프로이센이 두려운가?”
“……그런 것은 아니오나 군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적이 침입해 온다면 큰 피해를 볼 수도 있으니 그런 것입니다.”
다들 겉으로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허세를 부렸으나 속으로는 프로이센을 무척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프로이센은 가진 국력에 비해 어마어마한 군사력으로 오스트리아에 맞서며 독일패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폴레옹 전쟁 이후부터 국력의 격차가 점차 줄어들더니 이제는 프로이센이 우리 턱밑까지 쫓아와서는 우리 자리를 노렸다.
그들로서는 국력이 한참 차이 났을 때도 프로이센을 굴복시키지 못했는데, 엇비슷해진 지금은 그게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저들이 무섭게 성장 중인 프로이센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저들이 몇 년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시간을 벌면 되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지만…….”
“방법이 있습니까?”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벽에 걸려 있는 유럽전도를 바라봤다.
내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폴란드가 있었다.
* * *
폴란드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유럽과 신대륙을 비롯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폴란드인들이 하나둘씩 고향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숫자만 하더라도 이만 명에서 삼만 명에 이르렀으니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거기에 그들은 단순노동자나 농부처럼 배우지 못한 이들이 아니라 지난 몇 번의 봉기에 실패하고 망명길에 올랐던 엘리트계층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거물들이 하나둘씩 속속들이 폴란드 본국으로 돌아오는 가운데, 그들의 중심을 지키는 것은 지난 11월 봉기를 이끌었던 폴란드 공화국 임시정부의 수장 아담 예지 차르토리스키도 있었다.
“늦으셨군요.”
“나이를 먹으니……. 몸이 예전 같지 않으이…….”
올해로 여든셋인 차르토리스키에 장거리 여행은 무척이나 힘들고 위험한 일이었으나 그는 죽더라도 되찾은 고국의 땅에서 죽겠다는 일념하에서 폴란드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런 그를 제일 먼저 반겨준 것은 바르샤바 중앙광장에서 힘차게 나부끼는 폴란드의 깃발이었다.
“아……. 아아…….”
죽기 전까지는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노인은 벅차오르는 감동을 이기지 못해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아버지!”
그의 아들이 다급히 차르토리스키를 부축하며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차르토리스키는 광장에 나부끼는 깃발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위대한 조국이 다시금 내 품에 돌아왔구나……. 이런 일이…….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뎀빈스키 경을 비롯한 군인들이 러시아에 맞서 용맹하게 투쟁하였고 폴란드의 인민들도 독립의 꿈을 저버리지 않았으니 가능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겠구나…….”
차르토리스키는 그 말을 반쯤 흘려들었다.
방법이 뭐가 중요한가?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조국이 다시금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깃발을 올려다보던 차르토리스키는 폴란드 왕국의 왕실근위대 안내를 받아 어느 젊은이의 앞으로 불려갔다.
“크흠……. 그대가 지난 바르샤바 봉기를 주도했던 아담 예지 차르토리스키……? 맞소?”
노인은 말없이 자신의 앞에 있는 젊은이를 훑었다.
이제 막 스물이 되었을 것 같아 보이는 청년은 어딘가 어리숙해 보이는 것이 일국의 군주라기엔 부족함이 많아 보였다.
“어르신, 이분이 오스트리아의 대공이시며 폴란드의 새로운 국왕이신 카를 루드비크 전하십니다.”
“폴란드 왕국에……. 오스트리아 대공?”
노인은 폴란드 왕국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일단은 고개를 숙이며 타의 오른손에 있는 왕가의 인장에 입을 맞췄다.
“……폴란드의 노인이 전하를 뵙습니다.”
“돌아온 것을 환영하오. 차르토리스키 경.”
카를은 자신의 옆에 있는 부인과 뎀빈스키의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안절부절못한 기색을 드러내며 노인에게 물었다.
“듣자 하니 차르토리스키 경께서 오랫동안 폴란드의 중심을 지켜왔다고 들었는데……. 나를 도와서 정국을 이끌어줄 수 있겠는가?”
“정국을 이끌어달라는 말씀은……. 제게 총리직을 주시겠다는 말씀처럼 들리는군요……. 맞습니까?”
“그, 그렇네.”
노인은 잠시 고민했다.
그가 원했던 조국은 왕정이 아닌 모든 시민이 주권을 가진 공화정이었으나 정작 새로이 독립한 조국에는 왕정이 들어서 있었다.
거기에 왕국을 이끄는 지도자는 폴란드의 은혜를 원수로 갚았던 합스부르크의 인물이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정계에 몸을 담고 러시아제국도 속여왔던 그였지만 이는 좀처럼 참을 수 없는 모욕처럼 느껴졌다.
“으음…….”
“싫은가?”
“잠시……. 잠시 고민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그리하게, 얼마든지 고민해도 좋네!”
“예, 전하…….”
노인은 잠시 고민하겠다며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왕의 집무실을 나와서는 자신의 곁에 서 있던 뎀빈스키를 쏘아봤다.
“……내게 설명해 줘야 할 것이 있는 것 같군.”
“하하하……. 일단은 전하께서 어르신을 위해 특별히 마련해 주신 숙소로 모시겠습니다.”
“그러지.”
차르토리스키는 바르샤바 궁궐 내에 마련된 자신의 임시숙소로 향하며 뎀빈스키에 그간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
대부분은 폴란드계 이민자들의 네트워크를 통하여 건너건너 전해 들은 이야기였지만 폴란드 독립에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힘을 썼다는 것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폴란드의 독립 건으로 러시아를 압박하여 이를 성사시켰다고?”
“예, 그 대신 오스트리아 대공이신 카를 루드비그 전하께서 왕위계승권을 가진 작센의 공주와 결혼하시어 폴란드 왕위를 맡으신 것이지요.”
“흠……. 그렇다고는 하나 오스트리아가 국내 정세에 개입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닐세.”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오스트리아의 황제는 아직은 폴란드에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노인은 뎀빈스키의 말에 살짝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돌아봤다.
“관심이 없다고?”
지금의 폴란드는 오스트리아가 러시아와의 전쟁을 통해 무수히 큰 피해를 보고 얻어낸 것이었다.
그러니 전쟁으로 입은 손해를 메우고자 폴란드를 약탈하거나 하다못해 정치에 손을 뻗기 마련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 신기 한 일이었다.
“……그래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네.”
“알고 있습니다.”
한 번 속는 것은 속인 놈의 잘못이지만 두 번 속는 것은 속는 놈이 잘못이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