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08화
피드백?
그렇게 시간은 점점 흐르고 흘러 대지에 풍성함이 가득한 가을이 되었다.
폴란드군의 재무장이 빠르게 진행돼 가면서 점점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는 근본 없는 자신감이 커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프로이센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6주 안에 프로이센을 굴복시키고 6달 안에 러시아를 굴복시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광을 되찾자!
물론 내부에서도 그것에 반발하는 이들이 있었다.
“뎀빈스키 경, 지금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한데 굳이 군대를 더 늘려야 하는가?”
“전하, 지금이야 군대가 늘어나서 경제가 휘청거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우리 군이 프로이센을 정복하여 그들의 재화를 폴란드의 것으로 만든다면 경제가 살아날 겁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군부는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에 집중하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잡음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그들은 진지하게 프로이센만 정복하면 모든 것이 술술 풀릴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폴란드에서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국왕뿐이었다.
답답했던 카를은 폴란드 왕국의 총리인 차르토리스키를 불러 군부를 설득게 하려 했지만, 그 역시 이를 거부했다.
“차르토리스키, 그대가 뎀빈스키를 설득해 주지 않겠는가? 저들은 도통 내 말을 듣질 않아.”
“송구스럽게도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뭐?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대놓고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총리의 모습에 카를은 크게 분노하며 그를 꾸짖었다.
“한 국가의 총리라는 자가 지금 급격한 재무장 정책으로 국가 경제가 파탄 나기 직전인데, 저들을 말리지 않겠다는 건가!
“말릴 이유가 없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그대와 같이 일하는 것도 여기까지일 것이네.”
왕의 서슬 퍼런 분노에도 총리는 여전히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전하, 본디 폴란드는 주력으로 내세울 만한 산업이랄 것이 없는 나라입니다. 너른 평야에서 나오는 농산물과 폴란드 전역에 흩어진 광물을 캐서 파는 것이 전부겠지요.”
“그러니 우리도 오스트리아처럼 군대가 아닌 경제에 중점을 두고 산업구조를 개혁하면 되지 않은가!”
“전하, 폴란드는 오스트리아가 아닙니다.”
“뭐?”
총리는 조금은 서글퍼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폴란드는 이전부터 유럽의 열강들과 국경을 맞댄 채로 지내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 국토 대부분이 평야 지대니 적의 침입을 저지할 만한 자연 방어물도 없지요.”
“그래서 경제보다 군대를 키우는 일에 집중하라는 것인가?”
“예, 지키기 위해서건 빼앗기 위해서건……. 폴란드에는 군대가 필요합니다.”
“…….”
결국, 정계와 군부가 나서 폴란드군 재무장을 밀어붙이니 카를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방해물마저 사라진 폴란드 군부는 프로이센과의 일전에 모든 국가역량을 쏟아부었다.
당연하게도 폴란드의 급격한 군비증강은 프로이센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프로이센의 국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연일 폴란드의 군비증강에 위협을 느끼며 대책을 마련하려 했다.
“오스트리아가 폴란드를 부추겨 그들의 재무장을 돕고 있다던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신료들은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폴란드가 재무장을 마치기 전에 먼저 공격하자는 선제타격론부터 폴란드를 매수하자는 의견까지 정말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어느 것도 국왕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으음……. 다른 의견은 없는가?”
“폐하,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자네가? 그러게.”
빌헬름은 비스마르크를 의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폴란드의 재무장은 분명 프로이센에 큰 위협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래의 일이지 당장은 아무 문제도 없잖습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폴란드가 언제든지 프로이센의 후방을 노릴 가능성은 충분하네.”
“예, 폐하의 말씀대로입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당장은 우리가 고려할 것이 아닙니다.”
비스마르크의 말에 국왕이 관심을 보였다.
“그럼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인가?”
“철과 피입니다!”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의 여러 신료가 모여 있는 자리였음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독일지역에서 프로이센의 지위는 자유니 혁명이니 하는 것으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를 위해 기꺼이 피를 흘려줄 용맹한 젊은이들과 적을 무찌를 단단한 무기입니다.”
“그럼……. 폴란드와 싸우자는 것인가?”
비스마르크는 고개를 저었다.
“필요하다면 그리했겠지만, 당장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싸우겠다는 것이로군.”
“예, 프로이센을 포위하려는 오스트리아의 포위망을 돌파하려면 언젠가는 싸워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지요.”
비스마르크가 주장한 것은 폴란드의 재무장에 맞서 프로이센의 군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주 정석적인 제안이었지만 지난번 러시아와의 모종의 관계를 맺은 것이 들통난 뒤로 프로이센은 서방의 집중 감시와 제재를 당하는 상황이었다.
프로이센 왕국의 수출입길이 틀어막히자 공장은 늘어나는 재고와 원료 부족으로 멈춰버렸고 프로이센의 경제성장은 크게 꺾여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폴란드 놈들의 재무장에 발맞춰 프로이센군을 증강하자는 그의 말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흥미를 보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군대를 육성해야 한다는 건가?”
“예, 폐하 예비군을 확충하고 애매한 지휘권을 확실히 한 다음에 상비군을 육성하여 군의 규모 자체를 늘려야 할 것입니다.”
“그걸 의회에서 허락하겠는가?”
“그건…….”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의 총리대신인 만토이펠 남작을 슬쩍 돌아봤다.
그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딜 보더라도 적의 가득한 그의 시선에 비스마르크는 가볍게 혀를 차고는 말했다.
“총리대신께서 잘 해결하실 것입니다.”
“만토이펠이?”
프로이센의 국왕은 고개를 돌려 만토이펠 남작에게 물었다.
“의회 놈들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폐하, 경제가 힘든지라 군비증강으로 예산을 타내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흠……. 그렇다는군.”
국왕은 이번엔 비스마르크를 돌아봤다.
마치 자네는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듯한 국왕의 시선에 비스마르크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폐하, 그렇다면 제가 의원들을 설득하겠습니다.”
“허허……. 자네가?”
“예, 폐하!”
아무리 비스마르크가 국왕의 총애를 받고 있다지만 군비증강을 위하여 의회를 설득하는 것은 총리의 일이지 일개 외교관의 일이 아니었다.
만토이펠 남작은 이점을 지적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폐하, 그건 일개 외교관에게 맡길만한 것이 아닙니다. 명령을 내리신다면 제가 의회를 잘 설득하여 예산을 타올 것이니…….”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행정부의 수장이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을 때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런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만토이펠 남작의 연약한 정책이 프로이센을 병약하게 만들고 있으니 제가 나서겠다는 게 아닙니까?”
“자네 누구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살피게.”
“프로이센을 병약하게 만든 무능한 총리대신의 앞이지요.”
“…….”
당돌한 비스마르크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만토이펠 남작을 돌아봤다.
그는 단순히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는 말 한마디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지금 나와 한번 해보자는 건가?”
“그게 무엇이든 전 준비되어 있습니다.”
내일은 없다는 듯한 비스마르크의 모습에 다들 경악하고 있을 때, 이 상황을 보다 못한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지팡이로 쿵 소리를 내며 소리쳤다.
“다들 뭐 하는 건가? 시시하게 말로 싸울 것이라면 당장 그만두고 화를 참지 못하겠다면 남자답게 결투로 끝을 보게.”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나름대로 그들을 말린답시고 그리 말한 것이었지만…….
“그럼 폐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뭣?!”
비스마르크에게는 프로이센의 미래를 위해 만토이펠 남작을 끝내버리라는 말처럼 들릴 뿐이었다.
“만토이펠 남작, 당신에게 결투를 신청하오!”
* * *
프로이센에서 비스마르크가 자신의 킬 마크를 새기고 있을 때 빈에서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가 열심히 업무를 보는 중이었다.
“여기저기 오타투성이에다 보충자료랍시고 가져온 것은 이전 것들과 차이가 크군.”
지방의 총독들이 보고서랍시고 내게 올린 것은 하나같이 여기저기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오타 같은 경우는 애교로 넘어간다지만 이전까지의 보고서와 내용이 조금씩 달라진 것은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중간에 착오가 있는 게 아니었을지요……?”
“착오가 있었으면 고쳤어야지! 이걸 확인도 안 하고 내 책상 위에 올려놔?!”
이 새로운 행정절차는 지방에서 올라온 보고서 중에 잘못된 보고서를 일일이 고치고 내 사견이 담긴 피드백을 꼼꼼하게 적어서 총독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짜증이 나도 꾹 참고는 좋은 말로 총독과 지방관을 타일렀지만 이게 몇 번이고 반복되니 슬슬 인내심이 한계에 부딪히며 험한 말이 나왔다.
[네놈의 쓰레기 같은 보고서를 보고 있으니 내 두 눈을 파버리고 싶구나.]
[쭉 훑어봤는데 웃음만 나오는구나! 이참에 총독직을 반납하고 궁정 광대로 들어오는 게 어떤가? 자네를 위해서 궁정 광대를 부활시킬 의향도 있네.]
[좋은 말만 늘어놓는 데 집중하여 정작 중요한 내용은 죄다 빠져 있다. 내가 듣고 싶은 건 네놈의 머릿속에 있는 꽃밭 이야기가 아니라 이 나라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정보다.]
오죽했으면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영감님도 혀를 내두르며 나를 책망했다.
[이보게 너무 어조가 과격한 것 아닌가?]
“저놈들이 쓴 보고서가 더 과격합니다.”
[허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대놓고 저들을 모욕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꼬우면 제게 결투 신청하라고 하시지요. 저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
영감님이 뭐라 하시건 간에 나는 지방으로 돌려보내는 피드백에 내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잘한 녀석은 얼굴이 화끈해질 정도로 칭찬해 줬고, 못한 녀석에게는 정신이 어지러워질 정도로 쌍욕을 날려주니 그럭저럭 체계라는 것이 잡히기 시작했다.
“요것 봐라?”
[왜 그러는가?]
“베네치아 총독이 보낸 보고서가 이상해요.”
[내가 보기에는 별문제 없는 것으로 보이네만.]
“너무 완벽하잖습니까.”
[?]
영감님은 날 미친놈 보듯 하셨다.
“아니, 제 말은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개판을 치던 놈이 갑자기 이렇게 완벽한 보고서를 올렸으니 의심스럽다는 거죠.”
[그걸 왜 의심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이놈이 저를 속이는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아는가?]
“딱 보면 알죠!”
복지 일은 매번 민원인과의 전쟁이었다.
민원인들 중에 대부분은 정말 사정이 어렵고 일이 있어서 지원을 받았지만 몇몇 양심 없는 이들은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부당하게 이득을 챙기고는 했다.
이걸 사로잡는 게 내 일이었는데, 그런 이들을 좀 많이 상대하다 보니 이제는 척 보기만 해도 이 사람이 나를 속이려는지 아닌지를 얼추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분명 대필한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아는가……?]
“여기 보시면 베네치아 총독은 끝에 점을 찍을 때 글과 조금 떨어져서 찍는데, 이번에 올라온 것은 거의 딱 붙어 있지 않습니까?”
[그, 그런가……?]
“거기에 여기 있는 내용 중에도…….”
내 설명을 전부 들으신 영감님은 혀를 내두르시며 내게 말씀하셨다.
[자네는 정말 미친 것 같네.]
어찌 되었건 이 제도는 총독들과 지방관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제국 내에서 그럭저럭 잘 정착되었고 결론적으로 내 업무는 크게 줄어들었다.
지역의 문제는 총독들의 생각을 듣고 결정해도 되었으니 이젠 외부의 문제에 눈을 돌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