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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10화 (110/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10화

테르모필레?

가리발디가 떠나고 난 뒤.

마치니는 바닥에 떨어진 로마공화국 전쟁장관의 제복을 주워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

지금 양시칠리아와 다퉈봤자 공화국에 이득이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지금은 내부를 정돈하고 도망친 교황을 잘 설득하여 그가 돌아오게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사람 참…… 조금만 더 기다리지…….’

마치니라고 해서 압제자 페르디난트의 밑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을 무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군대를 일으켜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 그런 것이었다.

‘아직 오스트리아의 지원도 더 받아야 하고…… 내부를 안정시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거늘…….’

지난 1849년 혁명이 성공하고 로마공화국이 들어섰을 때, 새로이 발표한 급진적인 헌법은 공화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시민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에 환호했지만 주변국들은 그렇지 않았기에 로마공화국은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고립된 상황이었다.

그나마 이러한 고립을 해결해 준 것이 오스트리아였지만 언제까지고 그들과 함께할 수는 없었고 로마공화국도 스스로 일어날 만한 힘을 갖춰야 했다.

‘그리고…… 그리고 또…….’

마치니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문득 자신이 변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가리발디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나는 부름을 받았고 이에 응할 것이오.]

마치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웃었다.

“부름은 무슨 놈의 부름…….”

자조 섞인 말을 내뱉은 마치니는 가리발디의 제복을 챙겨서는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자신의 비서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긴급회의를 소집하게.”

“이 시간에 말입니까?”

“그래.”

“안건은 무엇인지…….”

그는 로마공화국의 창립자이자 삼두정의 일원이며 로마의 집정관이 아닌 한 명의 이탈리아인으로서 말했다.

“부활(Risorgimento).”

* * *

“하…… 나참…….”

[또 왜 그러는가?]

“베네치아-롬바르디아 총독이 로마공화국에서 양시칠리아를 공격했다고 하네요?”

[음…… 둘의 국력을 고려해 보면 로마공화국 쪽이 더 강력하니 별문제는 없겠군.]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로마공화국은 어디까지나 오스트리아 제국의 이탈리아 패권 유지를 위해 살려놓은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숨만 붙여놓은 녀석들이 다시금 이탈리아를 통일하겠다고 설치고 다니면…… 프랑스가 이를 어찌 보겠는가?

[프랑스도 당장은 움직일 수 없잖은가.]

“다소 무리하면 움직일 수는 있겠죠. 하지만 지금까지는 무리할 필요가 없으니 가만있었던 겁니다.”

[흠…… 그럼 로마공화국이 공격적인 외교정책을 보이면 보일수록 프랑스를 자극한다는 말이로군.]

“바로 그겁니다.”

지금이야 프랑스 내부사정도 어렵고 혼란스러우니 당장은 로마 놈들을 내버려 둘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상황이 급박하여 우선순위에서 밀린 거지 그들이 힘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서 로마 놈들이 덜컥 양시칠리아를 전부 집어삼키기라도 한다면…….”

[프랑스가 개입하겠군.]

“프랑스뿐이겠습니까? 지중해에서 해양세력이 하나 더 나타나는 것이니 영국 애들도 끼어들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참으로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로마공화국을 손절하고 싶었지만 저들은 이탈리아에서 사르데냐를 견제해 줄 얼마 안 되는 아군세력이었다.

우리가 이탈리아 패권을 확실히 손에 쥐기 전까지는 좋건 싫건 간에 껴안고 가야 했다.

“쓰읍…… 개입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럴만한 여유가 있겠는가?]

지금 제국군은 군대를 이리저리 뜯어고치고 각지에 난립하던 사관학교를 통합하느라 정신없었다.

거기에 육군에서 유능하다는 원로들을 불러와서는 육군대학을 만들어야 했으니…… 인선을 분류하는 것도 골치였다.

“……그러니 군대를 일으키는 것은 어렵지요.”

[그럼 저들을 어찌 지원하려는 건가? 돈이나 몇 푼 쥐여준다고 로마공화국이 프랑스를 당해낼 수는 없잖은가.]

“후후후…… 제가 그들에게 돈 몇 푼 쥐여주고 끝낼 것 같습니까?”

[그럼?]

“제가 제일 잘하는 것을 해야지요.”

영감님은 고개를 갸웃하시며 물었다.

[방심하는 것 말인가?]

“아니, 영감님…….”

* * *

로마에서 일어난 붉은 물결은 남쪽으로 향했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압제자 페르디난트를 몰아내고 고통받는 시민들을 구하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렇기에 가리발디는 곧장 양시칠리아의 수도인 나폴리로 진군했다.

그의 휘하에 있는 병력은 고작 천 명뿐이었지만 가리발디는 전혀 두려워하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지휘관인 가리발디가 중심을 지켜주니 그를 믿고 따르는 병사들도 두려움을 버리고 뒤를 따랐다.

“고작 천 명이라고?”

“예, 전하!”

“고작 그 정도의 병력으로 뭘 어찌한다고…… 프란체스코를 보내어 그들을 막게 하도록.”

양시칠리아의 국왕 페르디난트 2세는 가리발디의 무모한 도전을 비웃으며 자신의 아들 프란체스코에게 군대를 맡겨 그들을 처리하게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가리발디의 군대는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들은 압제자의 밑에서 신음하는 동포를 구한다는 대의명분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답게 절대로 시민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

시민들에게 먼저 무언가를 요구한다거나 강제로 빼앗아가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길가에 늘어진 가지에 달린 열매에도 손을 대는 법이 없었으니 사람들이 그들에게 호감을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덕분에 가리발디의 군대는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면서 만나는 농부들에게 자유를 선사했고 그들을 부당하게 착취하는 귀족들을 붙잡아 매질하거나 두들겨 패서는 농부들에게 땅을 돌려줬다.

그러자 이제까지는 정치는 높으신 분들의 일이라며 아무 관심없던 이들도 그들의 뜻에 관심을 보였다.

몇몇 용감한 젊은이는 농기구를 손에 들고 그들을 뒤따르니…… 붉은셔츠단의 숫자는 나날이 늘어갔다.

“장군님!”

“무슨 일인가.”

“나폴리의 군대가 이리로 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동안 양시칠리아의 군대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숫자는?”

“인근 주민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의 도시 하나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 그리 말할 정도라면 못해도 2만 명은 넘는다는 뜻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오는군.”

천 명 대 이만 명.

누가 보더라도 싸움이 성립하지 않을 정도로 절망적인 격차였으나 가리발디와 붉은셔츠단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형제들이여 나폴리의 압제자 페르디난트가 보낸 군대가 이리로 오고 있다! 누가 나와 함께 이곳을 지키겠는가!”

“제가 하겠습니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장군님을 따르겠습니다!”

붉은셔츠단은 일생을 이탈리아 통일을 위해 몸 바친 가리발디를 따라나선 이들이다.

그들 역시 통일된 이탈리아를 위해 몸을 바친 이들이었고, 굳건한 신념으로 무장한 이들이었다.

고작 병력 차이 때문에 도망칠 것이었다면 애초에 그를 따르지도 않았을 거란 말이다.

“전원 전투 위치로!”

가리발디의 군대는 대포는 물론 말 한 마리 없었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구식 머스킷 한 자루와 날카로운 총검, 그리고 약간의 탄약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양시칠리아의 군대와 맞서 싸우길 택했다.

“이, 이러다가 다 죽는 것 아녀?”

“지금이라도 잽싸게 도망가는 게…….”

이제 막 합류한 신규단원들은 정부군이 자신들을 잡으러 온다는 소식에 벌벌 떨었다.

그들은 지난 1848년의 혁명 당시에 정부군이 혁명에 참여했던 이들을 어찌 대했는지 똑똑히 봤다.

항복하는 이들도 무참하게 죽였고 몇몇 이들은 사로잡아서 본보기랍시고 대포에 묶어 처형했다.

그게 자신들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겁에 질려서는 슬그머니 도망가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붉은셔츠단은 무너지지 않았다.

본래 로마에서부터 함께했던 병사 천 명과 도중에 합류한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함께했다.

“형제들이여! 지금 압제자들이 우리의 혁명을 끝장내러 오고 있다.”

“…….”

“고대 그리스의 테르모필레에서는 고작 삼백 명의 스파르타 군인들이 페르시아의 백만대군을 막아냈다고 들었다.

지금 이곳으로 다가오는 양시칠리아의 병사들은 아시아를 제패했던 페르시아군보다도 허약하고 숫자도 더 적은 데다 아군은 테르모필레의 스파르타인보다도 많지 않은가!”

“맞습니다!”

“다들 무기를 들어라! 그리고 우리의 가족들을 억압하는 압제자와 맞서 싸워라! 그대들이 일어나 싸운다면 나는 언제나 그대들의 곁에 있을 것이다!”

“가리발디 장군님 만세!”

“테르모필레를 기억하라!”

가리발디와 붉은셔츠단은 그리 다짐하며 가에타라는 작은 도시로 향했다.

* * *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에타에는 로마공화국에서 도망친 교황과 그 일파가 거주 중이었다.

“로마공화국 놈들이 여기로 온다고?”

“성하,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끄응…… 이 늙은 몸으로 어딜 더 간다는 말인가.”

“성하…….”

가톨릭 세계의 지배자인 로마교황 비오 9세는 혁명군이 몰려든다는 소식에도 예배당을 지켰다.

당연히 그의 주변인들은 당장 몸을 피할 것을 건의했지만 교황은 육신의 노쇠함과 병듦을 이유로 거부했다.

“그리고 이 늙은이가 주님의 땅을 지키지도 못하고 신성한 땅에서 도망쳐야 했는데, 여기서 더 멀리 도망가는 것은 주님께 더한 죄를 짓는 것이야.”

“하오나 성하…….”

“시끄럽다! 어차피 여기서 도망치다가 죽으나 여기 앉아 있다가 죽으나 죽는 것은 다 똑같네, 기왕 죽을 것이라면 차라리 주님의 어린양들을 위해 죽겠네.”

교황의 똥고집에 그를 따랐던 추기경들도 더는 청하지 못했다.

그렇게 교황은 평소처럼 예배당에서 미사를 보며 동네 주민들과 교류하는 등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붉은셔츠단이다! 가리발디 장군이 오신다!”

“에잉 쯧…….”

미사가 끝나고 거처로 돌아가던 교황은 가리발디의 일행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교황을 지키는 스위스 근위병들이 재빠르게 가리발디의 앞을 가로막았다.

“구체제의 상징께서 여기 계셨군.”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어린양아, 이곳까지는 무슨 일이더냐?”

“군인이 싸우러 왔지 무슨 연유로 왔겠습니까?”

“허허, 이 늙은이의 목이 그리도 탐이 났더냐? 좋다. 그럼 내 목을 가져가되 다른 이들은 살려다오.”

“성하!”

교황의 말에 그의 주변인들이 무릎을 꿇으며 눈물을 보였지만 정작 가리발디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내가 당신 같은 허울뿐인 늙은이를 죽여 무엇하겠소? 이곳은 곧 전쟁터가 될 것이니 얌전히 다른 곳으로 가시오.”

“으잉? 나를 잡으러 온 게 아닌가?”

“우리는 힘없는 늙은이를 죽일 만큼 악독한 사람들이 아니오.”

가리발디는 그 말과 함께 교황을 지나쳤다.

그의 뒤를 따르던 병사들 또한 교황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가리발디의 뒤를 따라서 가에타의 요새로 향했다.

“허허…… 이게 무슨 일이람…….”

“성하, 이 틈에 빨리…….”

교황은 말없이 점점 멀어지는 가리발디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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