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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11화 (111/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11화

붉은셔츠단?

황제의 명으로 독일연방 내의 여러 소국을 순회하며 결속력을 다지던 부올 백작이 급하게 빈으로 소환되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황제 폐하께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번에 로마공화국의 군대가 양시칠리아왕국 부딪혔다는 소식 들었나?”

“오며 가며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로마공화국의 군대가 아니라 공화국의 전쟁장관인 주세페 가리발디라는 사람이 사사로이 군을 이끄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부올 백작의 말에 황제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그에게 물었다.

“그걸 프랑스 놈들도 알고 있을까?”

“예?”

“아니지…… 프랑스 놈들이 그 사실을 알더라도 그걸 온전히 믿으려 하지 않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부올 백작은 긴장했다.

황제가 이렇게 나왔다는 것은 다시 한번 자신을 써먹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황제가 자신에게 시켰던 일을 생각해 보면 그건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분명했다.

‘설마…… 프랑스가 이번 이탈리아 건에 끼어들지 못하게 잘 협상해 보라는 건가?’

불행히도 그의 예감은 언제나 잘 들어맞는 편이었다.

“지난번에 프랑스 황제의 즉위식에 언드라시를 보냈던 것이 조금 마음에 쓰여서 말이야…… 이번에 프랑스에서 빌린 차관도 전부 상환했으니 기념으로 자네가 프랑스에 다녀오게.”

“그냥 다녀오는 겁니까?”

황제는 특유의 오만하면서도 사람을 훑어보는 듯한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가서 우리 나폴레옹 씨 말동무나 좀 해주면서 이탈리아에 관심을 끊게 해줬으면 하네만.”

“으음…… 알겠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그렇게 부올은 독일연방 순방이 끝나자마자 곧장 프랑스제국의 수도 파리로 향하는 마차에 올라야만 했다.

[부올이 잘 할 수 있으리라 보는가?]

‘시간 끄는 건 잘 하는 사람이니 어떻게든 하겠죠.’

[아무런 대책이 없어 보이는군.]

‘지금 중요한 건 대책 같은 게 아니라 시간을 끄는 겁니다. 어차피 제가 아무리 판을 잘 깔아놔도 로마 놈들이 실패하면 전부 끝이잖아요.’

[그건 또 그렇지.]

* * *

가에타에 도착한 양시칠리아의 왕자 프란체스코는 요새 위에 휘날리는 삼색기를 보고는 혀를 찼다.

“쯧쯧…… 저들이 선수를 쳤군.”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것이 무언가? 단지 저들의 짐이 더 가벼워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인데 말이야.”

살짝 실망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공격도 하지 않고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다.

프란체스코는 장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부득이하게 피를 흘릴 필요는 없겠지.”

“옙! 그럼 항복을 권고하겠습니다.”

“그래.”

전투에 앞서 적들에게 항복을 권하러 나갔던 병사는 요새에 도착하기 전에 작은 파열음과 함께 그대로 고꾸라졌다.

“……내가 이래서 혁명이니 뭐니 떠들고 다니는 녀석들이 싫단 말이야.”

“전원 전투 준비!”

자존심에 살짝 상처가 난 프란체스코 왕자가 얼굴을 찌푸리는 것을 신호로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석대로 병사들은 본격적인 공성전에 앞서 공성포대를 비롯한 공성진지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전하, 그래도 경계병력은 세워두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자네는 걱정이 참 많군. 저들이 아무리 용맹하다지만 이 정도 규모의 병력을 앞에 두고 성문을 열고 뛰쳐나오기라도 할 것 같은가?”

“그건 그렇지만…….”

“자네 말마따나 적들이 성문을 열고 나온다고 해봤자 여기까지 달려오는 동안 우리는 충분히 대응 가능하지 않겠는가?”

“전하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게 거의 전 병력이 동원되어 공성진지 건설작업에 투입되었다.

아무리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라고는 하지만 몇 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병사들도 점점 지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다가 한창 작업이 바쁜 와중에 병사들이 질서 없이 뒤섞여 버린탓에 다들 제 부대와는 조금씩 떨어진 곳에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작업이 거의 끝나갈 때쯤.

“후우…… 힘들어 뒤지겠…… 어?”

“뭐야 저게 왜 열리는 거야?”

요새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육중한 철문이 점점 열리면서 그 뒤에 숨어 있던 붉은 셔츠를 입은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병사들 앞에 후줄근한 판초와 휘황찬란한 붉은 망토를 두른 가리발디가 서 있었다.

“자유 만세! 혁명 만세! 이탈리아 만세!”

“만세! 만세! 만세!”

짧은 구호를 외친 가리발디와 그의 병사들은 제법 빠른 속도로 양시칠리아군의 진지로 뛰어왔다.

이를 지켜보던 프란체스코 왕자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멍청한 녀석들이 자신들이 죽을 자리도 못 알아보고 요새를 뛰쳐나왔구나.”

“병사들을 재정비하겠습니다.”

“그래, 기왕이면 기병이나 포병을 동원하지 말고 보병만 동원해서 적을 무찌르게.”

“예? 굳이 그럴 필요가…….”

프란체스코는 자신의 말에 토를 다는 부관을 돌아보며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으니 그리하게.”

“…….”

“대답은?”

“아, 알겠습니다.”

“좋아.”

양시칠리아의 왕자 프란체스코는 조금 전에 항복사절이 죽은 일로 상당히 화가나 있는 상태였다.

그는 흠집 난 명예를 수복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압도적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 좁은 지형에서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기병은 빼놓고 공성진지를 건설한다고 바쁜 포병도 빼고 보병만으로 적을 무너뜨리려 한 것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럴듯해 보였으나…… 실상은 그와 정반대였다.

현재 양시칠리아의 보병들은 몇 시간 동안 이어진 작업으로 크게 지친 상태였고, 부대가 뒤섞여 혼란스럽기도 했다.

거기에 현재 요새로 향하는 길은 아주 좁은 길 하나뿐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양시칠리아가 지닌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쏴라!”

이는 첫 교전에서부터 확실하게 드러났다.

가리발디와 붉은셔츠단은 사격하기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서는 아직 준비가 덜 된 양시칠리아 병사들에게 총을 쏘아댔다.

적의 사격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병사들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와 총알이 날아들며 쓰러지는 동료들 모습에 살짝 겁에 질려버렸다.

거기에 오랜 평화에 찌들어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병사들이다 보니 지휘관의 통제도 잘 따르지 못했다.

“으악!”

“어엇?!”

“사격중지! 사격중지라고 멍청이들아!”

“쏘지 마라!”

어떤 이들은 누군가 실수로 방아쇠를 당긴 것을 사격 신호로 알아듣고 그대로 쏴버렸고 다른 누군가는 팔에 힘이 떨어져 앞에 있던 동료를 쏴버린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재장전! 최대한 빠르게 재장전하라!”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기도 낮다 보니 병사들의 재장전속도는 그야말로 달팽이가 기어가는 수준이었다.

다들 손을 벌벌 떨면서 화약이나 총알을 바닥에 흘리기도 했고 자신이 장전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또다시 장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쏴라!”

그러는 와중에도 붉은셔츠단의 총알은 쉴 새 없이 날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유심히 살피던 가리발디는 조용히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적군의 두 눈에 두려움이 가득하구나.”

“……알겠습니다!”

가리발디의 부관은 있는 힘껏 소리쳤다.

“전원 착검! 전원 착검!”

“착검!”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자신의 구형 머스킷에 스파이크를 끼우거나 그마저도 없는 이들은 자신의 손에 들린 농기구를 움켜쥐었다.

다들 숨죽이며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형제들이여 가자! 이탈리아를 위하여! 혁명을 위하여! 그리고 동지들을 위하여!”

“압제자를 쳐부수자!”

“국왕의 노예들을 죽여라!”

돌연 함성 소리와 함께 붉은 셔츠를 입은 병사들이 번쩍거리는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미니 양시칠리아의 병사들은 제대로 대응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도망쳤다.

안 그래도 처음 겪는 전장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병사들은 날카로운 창검을 들고 돌격하는 붉은셔츠단의 모습에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하지만 병사들이 좁은 길목 안에 다닥다닥 모여 있었던 탓에 그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았고 결국 아군의 대열을 깨부수며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야?!”

“어디 가는 거야!”

“적이 온다!”

“붉은 놈들이 온다!”

“도망쳐!”

후방의 병사들은 갑자기 도망치는 앞쪽의 병사들과 후퇴라는 말에 혼란에 빠졌고 이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게 물들인 가리발디와 그의 병사들을 마주하고는 곧장 줄행랑을 쳐버렸다.

“이쯤 하면 되었다. 병사들을 물려라!”

“예, 장군님!”

한창 적군을 베어 넘기던 가리발디는 침착하게 주변을 살피고는 적이 정신을 차렸다고 판단하자마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병력을 뒤로 물렸다.

돌아가면서 양시칠리아 병사들이 버리고 간 무기와 탄약을 회수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말이다.

그렇게 가에타 요새의 첫 공방전은 가리발디와 붉은셔츠단의 승리로 끝났다.

프랑체스코 왕자의 입장에서는 첫 전투에서 깔끔하게 승리를 거머쥐고 명예를 되찾으려 했지만 오히려 끔찍한 졸전으로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끄응…….”

“전하…….”

“피해는 얼마나 되는가.”

“아직 자세히 파악하진 않았지만…….”

“어서 말해!”

프란체스코 왕자는 무척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망자는 80명 정도로 추정되고 부상자는 500명에서 600명 사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500명가량이 행방불명입니다.”

“그럼 자네 말은…… 우리 병사들이 전투가 무서워서 도망쳤다는 건가?”

“……죄송합니다.”

프란체스코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찌푸리다 못해 얼굴이 접혔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당장 기병들을 풀어 도망간 병사들을 잡아들이라고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자존심이 구겨지다 못해 박살나 버린 프란체스코는 도저히 진정되지 않는다는 듯이 괜히 지휘봉으로 애꿎은 지도나 두드렸다.

“젠장…… 젠장, 젠장!”

오늘의 패배는 누구의 잘못인가?

그가 생각하기엔 자신의 지휘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완벽한 명령을 내렸지만 현장지휘관들의 옹졸한 지휘와 어리석은 병사들이 그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참사라고 단정 지었다.

“멍청한 놈들 같으니라고…….”

이번 전투는 거칠게 저항하던 적을 자신의 훌륭한 지휘고 궤멸시키고 전투를 끝내야 했다.

그렇게 나폴리로 돌아가서 아버지께 이 사실을 보고하며 찬사를 받아야 했거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버렸다.

“……그래, 이번에는 내가 너무 방심했다. 그래! 하하하! 나도 참 어리석었군.”

프란체스코는 다음 전투에서는 이 치욕을 되갚아 주겠다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음 전투도 그 다음 전투에서도 양시칠리아의 군대는 가에타 요새를 넘지 못했다.

분명 가리발디의 군대는 대포는커녕 무기며 탄약도 부족했음에도 양시칠리아의 병사들은 좀처럼 요새를 넘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가에타의 거리에는 시체가 늘어났고 병원에는 부상병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부상병들을 수용할 곳이 부족해지자 결국 비오9세가 거주하던 예배당도 부상병을 받아들였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교황은 혀를 찼다.

“쯧쯧…… 또 쓸데없는 일로 사람들이 죽는구나.”

그깟 통일이 무엇이라고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죽어 나가야 한단 말인가?

나라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젊은이들이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동안 늙은이는 그걸 바라보며 신께 기도를 올리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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