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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12화 (112/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12화

피와 강철!

프랑스제국의 황제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마주한 부올 백작은 갑갑함을 느꼈다.

상대가 그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지녔기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최근 마르세유에서 작은 소요가 벌어졌다던데…… 괜찮으십니까?”

“무엇이 말인가?”

“마르세유라면 프랑스 남부의 주요항구도시인데…… 그곳에서 소요가 벌어졌다는 건…….”

“허허, 자네는 쓸데없는 걱정도 많군. 그런 것은 짐이 알아서 할 것이니 신경 쓰지 말게.”

“……예, 폐하.”

무슨 이야기를 꺼내건 간에 프랑스 황제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오스트리아의 첩자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대화를 꺼리거나 대놓고 그를 무시하는 등 계속해서 견제구를 던지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프랑스 땅딸보 녀석이 우릴 대놓고 무시하는군!”

“각하, 진정하시지요. 설마 프랑스 황제가 그걸 모르고서 그랬겠습니까? 일부러 저희를 자극시키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더 화가 나는 것일세! 저 음흉한 개구리 녀석이 나를 시험하려고 드는 것이잖나!”

그동안 오스트리아의 외교관으로서 유럽 이곳저곳을 다녀봤지만 이곳처럼 자신에게 모욕을 주는 곳은 흔치 않았다.

“쯧…… 아무래도 프랑스의 황제는 이탈리아 쪽에 개입하려는 모양이야.”

“그걸 어찌 아십니까? 오늘만 하더라도 황제와 제대로 이야기도 못 나누셨잖습니까.”

“자네 말대로 프랑스의 황제와는 제대로 말도 못 나눴지, 하지만 그렇기에 확신했다네.”

“예?”

부올 백작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프랑스 황제는 이탈리아를 다시금 제 손아귀에 넣으려 하고 있어! 아마 내 생각에는 프랑스도 직접적으로 군대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르데냐를 부추기려는 것 같은데…….”

“사, 사르데냐를 부추긴다고요?”

“그렇다네.”

그의 확신에 찬 말에 보좌관이 말했다.

“하지만…… 그저 우리가 싫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잖습니까……?”

“그건 자네가 나폴레옹이라는 사람 이전에 프랑스 황제라는 직책을 알지 못해서 그렇다네.”

“그게 무슨…….”

부올 백작은 만세를 하려는 듯이 두 팔을 하늘로 쭉 뻗으며 말했다.

“프랑스 황제라 함은! 과거 찬란했던 영광의 시절을 상징하는 것이네, 그리고 영광스러웠던 나폴레옹의 프랑스는 전쟁에선 지지 않고 유럽 외교가에서는 상대를 쩔쩔매게 만들었지!”

“그게 이탈리아와 무슨 연관이 있단 말입니까?”

“있지! 그것도 아주 중요한 것이네!”

“그게 뭡니까?!”

부올 백작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현 황제의 숙부 되는 원조 나폴레옹이 자신의 이름을 날렸던 곳이 바로 이탈리아이기 때문이야.”

“오…… 그럴듯하군요!”

보좌관의 말에 부올 백작이 눈을 흘겼다.

“그럴듯한 게 아니라 그런 것이네.”

“아, 죄송합니다.”

“쯧쯧쯧…… 아무튼 지금의 황제는 숙부의 휘광을 등에 업고 그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는 괴물의 뒤를 쫓게 되었다는 말이지.”

“아하! 그렇다면 루이 나폴레옹은 숙부가 이름을 날렸던 것처럼 이탈리아에서 명성을 쌓으려는 것이로군요!”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

부올 백작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면 무얼 하는가?

정작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끄응…… 폐하께서는 어떻게든 프랑스 놈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며 시간을 끌라고 하셨는데 말이지…….”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냥 눈 딱 감고 이대로 돌아가 버려?’

부올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황제가 실패하고 돌아온 녀석을 환영할 리가 없잖아……!’

그렇지만 뭘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동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한 탓에 파리에는 그가 알고 지내는 사람도 없었고 이제 와서 그들과 친해지려고 해봤자 의심이나 받을 것이었다.

‘이를 어쩌면 좋담…….’

그래도 돌아가자니 황제의 질책이 두려웠고 그렇다고 이대로 일을 속행하자니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입안이 바싹 메마르는 초조한 일상이 계속되던 중에 부올 백작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우연히 파리의 오래된 카페에서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에 제국의 황후인 외제니 드 몽티조 부인의 재단사가 있다는 소문을 들고는 곧장 그곳을 찾아갔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카를 페르디난트 폰부올이라고 합니다. 간단하게 부올 백작이라 불러주시지요.”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부올 경, 그런데 제 아담한 가게까지는 무슨 일이신지……?”

“흠흠…… 자네가 황실에 가방이나 옷가지를 납품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디자이너는 갑작스러운 부올 백작의 방문과 또 그의 질문 공세에도 그것이 제 자랑이라는 듯이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황후 폐하께서도 제 솜씨가 프랑스 제일이라고 하셨지요.”

“흠…… 그렇단 말이지……?”

부올 백작의 입꼬리가 삐죽 올라갔다.

* * *

한편 프로이센에서는 국왕의 입회하에 일개 외교관인 비스마르크와 프로이센의 총리인 만토이펠 남작 간의 결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는가?”

“폐하, 이것은 저는 상처 난 명예를 회복해야만 합니다!”

“끄응…… 만토이펠 자네는?”

“저 역시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으음……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시종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종들이 고급스러운 레이피어를 들고 와서는 각각 비스마르크와 만토이펠 남작에게 건넸다.

“오늘의 결투는 양측의 상호합의에 따라 검으로 승부를 낼 것이며 어느 쪽이라도 먼저 쓰러지거나 패배를 시인하는 경우에만 끝날 것이네, 둘 다 이에 동의하는가?”

“예, 폐하.”

“……따르겠습니다.”

“후우…… 부디 서로 흥분하여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좋겠네.”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천천히 뒤로 물러났고 생명이 만개하는 왕궁정원에는 둘만 남게 되었다.

“제가 나이도 더 어리고 육체적으로도 더 우위에 있으니 각하께 선공을 양보하지요.”

“그럼 사양치 않겠네.”

만토이펠 남작은 평생 검이나 총과 같은 무기류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전쟁이나 군사학 같은 것보다는 통계나 법학 쪽에 관심을 보였고 처음 정부에 임관했을 때도 사무직을 전전했다.

그렇다 보니 그의 검격은 검을 휘두른다기보다는 검에 몸이 딸려나가는 것에 가까웠다.

“후욱…… 헛!”

“하하하, 왜 이렇게 숨이 거칠어지셨습니까? 마치 돼지처럼 헐떡이시는군요.”

“끄응…… 쓸데없는 소리……!”

반면에 비스마르크는 어릴 적부터 부모의 가슴속에 대못을 수십 개씩 박아온 훌륭한 패륜아이자 탕아였다.

학교에서 공부보다는 여자와 술, 그리고 도박을 가까이했고 질 나쁜 친구들 사이에서도 대장을 자처하며 신나게 놀아온 불량학생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에게 있어 결투란 따분한 일상에 활력소가 되어주는 자극에 불과했다.

“핫하!”

“끄응…….”

비스마르크에게 있어 검은 잘 깎은 연필이었고 총은 부모님이 선물해 주신 만년필과 같았다.

만토이펠 남작이 헥헥거리며 검을 휘두를 때, 비스마르크는 여유롭게 이를 막거나 피하며 그 사이사이에 상대를 조롱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째 오래전에 돌아가셨던 제 할아버지보다도 체력이 못하신 것 같습니다?”

“신병 만토이펠은 무얼 하는가! 이 덩치 큰 표적 하나 제대로 노리지 못하는 겐가!”

“허허, 그건 제 잔상입니다만?”

그의 조롱에 침착함을 유지하던 만토이펠 남작이 분노하며 되는대로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지만 동작이 커진 탓에 비스마르크는 이전보다 더 쉽게 요리조리 피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던 만토이펠 남작은 자연스레 지쳤고 움직임이 둔해졌다.

“헛, 빈틈!”

비스마르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번개처럼 검을 휘둘러 만토이펠이 쥐고 있던 검을 쳐냈다.

하늘 높이 떠오른 검은 그대로 프로이센의 국왕 앞에 떨어지는 것으로 승부가 났다.

“그만.”

“크윽……!”

“좋은 승부였습니다.”

비스마르크는 검을 바닥에 꽂아놓고서는 만토이펠 남작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상대는 그의 악수 요청을 받아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기에 그대로 몸을 돌려서는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만토이펠 남작이 돌아가고 분위기가 착 가라앉자 비스마르크는 주변을 쓱 돌아보더니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토이펠 남작께서 집에 가스등을 켜놓고 오신 모양이로군요. 제가 이해하겠습니다.”

그의 장난스러운 농담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프로이센의 국왕은 영 마뜩잖다는 얼굴로 비스마르크에게 물었다.

“쯧쯧……. 자네의 승리를 축하하네만…… 앞으로 어찌하려고 만토이펠과 결투를 벌인 것인가?”

그의 말에 비스마르크가 답하길.

“하하하, 프로이센의 미래를 위해서 만토이펠 남작과 조금 사이가 틀어지는 것쯤이야 큰 문제도 아니지요.”

“쯧쯧쯧…… 그래, 그럼 의회에서의 연설은 자네가 맡는 것으로 해두겠네.”

“감사합니다 폐하.”

비스마르크는 그가 원하던 대로 총리를 대신하여 군비증강 건으로 의회의 연설대에 오를 수 있었다.

그가 아무리 잘 말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세간에서는 자신의 뜻을 위해서라면 총리에게도 칼을 들이미는 미치광이쯤으로 소문났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소문을 반기면서 자신을 무슨 프로이센의 악마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낼 정도였다.

“흠흠…….”

그리고 연설 당일.

프로이센 의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원래 참석하는 의원들을 제외하면 멀리서나마 요즘 유명하다는 비스마르크의 얼굴을 보고자 달려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존경하는 프로이센 의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독일연방 내에서 프로이센의 입장을 대변하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입니다.”

그의 자기소개에 의원들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정말 짧은 환영식이 끝나자마자 비스마르크는 주먹으로 연설대를 내리치며 큰소리를 냈다.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끈 비스마르크는 초장부터 강한 어조로 밀고 나갔다.

“이전에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의 프로이센은 지금보다 더 약한 유럽의 소국이었지만 다른 국가들은 우리를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 주변국 중에 우리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습니까?!”

연설이라기보다는 취조에 가까운 강한 어조를 쓰는 비스마르크의 말에 의원들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없지요! 단언컨대 유럽 내, 아니 독일연방 내에서도 우리 프로이센을 두려워하는 국가는 단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저놈 저거 미친 거 아냐?”

“왜 저런대?”

“총리한테 칼침 놓은 녀석답구먼.”

의원들은 건방진 시골 애송이의 말에 불쾌함을 드러냈지만 비스마르크는 그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프로이센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스트리아를 누르는 것? 독일연방 내에서 최고가 되는 것?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최고로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지 결과가 아닙니다!”

비스마르크는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르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다들 하나같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과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는 얼굴들이었다.

“우리 프로이센은 하늘로부터 독일을 하나로 통일하라는 성스러운 임무를 부여받아 이 땅에 만들어졌고 이는 우리의 명백한 운명입니다!”

“명백한…….”

“운명……?”

“그렇습니다! 이는 명백한 프로이센의 운명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정부는 어떻습니까? 의회는 서로를 탓하며 대독일이니 소독일이니 하며 서로 다투고 있고 유약한 만토이펠 정부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압박에 굴복하여 저들의 가랑이 사이를 설설 기고 있지요. 이게 우리가 원하는 프로이센입니까?”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 멀리서 우렁찬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아니다!”

“프로이센은 더 위대해져야 한다!”

비스마르크는 이에 화답하듯이 소리쳤다.

“맞습니다! 우리 프로이센은 더 크고 위대한 국가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실수들을 만회하고 더 크고 웅장하며 통일된 독일을 위해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비스마르크의 물음에 어느 누구 하나 감히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작금의 거대한 문제 앞에 이루어져야 할 결단은, 1848년의 연설이나 다수결의 원칙이 아닌, 오직 피와 강철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

비스마르크의 말이 끝나자 의회는 정적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인사를 끝마칠 때쯤에는 사방에서 비난 섞인 야유와 욕설이 날아들었고 그와 동시에 그에게 환호하는 시민들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비난과 환호 속에 비스마르크는 마치 궁정의 어릿광대처럼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자신을 비난하는 의원들에게 인사하고는 웃으며 단상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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