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13화 (113/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13화

전진하라 전진하라

비스마르크의 연설은 연이은 패배와 굴욕에 지쳐 있던 프로이센에 신선한 자극을 줬다.

독일연방 내에서 번번이 오스트리아에 밀려나거나 러시아와의 거래 건으로 서방에 쩔쩔매는 정부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던 프로이센 국민은 비스마르크라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환호했다.

“그래, 이거지!”

“우리가 무엇이 아쉬워서 고개를 숙이나?”

“프리드리히 대왕님께서는 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절대로 다른 놈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지 않나!”

“쯧쯧쯧……. 총리 놈이 폐하의 두 눈을 가리고서는 제멋대로 일을 처리하니 이렇게 되는 것이지.”

다들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그동안 프로이센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신들이 독일 제일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프로이센은 나날이 성장하는 국가였고 조만간 독일을 넘어 전 유럽을 뒤엎을 만한 잠재력이 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정부라는 것들은 이제는 퇴물이 된 오스트리아와 눈발이 흩날리는 야만인들의 땅인 러시아에 머리를 조아리며 쩔쩔매기만 했다.

거기에서 그쳤으면 좀 소극적인 정부 정책이라고 넘어갔겠지만, 그 이후에는 몰래 러시아와 뒷거래를 하다가 걸려서는 서방의 보복을 당하기까지 했다.

그러고서도 아쉬운 소리 한 번 하지 못했다!

“이게 나라냐!”

“에라이 개새끼들!”

프로이센의 시민들은 서방의 제재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대놓고 자국을 위협하는 폴란드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정부에 무척이나 화가 났다.

그런 사람들에게 비스마르크는 그야말로 애타게 기다리던 초인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십 분 정도의 짧은 연설이었지만 비스마르크의 연설은 프로이센 사람들의 가려운 구석을 살살 긁어주며 그들이 나아갈 길까지 알려줬다.

“폴란드를 때려 부수고 그 뒤에 있는 오스트리아 놈들까지 조져 버린 다음에 프랑스까지 쳐부수자!”

“독일을 다시 하나로!”

“독일인이여 각성하라!”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단 한 명의 황제!”

프로이센의 시민들 사이에는 이런 구호가 떠돌아다녔고 만토이펠 내각에 대한 지지도 점점 바닥을 기게 되었다.

어차피 내각을 임명하는 것은 국왕이기에 시민들의 지지가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당장 만토이펠 남작이 해임되는 일은 없었지만, 내각의 추진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리를 내려놓겠습니다.”

“차라리 조금 쉬고 오는 게 어떻겠는가?”

“아닙니다. 폐하, 이번 일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습니다.”

“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결국, 이를 견디다 못한 만토이펠 남작은 건강상의 이유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자네 그것 들었나? 만토이펠 국왕 폐하께서 만토이펠 그놈을 총리직에서 내쫓았다는군!”

“뭐?! 그것참 잘되었구먼!”

“앓던 이가 쏙 빠진 느낌이야.”

당연하게도 프로이센의 시민들은 만토이펠의 사임에 기뻐하면서도 그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될 사람을 궁금해했다.

“이제 만토이펠이 내려갔으니……. 다음은 비스마르크 경이 총리가 되겠지?”

“그럼! 그분이 아니면 지금 프로이센을 이끌어 줄 만한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하하! 드디어 프로이센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전 세계를 벌벌 떨게 만들겠구먼!”

“자자 다들 이럴 것이 아니라 잔들 채우게! 오늘은 죽기 전까지 마셔보자고!”

“좋지~”

시민들은 비스마르크야말로 프로이센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 것이며 더욱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줄 인물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프로이센 국왕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비스마르크? 그놈은 너무 성격이 급하고 경험이 적은 애송이잖나.”

“하오나 국민정서상…….”

“무슨 정서?”

“죄송합니다…….”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비스마르크를 중용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본 비스마르크는 무척이나 성질과 성격이 급하고 나름 계획이란 것을 세우기도 하지만 허술한 계획으로 일을 그르치기도 했다.

당장 이번 러시아와의 거래 건도 그의 작품이었는데, 그는 분명히 절대로 들통나지 않을 것이라 호언장담했으나 오스트리아 놈들은 전부 알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봐도 비스마르크는 가진 능력에 비해 자신을 포장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지금이야 그 녀석이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으스대지만……. 그게 얼마나 오래갈 것 같은가?”

“아…… 그럼……?”

하지만 막상 차기 총리를 정하려니 마땅한 인물이 보이지 않았다.

프로이센에서 만토이펠 남작처럼 사무직에 능통하면서도 그의 말을 잘 따를 만한 인물이 떠오르질 않았다.

“흐음…… 빌헬름.”

“예, 형님.”

“추천할 만한 인물이 있느냐?.”

결국,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자신의 후계자이자 동생인 빌헬름의 뜻을 물었다.

어차피 자신이 죽고 나면 그의 동생이 뒤를 이을 것이니 기왕이면 그와 친한 인물로 내정하고 싶었다.

“카를 안톤은 어떻습니까?”

“안톤? 아, 그 녀석이 있었군.”

성향상 비스마르크와 반대되는 인물인 데다가 능력도 적당한 것이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그토록 원하는 인재상에 딱 맞는 인물이었다.

거기에 그는 프로이센의 국왕을 위해 자신의 공국을 들어다 바쳤을 정도로 충성스러운 인물이었다.

여기서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 * *

“제국에서…… 둘도 없는…… 쓰레기 같은 필체로구나……. 제발 좀 글쓰기 연습을…….”

[자네의 욕은 매번 들어도 창의력이 넘치는군.]

“에이 뭘요.”

[칭찬이 아닐세…….]

그날도 어김없이 지방에서 올라온 보고서와 여러 문서를 꼼꼼하게 확인하고는 하나도 빠짐없이 주석을 달아주는 중이었다.

이제는 다들 요령이 조금 생긴 것인지 아니면 욕을 하도 들어 처먹고는 정신이 나가버린 것인지는 몰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 되어 있었다.

[그래봤자 아닌가?]

“그럼요. 아직 멀었죠.”

그래도 지방관과 총독이 각자 가지고 있는 정보를 탈탈 털어내니 새로운 정책을 세우거나 기존 정책을 폐기할 때, 무척이나 편했다.

특히 요즘 공을 들이고 있는 교육제도의 경우에는 크로아티아와 보헤미아 총독의 정보 덕분에 둘의 언어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를 새로운 교육정책에 반영할 수 있었다.

“흥흥~”

[으음……. 자네는 보면 볼수록 이상하군. 어떤 때는 불같이 화를 내다가도 돌아서면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으니 원…….]

“제가 좀 오락가락합니다.”

[알면 되었네, 그래서 지금 끄적거리는 것은 무엇인가? 막둥이에게 보낼 편지인가?]

“아뇨. 요번에 새로운 교육정책을 도입하기 전에 동네 애들을 하나로 확 묶을 방법이죠.”

[?]

새로운 교육정책을 도입하면서 제일 먼저 고민한 것은 딱 하나.

어떻게 하면 부모들이 아이를 내어놓게 만들 건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는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고 도구처럼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현대에는 아동 인권이니 뭐니 해서 그나마 나아진 편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었으니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며 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시대였다.

온 식구들을 먹여 살리려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들과 밭, 그리고 공장 등지에서 종일 뼈 빠지게 일해야만 했다.

그렇다 보니 아동은 가정의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내가 교육을 위해 그들을 빼간다는 것은 그들에게서 노동력을 빼앗아가는 것이었다.

부모들이 전부 멍청해서 자식들이 배워서 성공하면 좋을 것이란 걸 모르겠는가?

아니다. 오히려 자식들이 성공한다면 춤을 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자식이 일을 쉰다면 내일은 굶어야 했다.

그렇기에 부모들은 이를 악물고 자식을 일터로 보내거나 들과 밭으로 끌고 나갔다.

[그건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께서 어느 정도 해결하지 않았는가.]

“그땐 그랬지요.”

[지금은 아니라는 건가?]

“다 알면서 뭘 물어보세요.”

[자네도 내 나이가 되어보게, 아침에 했던 것을 저녁에 잊어버리기 일쑤야.]

“끄응…….”

영감님의 말처럼 오스트리아의 중흥을 이끌었던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이 교육제도를 크게 개편하며 그런 부모들에게서 아이들을 데려오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녀의 통치역량이 닿는 곳까지만 말이다.

귀족들의 영향력이 더 강한 곳에서는 농민들이 자식들을 절대로 내어주지 않았고 학교는 유명무실해졌다.

“저는 그놈들을 모조리 때려잡을 겁니다.”

[피바람이 불겠군.]

“어허, 제가 그렇게 험한 방식을 쓸 것 같습니까?”

[그럼 아닌가?]

“아닌데요.”

나는 어디까지나 이 문제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렇기에 지방 통제력을 강화하고자 이 피드백 제도를 도입했고 이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후에는 새로운 교육정책으로 아이들을 한데 묶을 생각을 했다.

[그래서 새로운 교육정책이란 것이 뭔가?]

“후후후……. 영감님께서 보이스카우트를 들어보셨는지 모르겠군요.”

[보이스카우트? 아, 자네가 이상한 제복을 입고 야영장에서 미연이라는 소녀를 꾀었던 일을 말하는 거라면 잘 기억하고 있네.]

“아니, 미연이가 여기서 왜 나와요!”

영감님의 과거 발언에 잠시 발끈했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설명해드렸다.

“흠흠……. 그러니까 제 의견은 이겁니다. 적당히 학교 갈 나이의 애들을 불러 모아다가 황제 직속의 청소년단체를 하나 만드는 겁니다.”

[청소년단체? 그게 무엇인가.]

“적당히 학교 다닐 법한 애들을 불러서 그럴싸한 제복 입혀놓고 소속감을 느끼게 만드는 겁니다.”

내 간결한 설명에도 영감님은 의문을 표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로군.]

“허허, 원래 어린애들은 제복이라면 환장하지 않습니까? 거기에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우선시해서 학비도 지원해 주고 적당히 잘하는 녀석들에게는 그럴싸한 훈장과 함께 제 추천서도 써주는 겁니다.”

[취업을 도와주는 건가?]

“취업이건 대학진학이건 황제의 추천서라는데 누가 거절하겠습니까?”

영감님은 허허 웃으시며 내게 물었다.

[그런 거로 무슨 이득을 얻겠다고?]

“뭐 거창한 걸 얻으려는 건 아닙니다. 그저 부모들이 애들 학교 보내는 걸 손해라고 여기지 않게 의식의 전환을 불러일으킬 방법으로 생각한 거죠.”

[흠…….]

영감님은 모처럼 내 생각이 마음에 드셨는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자네의 머리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계획이로군. 그래서 규모는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당연히 제국 전역이죠.”

[……제국 전역?]

“네.”

[그럴 만한 자금은 마련해놓았는가?]

“뭐 애들 먹이고 입히는 데 돈이 얼마나 들겠습니까? 부족하면 헝가리 어음 좀 떼다가 충당하면 그만이지요.”

[허허허……. 자네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또 영감님의 잔소리가 쏟아지려 할 때, 내가 적당히 무게를 잡으며 영감님을 설득했다.

“영감님,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는 것은 절대 손해가 아닙니다.”

[어째선가.]

“그 친구들이 올바르게 자라나서 훌륭한 사회인이 된다면 취업하고 세금을 낼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지금 돈 좀 투자해놓으면 미래에는 세금이 몇 배나 늘어나는 것이지요.”

내 설득에도 영감님은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질서한 계획이로군.]

“에이……. 이게 제 생각대로 제국 전역에 잘 정착되면 언어문제도 얼추 도움이 될 겁니다.”

[어렸을 적부터 붙어 다니며 서로 간의 언어장벽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고 보는 건가?]

“어……. 저는 그냥 이 단체에서 쓰는 간단한 언어 모음집 같은 걸 만들 생각이었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네요.”

[응? 아닐세, 자네 의견이 더 좋아 보이는군.]

“정말요?”

[그래, 정말이네.]

영감님이 내 의견에 동조해 준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하하하, 제가 뭐랬습니까? 듣자마자 뻑간다고 했잖아요!”

[알겠네, 그래서 이름은 뭐로 할 건가?]

“이름…… 이요?”

[그래, 단체라면 멋들어진 이름이 있어야지.]

“어……. 지역마다 상징적인 위인 이름으로 대충 지으려고 했는데…….”

[그러면 통일성이 떨어지잖나. 차라리 하나로 딱 뭉칠 수 있는 이름으로 만들지.]

통일성을 헤치지 않으면서도 무난한 이름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시씨가 내 집무실에 가져다 놓은 에델바이스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소년단 어때요?”

[그거 괜찮군. 그럼 에델바이스 유겐트인가?]

“예?”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