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14화
우리에게로 오라!
부올 백작은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능력은 무척 떨어졌지만 반대로 다른 이의 명령을 받은 것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잘 처리하는 편이었다.
“프랑스의 폐하의 생산을 축하드리며 이 가방을 바치겠나이다.”
“고마워요. 부올 백작.”
“별말씀을.”
부올 백작은 프랑스의 황제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황후가 주로 만난다는 디자이너를 꾀어서 그녀가 선호하는 것들에 대한 정보를 조사했다.
그리고 그녀의 생일날 열린 파티에서 다른 이들을 압도하는 선물을 내놓아서는 황후의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었다.
“그래, 이런 선물을 받았으니 보답을 해야겠지……. 그대는 내게 무엇을 원하나?”
“황제 폐하와의 접견을 원합니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만……. 그게 전부인가?”
“예, 그렇습니다.”
황후는 의심 어린 시선으로 부올 백작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요즈음 황제 폐하께서 오스트리아인 사람을 멀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나.”
“도대체 왜 그러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
황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부올 백작이 선물했던 가방을 조심스레 집어 들며 말했다.
“약속은 약속이니……. 자리를 주선해 주마.”
“정말 감사 드립…….”
“하지만 두 번은 없어.”
황후는 그 말과 함께 연회장을 나갔다.
그러자 그의 귓가에 프랑스 귀족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부분은 그의 처지를 비웃는 이야기였지만 부올 백작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개구리 새끼들이 시끄럽게도 울어대는군. 번식 철이라서 그런 건가?’
늘 그렇듯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회장 한쪽에 마련된 코냑 한 병을 따서 그대로 난간으로 향했다.
‘황제나 황후나 아주 쌍으로…….’
부올 백작은 기회를 얻은 것에 만족하며 자신을 칭찬했다.
연회장 한쪽의 어느 한적한 발코니에서 말이다.
* * *
가에타에서의 전투는 좀처럼 끝이 안 보였다.
요새를 함락시키려는 양시칠리아의 군대는 내부의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번번이 공격에 실패했고 수비 측인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던 역시 방어에만 급급한 상황이었다.
양시칠리아 왕국의 후계자이자 군대의 지휘관은 프란체스코 왕자는 어떻게 해서든 빨리 이 상황을 끝내고 싶어 했지만, 이 방법이 없었다.
그의 군대는 의욕도 없고 무능하기까지 했다.
거기에 전투를 지켜보던 교황이 하루빨리 원한 해결을 보라면서 압박해 오는 탓에 나날이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것은 덤이었고 말이다.
“그래서……. 다들 좋은 생각은 없는가?”
“…….”
“없는 모양이로군.”
양시리칠리아의 군대는 무능했다.
실전경험도 없었고 명확한 목적의식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훈련을 잘 받은 것도 아니었다.
이들이 마지막으로 활약했던 것은 전쟁이 아니라 자국에서 일어난 혁명을 진압하는 것이 전부였으니……. 그 결과가 여기서 드러나는 셈이었다.
“전하, 부대를 뒤로 물려서 재정비한 다음에 저들을 다시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다음? 지금 내게 다음이라고 한 것인가?”
“예? 아, 예……. 그렇습니다. 전하.”
프란체스코는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음은 없네, 이만한 병력을 끌고 왔는데도 요새에 틀어박혀 있는 녀석들을 어쩌지 못한다면 아버지께서 날 뭐로 볼 것 같은가?”
“그건…….”
“그러니 어떻게든 저 요새를 점령해야 하네.”
프란체스코는 확고했다.
어차피 이대로 물러나면 많은 것을 잃을 것이니 그냥 버티고 있는 것에 가까웠지만……. 아무튼 그랬다.
“전하, 그럼 차라리 저들을 굶기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굶기자고?”
“예, 듣기로 저들은 로마 공화국에서 따로 떨어져나와 행동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보급품도 따로 챙겨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교의 말에 비 오는 날 하늘처럼 구리던 프란체스코의 표정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
“계속해 봐.”
“아군이 적과 교전을 시작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 흘렀으니 저들이 가지고 있는 식량 등이 바닥을 드러냈을 겁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은가.”
“……그러니 대략 이 주일 정도는 포위를 유지하여 저들이 먼저 항복하도록 유도하는 겁니다.”
“그걸 못 견디고 적이 요새 문을 열고 나오면 요격하면 그만이고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상당히 괜찮은 의견처럼 들렸다.
가에타의 요새로 들어가는 길목이 좁다는 것은 들어가는 쪽도 힘들지만 나오는 쪽도 힘들다는 것이니 포위망을 유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간을 끄는 것이 조금 흠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이기는 것이 중요했으니 그것도 상관없었다.
“좋아! 바로 그거야.”
“그럼 포위망을 강화한 채로 조금만…….”
프란체스코 왕자가 이제 승리는 떼놓은 당상이라고 확신하고 있을 때.
“전하, 전하!”
“무슨 일인가?”
“하, 함대가……. 소속 불명의 함대가 나타났습니다!”
“함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그가 천막을 나왔을 때 보인 것은 가에타 앞바다를 가득 메운 어마어마한 숫자의 함선들이었다.
* * *
이제 막 전보라는 것이 세상에 이름을 알렸을 때이니만큼 정보전달이 늦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현대에도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발표한다고 해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정보다 잘 안 들어갔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도 에델바이스 소년단…….
[유겐트.]
소년단…….
[유겐트]
……에델바이스 유겐트의 성공 가능성을 그렇게까지 높게 보진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집안 문제로 학업이 어려운 이들을 보조하는 용도로 쓰려 하는 게 끝이었다.
겸사겸사 제복에 끌린 아이들을 끌어와 부모로부터 떨어뜨려 놓는 것도 있고…….
하지만…….
“가입 신청자가 얼마라고?”
“어……. 조만간에 백만을 가뿐히 넘길 것 같다는 게 관련 부서의 추측입니다.”
이건 잘돼도 너무 잘돼버렸다.
나는 아무리 많아봤자 십만 명이 최대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야 아무리 혜택이 좋다고 해도 정보전달이 느린 시대이고 그만큼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는 사람이 많은 시대였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걸?
“이번에 폐하께서 새로이 사업을 벌이신다고 하니 여러 지방관과 각 지역의 총독들이 앞장서서 이 소식을 알린 모양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아무래도 지방의 관리들을 너무 옭아맨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키지도 않은 일을 자기네들이 앞장서서 나서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이 모든 걸 자네가 기획한 건가? 이렇게 보니 자네는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군.]
‘불난 집에 기름 붓지 맙시다.’
[허허, 나름대로 칭찬해 준 것이네.]
영감님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시며 나를 놀리기 바쁘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를 가볍게 무시하며 슈머링 경에게 물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군.”
“무엇이 말씀이옵니까?”
“내가 기억하기론 한해 제국 전역에서 태어나는 신생아의 수가 백만을 겨우 넘기는 거로 기억하네.”
“그렇습니까?”
“그런데 어찌 이리도 많은 이들이 신청한 건가?”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전부 멀쩡히 자라나는 것은 아니었다.
높은 유아사망률로 인해 한해 수많은 아이가 죽어 나갔고 그렇게 자란 아이 중에도 어린 시절의 가혹한 노동이나 곳곳에 널린 위험요소 등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아이가 죽는다.
그러니 여기 나온 대로 백만이라는 숫자는 나오기 어렵다는 게 내 견해였다.
그렇다는 건이 신청서에 허수가 끼었다는 건데…….
모르긴 몰라도 에델바이스 소년단…….
[어허, 유겐트라고 했잖나.]
‘그 이름은 싫다니까요!’
[그럼 유겐트를 유겐트라고 하지 왜 자꾸 이상한 말로 바꾸는 건가?]
‘아니, 그게 좀…….’
[쯧쯧쯧 또 쓸데없는 곳에서 고집을 부리는군. 그건 자네의 나쁜 버릇 중 하나일세.]
‘…….’
……유겐트의 혜택만 보고 무작정 신청서를 들이민 몰상식한 사람들도 있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숫자가 잡힐 리가 없었다.
“아, 그것이 말입니다.”
“응?”
아니, 이유가 있다고?
“그것이……. 오버외스터라이히의 총독이 자기 쪽 신청자가 적다고 생각한 것인지 독일연방 내의 다른 국가들에도 신청서를 뿌린 모양입니다.”
“뭐라고?!”
그럼 이 신청자들의 대부분이 제국 인들이 아니라 독일연방에서 몰려든 사람들이란 말인가?
그럼, 말이 되긴 했다.
더불어 큰 문제였다.
“그, 그렇다는 것은…….”
“아마 여기 참여하기 위해 독일연방에서 넘어온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허허허……. 허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건 기뻐서 웃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슈머링 경은 내가 기뻐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굳이 듣고 싶지 않은 소식까지 들려줬다.
“더불어 폐하께서 벌이신 여러 사업으로 일자리가 생기니 독일연방 각국에서 노동자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오는 모양입니다.”
“그, 그럼 그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분명 조, 조사해 뒀겠지? 제발 그렇다고 하게!”
“어……. 자세히 파악해둔 자료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바이에른과 뷔르템베르크와의 국경지대의 검문소에서 올라온 보고서에 따르면 4년 전부터 매일 수맥 명씩 유입된 모양입니다.”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갔다.
4년 내내 매일 수백 명이 유입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까지 제국으로 들어온 이들은 얼마일까?
‘최소치인 100명으로 잡고……. 1년이면 36,500명……. 4년이면 146,000명 정도로군!’
생각보다 얼마 안 됐다.
이 정도면 제국 내의 독일인 비율에도 큰 문제가 없을 테니 별로 상관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계산이 잘못되었군.]
‘예?’
[그건 외스터라이히의 여러 행정구역 중에서 한 곳에서만 측정한 숫자이잖나.]
‘아.’
그럼 계산이 복잡해졌다.
대충 독일연방의 여러 소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은 오스트리아뿐만이 아니라 보헤미아와 폴란드, 헝가리도 그러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수십, 수백 개의 검문소가 존재했으니 대충 계산해 봐도…….
“……최소 수십만 명.”
“아, 그렇습니까? 역시 제국의 만물을 내려다보시는 폐하께서는 계산도 빠르시군요!”
아직 통계는 제대로 잡히지 않았지만, 그들이 일자리나 자녀의 학업 문제로 국경을 넘었다면 월급을 받고 학교에 등록하면서 슬슬 통계에 잡힐 것이었다.
그럼 또 그들을 새로운 통계도표와 여러 자료에 끼워 넣으며 그들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려면…….
여태껏 했던 그 개지랄을 또 해야 한다…….
“끄어어어억…….”
“폐하? 폐하!”
나는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절했다.
* * *
두 살 때 아버지를 잃은 카를은 무척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카를의 어머니는 식구들의 입에 풀칠이나마 하기 위해 남의 집 하녀 생활은 물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하였으나 카를은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나 어려운 와중에도 카를의 어머니는 자식에게 더 나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으며 노력했다.
하지만 하층민인 그녀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한계는 있는 법.
“그 거지 같은 애새끼하고 당장 꺼지쇼!”
“어르신! 어르신! 이 날씨에 제가 여기서 쫓겨나면 어디로 가겠어요!”
“그거야 댁들 사정이지……. 집세를 그렇게까지 밀려놓고 양심이 있는 거요?”
“그럼 저는 괜찮으니 제 아들만이라도…….”
“쯧……. 당장 꺼져!”
슬슬 쌀쌀해지는 늦가을 불쌍한 두 모자는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엄마…….”
“괜찮아 카를, 곧 새로운 집을 구해보마.”
그런 힘겨운 상황이었음에도 카를의 어머니는 어린 자식이 걱정할까 봐 눈물이 쏟아지는 상황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수중에 있는 돈으로 새로운 집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거기에 요즘 공국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보쇼? 혹시 옆에 있는 아이는 아드님입니까?”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요?”
카를의 어머니는 슬그머니 카를을 자신의 뒤편으로 숨겼다.
“아, 이상한 사람은 아니니까 오해 마시지요.”
“충분히 이상해 보이네요.”
“하하하……. 이번에 저기 외스터라이히에서 영재발굴사업을 시작했으니 관심 있으면 참여하세요!”
“영재발굴사업……?”
청년은 그리 말하며 홍보지 건네줬다.
그걸 받아든 카를의 어머니는 눈이 돌아갔다.
“제복과 장학금, 그리고 숙식 제공까지……?”
“하하하, 그렇습니다!”
카를의 어머니는 너무나 형편 좋은 이야기에 의심 어린 눈으로 청년을 바라봤다.
“이 모든 걸 그냥 해준다는 말씀인가요?”
“하하, 당연히 아니지요! 제복은 그냥 지급되지만, 식사나 숙박 장소 같은 경우에는 따로 신청을 하셔야 하고 장학금은 우수한 성적을 내야 합니다!”
“시, 신청만 하면 그냥 준다고요?”
“어……. 듣기로는 그렇게 들었습니다만…….”
청년은 멋쩍게 웃으며 홍보지를 둘러봤다.
“저도 돈 받고 홍보하는 거라 잘은 모릅니다.”
“그, 그럼 어디로 가야 더 자세한 소식을 알 수 있는 거죠?”
“어……. 여기 보시면 외스터라이히 행정부처에 문의하라고 했으니까……. 국경 넘어가셔서 사무소 같은 곳에 문의하면 되지 않을까요?”
카를의 어머니는 청년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세를 낮춰 자기 아들을 꼭 안아줬다.
“그럼 우리 이제 외스터라이히로 가는 거예요?”
“그래, 그렇단다 우리 아가…….”
“와…….”
청년이 허허 웃으며 물었다.
“아이가 참 똘똘하게 생겼으니 거기서도 장학금도 받고 잘할 겁니다.”
“정말요?”
“어……. 그냥 한 말인데…….”
“고맙습니다. 아저씨.”
청년은 아저씨라는 말에 발끈했다.
“어허, 아저씨라니? 내 이름은 한스야.”
“저는 카를이에요. 카를 프리드리히 벤츠요.”
“그래, 만나서 반갑구나 벤츠.”
청년은 소년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주고는 그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저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국경수비대에게 문의하면 잘 알려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