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15화
빈의 휴일
어린 소년 빌헬름의 삶은 무척 행복했다.
뷔르템베르크의 작지만,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을 아껴주는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고 형제도 많았다.
그렇게 가족의 화목은 계속될 것이라 여겼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작업반장이 임금을 깎겠다는군.”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프로이센과의 무역이 원활하지가 않아서 그렇다는데……. 나는 잘 모르겠어.”
“그럼 우리 큰아이 학교는요?”
“……조금 더 알아봐야지.”
아이들은 커가는데 경제가 어려운 탓에 임금은 계속해서 깎여만 갔다.
이 때문에 부부의 한숨은 깊어졌고 화목한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가정에 다툼이 많아졌다.
부모가 다툴 때마다 동생들을 데리고 헛간에 숨어 있던 빌헬름은 남몰래 기도하곤 했다.
‘하나님……. 가족들이 다시 화목하게 지낼 수 있게 해주세요.’
하늘도 그런 빌헬름을 불쌍히 여긴 것인지 어린 소년의 소원을 들어줬다.
“루이제! 루이제!”
“또 왜요.”
“이, 이것 좀 봐!”
어느 날 일터로 나갔던 빌헬름의 아버지가 평소와는 달리 맨정신으로 돌아와서는 가족들에게 왠 종잇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아버지나 어머니는 글을 읽을 줄 몰랐기에 이제 글을 조금 배운 빌헬름이 떠듬떠듬 글을 읽어내려갔다.
“외스터라이히……. 에델바이스…… 유, 유겐트? 절…… 찬리 모집 중…….”
“그래! 에델바이스 유겐트! 옆집에 한스 그놈한테 들어보니까 여기 들어갈 수만 있으면 숙식 제공은 물론이고 학비까지 지원한다지 뭐야?”
“그러니까 당신은 우리 빌헬름을 여기 보내자는 거예요?”
“어.”
부인은 영 마뜩잖은 얼굴로 말했다.
“저는 반대에요. 빌헬름 혼자 그 먼 곳까지 보낼 수는 없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가족 모두 이번 기회에 외스터라이히로 넘어가야지!”
“네? 아니, 이제야 겨우 여기에 자리 잡았는데 그 먼 곳까지 또 가자고요?”
부인의 반대에도 그는 열심히 그녀를 설득했다.
“어차피 저곳이나 이곳이나 말이 안 통하는 곳도 아니고……. 들어보니까 이번에 외스터라이히에서 새로 즉위한 황제 폐하께서 이것저것 벌려놓은 일이 많아서 일자리도 많다고 했어!”
“그래도…….”
“아이고……. 이 답답한 사람아! 언제까지 우리 자식들을 이런 촌구석에 있게 할 생각이야? 도시에서 여러 가지를 보고 배우게 해야지!”
“…….”
결국, 빌헬름의 가족도 외스터라이히로 떠나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애초에 가난했던 탓에 짐이랄 것도 별로 없었기에 그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다.
그러게 떠나려던 날.
빌헬름의 아버지의 동료들이 단체로 그를 찾아와서는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이보게 마이바흐……. 정말 가려는 건가?”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아……. 그래도 거기서도 잘 지내게.”
* * *
여기저기 널려 있는 일자리와 양질의 교육이 보장되니 가족 단위 이주민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이 전부 의사나 예술가처럼 고학력자였다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환영해 줬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다.
대부분이 단순노동자였다.
“쓰읍……. 노동자가 더 들어오는 건 환영이지만 이건 많아도 너무 많은데…….”
빈 외곽의 어느 한적한 카페.
내 측근들도 모르는 이곳에서 나는 조용히 신문을 읽고 있었다.
신문에서는 점점 늘어나는 이주민들 탓에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었으며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이에 찬동하고 있었다.
“쯧쯧……. 이래서 독일 놈들이 문제라니까!”
“제 손으로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어떻게든 자기 이익을 좇아서 박쥐처럼 붙어먹으니 원…….”
“허허, 자네도 독일 사람 아닌가?”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당당한 오스트리아 사람이네! 저기 독일 놈들과는 다르다고!”
이제는 자신을 독일인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나타날 정도였다.
‘그동안 러시아와의 전쟁에 신경 쓴다고 이주민 문제에는 소홀했어.’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었다.
차마 손을 쓸 수 없을 지경까지 되어버렸다면 그때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요제프 씨, 뭘 그리도 고민하시는지요?”
“……시씨, 제발 슈머링 경처럼 말하는 건 그만해주지 않겠어?”
시씨는 배시시 웃으며 내 앞으로 커피잔을 살포시 밀어 넣었다.
“농담이잖아요.”
“끔찍하게 재미없는 농담이었어.”
“저는 재밌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
그녀는 내 커피잔에 각설탕을 몇 개 집어넣으며 내게 물었다.
“지금 궁전에서는 폐하를 찾겠다고 난리가 났을 텐데……. 이렇게 여유롭게 계셔도 되는 거예요?”
“어허, 여기서는 폐하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카페 안에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몰래 황궁을 빠져나온다고 근위병도 얼마 데려오지 못했는데, 내 정체가 노출되면 시씨의 안전에 위험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엘리자베트 양은 내 커피에 각설탕을 쏟아부으며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원한다면야.”
“설탕을 너무 넣는 것 아냐?”
“원래 당신은 쓴 건 못 먹잖아요.”
“……누구를 애로 보는 것도 아니고.”
아주 정확했다.
호불호가 확실한 내 성격상 씁쓸한 건 그냥 못 먹는 정도가 아니라 입에 대지도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과자니 사탕이니 하는 것은 보육원에서 같이 생활하던 친구들에게 뺏기고는 했으니 그런 걸 못 먹어본 갈망이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린 모양이지.
“윽……. 너무 단 것 같은데…….”
설탕을 얼마나 쏟아부은 것인지 한 모금 마시자마자 내 치아가 모두 녹아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래요?”
시씨는 내 커피를 맛보더니 그대로 내려놓았다.
“괜찮은데요?”
“그럼 당신이 다 마셔.”
“그건 싫어요.”
시씨는 웃으며 커피잔을 들이밀었다.
나도 따라 웃으며 그녀에게 커피잔을 밀었다.
그렇게 의좋은 형제처럼 커피를 주고받고 있을 때, 옆 테이블에서 험악한 소리가 들렸다.
“어휴! 이래서 헝가리 새끼들은……!”
“자네 또 왜 그러는가?”
“아니 글쎄, 러요시 코슈트가 사회주의자들을 끌어들여서 제국 사회당을 만들었어!”
그 말에 내 고개가 돌아갔다.
“그게 왜 문제인가?”
“지금 그놈이 독일에서 건너오는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면서 세력을 확장하는 데 화가 안 나게 생겼는가!”
“하긴……. 그놈들이 설치고 다닐수록 아랫것들이 더 활개 치고 다니겠구먼.”
“누가 아니래? 안 그래도 요새 황제가 노동자들 임금이 너무 적은 것이 아니냐고 투덜거린다던데…….”
“어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황제 폐하께서 이젠 돈 주는 것까지 관리하시겠다는 건가?”
저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니,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참으로 억울했다.
아니, 그전에 코슈트가 사회주의자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돌아가면 한번 알아봐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무언가 축축한 것이 바지를 적셨다.
“아!”
고개를 다시 돌려보니 시씨가 당황하며 나와 커피잔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이렇게 하려던 건 아닌데……. 갑자기 일어나셔서…….”
조금 전에 그 커피가 내 바지를 축축하게 적셨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은 마치 바지에 오줌을 지린 게 아닌가 의심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회주의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바지에 오줌을 지리는가 말이야?]
* * *
제국 내에서 황제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헝가리에서 일어난 반란을 손수 진압(?)했을 뿐만 아니라 이어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적들을 물리치고 폴란드 땅을 얻어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경제발전에도 힘써 사람들의 빵에 싸구려 버터라도 바를 수 있게 해줬으니 다들 황제를 지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황제 폐하께서 아이들의 교육에도 관심을 보이시며 새로운 교육단체를 만들었다 하니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에게 아무 탈이 없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출생신고를 하지 않거나 세금 문제로 숨겨졌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러므로 그 아이들을 새로운 행정체계에 편입하려다 보니 기존의 인력들에 과도한 업무가 쏟아지는 듯합니다.”
“그래서?”
“예?”
시씨와의 짧은 휴식을 끝내고선 집무실로 돌아온 뒤부터 지금까지 눈도 못 붙이고 일만 하고 있었다.
당장 내 옆에는 내 결제를 기다리는 서류만 마쳐 한 대 정도의 분량이었다.
“그런데 나 보고 뭘 어쩌라는 건가?”
“그……. 새로운 인원을 확충하는 것이…….”
“안 돼 지금 예산안이 얼마나 빡빡한데, 여기서 인건비를 추가하면 재정적자야.”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경제발전에 열을 올릴 때야 일부러 재정적자를 유발하면서 망가진 산업을 끌어올렸지만 그걸 오래 유지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전쟁도 끝나고 제국경제도 얼추 궤도에 올랐다고 생각하여 재정적자를 큰 폭으로 줄였다.
덕분에 잠깐 경제가 삐끗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별 탈 없이 잘 굴러가고 있었다.
경공업을 중심으로 산업적 토대를 마련하여 천천히 제조업을 굴리다가 기회가 되었을 때, 공격적으로 중공업을 육성하여 서방과의 격차를 뒤집어야 했다.
“그러려면 지금은 허리띠를 졸라매야지.”
“하지만 그리되면 일선의 인원들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너무 커질 텐데…….”
“다들 그 정도는 각오했으니 공무원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제국에서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
황제인 나는 말할 것도 없었고 라이너 대공과 내각의 장관들도 믹서기에 들어간 과일처럼 갈려 나가고 있었다.
그뿐인가?
지방의 총독들과 지방관 또한 나의 집중감시 속에 쉴 틈 없이 갈려 나가……. 아니, 일하고 있었다.
“그들의 노고를 깎아내린다거나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네, 지금은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는 뜻일 뿐이야.”
“아, 예…….”
“지금 중요한 것은 행정력을 더욱 확충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이지.”
서류상에 등재되어 있지 않던 아이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제국의 행정력이 지방 곳곳까지 파고들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필요한 것은 한번 파고들기 시작한 행정체계를 탄탄하게 다져놓는 것이다.
“슈머링.”
“예, 폐하!”
“가서 라이너 대공을 불러오게.”
갑작스러운 내 호출에 제국군을 뜯어고치느라 정신없던 그가 집무실로 불려왔다.
“찾으셨습니까.”
“내각에서 복지부 장관을 선출하고 의회에 사회복지법을 통과시켜달라고 요청하게.”
“예, 알겠습니다.”
라이너 대공은 시원하게 대답하긴 했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그런데 복지가 무엇입니까?”
“자본가들이 제일 싫어하는 거지.”
“잘 못 들었습니다?”
“자네는 못 알아들어도 좋네,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게.”
“……?”
* * *
자그마한 항구도시 가에타를 가득 메우는 거대한 행렬은 전부 로마공화국과 그들의 동맹인 베네치아-롬바르디아 왕국에서 보내온 것들이었다.
대부분 함선은 구형 상선과 갤리였고 나머지 군함들도 구식 함선이었지만 양시칠리아의 병사들은 그들을 제지할 능력이 없었다.
“저게 다 무엇이냐!”
“그……. 상선…… 같습니다.”
“전투지역에 왜 상선이 나타나냐는 말일세!”
“어……. 그것이…….”
수많은 함대는 양시칠리아 군대를 무시하며 미끄러지듯이 가에타만으로 들어왔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정황상 저 함선들에는 로마공화국의 병사들과 보급품이 가득 실려 있을 것이 분명했다.
“대포……. 대포를 끌고 와서 저들을 격침해!”
“하, 하지만 전하……. 저곳에는 오스트리아의 함선도 섞여 있습니다.”
“그럼 그놈들만 피해서 격침해!”
잘 훈련받은 포병도 불가능한 일을 시키는 왕자의 말에 휘하 장교들의 속만 바싹 타들어 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함선들은 여유롭게 가에타 항구에 배를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