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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16화 (116/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16화

미덕?

황제 직속의 소년단체 에델바이스 유겐트의 임명식이 열리던 날.

같은 조에 배정받은 카를과 빌헬름은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아, 안녕.”

“안녕.”

둘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지만 평범한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얼마 가지 않아 서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다.

“와……. 그럼 너희 아버지가 목수야?”

“응! 이번에 집을 아주 많이 만드신다고 했어.”

“대단하시네…….”

그렇게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주변이 시끄러워지며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으레 그 나이대 아이들이 그러하듯 다들 무엇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뒤를 따랐다.

“애들이 왜 다 몰리는 건데?”

“죄, 죄송합니다. 폐하! 통제하겠습니다!”

“통제는 무슨……. 애들 다치지 않게 조심하게.”

아이들이 향한 곳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자신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온 것 같은 사람이 보였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고개가 숙어지는 그런 사람 말이다.

물론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황제 앞에서 손을 흔들거나 친구의 등 뒤에 숨으면서 힐끔거릴 뿐이었다.

황제는 그런 아이들에게 웃으며 손을 두어 번 흔들어주더니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에게 물었다.

“여기가 마지막인가?”

“예, 폐하…….”

“후우……. 앞으로는 이런 일을 벌일 때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생각해 봐야겠어.”

“동감하는 바입니다.”

“뭐?”

“아, 아닙니다.”

황제 폐하는 무척 피곤해 보였다.

눈처럼 새하얀 제복과 대비되는 눈가의 검은 화장과 반쯤 풀려 있는 눈은 금방이라도 쓰러져서 잠들 것처럼 보였다.

평소 높으신 분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던 카를은 잔뜩 흥분해서는 빌헬름에게 말했다.

“저분이 황제 폐하래.”

“황제 폐하가 뭐야?”

“음……. 커다란 궁전에서 사시면서 사람들을 보살펴주는 사람이래.”

“그럼 황제폐하는 신이야?”

“그건 아닐걸……? 아니, 맞나?”

빌헬름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어린 그에게는 교회의 신부님이 말씀하시던 하느님과 황제의 차이점을 구분하는 것은 조금 어려운 것이었다.

다만 그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아, 지난번에 옆집 형한테 들었는데 황제 폐하는 우리랑 비슷한 사람이랬어! 그러니까 하느님보다는 낮다고 할 수 있지!”

“우와……. 그럼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는 거야?”

빌헬름의 물음에 카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처럼 되고 싶다고?”

“와-!”

마침 그들의 곁을 지나던 황제가 이 말을 듣고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둘을 돌아봤다.

“참으로 기특하구나.”

황제는 큼직한 손으로 카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그의 모습은 자애로운 아버지와 같았지만 정작 빌헬름의 눈에는 좋은 고기를 골라내는 정육점 아저씨처럼 보였다.

“그래, 너희들의 이름이 무엇이더냐?”

“카를 프리드리히 벤츠요!”

“빌헬름 마이바흐요!”

“벤츠, 마이바흐……?”

황제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웃으며 그들에게 사탕을 건넸다.

“기억해두마.”

* * *

“벤츠, 마이바흐…….”

[아는 이름인가?]

“아는 이름이긴 한데…….”

내가 아는 벤츠와 마이바흐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회사 이름이었다.

[그놈들이 그 회사를 만든 것이겠지.]

“에이……. 설마요.”

저런 꼬꼬마들이 나중에 전 세계를 주름잡는 자동차기업을 만든 슈퍼 공돌이라고?

“말이 되는 소릴 하시지요.”

[이쯤 되면 자네가 일부러 무시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군.]

“어허, 제가 언제 또 그랬다고요.”

[쯧쯧쯧…….]

영감님과 투덜거리고 있으니 몇 걸음 뒤에서 내 눈치를 살피고 있던 슈머링 경이 슬그머니 말을 걸어왔다.

“폐하, 베네치아-롬바르디아의 총독이신 막시밀리안 대공께서 로마공화국에 함선을 지원하여 양시칠리아 왕국과의 전쟁을 도운 모양입니다.”

“내가 시켰던 건가?”

“아닙니다. 아마 자의적인 판단 같습니다.”

“그래?”

내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다는 건 그만큼 현지 사정이 매우 급했다거나 이 정도는 자신의 권한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그리한 것이겠지.

[그놈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로마공화국에서 요청하니 그냥 도장만 찍어줬을 가능성도 있네.]

‘끄응…….’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였다.

지금 막시밀리안의 행동은 이탈리아 내부국가끼리의 문제에 오스트리아가 개입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행동이었다.

안 그래도 프랑스가 호시탐탐 개입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분쟁에 끼어들면 저들이 옳다구나 하고 뛰어들 것이 분명했다.

[저들이 끼어들 만한 여유가 있겠나?]

“나폴레옹이라면 못할 것도 없지요.”

[아니, 내 말은 프랑스에 그럴만한 여유가 있느냐 이 말일세.]

“그건…….”

지난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프랑스가 정확히 어떤 피해를 얼마나 입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적잖은 피해를 보았다는 것은 유럽의 여느 나라들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영감님은 주변 정세로 어림짐작하여 프랑스는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신 것이겠지.

“……그래도 프랑스 놈들이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되잖습니까.”

[허허, 놈들이 직접 움직이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은 아니지.]

“그들이 쓸 수 있는 카드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지금 프랑스가 움직일 카드가 무엇일까.

내 머리로는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오스트리아와 적대적이면서 프랑스에 의존적인 데다가 이탈리아 내부정세에 개입할 수 있는 국가가 딱 하나 존재하잖나.]

“그런 곳이 어디에……. 아!”

사르데냐 왕국.

그놈들이라면 가능했다.

“아……. 그럼 사르데냐가……?”

[나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 같군.]

“으음……. 그럼 큰일인데…….”

로마공화국과 양시칠리아 왕국이 치고받으며 싸우고 있을 때, 사르데냐 왕국이 이 판에 끼어든다면 결국 그놈들이 모든 걸 다 가져갈 것이 분명했다.

원 역사보다 통합의 안정성은 떨어지겠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탈리아반도를 반쯤 통일한 사르데냐 왕국과 프랑스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셈이었다.

[머리 위에는 호시탐탐 우릴 노리고 있는 프로이센이 있고 말이야.]

“아이씨…….”

원래 이웃 국가 간에는 우호적인 관계가 되기 어렵다지만 이놈의 나라는 사방이 적이었다.

[반쯤은 자네가 의도한 것 아닌가.]

“제가 언제요!”

[허허, 경제발전을 하겠다며 러시아놈들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친 것이나 참전하겠다면서 미적지근하게 자국 방어에만 집중하여 서방국가들을 뒤통수친 것은 잊어버린 건가?]

“그거야…….”

러시아는 동방영토를 지키기 위해서는 크게 힘을 빼놓아야 할 필요가 있어 그런 것이고……. 서방국가들 특히 프랑스와 사르데냐는 이탈리아 패권을 두고 대립할 상대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자네 잘못이로군.]

“그럼 이탈리아와 동방영토를 모두 포기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결국, 그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었겠지.]

영감님의 말에 화가 났다.

누구는 오늘내일하는 제국을 살려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데, 영감님은 그런 내 노고를 알아주기는커녕 깎아내리고 있잖은가.

“쯧……. 그럼 이탈리아의 일도 내버려 두렵니다. 로마 놈들 망하든지 말든지.”

[허허, 내 말에 기분이 상했는가?]

“아니거든요? 저 완전 멀쩡합니다.”

[단단히 삐친 모양이로군.]

“아니라니까요!”

돌연 꽥하고 소리를 지르자 옆에서 나를 보좌하던 헨리와 슈머링 경이 화들짝 놀랐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물었다.

“폐하?”

“무슨 일이신지요……?”

“흠흠……. 아무것도 아닐세, 볼일도 다 본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가세나.”

괜히 영감님 때문에 또 나만 미친놈이 됐다.

“폐하의 연설은…….”

“피곤하군.”

“알겠습니다. 그럼 마차를 준비하겠…….”

“오늘은 날도 선선하니 좀 걷겠네.”

“예, 폐하.”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뒤로하며 거리를 걸었다.

산들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걷고 있으니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기도……?

[결국, 자네가 한 행동의 결과가 이것일세.]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그냥 제가 화내는 모습이 보고 싶은 거라면 원하는 대로 해드리죠.”

[허허, 다른 이가 화내는 것을 보고 무엇하겠나? 본인은 그저 자네가 나와 똑같은 길을 걷지 않았으면 하여 일러준 것이네.]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내 물음에 땅에서 불쑥 솟아나신 영감님이 자연스럽게 발맞춰 걸으시며 말씀하시길.

[짐도 처음에 황제가 되었을 때는 오스트리아의 이익만을 앞세워 내 고집대로 일을 벌였지, 그래서 이리저리 다툼도 많았고 실패도 많았어.]

“저는 아닌데요.”

영감님은 한심한 종자를 바라보듯이 나를 돌아보시더니 이내 말을 이어가셨다.

[……무튼 그렇기에 슈바르첸베르크 공작이나 메테르니히 후작, 부올 백작, 브루크 같은 이들과도 사사건건 다투고 그들을 의심하고는 했지.]

“영감님도 참 속이 좁으셨군요.”

[자네만 하겠는가?]

“에이……. 저는 사람 의심하고 그렇지는 않죠. 옛말에 의심할 거면 아예 그 사람을 쓰지 말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내 말에 영감님은 돌연 멈춰서서 나를 유심히 살펴보시더니 이내 피식 웃으시며 허공에 둥둥 떠다니셨다.

[그래, 자네 말이 틀린 것 하나 없네.]

“그렇죠?”

[그렇기에 자네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겠지……. 아무튼 각설하고 그간 자네 행적이 나와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결과가 나왔더군.]

“그렇습니까?”

그것까지는 몰랐다.

애초에 영감님의 과거에는 별로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매일같이 쏟아지는 일감을 처리한다고 바빴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제국의 앞날에는 희망이 생겼지.]

영감님은 확신에 찬 얼굴로 거리를 가리켰다.

[저기 있는 사람 중에 어느 누구 하나 내일을 걱정한다거나 과거를 돌아보며 술에 찌든 이도 없지.]

“그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밤에 잠들면 다음 날 일터에서 갈려 나갈 텐데 술을 어찌 마시며 또 무얼 걱정한다는 말인가?

[거리에 생기가 넘친다는 말을 하는 것이네.]

“그런가요……?”

영감님이 그리 말씀하셨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빈의 거리는 늘 사람이 붐볐고 노점상들은 가판대에 물건을 꽉꽉 채워놓았으며 공장에서 뿜어대는 연기 때문에 공기의 질이 조금 나빴다.

그런데 여기서 생기가 느껴진다고?

[짐이 젊었을 적에는 이렇지 않았다네, 이어지는 전쟁으로 인해 생긴 빚은 일 년 예산의 몇 배였던지라 이걸 갚느라고 모두가 힘들고 어려웠지.]

“그렇군요.”

[그렇게 빚을 어느 정도 갚고 나니……. 사르데냐 놈들과 프로이센놈들이 쳐들어와서 또다시 감당할 수 없는 빚이 생겨버렸고 땅까지 빼앗겼네, 그렇게 제국이 망하기 직전이었으나……. 어찌어찌 헝가리인들과 잘 타협하여 간신히 숨만 붙여놓았지.]

“대단하신 수완이로군요.”

영감님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마치 내 기억 속에 없는 할아버지가 손주를 무르팍에 앉혀놓고 소싯적 영웅담을 들려주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게 어찌어찌 숨만 붙여놓은 제국은……. 내 아들 놈인 루돌프가 죽고 그 뒤를 여야 하는 동생 놈인 막시밀리안과 카를 놈도 죽고……. 페르디난트 그놈도 죽어버리면서 결국에는…….]

한참을 말씀하시던 영감님은 돌연 고개를 치켜드시더니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시며 미소 지었다.

그런 영감님의 눈가에는 자그마한 물방울이 태양 빛을 반사하며 반짝거렸다.

[날이 좀 후덥지근하군.]

“그러게요.”

해가 중천이었지만 슬슬 겨울을 알리는 찬 바람이 골목길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아무튼……. 제국은 그렇게 망했다네, 스스로 불러일으킨 재앙에 집어삼켜져서 말이야.]

“그럼 영감님의 말씀은 지금 제가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니, 내가 그러했다는 말일세.]

“…….”

영감님은 잠시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하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유쾌하게 웃으시더니 내 주위를 빙빙 날아다니며 말씀하시길.

[하지만 그 모든 것에서 해방되니 이리도 자유로울 수가 있나! 하하하!]

“어우……. 정신없어요.”

[자네는 내 기분을 전혀 모를걸세!]

“굳이 알고 싶지는 않네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시는 영감님의 모습에 내 입가도 주춤거렸다.

“그럼 이탈리아 건은 막시밀리안에게 조금 더 힘을 실어주는 것이 맞겠네요.”

[하하하! 그거야 자네의 판단이지.]

“그럼 그리하겠습니다.”

주변국들의 눈치 때문에 당장 이탈리아에 개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같은 이탈리아계 국가인 베네치아-롬바르디아 왕국의 총독인 막시밀리안을 밀어줘서 사르데냐를 견제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들은 내 통치를 받는 곳이긴 해도 오스트리아와는 다른 곳이었으니 말이다.

“골치 아프구먼……. 한 나라에 행정체계가 몇 개야?”

이것도 나중에 한번 싹 뜯어고쳐야 할 것 같다.

“관리하기 쉽게 전부 하나로 통합해야지.”

이미 반쯤은 그리하지 않았던가?

궁전까지 쫙 뻗어 있는 대로처럼 제국의 미래도 탄탄하게 뻗어 나갈 것이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는가?]

영감님의 물음에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제가 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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