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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17화 (117/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17화

사악한 동맹

오스트리아 황제의 예상대로 프랑스 제국의 황제 나폴레옹은 사르데냐 왕국에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충동질하고 있었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프랑스의 영원한 혈맹이자 두려움을 모르는 용맹한 사르데냐 왕국의 군대가 국경을 넘는다면 어떠한 지원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프랑스가 참전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는가.”

“어떠한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고 하셨으니 전하께서 생각하시기 나름이지요.”

“쓰읍…….”

사르데냐의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공수표만 남발해대는 프랑스를 신뢰하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한숨과 고민만 길어졌다.

“잘 들었소……. 황제께 내 안부 전해주시고 다음에 또 만나도록 하지.”

“그리하시지요. 전하, 저희 프랑스는 혈맹인 사르데냐의 결정을 적극 지지한다는 것만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그래 이만 가보게.”

프랑스의 대사가 나가고 에마누엘레 2세는 무척이나 피곤한 얼굴로 카보우르에게 물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우리가 이번 전쟁에 끼어들어야 하겠는가?”

“전하…….”

하지만 카보우르 역시 고민 중이었다.

과연 사르데냐가 이번 전쟁에 끼어들어 얻을 것은 무엇이고 잃을 것은 또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지금 전쟁에 끼어든다면 로마공화국과 양 시칠리아 왕국을 힘들이지 않고 정리하여 불완전하게나마 이탈리아 통일을 완수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사르데냐가 움직일 동안 오스트리아가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지가 문제였다.

에마누엘레 2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렇듯이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

물론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사르데냐를 돕겠다는 의사를 피력했지만, 그들도 영 믿을 수가 없는 것이…….

“지난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큰 피해를 본 프랑스가 어떻게 우릴 도울 수 있겠는가.”

“정작 본토를 침공당한 오스트리아는 멀쩡한 것처럼 보이니 원…….”

분명 원정군만으로 싸웠던 프랑스는 명확한 승부가 나지 않은 전쟁으로 휘청거리는 것이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반면에 오스트리아는 본토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았음에도 이전보다 프랑스처럼 외부활동을 줄이며 골골거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전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독일연방의 각 국가에 사람을 보내 그들의 이탈을 막았으며 내부에서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정권을 교체하고 새로운 정부를 구상하며 여러 가지 개혁정책을 통과시키면서 동시에 새로이 만들어진 의회까지 휘어잡았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고도 과연 오스트리아가 큰 피해를 보았다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자칫 잘못하면 오스트리아가 끼어들걸세, 그렇게 되면 우리는 프랑스를 대신하여 오스트리아와 싸워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지.”

사르데냐의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지난 전쟁 당시에 전대 국왕이신 그의 아버지가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생각했던 오스트리아의 일격에 그대로 무너지는 것을 똑똑히 봤다.

덕분에 나라를 잘 이끄시던 아버지는 한순간에 몰락하셨고, 그 충격으로 목숨을 잃으셨다.

그렇기에 그는 오스트리아를 두려워했다.

사르데냐 왕국의 수상인 카보우르 역시 이러한 왕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섣불리 오스트리아에 맞서 싸우자는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전하, 지금의 사르데냐가 오스트리아와 정면으로 맞서서 승리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 그럼 프랑스의 제안을 거부해야겠지?”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지금이 아니라면 영원히 오스트리아를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으음…….”

카보우르는 지금이야말로 이탈리아 통일의 기회라고 여기고 있었다.

지난 러시아와의 전쟁 이후 오스트리아는 서방에게도 버림받고 독일연방 내부에서는 프로이센과의 대립이 심해지고 있었으니 저들이 직접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는 게 카보우르의 생각이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친다면 우리는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 기회를 기다려야 할 겁니다.”

“으음…….”

“폐하의 현명한 결단을 기다리겠습니다.”

* * *

제국 전역에 기반시설이 깔리니 제국 각 지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었고 지방의 자원이 도시에 있는 공장으로 움직였다.

나날이 새롭게 들어서는 공장들에서는 황제가 고안한 컨베이어 벨트와 분업절차로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되며 연일 수많은 물건을 쏟아냈다.

덕분에 의류나 식료품 같은 생필품의 가격이 가파르게 내려갔다.

“폐하, 지방의 공장주들이 지원금을 늘려달라며 탄원서를 올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것이……. 지금 생필품의 가격이 크게 떨어진 탓에 다들 순이익이 줄었다며 지원금을 늘려달라는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네들 수익이 줄었으니 그 돈을 국고에서 떼어가겠다는 말인가? 허허, 이런 양심을 사탄에게 팔아먹은 작자들을 보았나.”

“폐, 폐하…….”

내 말에 슈머링 경이 화들짝 놀라더니 연달아 헛기침하며 내 언행을 지적했다.

“폐하, 아무리 저희 둘뿐이라지만 행여 다른 이들이 들을까 두렵습니다.”

“그럼 개새끼라고 불러야 하나?”

[자네 말이 틀린 것이 하나 없군]

“폐하?!”

슈머링 경이 당황하며 황제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예의를 설명하고 있을 때, 슬쩍 영감님께 물었다.

‘지금 자본가 놈들 입에 들어가는 지원금을 싹 빼서 막시밀리안을 지원해 주는 것이 맞겠지요?’

[더는 돈 빼내 올 곳이 마땅치 않으니 그것도 한 방법이겠지, 하지만 그리되면 자본가들도 각자도생하겠다며 온갖 꼼수를 쓰지 않겠나?]

‘그놈들이 한다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요.’

[하긴……. 자네 눈을 피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잘 상상이 가진 않는군.]

이 시대의 자본가들이 부정을 저지른다고 해봤자 거기서 거기였다.

이 시대 사람들은 현대인에 비해서 멍청하다거나 어리석어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었고 단지 방법의 차이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현대의 경제법은 인류가 서로 거래라는 것을 시작한 이래부터 쓰인 온갖 종류의 추잡하고 더러운 짓을 겪고 외양간 고치듯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즉, 지금의 자본가들이 행하는 범법행위는 어지간해선 현대의 경제법에 저촉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사회복지 관련 공무원들은 돈과 관련된 문제가 엮일 것이 많았던지라 어지간해서는 이쪽에 대한 것은 꿰뚫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한 국가의 수장으로서 좀 더 품위를 가지시며!”

“이보게 슈머링 경, 그 이야기는 그쯤하고……. 지원금제도를 아예 없애는 건 어떻겠는가?”

“예……? 그럼 자본가들이 반발할 텐데요.”

“그래서?”

내 물음에 슈머링 경이 당황하며 말했다.

“그래서라니요? 현재 정부에 가장 큰 지지세력이 되어주는 자본가들이 반발하며 폐하께 등을 돌리면 국가 경제가…….”

“허허,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그들의 눈치나 보라는 말인가?”

“그런 뜻이 아니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다른 이들과 협상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협상……. 협상이라…….”

소싯적에 협상이라고는 동네 시장에서 콩나물 한 줌을 두고 좌판 아주머니와 침 튀기는 가격협상뿐이었던 나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그건 싫은데.”

내가 황제인데 왜 그놈들과 협상을 해야 하는가?

재벌이건 자본가건 황제가 명령을 내리면 그놈들은 고개를 수그리며 찬성하면 그만 아닌가?

[그건 황제가 아니라 독재자 아닌가.]

‘어차피 그게 그거잖습니까.’

[어허, 명예롭지 않은 독재자와 명예로운 황제가 같다니? 그 무슨 망언인가.]

영감님이 투덜거렸지만 나는 이를 가볍게 무시하며 자본가 놈들을 다스릴 만한 방법을 고민했다.

‘쓰읍……. 하긴 언젠가 이놈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들 필요가 있긴 했어.’

내 기억 속에서 사업한다던 이들은 대부분 목에 한껏 힘을 주며 제 잘난 맛에 살던 사람이었다.

다들 자신들이 일하는 것을 국가가 방해한다고 진지하게 믿는 이들이며 어지간한 사람들은 자신들 밑으로 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적어도 내가 만나 본 사람들은 그러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을 모두 찔러 죽이고 사유재산을 폐지하여 모두에게 공평히 분배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내게 칭얼거리는 저놈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자……. 이걸 어찌한다…….”

“폐하, 적당히 타협을…….”

“타협은 없네.”

잠깐.

타협?

순간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또 무슨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건가.]

‘어허, 사악하다니요? 이 모든 것이 위대한 합스부르크와 오스트리아 제국을 위함입니다.’

[지나가던 개도 안 믿겠군.]

영감님의 핀잔에도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슈머링 경에게 은밀히 말했다.

“내가 기억하기론 지금 헝가리인민당의 당수가 러요시 코슈트라고 들었네, 맞나?”

“그렇습니다만……. 그건 왜 물어보시는지요?”

“좋아! 그럼 당장 그놈에게 사람을 보내서 내가 잠시 보자 했다고 전해주게.”

자본가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첫째가 세금이요 둘째가 노조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쥐고 있으니 이를 적당히 활용하여 저들이 스스로 배를 깐 채로 내 밑에서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들 생각이었다.

[어이쿠……. 제국이 또 사악한 타락의 길로 들어서겠구나…….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는고?]

‘어허,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이젠 황제라는 놈이 하다 하다 빨갱이 놈들과 손을 잡는 건가?! 하……. 말세로군 말세야!]

* * *

전쟁이 끝나는지도 어언 반년쯤 되어가는 시점에 서방의 군대도 모두 철수한 뒤였지만 발칸의 러시아군은 쉽사리 철군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스만군을 견제한다거나 현지에 남아 있는 저항세력을 처리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단지 그들을 움직일 만한 운송수단이나 그들에게 보내줄 보급품이 없기 때문이었다.

“페트로그라드에서는 아무 소식이 없는가?”

“조속한 시일 내에 보급품과 운송수단을 마련해 주신다고는 하셨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거참 답이 없구먼…….”

파스케비치를 비롯한 사령부의 인원들은 어찌 저에게 부대를 잘게 쪼개어 철수시키는 방안도 의논했지만, 도중에 병사들이 탈영할지 모른다는 위험부담 때문에 흐지부지되었다.

결국, 현지의 병사와 장교들은 각자 어떻게든 먹고살기 위해 농사를 짓거나 남아 있는 탄약으로 사냥하러 다녔다.

용맹하게 적을 향해 돌진했던 기병대의 군마는 앞에서 쟁기를 끌었고 전쟁터에서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인 포병대의 커다란 대포는 이따금 축포나 몇 번 쏘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소위님!”

“그쪽으로 갑니다!”

그중에서 사냥에 두각을 드러낸 장교가 있었다.

그 장교는 작은 수레만 한 멧돼지가 코앞까지 뛰어와도 여유롭고, 침착하게 멧돼지의 미간에 총알을 박아넣었다.

“으하하! 소위님이 또 한 건 했다!”

“이게 얼마 만의 고기냐!”

“소위님 만세!”

멧돼지를 쓰러뜨린 장교는 병사들이 희희낙락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느낀 그 감정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갔다.

[병졸들은 전투에서는 용맹하게 적과 마주하며 장교들의 명령에 따라 전투에 임했지만, 일상에서는 농장에서 흔히 보던 농노로 돌아갔다.

이것은 어째서일까?

러시아군의 규율이 엄해서 그런 것일까?

어찌 되었건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전투의 갑갑함보다는 이렇게 자유롭게 웃고 떠들 수 있는 평화가 더 좋은 것 같다.]

그렇게 바위에 걸터앉아 무언가를 끄적이던 장교에게 멧돼지를 도축하느라고 피 칠갑이 된 병사 하나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러고는 장교의 수첩을 뺏어서는 그대로 전우들에게로 내빼며 소리쳤다.

“톨스토이 소위님이 또 고향에 있는 아리따운 영애분께 편지를 쓰신단다!”

“푸하하핫!”

“너, 인마……! 거기 안 서?!”

병사는 글을 몰랐기에 톨스토이의 글이 그저 연애편지라고 여기고는 부대원들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리쳤다.

무식하지만 용감했던 병사는 이후 장교에게 붙들려서는 채찍을 몇 대 맞았지만,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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