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19화 (119/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19화

소비에트?

이 시대 의회라고 하면 다른 국가 의회들은 국왕이나 황제의 입김에 따라 휘둘리는 거수기였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의회는 영국을 제외한 유럽국가 중에서는 의회가 잘 굴러가는 편이었다.

의원들이 스스로 많은 권한을 황제에게 떠안겨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회의 권한을 전부 황제에게 넘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국민, 그중에서도 자기 민족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자기네들에게 이득이 될 법한 법안을 마구 입안했다.

“슬라브인 기본소득세를 도입합시다!”

“저 저 미친 슬라브 돼지들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먼!”

“헝가리 영토 내에 거주하는 인원들은 무조건 헝가리어를 배우는 마자르화 정책을 공식적으로 입안하겠습니다!”

“또 헝가리 놈들이 소수민족을 탄압한다!”

“이건 소수민족 보호법 위반이오!”

의회는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평소에는 험한 말이 오갔지만 그래도 주먹다짐까지 가는 일은 없었으나……. 몇몇 주요쟁점에 대해서는 각자 숨겨둔 주먹 솜씨를 뽐내고는 했다.

“폐하께서 제국의회에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청하셨소이다!”

“새로운 법안?”

“폐하께서 하시는 것이니 다들 찬성 투표합시다.”

“특히 거기 마자르 놈들은 이번에도 찬성과 반대 버튼을 헷갈렸느니 하며 반대 버튼을 누르면……. 재미없을 줄 아시오.”

“그쪽이나 잘하시오.”

시작도 전에 으르렁거리던 의원들은 이내 들려오는 의장의 설명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폐하께서는 그동안 제국 내의 여러 노동자의 처우가 좋지 않은 것에 가슴 아파하시며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보장법과 노동……. 노동법을…… 토, 통과시켜줄 것을 호소하셨소이다…….”

“……?”

“사회보장법은 또 무엇인가?”

“잠깐…… 노동법……?”

독일어에 능숙지 못한 몇몇 의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근처의 다른 의원들에게 묻는 동안 몇몇 의원들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서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오?”

“그건…….”

노동법은 아동노동의 금지와 노동자의 최저급여를 국가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는 것, 그리고 직장 내에서 다친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라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의원들은 이를 듣자마자 당황하며 의장에게 따졌다.

“이보시오 의장,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네.”

“맞소! 폐하께서 사회보장이니 노동법이니 하는 것을 어찌 알고 제안하신다는 말이오?”

“아니, 그렇게 다 퍼주면 남는 것이 뭐가 있소?!”

대다수 의원은 각자 고향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날리던 지주나 자본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노동법이 자신들의 수익에 해를 끼치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채고는 은근슬쩍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폐하께서 정한 일이거늘 어찌 군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다들 따르시지요!”

정작 지난 혁명으로 많은 것을 잃어서 더는 잃을 것이 없는 헝가리계 의원들은 이번 기회에 다른 의원들의 자금줄을 압박할 수 있다는 생각에 황제의 법안에 찬성하고 나섰다.

그러자 얼마 안 가 의회에는 고성이 오갔다.

“아직 폐하께서 주장하신 사회보장법의 내용도 남았으니 다들 자세를 바로 하고…….”

의장이 한숨을 쉬며 다른 의원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지금 그들은 부모가 와서 말려도 말릴 수가 없는 상태였다.

“노동자들은 원래 공장이나 지주들의 자비로움에 살아가는 자들인데, 이렇게 법으로 우리의 자비를 시험하려 들면 누가 회사를 운영하겠습니까?”

“옳소!”

“폐하께서 현실을 모르시는 것이지.”

“아직 젊으신 탓에 혈기가 앞서서 그런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이렇듯이 감정적으로 움직이시어 현실과 동떨어진 법안을 입안하신 것이겠지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황제를 지지하던 의원들이 황제가 입안한 법에 딴지를 놓고 있으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헝가리계 의원들 쪽에서 말이 나왔다.

“허허, 평소에는 폐하의 나팔수를 자처하던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손해가 된다고 충성심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겁니까?”

“참으로 대-단한 충성심이십니다.”

“폐하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면 기뻐하시겠군요.”

대놓고 조롱하는 그들의 모습에 의원들이 잔뜩 흥분하여 고성이 오갔다.

의원들이 흥분해서는 공용어인 독일어가 아니라 각자 주로 쓰는 언어로 떠들기 시작하자 제국의회는 곧 집단적 독백상태에 빠져 버렸다.

각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험악한 얼굴이나 격정적인 어조를 통해 상대가 자신을 모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곧장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반격해대는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천국에 닿으려던 인간들이 쌓아 올렸던 바벨탑이 신의 분노로 인해 무너지고 난 이후의 혼란을 보는 듯했다.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떠들어대며 과격한 어조로 상대를 비난했지만 정작 서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니 이는 소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소음이 쌓이고 쌓인 끝에 결국 의장이 폭발하여 내면에 숨겨져 있던 음감을 떠올려 의사봉을 두드리게 했다.

“그만! 지금 신성한 의회에서 이 무슨 추태요!”

하지만 이미 몇 번이나 말했듯이 제국의회에 소속된 의원들은 제국 내의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된 이들이었다.

그런 곳을 통솔하는 의장 역시 선거로 뽑힌 인물로 보헤미아 출신의 체코인이다.

잔뜩 흥분한 그가 체코어로 의원들에게 예절과 질서를 강조해도 정작 의회에는 이걸 알아들을 사람이 없었다.

“개판이로군.”

그리고 이 난장판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인물이 하나 있었으니…….

“정숙! 정숙하시오! 황제 폐하의 대리인께서 출석하시었소! 모두 정숙하시오!”

“황제 폐하의…….”

“대리인……?”

근위병의 우렁찬 목소리는 한창 누구의 목소리가 더 큰지 대결 중이던 의원들의 귓가에 그대로 내리꽂혔고 다들 조건반사 급으로 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척이나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다들 할 말을 잊었다.

“저, 저자는……?”

“아니, 저놈이 여길 왜……?!”

황제의 대리인은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는 헝가리 제일당의 대표인 이슈트반 세체니에게 다가가서는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로군. 이슈트반.”

“……여기서 코슈트 경을 다시 뵐 줄 몰랐군요.”

“세상사라는 것이 다 그렇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것! 그렇기에 재밌는 것이 아니겠는가?”

“…….”

코슈트는 짓궂은 표정으로 세체니와 인사를 나누고는 천천히 의회 연설대로 향했다.

“저 저 미친 사회주의자가 무슨 일로…….”

“저놈이 황제의 대리인이라고?”

“황제라면 이를 갈던 놈이 이제는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건지 원…….”

“쯧쯧……. 보나 마나 저 빨갱이 놈이 황제 폐하를 옆에서 살살 괸 모양이로군.”

의원들은 그가 지나갈 때마다 한마디씩 덧붙이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지만, 코슈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런 말을 들을수록 더욱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걸었고 결국 연설대 앞에 섰다.

그러고는 의원들을 쭉 둘러보며 한마디 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본인은 헝가리 인민당의 대표이자 위대하신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께서 친히 임명하신 그분의 대리자 러요시 코슈트입니다.”

그러고는 짓궂은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이길.

“그러고 보니 다들 아는 얼굴인데 괜히 자기소개로 시간을 끈 것 같군요.”

“저, 저저…….”

“저놈 끌어내! 당장 끌어내!”

“어디 빨갱이 놈이 황제 폐하를 대표한다고!”

당연하게도 의원들은 반발했으나 코슈트는 익숙하다는 듯이 편안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저는 지엄하신 황제 폐하를 대신하여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불만 사항은 곧 황제 폐하에 대한 불만으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크흠…….”

“흠흠……. 일단 이야기는 들어보지요.”

“맞습니다. 모두 문명인답게 행동하시지요.”

황제의 이름을 언급하니 의원들은 입을 다물며 귀신같이 조용해졌다.

마치 도서관처럼 조용해진 의회에서 코슈트는 언급만으로 입을 다물게 만드는 황제의 권위에 감탄하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은…….”

* * *

“둘째 형님이 편지를 보냈다고?”

“예, 폐하.”

폴란드의 왕이자 오스트리아의 대공인 카를은 여태껏 연락 한번 없다가 돌연 편지를 보내 지원을 요청하는 둘째 형님의 모습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

“허, 여태껏 연락 한번 없다가 도움이 필요하니 내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카를은 크게 분노하며 편지를 내팽개쳤다.

그러자 폴란드의 수상인 차르토리스키가 이를 주워들며 말하길.

“폐하, 감정이란 것은 때때로 왕의 두 눈을 가리고는 합니다. 그러니 군주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철한 이성을 유지해야지요.”

“난 어느 때보다도 냉철하오!”

“그러시군요.”

누가 보더라도 화가 난 듯한 그의 모습에 차르토리스키는 표정 변화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편지를 들여다봤다.

“사르데냐가 이탈리의 일에 개입하여 이것을 막아야 하는데, 자신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니 폴란드군을 빌려달라…….”

“보나 마나 큰형님께 손을 벌릴 처지가 못 되니까 내게 손을 벌리는 것이겠지.”

“황제가 알지 못하게 몰래 일을 벌인다……. 참으로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로군요.”

“뭐?! 자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차르토리스키의 말에 카를 대공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으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제간에 어려운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합당한 대가도 뒤따른다는데 무얼 고민하십니까?”

“폴란드의 군대를 무슨 용병처럼 부리겠다는데, 화가 나지 않는가?”

치기 어린 소년 왕의 말은 폴란드 노인을 미소 짓게 했다.

“허허, 용병이라니요? 이건 동맹국 간의 적절한 상호교류이자 합당한 지원이며 거래이지요.”

“거래는 무슨……. 결국 둘째 형님만 기쁜 일이지.”

“서로 간에 이득이지요.”

사람 좋은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는 차르토리스키에 더는 험한 말을 할 수가 없던 카를은 시선을 돌려 모르는체했다.

그러고는 투덜거리는 어조로 말하길.

“후우……. 큰형님께서는 내게 프로이센을 견제할 군대육성을 주문하셨지 병력을 이탈리아의 분쟁에 보내라고 하신 적은 없네.”

“허허허……. 폐하,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폴란드군의 성과를 확인할만한 전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 않겠습니까?”

“성과를 확인한다고……?”

“예, 그동안 폴란드군은 양적으로는 크게 성장했을지는 모르지만, 질적으로도 성장하였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음…….”

그의 말처럼 지난 일 년간 폴란드군은 한 줌뿐이었던 폴란드군단을 15만 명가량의 정규군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인구수 600만 정도의 국가에서 상비군을 15만 명이나 보유한 탓에 경제가 삐걱거렸지만 다들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문제는 이렇게 급격한 성장을 이룬 폴란드군이 과연 싸울 준비가 잘 되어 있느냐였다.

모름지기 군대는 전쟁만을 목표로 만들어진 비생산적인 집단이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밥값을 해야 하는 것이 군대인데……. 지난 독립전쟁 시기에 폴란드군단은 자신들의 가치를 입증했으나 그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폴란드군은 아직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폴란드의 국왕인 카를 루트비히 폰 외스터라이히는 군대에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고 이는 주변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폴란드의 주적인 프로이센도 겉으로는 폴란드의 군비증강을 경계하긴 했지만 군 내부에서는 신생 폴란드군의 전투력을 낮잡아봤다.

“폐하,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폴란드군의 강함을 유럽 만방에 증명하는 겁니다. 그것이야말로 오스트리아의 황제 폐하께서 구상하시건 것이 아니겠습니까?”

“으음…….”

카를은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어진 수상의 재촉에 결국 마지못해 동의하며 말하길.

“좋아! 대신에 이탈리아로 파견 나가는 폴란드군의 지휘권은 형님이 아니라 폴란드인 지휘관에 맡기는 거로 하겠어.”

“옳으신 판단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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