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20화
제국의 아침?
지난 48년 혁명이 제국을 뒤덮을 때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유럽인은 오스트리아의 종말이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이제 오스트리아의 시대는 끝났고 그들은 유럽의 약소국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떠들었다.
무능한 황제는 혁명을 어찌하지 못했고 이를 진압해야 할 총리는 시민들의 요구에 못 이겨 나라를 떠나야만 했으니 말이다.
거기에 어리숙한 황제가 물러나고 새로이 그 자리를 이은 것은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된 소년이었다.
상황이 그러하니 제국 내에서나 외부에서나 자연스레 오스트리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린 황제는 그 모든 것을 이겨냈다.
고작 열여덟의 나이에 제국의 모든 혼란을 떠안게 된 소년 황제는 강철같은 의지로 자기 뜻을 관철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은 그대로 밀어붙였고 반대하는 사람은 그 누구건 간에 용서치 않았다.
그렇게 헝가리에서 일어난 대대적인 반란을 진압하였고 이탈리아의 영토를 노린 사르데냐를 무릎 꿇리며 아직 제국의 태양이 저물지 않았다는 것을 당당하게 증명해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을 유럽 내 다른 국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만의 힘으로 해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오스트리아의 모습에 다른 국가의 중역들은 아직 제국이 망할 날이 아니었다고 단정 지었지만 몇몇 이들은 이 모든 것을 해낸 황제에게 집중했다.
어쩌면 곧 망할 제국의 운명을 뒤튼 것은 이 소년 황제의 등장 때문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대부분은 카페나 사교클럽에서의 우스갯소리로 넘어갔지만 소년 황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가치를 다시금 입증했다.
그것도 유럽의 강대국 중 하나인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말이다…….
혁명 이후 소년 황제는 무슨 요술을 부린 것인지 침체하고 낙후되어 있던 오스트리아 제국의 경제와 산업을 단숨에 끌어올렸다.
1848년 전 유럽을 휩쓸었던 혁명 이후에 유럽 전체에 드리워진 깊은 불황의 수렁 속에서도 소년 황제가 이끄는 오스트리아는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결과로 오스트리아는 자국을 침공한 러시아를 때려눕힘으로써 자신들의 건재함을 과시함과 동시에 제국이 완전히 부활하였음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
이 모든 것이 단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룬 업적이라 하면 믿겠는가?
* * *
“……이 모든 것을 이룬 것은 우리의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위업입니다! 자, 박수!”
“와아아아-!”
“대단해요!”
황제 직속 소년단체 에델바이스 유겐트의 소양 교육이란 백이면 백 이런 식의 황제찬양 교육이었다.
유겐트에 소속된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고 나면 다들 한 장소에 모여 이런 식의 교육을 받고는 했다.
원래 황제가 기획한 것은 좀 더 다채롭게 활동하며 다 같이 뛰논다는 것이었으나 어째 그가 기획했던 것과는 점점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황제 폐하야말로 제국의 태양이시며 인민들의 영도자이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알겠나?!”
일이 어째서 이리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모두 일어섯!”
에델바이스 소년단을 만들 때, 필요한 것은 단원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교육하고 이끌어줄 단장, 즉 교육자들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몇만 명 정도의 규모가 모일 것으로 예상했기에 황제가 직접 인선을 신경 썼지만……. 상상 이상으로 많은 인원이 몰렸던 탓에 결국 인적자원의 상당수는 ‘검증된’ 인원으로 대체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검증된 인원이란 대체로 아이들을 바른길로 이끌 수 있는 정직함과 그만한 지적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대체로 퇴역군인들이 많이 선발됐다.
그들은 지난 혁명전쟁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활약했던 이들로 황제가 보장해 주는 군인연금으로 충성심을 완전히 충전된 상태였다.
황제에 대한 짤랑거리는 충성심으로 단단히 무장된 장교들은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다뤘다.
군대식으로 아이들을 굴리니 학부모들 사이에서 볼멘소리도 나올 법했지만, 소년단 활동이 끝나면 기운 빠진 아이들이 집에서 잠만 잤으니 부모로서는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아이들이 알아서 힘이 빠져 잠자리에 들고 소년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면 황제의 추천서까지 받으니 어느 부모가 이걸 싫어할까?
그렇게 교사-부모 간의 암묵적인 동의가 생기니 에델슈타인 소년단의 분위기도 점차 강압적이며 절제 있는 작은 군대처럼 변해갔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를 위하여!”
“전진하라! 전진하라!”
* * *
코슈트의 짧은 연설은 의회를 뒤집어놨다.
정확히 딱 두어 마디 했을 뿐인데, 대로한 의원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불만을 드러낸다고 한들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자본가와 지주가 주축이 된 독일계와 보히미아계 의원들이 자리를 뜨자 남은 것은 애초에 별로 가진 것이 없는 헝가리계와 남슬라브계, 그리고 소수민족 보호법으로 임명된 의원들만이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의장, 진행하시지요.”
“……이미 떠날 사람은 전부 떠나버렸는데, 어찌 표결에 부치겠소?”
“그것참 이상하구려. 어차피 의회 정족수에서 3분의 2만 있다면 법안투표를 할 수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크흠…….”
투표로 선출된 의원들이 전부 자리를 비웠지만 그래봤자 여전히 많은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히려 반대표를 던져줄 의원들이 줄어든 탓에 법안 통과는 거의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표결에 부치시오. 의장.”
“으음……. 아직 발언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래요?”
코슈트는 의회를 쭉 둘러보며 물었다.
“추가로 발언하실 분 계십니까? 기왕이면 없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저런 건방진…….”
“내가 발언하겠…….”
코슈트의 도발적인 어조에 발끈한 몇몇 의원들이 손을 들려 하자 그는 곧장 경고했다.
“황제 폐하께서는 일이 지체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분입니다. 다들 이점을 유의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
“의장.”
“……그럼 반대의견은 없는 것으로 알고 바로 표결에 부치도록 하겠습니다.”
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려 하자 코슈트가 이를 말리며 한마디 덧붙였다.
“유기명투표로 진행하시지요.”
“이, 이름을 적으라는 말씀입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이는 의회의 자율권을 크게 해칠 것입니다!”
“허허, 황제 폐하에 대한 충성심을 다시금 확인하자는 것을 그리 말씀하시니 섭섭하군요.”
코슈트의 말에 세체니 이슈트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분노를 터뜨렸다.
“이놈 러요시 코슈트! 이 간악한 악마의 졸개야! 네가 무슨 낯짝으로 의회로 돌아와 폐하께서도 보장하신 의회의 자율권을 헤치려 드는 것이냐!”
“흠……. 이것 참 이상하군요. 분명 의회의 여러 권한을 폐하께 바친 것은 그대들이 아니었습니까?”
“우리가 직접 그 권한을 폐하께 드리는 것과 자네가 폐하의 권한을 휘두르며 우리를 핍박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네!”
이슈트반의 지적에 동료의원들도 동참했다.
“옳소!”
“저 헝가리 놈이 맞는 말을 할 때도 있구나.”
“우리가 자발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것과 당신이 억지로 고개 숙이게 만드는 것은 다르지!”
주위에서 쏟아지는 온갖 야유에도 코슈트는 여유로움을 잃지 않았다.
왜냐면 이런 상황이야말로 자신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왔던 상황이었다.
뜻을 이루려 세태와 야합하여 목표를 향해 다가갔지만 결국에는 시대의 한계를 이기지 못해 쓰러지는 교과서적인 혁명가의 모습 말이다.
그리되면 만국의 혁명가들이 자신을 욕하거나 칭송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자식을 무시하고 목욕했던 이들은 고작 한두 줄……. 아니, 그것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가겠지만 자신은 영원토록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처음에 조국 헝가리로 돌아와 동지들과 혁명을 일으켰을 때는 그저 그런 혁명가로 기억될 것이다.
이후 제국 내부에서 새로운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총리직을 노렸을 때는 흔한 총리 후보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도전을 멈추지 않는 혁명가, 마자르인의 구원자, 노동자들의 친구, 혁명의 기수.’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한 말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 그가 그렇게 만들 것이니 말이다.
“의장! 당장 현안을 표결에 부치시오!”
“헝가리 제일당의 대표로써 감히 의장께 청하건대……. 우리는 러요시 코슈트가 의회에 존재하는 한, 이 표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오!”
“아니, 그것이…….”
괜히 중간에 낀 의장의 처지만 난처하게 되었다.
“표결에 동의하지 않으면 앞선 분들처럼 자리를 뜨는 게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당신의 독선이 싫은 것이지 황제 폐하의 법안이 싫은 것이 아닙니다.”
둘은 팽팽하게 대립했다.
다른 의원들은 그런 둘의 모습을 지켜보며 저들끼리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았다.
“어째 헝가리 놈들은 틈만 나면 저들끼리 싸우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남이 뭐라 하면 귀신같이 들러붙어서 으르렁거리니 원……. 하여튼 유별나.”
“누가 아니했는가?”
“하이고……. 오늘도 일찍 들어가긴 글렀구먼.”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대치를 이어가던 둘의 논쟁은 해를 넘기고 자정이 되어갈 무렵에서야 끝났다.
“그럼……. 찬성 262표 대 반대 3표, 기권 27표로 사회보장법과 노동법은 제국의회에서 공식으로 통과되었음을 알립니다…….”
힘겹게 의사봉을 두드린 의장은 그대로 쓰러져서는 시종의 부축을 받으면서 의회를 빠져나갔고 다른 의원들 역시 흐느적거리면서 돌아갔다.
단 두 명만 빼고.
“무슨 생각으로 돌아온 것이오?”
“돌아오다니? 나는 언제나 여기 있었네.”
* * *
“의회에서 그런 일이 있었대요.”
“그렇군.”
깊은 밤 희미한 촛불 몇 개에 의지하며 약혼녀와 단둘이 저녁 식사를 즐겼다.
은은한 촛불 아래에서 식사하는 것은 나름대로 분위기 있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음식이 안 보이는데…….’
내가 밤눈이 어두운 것인지 아니면 오늘따라 유독 어두워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테이블이 컴컴했다.
그래서 손을 더듬거리며 어찌어찌 식기를 찾는 데까진 성공했는데, 정작 음식이 잘 보이질 않았다.
‘서양인은 밤눈이 어둡다는 게 맞겠군요.’
[그동안 너무 과로해서 그런 것이네.]
‘그렇게 볼 수도 있고요.’
확실히 영감님의 말처럼 지난 몇 주간 좀 무리하게 움직인 것은 사실이다…….
이민자들을 일일이 분류하여 그들을 인구분석표에 집어넣고 그들의 거주지와 일자리, 그리고 기존거주민과 사소한 다툼까지 배려해서 최대한 잘 섞여들 수 있게 제국 전역에 흩어놓았다.
이 모든 걸 나 혼자서 한다고 몇 주 동안 잠도 안 자고 끙끙거렸으니 슬슬 머리에서도 힘들다고 파업한 것이 아닐까?
[쯧쯧쯧……. 그러다가 몇 년 안에 죽을 걸세.]
‘어허, 죽긴 누가 죽습니까? 저 아직 팔팔합니다.’
[곧 죽을 사람처럼 시들시들한데, 팔팔하긴.]
‘아니, 그건 요 며칠 일이 몰려서…….’
그렇게 영감님과 다투다 보니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를 놓쳐서 이리저리 더듬거리고 있었는데, 문득 누군가 내 손을 붙잡았다.
부드러우면서도 말랑말랑한 젤리 같은 느낌에 옆을 돌아보니 그곳엔 내 손을 붙잡고 있는 시씨가 보였다.
“주변이 어두우면 시종들한테 촛불을 좀 더 붙이라고 말씀하시면 되잖아요.”
“어둡기는……. 이 정도면 아늑하니 분위기도 괜찮…….”
“괜찮은 것 같아요? 이렇게 어두컴컴한 곳에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르잖아요.”
“흠흠…….”
시씨는 그리 말하면서도 내 손에 식기를 들려줬다.
“매번 일하신다고 제대로 쉬지도 않으시고 식사는 번번이 거르시니 폐하의 손이 푸석푸석한 것 아니겠어요?”
“손이야 뭐……. 원래 다 그렇지.”
“그리고 이 머리를 좀 봐요. 전혀 정돈되어 있지 않고 제멋대로 나풀거리고 있잖아요.”
“아니 그건…….”
시씨의 잔소리가 이어졌지만, 어머니께서 하시는 것과는 달리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가 나를 신경 써준다는 느낌에 소소한 만족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제가 식사할 때는 책은 놓고 오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 않았었나요?”
“아, 이건 책이 아니라 중요한 정책자료…….”
“지금 그게 중요해요?”
“그건 아니지…….”
지난 사흘간 정리해 둔 정책자료를 대충 집어던지고는 시종들에게 촛불을 켜게 시키는 시씨를 가만히 지켜봤다.
[이제 6년이로군.]
‘으잉? 벌써 그렇게 됐어요?’
[자네는 눈앞만 보느라고 주변을 둘러보지 않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갔네.]
‘아……. 그런가?’
그러고 보니 이전에 입던 옷들을 못 입게 되었다고 어머니께서 새로 맞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6년……. 벌써 6년이네요.’
딱히 이룬 것도 없는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앞으로 군대도 뜯어고치고 행정도 다시 개편하고 그에 따라 내가 움직이기 편하게 법과 의회도 좀 손을 봐야 했다.
지금의 제국은 어찌어찌 급한 대로 억지로 지지대를 세워놓은 오래된 나무 같았다.
이대로 나무가 더 자라려면 더 튼튼한 지지대로 갈아 끼워 줘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나무줄기는 이상한 방향으로 자라버리거나 그대로 폭삭 주저앉을 것이다.
‘어휴……. 어째 일을 처리해도 끝도 없이 새로 샘솟는 느낌이네요.’
[원래 정무라는 것이 그런 것이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에는 다른 곳에서 돌을 빼내어 휘청거리는 곳에 괴어놓는 것에 가까우니 말이야.]
‘그것 말 되네요.’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고 있으니 어느샌가 주변이 밝아지며 그녀가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폐하.”
“응?”
“그런데 저희 결혼은 언제 해요?”
“결혼……?”
“제 마음에 드는 상대가 없으면 결혼하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