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23화
결혼식을 앞두고 브루크 경이 급하게 나를 찾아와서는 온갖 도표와 그래프를 들이밀었다.
“이게 다 뭔가?”
“제국경제지표입니다.”
“흠…… 깔끔한 우상향이로군.”
혹시 칭찬을 받고 싶어서 그런 건가 싶어 웃으며 그의 노고를 치하했다.
“자네가 나를 잘 보좌해 준 덕분에 제국의 미래가 참으로 밝아졌…….”
“폐하, 말씀 도중에 죄송합니다. 이 우상향 그래프들이야말로 제국경제가 저와 폐하의 손을 떠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것이…….”
브루크 경의 설명은 이러했다.
현재 제국경제는 여러 공공사업의 추진과 제국 전역에 새로운 공장단지를 조성하여 일자리를 늘린 덕분에 실업율은 낮아지고 경제는 성장했다.
겉으로는 말이다.
“쉽게 설명 드리자면…… 경제가 사람의 몸이라고 했을 때, 덩치는 전에 없이 크게 성장했으나 그 속을 채워줄 장기와 뼈가 무척 연약한 상황입니다.”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가?”
“……제국의 인민들은 나날이 성장하는 제국경제에 희망찬 미래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브루크 경이 하고자 하는 말은…….
“거품이 끼었다는 말인가?”
“정확히 따지자면 조금 다르지만…… 그렇습니다.”
“흠.”
이건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이 콜레라와 이어진 전쟁과 경제위기로 해롱거리고 있을 때, 우리 제국은 나날이 성장을 거듭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러시아와의 전쟁 도중에도 제국은 퇴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으니 제국의 인민들이 희망찬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에 내가 금태환을 중지시키고 제국의 굴덴화의 가치를 떨어트리고는 채권을 찍어내며 사람들의 투자심리를 자극했으니…….
“거품이 낄 수밖에 없지.”
“작금의 제국경제는 거품 위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형태와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채권발행을 줄이고 긴축이라도 해야 하겠는가?”
브루크 경은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가는 거품이 단번에 꺼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릴 겁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는가?”
“……소신이 감히 폐하께 조언하건대 지금 제국에 필요한 것은 더 큰 시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더 큰 시장의 확보?”
큰 시장이라고 하니 식민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당장 유럽 전통의 강대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두고 한판 붙어야 할 것 같은 상황에 외부로 눈을 돌릴 여유는 없었다.
“식민지는 어려울 것 같네.”
“아, 그건 오해이십니다. 저도 제국의 사정을 잘 아는데 어찌 식민지를 탐내겠습니까?”
“그렇다면…… 독일이겠군.”
“예, 정확히는 독일과 이탈리아, 발칸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 것입니다.”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전부 하나로 묶겠다고?”
독일지역이야 관세동맹으로 단단하게 묶여있었으니 프로이센만 굴복시킨다면 그 넓은 시장이 전부 우리의 것이 되었다.
하지만 발칸과 이탈리아라니?
발칸은 오스만과 러시아가 꽉 잡고 있는 구역이고 이탈리아는 프랑스의 입김을 받은 사르데냐와 인민의 로마를 만들겠다는 로마공화국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곳이다.
그러니까 전쟁터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경제를 논하는 것은 미친놈들이나 하는 짓이다.
“자네 혹시 미친 겐가?”
그동안 업무에 치이다가 드디어 광대가 되어버린 건지 의심하며 그에게 물었다.
“제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또렷합니다!”
“……듣기로는 거의 한 달 동안 집에 못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네만.”
“그렇기에 맑고 또렷한 겁니다! 가족이나 사생활을 전부 내던지고 지난 한 달을 쏟아부었습니다!”
“그, 그렇군.”
확실히 지금 브루크 경의 모습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세렝게티 초원을 어슬렁거리는 사자와 비슷해 보였다.
그에게서 노회한 사자의 카리스마나 위압감보다는 오랜 야지에서의 생활로 지치고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라고 칭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일단은 거기 두게, 이번 주 내로 확인하고 그대를 다시 불러서 자세한 사항을 논의하겠네.”
“감사합니다 폐하!”
“……그리고 자네는 한 일주일 정도 쉬는 것이 좋겠네, 얼굴 꼴이 그게 뭔가?”
“제 모든 것이 제국과 폐하를 위함인데 얼굴이 조금 상하는 것쯤은 각오한 바입니다!”
브루크 경은 군기가 바짝 든 신병처럼 대답했다.
“부담스러우니 그 충성심의 절반 정도만 받겠네, 나머지 절반은 그대의 가족들에게 할애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명령이라면 따르겠습니다!”
“……보통은 가장의 도리라고 부르네만.”
브루크 경은 굳이 안 붙여도 되는 사족까지 붙여가며 현재 경제지표에 대한 꼼꼼한 설명을 덧붙이고 나서야 집무실을 나섰다.
그가 나가자마자 책장 사이에서 영감님이 스르르 흘러나오시며 내게 말했다.
[브루크 경은 충직한 자라네.]
“너무 충성스러워도 부담스럽네요.”
[하하하, 그 말도 틀린 것은 아니지.]
영감님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두 눈은 어딘가 모르게 조금 쓸쓸해 보였다.
[불쌍한 사람 같으니라고…….]
“누가요? 브루크 경이요?”
[음? 아무것도 아닐세.]
“에이…… 영감님 우리 사이에 뭘 또 비밀로 하고 그럽니까? 이렇게 나오시면 저 섭섭해요.”
[크흠…….]
영감님은 한 방 먹었다는 표정으로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씁쓸하게 웃으셨다.
[그저…… 자신이 잘난 줄 알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한 젊은이가 충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면서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워버린 그런 이야기일세.]
“오우…… 어째 영감님의 젊었을 적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새롭고 참으로…….”
[참으로……?]
뭔가 덧붙일 말을 고민해 봤지만 도저히 영감님의 귀에 듣기 좋은 말이 떠오르질 않아 대충 얼버무렸다.
“참…… 대단하시네요.”
[흠흠……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칭찬 아닙니다.”
[알고 있네.]
“…….”
참으로 대단하신 영감님을 뒤로하고 브루크 경이 가져온 보고서에 관심을 돌렸다.
브루크의 도표만 보면 제국의 미래는 먹구름 한 점 없이 창창한 앞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과거 도표를 가져다 대면……?
짜잔!
고작 5~6년 만에 경제 규모가 세배로 껑충 뛴 거품 위에서 수영 중인 제국이 뿅하고 튀어나왔다.
좋은 소식이긴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 지금 제국에서 금태환을 중단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제국의 경제기반은 금본위제다.
금본위제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시중에 돌아다니는 화폐가 일정량의 금으로 만들어지거나 그 가치를 금으로 보장받는 경제체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금본위제의 장점은 안정적인 통화수급으로 물가를 안정시키고 화폐가치가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단점으로는 금이라는 것이 도깨비방망이를 슉 휘둘러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채굴해서 쓰는 만큼 채굴량이 경제규모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시 금태환을 멈추고 돈을 찍어냈지…….’
숨통이 넘어가던 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나는 자금을 수급하기 위해 살짝 꼼수를 부린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대규모 채권을 들여오는 척하며 제국경제가 숨을 돌린 것처럼 보이게 한 뒤에 열심히 돈을 찍어내어 자금을 끌어들였다.
말이 쉽지 모래성을 크게 쌓아올린 것에 불과했다.
[아랫돌을 빼내서 다른 곳을 받치는 것이로군.]
“이쯤 되면 하나의 예술이라고 해도 되죠.”
[그래, 그건 자네 말이 맞네.]
지금까지는 혁명과 전쟁 덕분에 이러한 문제들이 잘 부각되지 않았지만 이젠 유럽에 평화의 비둘기가 내려앉으려 했다.
그렇게 되면 제국의 부실한 경제가 다시 말썽을 일으킬 테니 브루크 경의 말처럼 대책을 세워야 했다.
“시장의 확대…….”
말은 쉽지만 어려운 일이다.
현재 오스트리아의 제조업은 아무리 높게 쳐봤자 러시아와 경쟁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가 저 멀리 앞서나간 영국과 프랑스를 당장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일단은 국내 생산분의 대다수는 보헤미아와 헝가리에 떠넘기면서 어찌어찌 돌아가고 있으니 괜찮고, 이탈리아도 로마 놈들과 거래하며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데…….”
[문제는 독일지역이지.]
“끙…….”
독일 지역은 프로이센 놈들이 관세동맹이란 것을 만들어 독일 내의 여러 소국들을 끌어들였다.
제국도 여기에 끼어들 수는 있었지만 오스트리아 특유의 보호무역과 당시 수상이었던 메테르니히의 반대로 그러지 못했다.
덕분에 프로이센 놈들은 다른 독일국가들은 꿈도 못 꾸는 물건들을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팔아치우며 자국의 산업을 육성했다.
즉, 보헤미아와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독일 전 지역이 속된말로 프로이센놈들의 나와바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여기서 문제.
남의 구역에서 내 물건을 팔아치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우리도 관세동맹에 끼어들어야지.]
“당연히 놈들과 한판 붙어야죠.”
[?]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는 서로를 돌아봤다.
[이런 미치광이 전쟁광을 보았나.]
“어허, 그냥 한 대 쥐어박으면 잘 끝날 일을 왜 굳이 돌아가려 하십니까.”
[지금 굳이 전쟁을 벌일 필요도 없잖은가!]
“이쪽에서 먼저 숙이고 들어갈 필요도 없죠.”
[어허, 자네의 말 한마디에 수만 명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잊었는가?]
영감님의 잔소리에 시동이 걸렸다.
[자네는 한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일세! 제국의 인민들은 자네의 인도에 따라 불구덩이로 뛰어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이야!]
하지만 나라고 아무 생각 없이 전쟁을 벌이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프로이센 놈들과는 한번 붙어야 합니다.”
[그게 굳이 지금일 필요는 없잖은가.]
“아뇨. 지금이 기회입니다.”
[지금 이탈리아의 일로 프랑스와 대립각을 세웠는데, 여기서 프로이센까지 끼어든다면 전선이 둘로 늘어나게 되네!]
“그렇기에 지금 프로이센을 밟아야죠!”
내가 고함을 지르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며 한스와 병사들이 들어왔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무탈하니 돌아가게.”
“하지만 안에서 소리가 들렸는데…….”
“돌아가라고 했네.”
한스 때문에 잠시 대화가 끊겼으나 영감님이나 나나 여기서 논쟁을 끝낼 생각은 없었다.
한스의 개입 때문에 대화가 한번 끊겨서 그런지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차분해졌다.
“흠흠…… 제가 말씀드리고자 한 것은 프랑스와 본격적으로 한판 붙기 전에 프로이센을 짓밟아놓자는 뜻이었습니다.”
[허, 그저 한번 숙이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이네.]
뭔가 이상했다.
평소의 영감님이었으면 이쯤에서 못 이기는 척 내 의견을 들어줬을 텐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영감님, 무엇이 그리 두려우신 겁니까?”
설마 영감님이 프로이센을 두려워하는 걸까?
[……본인은 그 무엇도 두렵지 않네, 이미 죽은 몸인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지금 제 눈에는 프로이센의 침공에 벌벌 떠는 영감님이 보이는데요.”
[누가 벌벌 떨었다고 그러는가! 짐이 그 악독한 프로이센놈들에게 패했다고는 하지만 그놈들도 감히 짐을 어찌하진 못했네!]
“그렇죠. 그래서 묻는 겁니다.”
프로이센을 치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영국과 프랑스의 견제로 프로이센이 휘청거리고 독일지역의 여러 소국들도 의심 어린 눈초리를 보내며 우리에게 의했다.
아직 군부개편이 덜 끝나서 군 내부가 혼란스럽다는 게 좀 걱정이지만 그건 실전을 통해 차근차근 쌓아나가면 그만이다.
[자네는 자네의 위치가 어떤 자리인지 모르네.]
“후…… 또 그 이야기이십니까? 영감님, 제 말 한마디에 수많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쟁터에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선 병사들도 만나봤고 수많은 전쟁을 지휘하며 중압감도 느껴봤다.
그렇기에 지금 프로이센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싸우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영감님은 이런 내 마음도 모르시는지, 아니면 머리에 열이 뻗치신 것인지 성을 내실 뿐이다.
[자네는 아무것도 모르네!]
“제가 뭘 모르는데요!”
[자네는 근본부터가 틀려먹었어!]
“예, 그러시겠죠. 그럼 근본 넘치시는 영감님은 얼마나 잘나셨기에 제국을 말아먹고 유령이 되셨답니까?”
마지막 말을 내뱉고 아차 했다.
영감님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지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한마디 하셨다.
[……몹쓸 놈 같으니.]
그러고는 집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하…… 씨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