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24화 (124/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24화

프란츠 요제프 1세.

이름이다.

그리고 묘비명이기도 했다.

홀로 빈의 삭막한 밤거리를 거닐며 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훑어봤다.

저마다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그라들지를 않았다.

연인들은 사랑을 속삭였고 아이들은 장난기 가득한 개구쟁이 같은 행동과 말로 부모를 기쁘게 했으며 누군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서둘렀다.

거리는 사랑으로 가득 찼건만 거리를 걷는 노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참으로 고단하구나.”

벤치에 걸터앉아 지나가던 사람을 구경하던 노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거리의 어느 누구도 그에게 관심 주는 이 하나 없었다.

노인은 쓸쓸하게 자리를 지킬 뿐이다.

“그놈도 참…… 어째 나이를 먹을수록 느는 것 고집뿐이니 녀석을 두고 내 어찌 떠날 수 있겠나.”

노인은 공연히 누군가를 욕했다.

그놈이 딱히 미워서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잘 생각해 보니 얄밉기도 했다.

그동안 분명 자신이 직접 조언을 해줬음에도 한 번을 들어 처먹질 않고 제 뜻대로 일을 벌이는 것에 지치기도 했다.

“후우…….”

노인은 한숨을 쉬었다.

매번 떠나겠다고 결심을 하고서는 돌아서면 괜히 걱정되어 망설이며 이도저도 못했다.

“어르신, 무슨 고민이 그리도 많으신지요.”

“으음……?”

노인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부른이를 봤다.

어딜 보더라도 이제 막 부모의 손을 떠나 학교를 다니는 것 같은 어린 소년들이 자신을 걱정스럽다는 듯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몸이 불편하신 건가요?”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법을 잊어버리셨나요?”

두 소년은 귀찮을 정도로 노인에게 들러붙어서는 이리저리 말을 걸어왔다.

“허…… 너희 둘은 내가 보이는 것이냐?”

“예? 당연하죠……?”

“이 할아버지 머리가 좀 아프신가 봐.”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냐!”

노인은 투닥거리는 두 소년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을 살폈다.

타인을 파악할 때는 그 사람의 옷이나 행동거지를 파악하라던 어머니의 가르침이 이젠 그의 버릇이 된 것이었다.

‘세탁도 잘 되어 있고 흠이 없는 말끔한 제복이로군…… 옷깃에 저건…… 에델바이스 자수인가?’

말이 제복이지 일상복보단 군복에 가까워 보이는 옷의 모습과 나름 규율이랄 것이 잡혀 있었다.

‘군인 집안의 아이들이로군.’

대충 계산을 끝낸 노인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소년들에게 물었다.

“지금 본인은 잠시 세상살이에 지쳐 쉬고 있을 뿐이니 너무 걱정 마시게들.”

“아뇨! 교관님께서도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보면 언제든 도움의 손길을 내밀라고 했습니다!”

“맞아요! 도움의 손길!”

“허허…….”

노인은 자신에게 엉겨붙어서는 난리법석을 떨어대는 소년들이 조금 귀찮았지만 얼굴에선 미소가 떨어지질 않았다.

“본인은 건강상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쓰여 이곳에서 쉬고 있는 것일 뿐이니 우리 귀여운 신사분들께서는 그 마음을 접고 이만 돌아가시는 게 어떻겠나들?”

“엇…… 안 되는데…….”

“교관님이 다른 사람을 도우랬는데…….”

노인의 말에 소년들은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럼 가족분들이 오기 전까지 저희가 같이 있어드릴게요!”

“맞아요! 어차피 지금 캠프에서는 또 힘든 훈련을 하고 있을 테니까 안 가는 게 나아요!”

“허허허…….”

노인은 자연스레 자신의 옆자리에앉는 소년들이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다들 몇 살인고?”

“여덟 살이요!”

“열 살이요.”

“그래, 참으로 좋을 때로구나.”

노인은 자연스레 자신의 옆에 앉아서 빵을 우물거리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제일 나이 많아 보이는 소년이 물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가족은 언제 와요?”

“으음…… 잘 모르겠구나.”

“할아버지는 가족 없어요?”

“…….”

아이의 순수한 질문에 돌연 심장에 대못이 박혔지만 노인은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가족이야…… 있지.”

“오…… 그럼 가족들도 할아버지가 밖에 나와 있는 거 알고 있나요?”

“마이바흐, 이 멍청아! 이럴 때는 우리가 할아버지 손을 잡고 집에 데려다 드려야지!”

“아하! 그럼 할아버지 집은 있어요?!”

“…….”

연달아 가슴팍에 대못을 박는 아이들의 말에 노인은 남몰래 눈물을 훔칠 뿐이었다.

* * *

영감님이 밖에서 개구쟁이들에게 걸려 호되게 당하고 있을 때, 나는 할 일을 내팽개치고 엘리자베트 양을 만나러 왔다.

“늘 그렇듯이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네요.”

“……몰라.”

“누가 또 우리 폐하의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에 돌을 던졌을까요?”

“…….”

그녀의 물음에도 나는 말없이 찻잔을 들었다.

영감님과 싸우는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지만 이번엔 나도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다.

‘고집불통 노인네 같으니…… 내가 무슨 자기 말만 듣는 로봇인 줄 알아?’

물론 나도 오랫동안 제국을 운영해 온 영감님의 노하우나 관록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영감님과 내 방식은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을 뿐이다.

하지만 매번 영감님은 내 의견을 무시하며 자신의 뜻을 밀어붙이셨으니 어찌 다툼이 생기지 않겠는가?

“폐하,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

“흥.”

시씨는 그런 내 마음을 풀어주겠다고 달콤한 디저트를 내 입에 하나 넣어줬다. 덕분에 기분이 좀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짜증이 났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그러시지 마세요.”

“내가 뭘했다고?”

“뭘 하셨으니 이렇게 기분이 안 좋으신 거 아니겠어요?”

“끄응……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아무렴요. 폐하께서 잘못하신 건 없죠.”

시씨는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대공비께서는 슬슬 제 주변 사람들을 자기 사람으로 바꾸려 하시는 모양이에요.”

“어머니가?”

“아무래도 궁 안에서는 자기 사람들만 남겨두고 싶으신 모양이죠.”

“쯧…… 이젠 슬슬 뒷방에서 적당히 여행이나 다니면서 편히 쉬실 것이지…….”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겠거니 했지만 어머니께서는 도통 시씨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

이건 뭐 곧 새로운 가족이 될 사람이 아니라 오랫동안 헤어졌던 부모님의 원수를 대하듯 하시니 괜히 가운데 낀 나만 불편해질 뿐이었다.

“일단 주변 사람들은 당신 원하는 대로 해.”

“그렇게 되면 어머니께서 넘어가실까요?”

“안 넘어가면 어쩔 건데?”

“이런저런 수를 쓰시면서 저를 몰아붙이시겠죠.”

“후우…….”

불행히도 그녀의 말이 옳았다.

이따금 보이는 영감님의 괴팍한 성격이 어디서 온 것인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어머니는 자기주장이 강했고 독선적이다.

궁전 내의 일은 무조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져야 했으며 그리되지 않는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뜻대로 만들려 하는 분이었다.

그런 어머니께서 엘리자베트 양을 거부하셨는데, 내가 억지로 일을 밀어붙인 것이니 어머니께서 그녀를 얼마나 눈엣가시로 여길지는 굳이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골치 아프네.”

“폐하께서는 골치 아픈 정도에서 끝이지만 저는 피가 말리고 미쳐 버릴 것 같네요.”

“……잠깐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게 어때?”

“다녀오면 뭐가 달라질까요.”

“기분은 좋아지겠지.”

내 말에 엘리자베트는 찻잔을 내려놓더니 턱을 괸 채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폐하께서도 같이 가시는 거겠죠?”

“……나?”

“네, 설마 연약한 저 혼자 여행을 다녀오라는 말씀은 아니겠죠?”

“흠흠…… 당연히 아니지.”

물론 그랬다.

하지만 이걸 입 밖으로 냈다가는 앞으로 십 년 정도는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대충 장단을 맞춰줬다.

“뭐…… 당장은 아니어도 한 달 뒤쯤이면…… 아니, 이탈리아의 일만 정리하면 시간이 날거야. 음…… 아마 그럴 거야.”

“그게 정확히 언제인데요?”

“…….”

그건 나도 모른다.

로마공화국이 양시칠리아를 잡긴 했지만 그것이 남부이탈리아를 제패한 것은 아니었다.

나폴리를 빼앗긴 양시칠리아의 지도부는 시칠리아로 도망쳐서 프랑스의 헬프콜을 날려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부의 대립은 점점 심화되고 우리쪽에서 로마로 보내는 지원금도 줄어들었으니 저들 입장에서는 아주 죽을 맛이겠지.

그래서 이게 언제쯤 끝나겠느냐고 물어본다면…… 나도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씨는 제국의 지배자의 대답이 아니라 순수하게 내 개인적인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건 그녀가 국제정세를 모를 정도로 순진하다거나 눈치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내 반응을 살피고 싶은 것이겠지.

차가운 궁전에서 그나마 자신의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나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나는 최대한 그녀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빠르게 손볼 수 있는 기간을 언급해야 했다.

“……2주 정도?”

“흐응…… 저도 이것저것 준비할게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겠네요.”

아무래도 이게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아, 하세요.”

“으음…… 보는 눈이 많아.”

“아.”

“…….”

이쯤 되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때요?”

“달콤하네.”

“그럼 나중에 또 봐요.”

시씨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후원에 나를 남겨두고는 자리를 떴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서 나는 홀로 티타임을 즐겼다.

“머리 아프네.”

이럴 때는 산책이 제일인데 말이지…….

헨리도 그런 내 눈치를 살핀 것인지 슬쩍 다가와서는 내게 말했다.

“오늘은 날이 선선하니 밤늦게 돌아다니셔도 아무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그럴까 그럼?”

역시 헨리는 최고의 보좌관이다.

* * *

요즘처럼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프로이센의 일로 머리가 아플 때는 갑갑한 궁전을 벗어나서 밖을 돌아다니는 게 좋았다.

이러면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느껴지게 만드는 보고서를 볼 필요도없고 답답한 소리나 늘어놓는 신료들과 씨름할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사람이 많군.”

“슬슬 퇴근시간이 겹쳐서 그런 것일 겁니다.”

“흠…….”

끝이 보이지 않는 마차 행렬과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를 보고 있으면 그동안 내가 했던 것들이 헛된 일은 아니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책상 위에서는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숫자와 온갖 도표를 밤낮없이 눈이 빠져라 들여다보며 도장을 찍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가 크게 실수한 것은 없는 듯했다.

벤치에 앉아 헨리가 사 온 맥주를 병째로 홀짝이며 사람들을 구경하며 각자의 사연을 지레짐작해 봤다.

‘저기 급하게 뛰어가는 사람은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병자를 병원에 입원시킬 정도로 집이 부유하지 않아서 급하게 약을 사 가는것일 수도 있겠군…… 나중에 의료 건으로도 한번 손을 대야겠어.’

‘저기 노점상 놈들은 세금을 제때 내는 거겠지? 나중에 한번 단속하라고 해야겠어.’

‘노인들은 할 일도 없고 집에 있으면 심심해서 그런지 공원에 많이 모여있군. 저들을 따로 활용할 만한 방법이 뭐가 없을까?’

조용히 맥주를 홀짝이며 주변을 구경하고 있을 때, 굉장히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양 옆에 개구쟁이들을 끼고서는 곤란하다는 듯이 웃고 있는 노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허, 어디 멀리가나 했더니만…….”

“폐하?”

“잠깐 있어 봐.”

마시고 있던 맥주병을 헨리에게 맡기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을 향해 걸어갔다.

“영감님, 여기 계셨습니까?”

“…….”

나를 본 영감님의 표정이 제법 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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