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128화 (128/129)

망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128화

한 국가를 다스리는 황제와 지배계층을 모조리 단두대에 보내버리고 싶어 하는 사회주의자가 만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 거기 음식이 괜찮았지요. 저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이따금씩 홀로 가기도 합니다.”

“거기 셰프가 황궁에서 은퇴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인데 비프 스테이크를 기가 막히게 잘 굽더군.”

“오…… 그렇습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대충 몇 마디 섞어보니 생각보다 대화가 잘 통했다.

“……그래서 제가 딱 그들에게 이리 말했지요.”

“뭐라고 말했는가?”

“열매가 썩으면 나무에서 떨어지려고 바람이 불기만을 기다릴 뿐이지요! 이리 말했지요.”

“크으으으…….”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코슈트는 불안한 눈빛으로 이쪽을 힐끔거리기만 할 뿐.

좀처럼 대화에 끼질 못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온 블랑이라는 친구는 그런 건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지금도 신이 나서는 자기 이야기만 신나게 떠들어댔으니 말이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 보건대 지금 이 나라, 아니 전 유럽에 필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권리와 그에 맞는 일자리입니다!”

“오…… 그건 나도 동감하는 바이네, 하지만 다른 유럽국가와 비교하면 이곳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 아닌가?”

“물론 오스트리아 정도면 노동자들의 일자리 확충에 노력하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보입니다.”

“부족한 점?”

바흐나 브루크, 슈메를링을 아무리 닦달해도 들을 수 없는 현장의 목소리에 관심이 갔다.

“예, 지금의 정부는 일자리의 총량을 늘리는 데만 급급하여 정작 이 일자리를 순환시키는 사회전반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오…… 아주 신선한 지적이로군.”

여지껏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의 지적에 화가 나기보다는 여러 가지 의미로 흥분했다.

“그, 그럼 어찌해야 좋겠는가?”

오죽했으면 말까지 더듬을 정도였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지난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혁명 이후에 그곳의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임시위원회가 수립되었습니다.”

“그래, 자네가 그 위원회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다고 했잖은가.”

“예, 저는 프랑스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이 불안정한 고용시장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이를 감시할 만한 기관이 필요하다고…….”

그 뒤로 프랑스인 루이 블랑의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독특하면서도 발음이 뭉개지는 특유의 프랑스 억양에 중간중간 프랑스어까지 섞어서 말하는 바람에 이해하는 게 어려웠지만 내용은 이러했다.

“그러니까 노동부를 설립하여 자본가들을 감시할 기구를 두어야 한다는 말이로군.”

“예, 그렇습니다.”

“흠…… 하지만 그 정부기관이 자본가들과 붙어먹을 수도 있잖은가? 거기에 정부에서 너무 시장에 개입한다고 이래저래 말이 나올 테고.”

내 지적에 그의 두눈이 희번뜩하더니 이내 조용히 탄식하며 내게 말하길.

“아…… 미처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긴…… 모든 것은 사람의 일인지라 언제나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고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원래 세상살이라는 것이 그렇잖은가? 다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타인의 어려움에서 눈을 돌리고 이득을 위해서는 다른 이를 절벽으로 등 떠밀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이지.”

괜히 입맛이 쓰다.

이건 맥주맛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입맛이 쓰다.

“허허…… 그런 비관적인 생각을 버리시지요 빅토르 동지! 세상은 넓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많잖습니까.”

“?”

프랑스에서 왔다는 이 빨갱이 놈은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허허 웃으며 내게 말하길.

“조금 전에 동지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세상에는 악한 인간도 존재합니다. 그들은 언제나 앞장서서 다른 이들에게 주목받으며 관심을 끌지요.”

“이보게 블랑 동지!”

코슈트가 나를 가르치려드는 그의 모습에 당황하여 그를 말리려 했지만 나는 웃으며 그를 제지했다.

“괜찮네.”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하지.”

프랑스 놈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웃는 낯으로 말을 이어갔다.

“악이라는 것은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수많은 평범하고 선한 이들의 공포과 두려움을 빨아먹으며 덩치를 불려갑니다. 그들이 세상에 퍼뜨린 악의와 공포는 선한 이들을 천천히 자신의 색으로 물들여 새로운 악을 만들어내지요.”

“결국에는 내 말이 옳다는 것 아닌가.”

“아닙니다. 이렇듯이 악한 이들이 판치는 세상에도 내면의 선함을 믿으며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하기에 이 사회가 이렇게 굴러가는 것이지요.”

“내면의 선함? 요즘에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네만.”

그런 게 있었다면 내가 한창 기관에서 일할 때 봤던 그 수많은 사람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 중요한 것은 돈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추해지며 악독해진다.

그게 내 결론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온 사회주의자 루이 블랑 씨는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개인적으로 빅토르 씨가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 이야기를 조금해도 될까요?”

“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여기 온 것도 코슈트가 내 돈을 허투루 쓰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려 온 것이었다.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았잖은가.]

영감님은 사회주의라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기에 빨리 돌아가자며 나를 채근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으니 블랑은 내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입을 열었다.

“제가 태어났을 때는 아직 나폴레옹이 전 유럽에 자신의 이름을 호령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의 어리숙한 형이 다스리는 마드리드에서 태어났지요.”

그의 삶도 참으로 기구했다.

제국의 고위공무원이었던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나폴레옹이 몰락함과 동시에 모든 기반을 두고 스페인을 떠나야 했고 이로 인해 그의 아버지는 크게 낙심하여 삐뚫어졌다.

전근대의 여느 가정이 그러하듯이 그도 서서히 히스테릭하게 변해가는 아버지에게 시달렸고 어머니 역시 그의 편이 아니었다.

결국 그의 나이 19세쯤에 아버지는 완전히 미쳐 버렸다. 루이 블랑은 대학을 그만두고 형제와 함께 가족을 책임지고자 파리로 떠났다.

빛의 도시라고 불리는 파리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서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밤에는 필사를 하며 근근이 살아갔던 그는 운 좋게 아버지는 지인 덕분에 가정교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이 쌓여오던 차에 그의 인생을 바꾼 한 사건이 있었다.

“여자에게 차이기라도 한 건가?”

“예? 하하하…… 아쉽게도 여인을 만난다거나 할 시간적인 여유는 없더군요.”

“그래? 프랑스인은 눈이 뜨고 심장이 뛰면 애인을 찾느라 바쁜 줄 알았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는지 의뭉스럽군요.”

[역시 자네는 입만 열면 사람을 화나게 하는…….]

아무튼 루이 블랑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어느 날 기관창 생산공장을 며칠 동안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직원도 600명쯤 되는 커다란 공장이었지요…… 그런데 제가 그곳에 처음 가서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웅장한 공장의 모습에 절로 압도되었나?”

“아뇨.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노예만도 못한 모습으로 착취당하는 모습이 마치 옛날 제 모습을 보는 것 같더군요.”

“그렇군.”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왕정복고를 외치면서 강력한 왕권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던 청년을 사회주의자로 바꿔놓다니…….

이건 마치 피망을 먹기 싫다던 아이가 동물의 왕국을 시청하고는 육식이 싫다며 생으로 피망을 씹어먹는 기적에 가까웠다.

“망할 자본가 놈들…….”

“그렇지요. 하루에 서너 시간 고작 자면서 아침에 일어나기 싫다고 눈 비비는 자식새끼 뺨을 후려치며 억지로 깨워 일터에 보내는 부모의 찢어지는 마음을 보고 있노라면…….”

그는 돌연 자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쿵쿵 쳤다.

“이곳이 아려옵니다.”

“그렇군.”

“이것이 내면의 선함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날 때부터 가슴 속에 저마다의 선함을 안고 살지요. 하지만 이 세상이 각박하여 그것을 쉬이 꺼내지 못하게 하나…… 그것이 영원하지는 않은 법입니다.”

그걸로 끝이었다.

블랑도 내 소매를 놓아줬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궁전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말이 조금 섬찟하지 않은가?]

“뭐가요? 설마 저놈들이 대대적으로 봉기라도 할 것 같다. 뭐 이런 말씀이십니까?”

[못할 것도 없잖은가. 자네 기억을 뒤져보니 그 강대한 러시아도 내부봉기로 무너졌는데…….]

“허, 영감님…… 지금 우리 제국군은 내부 소요사태를 진압하라고 해도 내부에서 명령체계가 꼬여서 궁전 안까지 시위대가 들이닥쳐 제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질 테니 걱정 마십시오.”

[…….]

영감님의 얼굴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하긴 자기도 제국군이 얼마나 개판인지 잘 알고 있을 테니 내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것이겠지.

“농담입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농담이로군.]

“영감님은 조금 아픈 정도로 끝나지만 이렇게 말하는 제 가슴을 찢어집니다요.”

군제개편작업은 생각보다 작업이 더뎠다.

군 내부에서도 갑자기 황제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자신들에게 목줄을 채우려 한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튀어나왔고 원로들도 불만을 내비쳤다.

“쯧…… 당장 프로이센이나 프랑스놈들과 한판 붙어야 할지도 모를 판국에…….”

[이런 걸 보고 흔히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어리석은 놈들이라고 했던가?]

“……그런 말은 도대체 어디서 배우신 겁니까.”

[자네 기억 속을 뒤져보면 정말 재밌더군.]

“아, 좀!”

예나 지금이나 영감님은 무척 호기심이 많았다.

* * *

“무척이나 아름다운 날입니다. 역시 땅이 바뀌면 그 하늘도 바뀐다더니 한 폭의 유채화처럼 푸르른 날입니다.”

“비가 오네만.”

“……프랑스의 태양이신 나폴레옹 폐하께서 이리 중심을 잡아주시니 우중충한 하늘도 맑아 보이는 것이겠지요.”

“그렇겠지.”

오스트리아 제국의 외무장관인 부올 백작은 프랑스제국의 독재자인 나폴레옹과 대면하고 있었다.

그가 황제에게 받은 명령은 단 하나.

[프랑스가 이탈리아의 일에 개입하지 못하게 어떻게든 최대한 시간을 벌게.]

명령은 무척 간단했지만 이를 이행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처음에 그가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나폴레옹은 그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부올은 어찌어찌 황후까지 이어지는 라인을 새로이 개척하여 나폴레옹과 접선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로는 잔머리를 굴려가며 시간을 벌었다.

“지난번에 그쪽 황제가 제안한 이탈리아 회담 건은 어찌 되었는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네.”

“아, 그것이 말이지요…… 저희 폐하께옵서 평소에도 여러 잔병치레로 몸이 편치 않으신데 지난번 헝가리인의 암살시도 건으로 건강을 크게 헤치셨…….”

“그래서 또 회담을 미뤄 달라는 건가?”

“아뢰옵기 송구스럽사오나…….”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부올이 고개를 더욱 깊숙이 숙이면서 말을 돌렸다.

“……조만간 저희 폐하의 결혼식이 진행되오니 그때쯤을 기일로 잡자는 이야기였습니다.”

“결혼식?”

“예, 폐하…… 저희 폐하께옵서 바이에른의 공녀이신 엘리자베트 양과 약혼하여 이제 그 결실을 맺게 되었으니 그날 유럽 각국의 주요인사들이 모일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부올의 혓바닥이 기름칠을 한 듯 매끄럽게 움직이자 얼굴 가득 짜증을 내포하던 나폴레옹이 조금씩 관심을 보였다.

“그럼 우리 쪽에서도 사람을 보내야겠군.”

“예! 제가 초대장은 미리 받아놓겠습니다.”

“음…… 알겠네, 그럼 나중에 그 건으로 또 보지.”

“예, 폐하! 부디 저를 잊지 말고 또 찾아주시옵소서!”

나폴레옹은 여전히 불만족스럽다는 얼굴로 부올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그가 집무실을 나서자마자 나지막이 누군가를 불러들였다.

“에두아르.”

“부르셨습니까.”

“슬슬 오스트리아 녀석들도 이탈리아 놈들의 태만에 질릴 대로 질린 모양이야.”

“그런 듯싶습니다. 실제로 오스트리아에서 로마로 가는 물류량이 크게 줄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턱을 괸 채로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뺨을 톡톡 두들겼다.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고민에 빠졌을 때 나오는 그의 버릇이다.

“우리 쪽도 이탈리아에 개입하긴 힘들겠지?”

“자세한 것은 재무장관이신 비노 경과 전쟁장관이신 필리베르 경을 불러 의논해 봐야겠지만…….”

그는 말꼬리를 흐렸다.

지난 러시아와의 전쟁이 흐지부지로 끝나버려 국내의 불안이 한층 심화된 탓이었다.

쿠데타로 인해 생긴 불만을 전쟁승리로 눌러버릴 생각이었는데…… 생각처럼 일이 잘 풀리질 않았다.

그렇기에 외무장관은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어렵겠군.”

“죄송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그리 생각하지 않겠고.”

“그렇습니다. 지금도 오스트리아의 외교관이 말을 돌리며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 하잖습니까.”

“그렇지.”

나폴레옹은 조용히 웃었다.

기분이 좋아서 웃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웃음이 나와서 웃는 것일 뿐이었다.

여러 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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