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8/83)

7화

“아가씨, 약 드셔야죠.”

윽.

매일 아침 엘리가 가지고 오는 거무튀튀한 색깔의 약을 보니 핏기가 싹 가시는 기분이다.

흠칫 놀라 뒷걸음질 치자, 엘리가 웃으며 내 팔을 붙잡았다.

“꼭 드셔야 해요.”

“시, 싫어!”

“싫어도 안 돼요. 드셔야 아프지 않죠. 어제도 계속 아프셨으면서.”

“안 먹어도 돼! 그거 별 소용 없단 말이야!”

옥신각신 말다툼을 하다가 재빠르게 엘리의 손길을 피해 복도를 뛰어 도망쳤다.

진짜 먹기 싫단 말이야!

왜 몸에 좋은 약은 딸기 맛, 수박 맛이 아닌 건데!

꼭 독극물처럼 생겨서는 알지 못할 건더기들까지 둥둥 떠 있다.

“으! 진짜 싫어!”

그때 모퉁이를 돌다 누군가와 퍽 하고 부딪혔다.

“으악!”

욱신거리는 이마를 문지르며 부딪힌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메이어 오라버니!”

반갑게 부르자 오라버니의 눈이 살짝 커졌다.

오라버니는 복도를 걸어 다니면서도 책을 보던 중이었는지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

“왜 그래?”

“에, 엘리가 저를 죽이려고 그러나 봐요!”

“아가씨, 제가 언제요!”

등 뒤에서 엘리의 억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얄밉게도 메이어 오라버니의 등 뒤에 쏙 숨어서 옷깃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오라버니, 저 좀 살려 주세요. 네?”

“……뭐 때문에 이 난리야?”

메이어 오라버니가 묻자, 엘리는 들고 있던 약재를 쑥 내밀었다.

“아가씨가 약을 안 드시려고 도망가시잖아요.”

“너는 왜 약을 안 먹으려고 그래?”

“……진짜 먹기 싫단 말이에요! 그리고 이제 안 먹어도 돼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메이어 오라버니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정말이에요. 제가 아픈 이유는…….”

말을 자연스럽게 이어 말하다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메이어 오라버니에게 마법을 어떻게 설명하지?

마법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베일리 가문에서 마력이 발현된 사람은 나 하나뿐인데.

“……카, 카이네스한테 물어보면 알아요.”

나는 남주에게 떠넘기기로 결심했다.

유일하게 내 병에 대해 아는 사람이니까. 도와주지 않을까?

“카이네스가 네 병에 대해 안다고?”

메이어 오라버니가 의심쩍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펼쳐 들고 있던 책을 탁 소리를 내며 닫고는 내 손을 잡았다.

“어머.”

나도 모르게 놀라 소리를 뱉었다.

메이어 오라버니는 제뉴어 오라버니보다 대하기 어려웠다. 나이 차는 더 적었지만, 더 어른스럽달까?

낯간지러운 상황에 메이어 오라버니가 손을 죽 잡아당겼다.

“우리 삼자대면을 해 보자.”

* * *

오, 오라버니……! 사, 삼자대면이라면서요!

지금 상황은 삼자는커녕 어머니, 아버지, 제뉴어 오라버니, 메이어 오라버니, 나, 그리고 카이네스까지 모였다.

“곧 페뷰어까지 온다는구나.”

“아, 아뇨!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요…….”

“네 일이라고 했더니 당장 온다더구나.”

어머니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웃으셨다.

아무래도 일이 너무 커지고 있는데?

온 가족의 관심사가 내게 모이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고 다 불러 모았는데?”

제뉴어 오라버니가 팔짱을 낀 채로 물었다.

“그, 그게…….”

살짝 당황해서 말을 더듬자 메이어 오라버니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긴장하지 말라는 듯한 손길이 퍽 다정했다.

“에스타가 아픈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뭐, 뭐라고 했니!”

어머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내게 저벅저벅 걸어오셨다.

평소와 달리 무척이나 놀라신 모습에 괜히 내가 더 걱정되었다.

“어머니 숨 쉬세요. 후하 후하.”

“후…….”

이 집안사람들은 에스타 일이라면 하나같이 격하게 반응했다.

이렇게 사랑받고 살다니.

볼이 살짝 달아올라 멋쩍게 웃으니, 어머니가 떨리는 손길로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래서 왜…… 이유가 무엇이기에…….”

어머니는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에스타가 처음 태어난 날, 부모님은 그토록 염원하던 딸이 태어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그 딸이 개망나니처럼 자라서 온갖 사고를 치고 다녀도, 예쁜 내 딸이라고 감싸고돌 정도로 에스타를 사랑했다.

그 모습을 직접 보니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

‘이젠 내가 에스타니까…….’

어머니의 떨리는 손을 마주 잡고 차근차근 말했다.

“카이네스가 보여 줄 거예요.”

그렇다. 이번에도 남주님에게 떠넘기기로 결심했다.

사랑 가득한 시선을 받는 건 기분 좋았으나 무척 부담스러웠다.

설명하는 데에 재주가 있지도 않다.

상대가 전혀 모르는 걸 설명해야 할 때의 막막함이란.

어머니의 간절한 시선이 카이네스에게로 향했다.

“카이네스, 뭘 알고 있는 거니?”

소공작이라 불러야 마땅하지만 친근한 어머니의 부름이 익숙한 듯 보였다.

그만큼 집안끼리 가깝다는 뜻이겠지.

내가 아무리 개망나니처럼 굴었어도, 카이네스는 착실한 남주였기에 당연히 날 도와줄 거야. 그렇지?

내가 아픈 게 아니라 단순히 마력이 많은 거라고.

이제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아프지 않을 거라고.

마력이라는 걸 가족들은 전혀 모르니 카이네스가 그걸 보여 주기를 바랐다.

“카이네스, 그거 한 번만 보여 줄래?”

아련한 눈빛을 카이네스에게 보냈다.

시선이 딱 마주치자마자 카이네스의 미간에 고운 주름이 생겼다.

이, 이 자식이.

하지만 아쉬운 건 내 쪽이었다.

“하하, 카이네스도 참.”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듯 손을 젓고는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제가 아픈 이유는……. 몸의 문제가 아니에요. 마력이라는 것 때문인데……. 마력이 뭐냐면요…….”

마력이라는 말에 카이네스도 의아한 듯 고개를 까닥거렸다.

귀엽기는.

“마력이란 몸 안에 흐르는 또 다른 기운이에요! 만물에 흐르는 마법의 힘을 마나라고 하죠! 저는 불의 마력을 가졌고, 카이네스는 물의 마력을 가졌어요! 그래서 우리는 서로 완충될 수 있는 거죠!”

자신만만하게 설명을 마치고 자랑스럽게 어깨를 활짝 폈다.

흠흠.

가족들 모두 빤히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무척 부담스러웠으나, 곧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내가 베일리 가문 최초의 마법사가 될 테니까!

“이제 이해하셨죠? 그러니까 약은 제가 아픈 걸 고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그러고는 당당히 선언했다.

“저 이제 약 안 먹을래요.”

마나의 설명부터 마력의 발현까지. 이건 전부 약을 거부하기 위한 발판일 뿐이다.

그 끔찍한 약을 끊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

그런데 가족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어머니는 놀란 듯 입을 틀어막으시며 살짝 어깨를 떠셨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제뉴어 오라버니는 벙찐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고, 평소 표정이 없는 메이어 오라버니까지 놀란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다들 왜 그러는데?’

가족들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던 나는 얼떨떨해하며 카이네스를 바라보았다.

“카이네스, 뭐라고 말 좀 해 봐.”

의자에 차분히 앉아 있던 카이네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달고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 아픈 겁니까? 왜 헛소리를…….”

“허, 헛소리라니?”

“마력이 뭡니까?”

아차, 설마 카이네스도 마력에 대해 알지 못하는 건가?

“그거 있잖아. 네가 어제 해 줬던……!”

말을 다 끝맺지도 못했는데 카이네스가 돌연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이렇게 아프면 말씀을 하셨어야죠……!”

목소리까지 촉촉하다.

뭐, 뭐야?

카이네스가 끌어안았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멍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뭐 하는 겁니까?’

그가 내게만 보이게 입을 뻥긋거렸다.

모두에게 등지고 있는 카이네스의 얼굴을 보는 건 나 하나뿐이었다.

울음기 가득하던 목소리와 다르게 카이네스의 얼굴은 살벌했다.

‘약속을 깨트릴 생각이십니까?’

그가 소리 나지 않게 입을 뻥긋거렸다.

약속? 무슨 약속?

조각난 에스타의 기억을 열심히 더듬었지만 떠오르는 건 없었다.

카이네스는 주변을 힐끗거리며 마지막 말을 뱉었다.

‘저는 도와드리지 않을 겁니다.’

“어……?”

도와주지 않는다는 게 충격이 아니었다.

다른 가족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나에게만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충격이었다.

카이네스는 내 어깨를 토닥이곤 뒤돌아섰다.

“누님이 뭘 착각하셨나 봐요. 꿈이라도 꾼 게 아닌지…….”

카이네스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자, 어머니가 아쉬운 표정을 애써 숨기셨다.

“그래. 꿈이었구나…….”

“아니, 어머니…….”

당황해서 어머니를 붙잡았다.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더 빨랐다.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어깨 너머로 살짝 떨리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스타, 꿈이라도 괜찮아. 네가 나을 방법을 꼭 찾아낼 테니까. 너는 나을 수 있어.”

“어, 어머니…….”

“함께 힘내자꾸나.”

어머니의 진심 어린 말에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어머니의 얼굴에 슬픈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예쁜 내 딸.”

죽을병에 걸린 딸을 보는 어머니의 얼굴은 슬퍼 보였다.

그날의 일은 작은 해프닝처럼 마무리되었다.

* * *

울음을 꾹 눌러 참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달래면서 나를 꼭 안아 주시던 아버지. 헛소리하는 동생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두 오라버니까지.

심지어 첫째 오라버니는 멀리서 지내고 있는데도 당장 달려온다고 한다.

행복하지만 슬프다. 에스타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여기는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치료 방법이 없는 게 아닌데……!

“망할 카이네스……!”

갑자기 카이네스를 향한 원망이 차올랐다.

내가 어려운 부탁을 했어? 그냥 마법 한 번만 보여 주면 될 일을!

부들부들 손을 떨다 문득 방에서 쿠키를 먹던 모습이 떠올랐다.

작은 것 하나에도 신경 쓰고 사람들 앞에서 낯을 가렸다. 원작 속 카이네스는 무척이나 예민한 성격이었는데.

“내가 갑자기 뜬금없는 부탁을 했는걸……. 이유가 있겠지.”

문득 머리를 빗겨 주던 엘리의 손이 멈추었다.

고개를 슬쩍 들자, 엘리는 충격받은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아가씨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응? 이유가 있을 거라고.”

“아뇨. 그전에요.”

“망할 카이네스?”

“네, 그거요. 정말 그렇게 말씀하신 게 맞으시죠?”

“응.”

엘리는 아무래도 내가 카이네스를 진심으로 욕한 것에 놀란 모양이다.

놀란 엘리를 내버려 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에스타의 몸은 늘 더워서 땀이 많이 났다. 너무 찝찝해 씻으려고 엘리에게 부탁하자 엘리는 방을 나가는 내내, 아가씨께서 카이네스 도련님에게 욕을…… 욕을……. 이라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충격적인가?

엘리가 나간 걸 확인하자마자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래도 짜증 나.”

말 한 번 해 주는 게 대수라고?

이중인격처럼 가련한 척하는 모습이 얼마나 재수 없던지.

얼굴이 귀여워서 봐줄 만했지, 아니었다면 이마를 콱 쥐어박았을지도 모른다.

카이네스 때문에 지금 집안에서 나의 이미지는 ‘병약한 막내딸’을 넘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애’가 됐으니까.

이제 사고 한 번만 더 치면 꼼짝없이 정신 병원에 들어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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