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6/83)

15화

“어이, 예비 매제. 벌써 부부 싸움이야?”

“누가 예비 매제에 부부 싸움을 합니까?”

“평소보다 까칠하네. 나도 그런데.”

제뉴어 오라버니는 팔짱을 낀 채 삐딱한 시선으로 카이네스를 바라보았다.

턱을 치켜들고는 불만스러운 시선을 숨기지 않았다.

“내 동생이 청혼했다면서.”

감히.

생략된 제뉴어 오라버니의 말이 눈빛에서 느껴졌다.

없는 말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로맨틱한 상황도 아니었다.

시아버지가 될 공작 앞에서 카이네스를 데려오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저, 저기 오라버니……. 그 얘기를 그렇게 크게 하시면 제가 부끄러운데요.”

“……쯧.”

제뉴어 오라버니는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듯 카이네스를 위아래로 훑었다.

“너는 대체 얘 어디가 마음에 든다는 거야?”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는 목소리였다.

“그거야 잘생겼잖아요.”

“잘생기면 다 좋아? 그렇게 따지면 우리 형이 제일 잘생겼지!”

“오빠랑 어떻게 결혼을 해요!”

“그건 그렇지만…….”

제뉴어는 불만족스럽게 눈살을 찌푸렸다.

“얘가 커서도 잘생겼을지 못생겼을지 어떻게 알아.”

다 알아요. 저는 독자거든요.

나도 모르는 사이 음흉한 미소를 지어 버린 걸까?

날 보던 제뉴어 오라버니와 카이네스 둘 모두의 표정이 살짝 굳어 버렸다.

“……저를 앞에 두고 품평하듯 외모 얘기 하는 거 별롭니다.”

“예비 매제, 너무 까칠하게 굴지 마. 겨우 허락해 준 참이니까.”

제뉴어 오라버니가 능구렁이처럼 굴며 카이네스의 등을 퍽 두드렸다.

“악! 때리면 안 돼요!”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제뉴어 오라버니를 말렸다.

“아픈 거 아냐? 괜찮아?”

“……그냥 조용히 계시면 안 됩니까?”

카이네스는 오두방정을 떠는 내가 부끄러운 듯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다행히 괜찮은 것 같다.

“오라버니! 때리면 어떡해요. 카이네스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요.”

“참 나, 너는 얘가 유리로 만든 것처럼 보이냐?”

제뉴어 오라버니의 눈에 황당한 기색이 비쳤다. 헛기침까지 뱉던 제뉴어 오라버니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사이좋아 보이니 됐다. 나는 간다. 나중에 연무장에서 보자.”

“……네.”

카이네스가 어금니를 꽉 물고 으깨듯 대답했다. 여러모로 부끄러운 것 같았다.

과보호를 안 좋아하나?

하지만 저 몸에 흉이 졌을지, 멍이 들었을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하아…….”

카이네스가 긴 한숨을 내쉬곤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어머!

“뭐야, 부끄럽게.”

전혀 부끄럽지 않았지만, 아양을 떨며 카이네스의 어깨를 주먹으로 슬쩍 장난스럽게 밀쳤다.

그러자 카이네스가 황당하다는 듯 맞은 어깨를 만졌다.

“모르겠습니까?”

무얼?

그 순간 차가운 기운이 몸을 감쌌다. 어제 중화한 덕에 아직 화한 기운이 남아 있어 오늘은 조금 추웠다.

“저는 다쳐도 금방 치료됩니다. 아마도 이것 때문이겠죠.”

카이네스는 제 손을 쳐다보았다. 무덤덤해 보이는 눈동자 사이로 조금 지친 듯한 기색이 엿보였다.

마력이 뭔지 몰라 ‘이것’이라고 칭하다니.

“나중에 네게 큰 힘이 될 거야.”

전쟁에 나갔을 때, 인류 최강이라는 별칭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니까.

전투력 최강인데 방어까지 되니 얼마나 대단한 검사가 될지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하여튼 에스타가 저를 걱정할 이유는 없단 말입니다.”

“하지만 걱정돼. 금방 낫는다고 해서 안 아픈 건 아니잖아. 그동안 아플 거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배로 아플지도 몰라.”

상처가 빠르게 아문다고 해서 몸에 부담이 없는 게 아니었다. 몸이 성장할 때 성장통이 따르는 것처럼 그도 능력을 사용하면 몸에 부담이 간다.

근육이 욱신거리고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누가 제 속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기분이라고도 묘사되었다.

아픔을 느껴 보진 않았으나 간접적으로 알고 있기에 괜히 인상이 찌푸려졌다.

“네가 걱정돼.”

어렴풋이 느껴지는 그의 동요에 미안함이 커졌다.

“그러니까 나랑 결혼하면 안 돼?”

“…….”

“결혼하자. 응?”

카이네스의 손을 잡고 응석 부리듯 살짝 잡아당겼다. 카이네스는 입술을 약하게 깨물고는 대답을 아꼈다.

처음으로 카이네스와 비슷한 열다섯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 큰 몸으로 이러면 무척 징그러울 테니까.

“당신이 절 책임져야 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있어.”

카이네스의 눈썹이 삐딱해졌다.

“네가 날 살리고 있잖아. 네가 없다면 난 죽을지도 몰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반복적으로 뱉던 결혼하자는 말보다 이상하게 더 마음이 간질거리는 말이었다.

이건 거짓 하나 없는 나의 진심이었고, 그렇기에 드러내기 더 부끄러웠다.

“이 마력으로 날 살렸듯, 나도 널 구하고 싶을 뿐이야.”

남주님의 아픔을 보고 싶지 않았고, 지켜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살아야 한다.

이 상황에서 결혼만큼 좋은 핑계는 없어 보였다.

“나랑 결혼하자. 딱 칠 년만.”

성인이 되면 헤어지는 거야.

감동한 듯 말을 듣고 있던 카이네스의 눈이 어째서인지 마지막 말을 들은 순간 푹 꺼져 버렸다.

어째서……?

스무 살, 제국이 정한 제국법상 성인의 기준이었다.

그러니까 그때가 되면 더는 카이네스가 공작의 손아래 있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그도 알고 있을 법했기에 뱉은 말이었는데, 카이네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지금 계약 결혼을 하자는 말씀입니까?”

슬쩍 고개를 끄덕이자 카이네스가 싸늘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는 말도 없이 획 지나쳐 연무장으로 향했다.

파혼하자고 했을 때도, 결혼하자고 했을 때도 한 적 없던 눈이었다.

어휴, 왜 저런담?

“사춘긴가?”

내가 지금 누구 좋으라고 노력 중인데.

나름 윈윈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성에 차는 제안이 아니었나 보다.

결혼 당사자인 그가 반대하니 계획의 모든 것이 멈춰 버렸다.

* * *

카이네스는 성난 발걸음으로 연무장을 향했다.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에스타가 자신을 쫓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문득 발걸음이 멈췄다.

‘왜…….’

마음이 왜 이렇게 분한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만 평소와 달라진 건 에스타 단 한 사람뿐이라는 거였다.

자신을 위해 말하는 모습이 좋았다.

아버지 앞에 나서는 모습도 좋았다.

그런데 단호하게 파혼하자고 하거나, 칠 년 뒤에 이혼하자고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심장 한구석이 바늘에 찔리는 것만 같았다.

이상한 감각에 심장 위에 손을 얹었다.

쿵쿵.

큰 심박수로 뛰던 심장이 도무지 멎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에스타를 싫어했던가?

평소 말을 못되게 하긴 했다. 싫어한다는 말도 종종 하고, 대놓고 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싫어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제 곁에 스스럼없다 다가오는 몇 안 되는 존재니까.

하지만 자신과 엮이면 아버지하고도 어쩔 수 없이 엮여야 했다.

내가 구르는 이곳이 막장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갱도의 끝. 행복하게 자란 누군가가 굳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에스타의 청혼을 거절했다.

그런데 왜 기분이 더러운 걸까.

“짜증 나.”

영문 모를 짜증이 몰려와 평소처럼 무표정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가면을 쓰는 게 무엇보다 쉽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에스타 앞에 설 때면 그 가면이 쉽게 무너져 내렸다.

쉽게 결혼을 입에 올려놓고는 이미 이혼까지 생각한 에스타를 보니 열을 받은 것뿐일 거다.

평소처럼 바보 같은 에스타니까.

“그래. 그런 거겠지.”

잠깐 지나가는 바람일 거라 생각했다.

파혼도, 결혼도, 그리고 이혼도. 에스타의 뜻대로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카이네스는 이때만 해도 알지 못했다.

잠깐 불고 지나갈 바람이라 생각한 것이 알고 보니 거대한 태풍이었다는 걸.

자신은 그저 태풍의 한가운데, 태풍의 눈에 서 있는 것일 뿐이었다는 걸.

* * *

어떻게 카이네스를 꼬시지?

요즘 매일같이 하는 생각이었다. 카이네스의 마음을 바꾸는 것.

결혼은 절대 사절이라며 최근 나를 피하고 있는 탓에 제대로 된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하지…….”

혼자 중얼거리며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워 있었더니, 때마침 방에 들어왔던 엘리가 내 꼴을 보고는 기겁했다.

“아가씨! 치마 입고 소파에 누우시면 안 된다니까요!”

“내 방이잖아……. 누가 본다고 그래?”

“제가 봐요, 제가! 예법을 배우셨으면서 이렇게 누우시면 어떡해요. 이 모습을 부인께 들켰다간 제가 혼난다고요.”

“네가 혼나?”

그럼 어쩔 수 없지.

어기적어기적 다리를 오므리고 조신하게 앉았더니 온몸이 쑤신다.

집에서는 편하게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어떻게 하지…….”

몸이 아픈 와중에도 머릿속으로는 카이네스를 어떻게 꼬실까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미인계? 통할 리가 없다.

에스타의 외모가 객관적으로 예쁘긴 하지만, 카이네스의 눈에는 그저 귀찮은 애물단지1에 불과했다.

협상? 거하게 말아먹었다.

마법으로 날 치유해 주는 대가로 결혼하자고 했더니 마치 쓰레기 보듯 쳐다보았다.

그래, 정말 쓰레기 같은 말이긴 했다만 그렇게 보면 상처라고.

그럼 협박? 그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은데.

안 그래도 이미 몇 번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가족들 앞에서 카이네스가 숨기고 있는 마법을 불어 버릴 뻔했으니.

했다간 카이네스도 내 목숨을 담보로 협박할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 그는 결코 착한 남자가 아니었다.

“그래그래……. 그럼 무슨 방법이 좋을까나…….”

“아가씨, 대체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하세요?”

“아, 들었어?”

“무슨 일 있으세요? 고민이라도 있으시면 말씀해 보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적극적으로 묻는 엘리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

‘카이네스가 내 청혼을 거절했어.’

이렇게 말했다가는 분명 저택이 뒤집힐 것이다.

결혼을 결사반대할지도 모르지.

“아무것도 아냐!”

고민을 털어놓을 생각을 깔끔하게 접고는 눈을 휘어 웃었다. 엘리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곧 침대 정리를 하러 침실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한참 뒤에 방에서 나오며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오늘 밤에 야시장이 열린다는데 아가씨도 가실 거예요? 평소처럼 안 가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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