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6/83)

65화

“너무 예뻐요.”

카이네스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눈앞에 있는 에스타는 늘 예뻤지만, 오늘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온통 푸른, 자신의 페이시아의 색을 두른 에스타가 꼭 제 것인 것만 같아서.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데리러 온 건데 누님께서 이러시면 나가기 싫은걸요.”

“…내가 뭘 했다고.”

카이네스가 한걸음 다가오자 에스타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카이네스에게 좋은 향이 났다. 자신에게서는 나지 않던 낯선 우드 향이었다.

‘향수를 뿌렸구나.’

늘 아이 같은 비누 향이 났었는데. 에스타는 그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가야지.”

조심스럽게 카이네스의 팔을 붙잡았다. 여전히 한쪽 팔에 부목을 댔으면서 아픈 기색이라고는 없었다. 참는 걸까, 아니면 아픔에 익숙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자 에스타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카이네스의 시선이 잡힌 손에 닿았다 떨어졌다.

“싫어요.”

카이네스가 짓궂게 웃었다. 화려하게 생긴 미남이 웃으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갑자기 왜 투정이야.”

“누님이 너무 예쁘잖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싫어요.”

“…나보고는 주접떨지 말라고 했으면서.”

“전 진심인걸요.”

나도 진심이야!

에스타는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또 한 소리 들을 게 분명했다.

카이네스는 어딘가 나사가 나간 눈으로 에스타에게 다가왔다. 머릿속에 적색 경고등이 켜진 건 카이네스의 눈 때문만은 아니었다.

“예쁘다는 말 진심이에요. 눈이 멀어서 장님이 되는 줄 알았어요.”

저와는 결이 다르게 진심이 잔뜩 담긴 목소리며.

“정말 너무 예뻐서. 그래서.”

그는 사랑스러움을 가득 담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스타는 사람들이 기다릴 테니 그만하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에스타가 아랫입술을 꾹 다물고 어쩔 줄 몰라 하자 카이네스가 에스타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단정하게 틀어 올린 머리에 제가 선물한 푸른 머리 장식이 꽂혀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잘 어울리네요. 짜증 나게.”

예쁜 모습을 모두가 볼 거라고 생각하니 배알이 뒤틀렸다.

손으로 머리 장식을 확 빼 버릴까 싶다가도, 에스타의 예쁜 눈망울이 자신을 보며 잔뜩 흔들리는 걸 볼 때면 들끓는 마음이 잠잠해졌다.

“이제 가야지.”

팔을 잡은 에스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쯤 되면 말을 들을 법도 한데 벽으로 자신을 가둔 카이네스가 비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평소에 “네, 누님.” 하며 착하게 굴던 카이네스와는 딴판이었다.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며 카이네스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누님, 제가 드린 마력석은 어쩌셨습니까?”

“저기 탁자 서랍장에.”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카이네스가 마력석이 걸린 목걸이를 가져왔다.

카이네스가 만든 마력석은 푸른색을 거의 띠지 않았다. 창백한 푸른 빛은 빛에 비춰 봐야 겨우 보일 정도로 순도가 높았기에 다이아몬드처럼 보이기도 했다.

“목걸이를 하셔야죠.”

카이네스가 목걸이를 손에 쥐고 말했다.

“목이 허전하잖아요.”

“엘리가 다른 걸 가져온다고 했는데.”

“아뇨. 안 올 거예요.”

카이네스가 픽 웃으며 말했다.

“아까 도망갔거든요.”

“…왔었어?”

“네, 누님과 다르게 누님의 전속 하녀는 굉장히 눈치가 빠르던데요.”

대체 언제 왔다 간 거지? 아니, 그것보다 뭘 본 건데?!

방에 들어와서 쭉 카이네스만 신경 쓰느라 엘리가 왔다 간 걸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얼른. 사람들이 기다려요.”

카이네스가 목걸이를 들고 채근했다.

“사람들이 기다린다면 그건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지.”

아까부터 가자고 할 때는 꿈쩍도 하지 않더니. 에스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흘겼다.

졌다며 뒤돌아서자 목에 서늘한 감촉이 닿았다. 큰 손으로 목걸이를 끼우는 것에 애를 먹는지 카이네스는 한참이고 꼼지락거렸다.

다친 팔은 움직이면 안 되는데.

“내가 할게. 너 팔 아프잖아.”

에스타가 뒤돌아서려 하자 카이네스가 얼른 다른 팔로 어깨를 막았다.

“아뇨, 제가 할게요. 제가 하고 싶어요.”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카이네스는 한쪽 팔로 힘겹게 목걸이 고리를 걸었다.

적막이 찾아왔다. 고요한 적막 속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시계 초침 소리와 카이네스의 숨소리뿐이었다.

괜히 긴장돼.

에스타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카이네스가 얼른 목걸이를 걸길 기다렸다.

“됐어요.”

카이네스의 말에 뒤돌아서려는데 카이네스가 그녀의 몸을 껴안아 당겼다.

“누님, 파티장에 가면 제 곁을 떠나지 마세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내 마력 때문이지?”

말이 끝나자마자 카이네스의 이마가 목덜미에 부드럽게 닿았다.

“아뇨, 제 마력 때문에요. 누님이 너무 예뻐서 자제하지 못할 것 같아요. 지금도 그런걸요.”

카이네스가 뒤에서 에스타의 손을 붙잡았다. 크고 투박한 손을 타고 들쑥날쑥한 카이네스의 마력이 들어왔다.

뒤로 돌자 카이네스 주변에 작은 얼음 결정들이 두둥실 떠다녔다.

“제어가 안 돼요.”

카이네스의 눈꼬리가 묘하게 축 처져 있었다.

“그래. 내가 있어 줄게. 나만 믿어!”

에스타가 자신만 믿으라는 듯 손으로 제 가슴을 툭툭 쳤다.

“네, 누님. 꼭 제 옆에 있어야 해요.”

카이네스가 맞잡은 손에 힘을 줘 에스타를 끌어당겼다. 야살스럽게 휘어진 눈을 미처 보지 못한 에스타가 카이네스를 잡아당겼다.

“이제 정말 가야 해.”

순순히 에스타를 따라가며 카이네스는 만족스러웠다.

‘순진한 누님.’

제가 조금 약한 모습을 보이면 에스타는 늘 쉽게 넘어왔다.

다른 사람들이 에스타를 눈에 담는 꼴을 보는 것도 싫은데, 제가 없는 곳에서 다른 사람과 에스타가 있는 꼴을 보는 건 더더욱 싫었다.

카이네스의 까만 속내를 눈치채지 못한 에스타는 파티 홀로 향하는 내내 걱정이 가득하였다.

‘내 마력도 난리인데 카이네스까지 문제를 일으키면 어쩌지!’

파티 한가운데에 불을 지르는 것도, 얼음을 떨어뜨리는 것도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다.

‘무조건 안정! 마음의 평화! 평정심을 가지자!’

마치 구호처럼 줄줄 읊으며 에스타는 만찬회장 안으로 향했다.

* * *

에스타와 카이네스는 만찬회장에 먼저 도착해 손님들을 차례로 맞이했다.

손님들이 오는 시각은 제각각이었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파티였기에 중요한 손님일수록 늦게 오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페이시아의 파티는 예외였다. 이른 시간부터 수많은 손님들이 들어와 에스타는 정신없이 사람들을 맞이했다.

“파티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인.”

한 노신사가 에스타의 손을 붙잡고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말을 높이는 걸 보면 신분의 차이가 난다는 것인데, 사교계 파티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던 않은 에스타는 노신사가 누구인지 몰라 난감해졌다.

그때 뒤에 서 있던 루이셀이 에스타에게 속삭였다.

“로든 백작입니다. 최근 백작가를 아들에게 넘기고 휴식 중입니다.”

“로든 경,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대에 응해 주신다고 하셔 영광이었습니다.”

에스타가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자 로든 경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저야말로 영광이었습니다. 제가 살아생전에 페이시아가 주체하는 파티에 올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오늘 좋은 시간 보내셨으면 합니다.”

고개를 살짝 숙여 예의 있게 인사를 건넸다. 옆에 서 있던 카이네스도 꾸벅 인사를 하자 로든 경의 눈동자에 걱정스러움이 가득 담겼다.

카이네스의 부러진 팔 때문이었다.

“생전 루카스 페이시아 공의 얼굴을 똑 닮으셨군요.”

“할아버지와 닮았다는 소리를 종종 듣습니다. 로든 경도 잘 지내셨나요.”

카이네스의 물음에 로든 경이 호탕하게 웃었다.

“물론입니다. 나이만 먹고 아직도 팔팔해서 자식들에게 늘 골칫덩이지요.”

“그런 말씀 마세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늙은이가 너무 시간을 잡아먹은 것 같습니다.”

로든 경은 모자를 벗어 인사를 건넨 뒤 자리를 떠났다. 나이가 있다 보니 머리가 많이 희었지만, 풍채는 무척이나 좋았다.

로든 경과 대화를 나눌 때의 카이네스의 표정이 묘하게 풀어져 있었다.

그에게 있어 로든 경도 카이네스의 할아버지도 아픈 기억이 아닌 것 같았다.

과거사가 피폐한 설정인 카이네스였기에 상당히 의외였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뵀었습니다. 아직 정정하시네요.”

“할아버님이랑 닮았다니. 사실 아버님과 똑 닮았다고 생각했거든요.”

성격은 다르지만, 얼굴만큼은 판박이였는데.

“할아버지를 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뭐지? 이 집안 유전자는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거야?

어머니의 피도 섞였음이 분명한데 아버지 혼자 낳은 것처럼 얼굴을 빼다 박았다니.

“그럼 너도 애를 낳으면 널 빼닮았을까?”

“그게 궁금하십니까?”

“안 궁금하게 생겼어? 삼대가 얼굴이 똑같다는데.”

“알 방법이 있긴 한데요.”

어떻게?

눈을 커다랗게 뜨고 에스타가 바라보자 카이네스가 씩 웃었다.

의미를 모른 채 눈만 깜빡이다 뒤늦게 카이네스의 말뜻을 알아차린 에스타가 카이네스의 등을 찰싹찰싹 내리쳤다.

“카이네스!”

이 어린놈이 발랑 까져서는!

속수무책으로 붉어진 볼을 어쩔 줄 몰라 등을 내려치자 카이네스가 웃음을 흘리며 손목을 붙잡았다.

그 순간 공중에 옅고 흐릿한 불이 피어올랐다. 카이네스가 재빨리 손으로 잡아 없애 버렸지만,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흠흠흠!!”

귓전이 따가울 만큼 루이셀이 헛기침을 뱉었다.

주변을 훑자 귀족들이 너도나도 흥미 가득한 눈으로 바짝 붙은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부채로 입을 가린 채 무언가 말을 주고받는 귀부인들도 있었다.

“…나중에 봐.”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카이네스가 능글맞게 웃으며 다음 상대를 맞이했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홀 한가운데에 거대한 불을 지필까 두려웠다.

“마음의 평화…. 마음의 평화….”

조용히 중얼거리자 카이네스가 뭐하냐는 듯이 눈짓을 주었다.

재빨리 표정을 가다듬고 자본주의 미소를 띠었다. 사람들을 얼마나 상대했는지 벌써 입꼬리가 바들거렸다.

그 뒤로 몇 명이 더 지나갔을까.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이 문을 열고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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