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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71/83)

70화

어떻게 알았지?

에스타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카이네스를 올려다봤다. 아픔을 잊을 만큼 카이네스의 물음이 당황스러웠지만 에스타는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차분히 대답하자 카이네스의 얼굴이 무너져 내렸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제 말을 믿지 못한다는 생각에 상처 입은 것도 잊을 만큼 카이네스의 표정이 암담해 보였다.

에스타가 카이네스의 양 볼을 손에 쥔 채 발끝을 들고 강제로 시선을 맞췄다.

“죽는 건 나 하나야. 그러니 미래에 무슨 일이 있어도 너무 걱정하지 마.”

‘미래를 알고 있단 내 말이 그렇게 충격적이었나?’

에스타는 조금 더 돌려 말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당장이고 무너져 내릴 듯 숨이 가빠지고, 눈동자가 흔들리는 카이네스를 보니 죄책감이 더욱 크기를 키웠다.

“카이네스, 괜찮아.”

저보다 두 배는 더 큰 카이네스를 안고 에스타가 등을 두드리며 반복적으로 쓰다듬었다.

흐트러진 호흡이 돌아오기를 바랐건만, 어찌 된 일인지 카이네스는 점점 하얗게 질려 가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주변에 얼음 결정까지 만들어 내며 마력을 뿜어냈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와인이 얼었어요!”

바깥에서 소란이 일었다. 에스타는 황급히 카이네스의 양 볼을 부여잡고 소리쳤다.

“카이네스!”

이대로 또 카이네스가 이성을 잃어버리면 큰일이었다.

혼탁해진 눈이 아직 완전히 생기를 잃지 않음을 보고 에스타가 간절히 카이네스의 이름을 불렀다.

“카이네스, 카이네스! …제발 정신 차려! 응?”

반쯤 애원하듯 에스타가 카이네스를 붙잡았다. 사정하며 카이네스의 볼을 매만졌고, 제발 정신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바깥에 예상치 못한 추위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부디 너무 놀라지 마시고, 준비한 화로 근처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깥에서 일어난 소동을 루이셀이 잠재우고 있었다. 에스타가 카이네스를 품에 안은 채 안심했을 때였다.

카이네스가 에스타를 강하게 밀쳐냈다. 그 반동에 에스타가 넘어지고 말았다.

“아야!”

에스타는 엉덩이를 찧고 넘어졌고, 카이네스가 반사적으로 에스타에게 다가오다 멈칫거렸다.

“뭐 하는 거야.”

에스타가 놀라 물으며 카이네스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불안한 얼굴의 카이네스는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충격적일 정도로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누님, 저한테서 떨어지세요.”

‘떨어지라니….’

여태 살갑게 달라붙었던 카이네스가 떨어지라고 한 말은 에스타에게도 충격이었다.

“너….”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에스타는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나중에,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카이네스는 바닥에 주저앉은 에스타를 남겨 두고 테라스에서 도망쳤다.

혼란스러움 때문에 카이네스의 마력이 제어되지 못하고 흘러넘쳤다. 카이네스의 손에 닿는 모든 것이 얼기 시작했다.

카이네스는 제 손을 버러지라도 보듯 바라보곤 황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내가 결국 누님까지 죽여 버렸어. 내가…!’

카이네스는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아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바닥에 쓰러진 에스타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지만, 제가 곁에 있는 것보다 나았다. 제가 있으면 에스타가 당장이고 죽어 버릴 것 같았으니까.

* * *

파티가 끝날 때까지 카이네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에스타는 자신까지 떠난다면 페이시아의 만찬회가 엉망이 될 것을 알았기에 그를 찾으러 갈 수 없었다.

“루이셀, 카이네스를 찾아 줘요. 혼자 있으면 안 될 거 같아서요.”

루이셀에게 부탁했지만, 여러모로 마음이 찜찜했다.

제 말을 믿지 못하는 듯하다가 제 죽음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던 카이네스. 평소 무서울 정도로 침착하던 아이가 심각하게 흔들렸다.

‘왜 그러지? 좋아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말이 충격적이었던 걸까?’

하지만 카이네스는 그전까지 자신의 말을 거짓으로 치부했었는데.

에스타는 만찬회장에 돌아온 이후에도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겨우 만찬회를 끝내고 늦은 밤 카이네스를 찾으러 방으로 갔지만, 에스타를 맞이한 건 카이네스가 사라진 빈방이었다.

“카이네스…?”

카이네스를 찾아 방을 두리번거리던 에스타는 그가 남긴 쪽지를 발견했다.

‘아카데미 입학 전까지 호텔에서 지내겠습니다.’

허탈했다. 여태까지 카이네스 걱정 때문에 파티에 집중을 못 한 자신이 멍청하다고 느낄 만큼.

“또 도망쳤어?”

종이를 쥔 에스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결국 쪽지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구겨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 * *

자신에게 회피한다고 말했던 카이네스지만, 본인이 제일 회피형이라는 건 정작 모르고 있었다.

에스타는 카이네스에게 상처도 받았고, 말도 없이 떠난 그에게 화도 났다.

하지만 그것보다 걱정이 더 앞섰다.

혼란스러워 잔뜩 흐트러진 건 처음 봤으니까. 대체 뭐가 그렇게 무서웠을까, 무엇을 걱정한 것일까.

며칠을 끙끙 앓던 에스타에게 엘리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또 작은 주인님 생각하시는 거예요?”

“응….”

에스타가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대화를 해 보시죠.”

“찾아가면 또 도망갈 것 같은데.”

“대화해 줄 때까지 쫓아가면 되죠. 작은 마님이 제일 잘하시는 거잖아요.”

엘리가 태연하게 말하다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지만 하녀와 주인 사이에 하기에는 무례한 언행이었다. 

“죄송합니다, 작은 마님. 제가 실언을….”

“엘리! 너 천재 아니야?”

“…네?”

당황한 엘리의 손을 붙잡고 에스타가 위아래로 거세게 흔들었다. 에스타의 표정이 한결 개운해졌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원래 쫓아다니는 건 에스타 전문인데.”

괜히 민폐는 아닐까 고민했었던 게 무색할 정도였다. 이 말을 기다렸던 사람처럼 에스타는 벌떡 일어나 준비를 서둘렀다.

자신을 삼인칭으로 말하는 에스타를 보며 엘리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주인을 욕보이는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당장 외출을 준비해 줘. 카이네스를 만나러 가야겠어.”

걱정이 한결 사라진 걸 보고 엘리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에스타는 외출 준비를 하기 위해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를 빗었다.

카이네스에게 여태 말 못 했던 이유는 원작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에스타는 최대한 비밀리에 카이네스를 돕고 싶었다.

처음에는 훗날 자신을 잡아다 바칠 카이네스였으니 호감을 사고 싶었다. 그 후에는 카이네스를 인간적으로 안타깝게 여겨 돕고 싶었고.

하지만 카이네스는 너무 눈치가 빨랐고, 에스타는 카이네스 몰래 움직이는 게 서툴렀다.

이미 비밀로 돕는 게 틀려먹었다면 이제 더는 비밀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사과하고 카이네스랑 제대로 얘기해 보자.’

준비를 마친 에스타가 마차에 올라탔다.

“중심가 페이시아 호텔로 최대한 빨리!”

“네, 작은 마님!”

활활 의지에 불타는 에스타의 명을 받든 마부가 덩달아 빠르게 말을 이끌었다.

마차는 빠른 속도로 달려 중심가에 도착했다. 에스타는 마차에서 내려 카이네스가 지내는 호텔로 향했다.

저번에 만남을 거절당했던 기억이 떠올라 순간 머뭇거리고 말았다.

수도에서 제일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호텔인만큼 입구부터 사람들이 넘쳐났다.

에스타는 사람들을 피해 루이셀이 알려 준 방으로 향했다.

“이곳이지….”

에스타는 한 번 심호흡한 뒤 벨을 눌렀다.

방 안에서 응답이 없어서 한 번 더 벨을 눌렀을 때였다.

“누구야.”

낮고 음습한 목소리가 낯설어 에스타는 대답하지 못했다.

벨도 누르지 못한 채 허공에 검지를 치켜든 채 굳어 버렸는데, 예기치 못하고 문이 열렸다.

“누구인데… 누님?”

문을 연 카이네스의 몰골이 처참했다.

울었던 것인지 눈 밑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고,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얼굴이 까칠해 보였다.

구겨진 옷은 미처 갈아입지 못했고, 희미하게 술 냄새도 풍겼다.

카이네스가 놀라 반사적으로 문을 잡아당겼다. 에스타가 반대쪽 손잡이에 매달려 힘을 주지 않았더라면 곧장 닫혔을 거였다.

“왜 도망쳐?”

“지금 꼴이 ….”

“상관없어. 그 꼴도 여전히 예쁘니까.”

순간 카이네스가 굳어 움직임을 멈췄다. 당기는 힘이 사라진 걸 느낀 에스타가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카이네스는 때를 놓치지 않고 곧장 문을 닫아 버렸다.

“야!”

에스타가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주변을 기웃거렸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에스타를 보고 있었다.

“그만 돌아가세요.”

문 틈새로 매정한 소리가 들려왔다.

에스타는 또 목소리가 커질 것 같았지만 꾹 눌러 참고 문틈 새로 바짝 붙어섰다.

“대화하고 싶어서 왔어.”

“전 대화할 게 없는데요.”

카이네스의 매정함에 에스타는 감정이 울컥 치솟았다.

“왜 없어? 너만 들으면 다야? 못 믿을 거 같아서 여태 숨겨 왔던 걸 들려 줬으면 적어도 대화는 해 줘야 하는 거 아냐? 너만 듣고 도망을 쳐?”

최대한 좋게 좋게 말하려던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걸 보고 먹튀라고 하는 거야. 먹고 튀다니, 배려 없는 자식.”

그럼에도 카이네스는 문을 열지 않았다.

어쭈, 도발도 안 먹혀?

에스타는 이 문을 열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손잡이를 잡고 흔들어 대다 보니 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렸다.

“돌아가세요, 제발.”

카이네스가 애원하듯 말했다. 초췌했던 그의 얼굴이 떠오르자 또 마음이 약해졌다.

성난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에스타가 손잡이를 잡은 손을 풀었다.

‘그래. 천천히 하자. 또 겁먹고 도망갈라.’

에스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일 또 올 거야. 나 쫓아다니는 거 잘하는 거 알지? 도망칠 생각하지 마. 이상한 죄책감도 느끼지 말고. 알았어?”

카이네스는 대답이 없었다. 분명 듣고 있을 거면서.

“네, 누님. 하고 대답해. 평소에 대답 잘하던 카이네스는 어디로 간 거야?”

에스타가 손가락으로 문을 톡톡 두드리며 대답을 재촉했다.

“얼른. 대답해야지.”

“…네, 누님.”

“옳지, 착하다.”

에스타가 만족한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일 보자. 카이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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