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퇴직금은 챙겨야지
이안은 전생 현생을 통틀어 검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네스의 힘과 재능을 전수받은 덕에, 손에 느껴지는 서늘한 검의 감촉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안은 무의식적으로 검의 파지법을 알고 있었고, 자세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이드의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제이드는 이것만큼 재밌는 광경은 처음이라는 듯, 주위에 침을 흘려가며 박장대소했다.
제이드가 웃음을 멈추지 않자, 눈치를 보던 조직원들도 하나둘 따라 웃었다.
“흐흐…….,.”
“크하하!”
“저 새끼 저거 꼴 좀 보게!”
“아주 눈빛만 보면 소드마스턴데?”
제이드는 너무 웃어 생긴 눈물을 닦아내며 비아냥거렸다.
“야이 병신아. 검이라는 게 아무나 다루는 줄 알아? 차라리 몽둥이를 들어. 너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쓸 물건이 아니니까.”
조직원들은 주로 몽둥이와 단검을 선호했다.
대낮에 마을 한복판에서 창이나 검 따위를 들고 다닌다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무엇보다 검은 배우는 데 오래 걸린다.
그에 반해.
몽둥이로 힘껏 내리친 뒤, 단검으로 마무리하는 건 조금만 연습해도 누구나 할 수 있다.
“내가 용병 생활 해봐서 아는데, 칼잡이 놈들이 일 인분 하려면 꼬박 일 년은 걸려. 근데 너 따위가 그걸 다룰 수 있을 것 같아? 뭐 떠돌이 고수한테 몰래 가르침이라도 받았어?”
“푸하하!”
“하하!”
제이드의 말에 조직원들이 왁자하게 웃어댔다.
하지만 이안은 차분한 눈으로 제이드를 쳐다볼 뿐이었다.
“어이 돼지. 왤케 혀가 길어? 쫄았냐?”
“……돼지?”
이안의 반격에 분위기가 싸하게 내려앉았다.
돼지.
제이드가 가장 싫어하는 말.
조직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다.
제이드의 얼굴은 이제 분노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래도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곱게 죽여 주려 했는데, 일단 그 혀는 토막쳐야 겠군.”
“빨리 오기나 해 돼지야.”
“……끼어들 생각하지 마라.”
제이드는 살벌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함부로 끼어들었다가는, 가만두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이제 저놈들은 웬만해서는 안 끼어들겠지.’
여기까지는 이안이 의도한 대로였다.
이안은 빤히 보이는 도발을 날렸고, 제이드는 의심 없이 그 도발에 걸려주었다.
제이드가 멍청해서?
그런 부분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제이드가 이렇게 행동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다.
방심.
‘절대 나한테 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이안이 누구인가.
원래 한국에서 살던 몸에서 약 10년 정도 어려진 몸.
게다가 한창 성장할 때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가혹한 노동에 시달려 삐쩍 말랐다.
가끔 제이드는 다른 조직원들과 이안을 싸움 붙이곤 했는데, 대부분은 일방적인 구타로 끝이나 버렸다.
반면 제이드는 누구인가.
‘괴력의 제이드’.
한때 용병 일을 하다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 노른에 흘러들어 와 왕 노릇을 하는 범죄자.
포악하고 잔인한 성정으로, 부하들에게도 가차 없는 인물.
하지만 그런 성격을 가지고도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건, 그 나름의 특기가 있다는 거다.
실력이 좋거나, 인맥이 좋거나, 운이 좋거나.
제이드의 경우에는 그 별명처럼, 괴력이 특기였다.
‘게임에서도 제이드한테 한 방 맞으면 반피가 날아갔지.’
그런 제이드다.
노예나 다름없던 꼬맹이가 갑자기 검을 들었으니, 얼마나 같잖게 보였겠는가.
제이드의 눈에 두려움은 없었다.
이안을 어떻게 요리할지, 잔인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건 조직원들도 마찬가지였고, 소란을 듣고 찾아온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체격이네요. 체격이 크다는 건 그만큼 힘도 강하다는 거겠죠. 무기는 안 쓰는 모양이니…… 잡히거나 몸싸움을 거는 것에 조심해야겠네요.]
실제로도 제이드는 잡기 기술을 주로 사용한다.
제이드의 주먹에 맞으면 플레이어의 체력이 절반 정도 달았다면, 잡기에 당하면 즉사다.
그렇기에 중요한 건 거리 재기.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검을 휘둘러 체력을 차근차근 깎아나가면, 그렇게 어려운 상대는 아니다.
게임에서는 말이다.
‘실물로 보니 역시 압박감이 장난 아니란 말이지.’
190cm는 가뿐히 넘는 근육질 거구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프로 레슬러를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이안은 침을 꿀꺽 삼키며 검을 들었다.
‘이 사람도 내려 베기 하나면 충분한가요?’
[물론이죠. 오히려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하기에 따라 더 손쉬운 상대가 될 수도 있어요.]
검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이안을 살피던 제이드가 히죽,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어디, 시작해볼까?”
제이드가 쿵쿵거리며 속도를 높였다.
모니터 너머로 볼 때와는 확연히 다른 속도감.
하지만 신체 능력이 향상된 지금, 제이드의 움직임은 훤히 보였다.
[내려 베기를 사용하려는 자세를 취하돼, 진짜 내려치지는 말고 하려는 척만 하세요.]
‘예.’
이안은 시키는 대로 했다.
검을 위로 들어 올렸고, 마치 아래로 내려칠 것처럼 발을 내뻗었다.
“흡!”
제이드는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한 차례 뱃살이 출렁였는데, 이안이 속였다는 걸 깨닫자 눈썹이 팔자로 휘었다.
“이 새끼가 얕은수를…….”
이안이 다시 검을 위로 올렸다.
이번에도 제이드는 뒤로 한 걸음을 물러났다.
[저 사내가 내려 베기를 피해 버리면 끝이에요. 다시 검을 거둬들였을 때는 이미 바로 앞에 다가와 있을 테니까요. 반대로, 우리도 한 번만 공격에 성공하면 끝이에요.]
이른바 한방 싸움이라 볼 수 있다.
공격을 적중시키냐. 아니면 피해내냐의 싸움.
이안은 계속 검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는 척을 했고, 제이드는 그때마다 몸을 움찔거렸다.
덕분에 싸움은 꽤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어 있었다.
“보스가 뭐 하는 거지?”
“그냥 콱 가서 잡아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가지고 노는 거겠지. 설마 저 새끼한테 고전하는 거겠어?”
제이드는 점점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예상과는 상황이 다르다.
‘움직임이 빠르다?’
제이드의 예상보다 이안의 움직임이 빠르고 가벼웠다.
본래라면 곧바로 칼을 빼앗고, 적당히 가지고 놀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안의 검이 생각보다 날카로웠고. 심리전이 제이드의 행동을 크게 제약해버렸다.
‘진짜로 검술을 제대로 배운 건가? 아니, 그럴 리 없지. 저 내려치는 동작만 하는 걸 보니, 저것밖에 모르는 거야.’
점점 지켜보는 구경꾼들의 표정에 의아하게 변하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끌릴수록, 불리한 건 제이드였다.
싸움에서 승리하더라도 평판이 깎여버리면 뒷골목의 대장이라는 자리가 흔들린다.
“우아아아!”
제이드가 돌연, 쩌렁쩌렁하게 기합을 내질렀다. 이안이 자기도 모르게 찔끔할 정도로 살벌한 기세였다.
마치 이성을 잃은 듯, 흰자위를 까뒤집은 제이드가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분위기에 이안은 저도 모르게 검을 아래로 내리쳤다.
‘이런 씨…….’
[함정이에요!]
살벌한 기세에 압도당한 탓에,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이안은 검을 아래로 힘껏 내리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눈동자를 원래대로 되돌린 제이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버렸고, 검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제이드가 비웃음을 흘렸다.
“흐흐.”
속임수였던 셈이다.
[피해야 해요!]
이네스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이미 제이드가 코앞이었다.
솥뚜껑만 한 크기의 손이 이안을 향해 우악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검을 되돌려 다시 휘두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역시 이렇게 됐나?’
왠지 내심으로는 이리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안은 검을 미련 없이 내려놓았다. 제이드의 눈이 환희로 번들거렸다.
검사가 검을 내려놓았다는 것.
이안이 포기했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포기하지 않았다. 10개월의 노역도 견뎠는데, 겨우 이걸로 포기할 리가.
이안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주먹을 한 웅큼 쥐었고, 제이드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촤악!
“끄아악!”
제이드가 양손으로 눈을 부여잡았다. 이 허브 가루는 상대를 실명시키는 효과가 있는 약초…… 는 아니고 그냥 진통 성분이 들어있는 약초다.
하지만 작은 알갱이가 눈에 들어오면, 그게 뭐든 따갑기 마련이다.
원래 게임에서는 ‘그러나 아무 효과 없었다!’라고 문구가 떴겠지만, 지금은 한순간이나마 제이드의 시야를 빼앗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짧은 틈이면 충분했다.
“흡!”
바닥에 슬라이딩한 이안은 그대로 제이드의 급소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퍽!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새빨갛던 제이드의 얼굴이 이번에는 하얗게 질렸다.
[비겁해요!]
“이런, 비…….겁한!”
이네스와 제이드가 동시에 외쳤다. 하지만 이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게 지난 10개월 동안 네 밑에서 배운 거다.”
심판과 룰이 있는 스포츠 경기나, 명예를 따지는 기사들 간의 결투와는 달랐다.
뒷골목 싸움에는 오직 하나의 규칙만이 있다.
‘살아남는 놈이 이긴 거다.’
추하고 비겁하면 어떤가. 결국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 아니겠는가?
그걸 이안에게 몸소 가르쳐 준 게 바로 제이드였다.
이제는 그 가르침을 되돌려줄 때였다.
“뭣들 하…….”
상황이 다급해지자, 제이드는 부하들을 동원하려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예상하고 있었다.
이안은 빠르게 땅을 박차, 주먹을 내뻗었다.
제이드도 다리를 후들거리면서도, 이를 악물며 이안에게 주먹을 날렸다.
[피해야 해요!]
‘아뇨. 한 방은 그냥 맞아줘도 돼요.’
잡히지만 않으면 즉사할 일은 없다.
이안은 온 힘을 끌어모아 주먹에 집중했다.
뻑!
제이드의 턱에 주먹이 박혔다.
그와 동시에 이안의 가슴에도 주먹이 박혔다.
형편없이 뒤로 밀려나는 이안.
제이드는…….
“하. 하하! 네놈 새끼 치고는…… 주먹이 제법…… 맵…….”
이겼다는 생각에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던 제이드가 입을 다물었다.
왜인지 세상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건 무슨…….”
기울어지는 건 제이드의 몸이었다.
쿵!
거체가 땅바닥에 엎어지며 먼지를 흩날렸다.
보고 있던 구경꾼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하나같이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니 이게 무슨…….”
“제이드가 쓰러졌어? 저 녀석한테?”
“맙소사.”
노예나 다름없던 소년이 제이드를 주먹 한 방으로 이겨버렸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셈이다.
그 방법이 비겁하다고 비난하는 이는 없었다.
이안은 뒷골목의 규칙을 따랐을 뿐이니까.
“읏차.”
[괘, 괜찮으세요? 주먹이 제대로 가슴에 직격 했는데…….]
벌떡 일어난 이안에게 이네스가 걱정스레 물었다.
‘뭐, 10개월 동안 얻어맞다 보면 맷집도 늘고, 안 아프게 맞는 요령도 느는 법이니까요.’
[…….]
‘욱신거리긴 해도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에요.’
반대로 제이드는 너무나 쉽게 급소를 내주었다.
설마 이안이 주먹으로 반격할지도 몰랐고, 이안의 힘이 이렇게 강할지도 몰랐으니까.
결국, 서로에 대한 정보의 격차. 그리고 방심이 제이드를 쓰러트린 셈이다. 그 방심을 유도한 건 이안이었고.
“흠…….”
이안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직원들은 여전히 거리를 벌린 채 이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복수를 하겠답시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뭐, 제이드 같은 새끼한테 의리를 지킬 놈도 없고. 내가 그 제이드를 한 방에 보냈으니까 무서울 만도 하지.’
턱을 제대로 때렸다지만, 제이드의 맷집을 생각하면 이안의 주먹이 약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누구보다 목숨을 소중히 하는 뒷골목 왈패들답게, 아무도 이안에게 덤벼들지 않았다.
이안은 주민 중 하나를 가리켰다.
“가서 경비병 불러와서 이놈 잡아가라고 하세요.”
“으, 응. 알겠다!”
제이드는 경비병들의 골칫거리였다. 이렇게 직접 기절시켜서 눕혀놨으니, ‘이게 웬 떡이야!’ 하면서 잡아갈 거다.
이안은 아지트 안으로 들어가 제이드의 사무실을 뒤졌다.
안에는 쇠로 된 금고가 있었는데, 쓰러진 제이드의 주머니에서 훔친 열쇠로 쉽게 열 수 있었다.
“많이도 쟁여두고 있구나…….”
금고 안에서 금화 수십 닢이 반짝이고 있었다.
동화 하나에도 허덕이던 이안에게는 몹시도 큰돈이었다.
이안은 금고 안에 있는 금화 중 딱 절반만 챙겼다.
모조리 챙겼다가는, 조직원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없었다.
욕심이 과하면 화가 되는 법이다.
‘혹시나 뭐라 할까 봐 말하는 거지만, 이건 퇴직금입니다. 10개월간 목숨 바쳐 일했는데, 이 정도는 받아도 되잖아요?’
[…….마음대로 하세요.]
이네스는 퉁명스럽게 대꾸했고, 이안은 두둑해진 주머니만큼 풍족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
일을 모두 봤으니, 이제는 떠날 시간이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쉬고 싶었지만, 뒤늦게 온 경비병들한테 추궁당하는 건 사양이었다.
“떠나는 건가?”
“그래야죠.”
무구점 주인이 섭섭한 얼굴로 이안을 쳐다봤다.
옆에서는 여관 주인이 식량과 여정 준비를 빠르게 준비해주었고, 약초꾼과 몸 불편한 노파도 직접 배웅해주러 나왔다.
그간 이안과 인연이 있던 사람들이다.
“할머니, 몸도 안 좋은데 들어가시지. 왜 나오셨어요.”
“그래도 우리 총각 가는데, 얼굴 정도는 봐야지.”
“다음에 약초 필요하면 또 와. 싸게 해줄게.”
“기회가 되면요.”
이안은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마지막 순서는 무구점 주인이었는데, 그는 뒤늦게 나온 아내에게 걱정스레 말하고 있었다.
“왜 나왔어. 집에서 쉬라니까. 이제 홑몸도 아닌데.”
“이 양반이 호들갑은. 몇 개월이나 되었다고.”
아내의 배가 살짝 불러 있었다.
이안의 시선을 눈치챈 무구점 주인이 멋쩍게 웃었다.
“하하. 결혼한 지 10년 만에 겨우 얻은 자식일세. 아무래도 자네가 준 쿠리 풀 덕분인 것 같아. 고맙네.”
“……잘됐네요.”
이안은 게임에서의 지식을 떠올렸다.
무구점 주인의 호감도를 얻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쿠리 풀을 선물해야 한다.
쿠리 풀은 정력에 좋다.
그리고 무구점 주인 내외는 오래도록 아이를 못 봐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구점 주인이 참나무 방패를 만들어주는 조건도 그냥 일정 호감도에 달하면 되는 게 아니라…….’
아내가 임신하는 것. 그때가 되면, 무구점 주인의 호감도가 크게 상승하는 거다.
스토리나 지문은 전부 스킵하고, 성장과 공략에만 치중했던 이안에게는 신선한 정보였다.
‘결과와 답은 알아도, 풀이과정은 모른다는 건가.’
아마 앞으로도 이런 경험들을 많이 겪을 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스토리를 좀 더 읽어볼 걸 하는 조금의 후회가 들었다.
무구점 주인은 이안의 손을 굳게 잡으며 말했다.
“앞으로 자네가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걸세. 자네의 눈 색과 머리 색 때문에 차별을 많이 받겠지.”
“그 정도는 뭐, 이제는 익숙하죠.”
“그래. 자네라면 알아서 잘 하겠지. 무운을 빌겠네.”
무구점 주인의 덕담을 마지막으로, 이안은 미련 없이 걸음을 옮겼다.
장장 10개월.
이안이 시작의 마을을 벗어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이제야 모든 게 제대로 시작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