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고인물로 살아남기-10화 (11/222)

10. 예감이 좋지 않아

산뜻한 하루였다.

상행은 무탈하게 진행되고 있었고 분위기도 좋았다.

아침에 면도도 깔끔하게 된 게, 아주 만족스러웠다.

“까악.”

스텔은 숙소의 창문 밖에서 울어대는 까치를 보며 생각했다.

‘까치가 우는 걸 보니,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겠군.’

오늘은 호위 인력을 더 늘리는 날이었다.

왜인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에, 스텔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면접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주한 건 이인조 강도단 아니. 미치광이 기사와 그의 사악한 종자였다.

***

“무엇이……! 네노옴! 지금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금화 세 닢은 너무 비싸다고 얘기하자, 그 옆에 있던 사악한 종자가 말을 교묘하게 왜곡해서 기사에게 전달했다.

기사가 칼을 들고 이리저리 날뛰자, 스텔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왜, 왜 이러십니까.”

어떤 상황이 닥쳐도 늘 냉정하게 머리를 굴리는 것.

그게 상인의 미덕이라지만, 경험 많은 상인인 스텔도 이런 상황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안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스텔씨. 생각해보세요. 에스테반 화이트가드 경은 제국의 강철 기사단 출신이십니다.”

일부러 에스테반이 화이트가드 가문 출신이라는 걸 강조하는 이안.

에스테반이 머리를 긁적였다.

“음? 내가 강철 기사단에서 복무했었던 걸 말했던가?”

“경의 팬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상식이죠.”

“아하! 그렇군!”

“교섭 같은 하찮은 일은 이 스콰이어 이안이 할 테니, 경께서는 부디 지켜봐 주십시오.”

“음! 믿겠네! 스콰이어 이안!”

[아둔한 사람을 속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네요.]

에스테반을 구슬려 그 입을 닥치게 한 이안은 스텔에게 말했다.

“이 문양을 못 알아보시지는 않겠죠?”

“끙…… 확실히 화이트 가드의 문양이 맞군요.”

스텔은 에스테반의 갑옷 위에 걸친 휘장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 휘장 자체가 이미 신분의 증명이나 다름없었다.

사칭범이었다면, 좀 더 은밀한 수를 쓰지 저렇게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지는 않았을 테니까.

이안은 에스테반을 양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강철 기사단 출신의 막강한 기사. 그리고 그 스콰이어가 호위를 하러 온 겁니다. 든든하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실력도…….”

“예. 에스테반 경의 스콰이어가 되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몸이죠.”

이안은 그렇게 스스로의 몸값을 올려쳤다.

하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이네스도 더 핀잔을 주지는 않았다.

침 삼킬 틈도 없이 이안은 말을 이었다.

“상행 경로는 이미 확인했습니다. 중간에 위험 지대를 두 세 군데 들리더군요. 아마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할 정도로 급한 상행인 거겠죠?”

“……맞아요.”

“그러면 더더욱 저희를 고용 안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제대로 된 기사 한 명은 변변찮은 용병 열이 덤벼도 상대가 안 되니까요.”

“백 명이라도 상대할 수 있다!”

“그렇다네요.”

이안의 설명에 스텔은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스텔은 점점 설득에 넘어오고 있었다.

그 낌새를 눈치챈 이안은 슬슬 쐐기를 박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위험 지대를 지나려 면 그만큼 용병들을 많이 고용해야 하는데, 용병들을 믿을 수 있습니까?”

스텔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안이 지적한 부분은 상인들이 으레 가지고 있는 불안이었다.

이런 말이 있다.

용병의 가장 큰 자산은 신뢰라고.

또 이런 말도 있다.

신뢰는 용병들의 퇴직금이라고.

이 말이 생긴 이유는 단순하다.

“제가 듣기론, 마지막에 한탕하고 도망치는 용병들이 꽤나 많다는 것 같은데요.”

그동안 쌓은 신뢰로 돈이 될 만한 의뢰를 받고, 의뢰주를 뒤통수쳐서 죽인 뒤 재산을 모두 빼앗는다.

신뢰를 마지막에 가장 비싼 값으로 팔아치우는 것이다.

그런 일들은 심심치 않게 벌어지지만, 용병 길드에서도 대응하기 힘들었다.

용병이 어디 외딴곳으로 가 도망쳐버리면 손 쓸 도리가 없었으니까.

‘실제로 게임 내에서도 용병들이 뒤통수치는 건 가장 흔한 이벤트 중 하나고.’

그런 극단적인 사례를 제외하더라도, 용병들은 언제든 상황이 위험해지면 도주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돈이나 신뢰보다는 목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안은 스텔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언제든 뒤통수 칠 가능성이 있는 용병들을 고용하겠느냐.

아니면 신분과 실력 모두 확실한 기사를 고용하겠느냐.

생각할 것도 없었다.

스텔은 자기가 졌다는 듯, 두 손을 들며 외쳤다.

“알겠어요! 알았어! 고용할게요! 하지만 그래도 금화 세 닢은 너무 많지 않나…… 요?”

그렇게 말하며 스텔은 에스테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곤 황급히 말했다.

“두, 두 닢. 금화 두 닢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좋아요. 그럼 그렇게 계약이 성립된 거로 하죠.”

“……어?”

이안은 냉큼 대답했다.

너무나 순순히 승낙을 받자, 스텔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홀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무언가를 알아차렸다는 듯. 껄껄 웃더니 이안에게 악수를 건냈다.

“하하하! 처음부터 금화 두 닢을 생각했었군요. 맞나요?”

“예. 세 닢은 아무리 기사라도 너무 양심 없잖아요.”

“그래도 더 억지를 부리면 두 닢보다는 많이 받을 수 있었을 텐데요?”

“더 받으면 스텔 씨의 미움을 받을 것 같았거든요.”

“이거 한 방 먹었군요.”

기분 좋게 웃던 스텔이 이안의 귀에 작게 소곤거렸다.

“당신은 상인을 해야 할 인재에요. 저희 상회는 늘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 혹시 생각 없으신가요?”

“아쉽게도요.”

“흠, 그런가요. 그건 좀 아쉽네요.”

그 뒤로 세부적인 계약서를 작성하고, 이안과 에스테반은 돌아갔다.

혼자 남은 텅 빈 면접장.

마치 폭풍을 정면으로 맞은 것 같은 느낌에 스텔은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후우. 어쩐지 까치가 울더라니…….”

반가운 손님인지, 아니면 불청객인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스텔은 왜인지 전자가 맞을 거라고, 검은 머리 소년을 보면서 생각했다.

***

선수금으로 받은 금화 한 닢. 그리고 성공 보수로 받게 될 나머지 한 닢.

금화 두 닢은 거금이다. 이안은 세 치 혀만으로 그런 거금의 계약을 성사시켜 버렸다.

이네스가 생각하기에 만약 에스테반 혼자였으면 절대 못 이뤘을 성과였다.

[오히려 사기당하지 않았으면 다행이겠죠.]

그렇기에 이네스는 궁금했다.

[꽤 협상에 능숙하시던데요?]

‘정확히 말하면 흥정하는 거에 익숙한 거죠. 별로 대단할 것도 없었고요.’

당근과 채찍.

어려운 부탁을 먼저하고 거절당하면, 쉬운 부탁을 이어서 하기.

누구나 아는 정석적인 설득 기술들이다.

그리고 정석이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유효하기에 정석이라 불린다.

[그것도 다 뒷골목에서 배운 건가요?]

‘일부분은 그렇고. 옛날에 물건 팔러 다닌 적이 있었으니, 거기서 많이 배웠죠.’

[응? 운동을 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운동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재능있는 소수니까요.’

어쨌든 에스테반과의 만남 덕에, 꽤나 이득을 많이 봤다.

에스테반이 아니었다면, 고작 철패 용병인 이안이 이 정도 거금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 돈을 모두 이안이 꿀꺽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이안은 에스테반에게 돈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상담했고…….

“스콰이어 이안. 그건 네가 알아서 필요할 때 잘 사용하도록. 돈을 가지고 궁리하는 건 기사답지 못한 일이다. 그리고 난 네가 잘 해주리라고 믿고 있다.”

라고 말하며 신경을 꺼 버렸다.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신뢰가 부담스러운 이안이었지만, 어쨌든 고마운 일이었다.

에스테반은 앞서 걸어가 마굿간 안으로 들어가더니, 튼튼하고 커다란 말 한 마리를 끌고 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명마였다.

“인사하도록! 내 애마, 레이야드다! 레이야드! 인사해라! 내 첫 팬이자 스콰이어인 이안이다!”

“푸르르!”

검은 말이 갈기를 흔들며 이안의 얼굴에 머리를 비볐다.

“하하! 레이야드는 네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야! 사이좋게 지내도록.”

“예, 뭐.”

“그럼 이제 돈도 생겼겠다, 우리 일을 하러 가야겠군.”

“우리 일이요?”

이안의 물음에 에스테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스콰이어 이안. 벌써 잊어버렸나? 자네가 내 모험담을 들려달라고 울면서 간청했지 않나.”

물론, 그런 적은 없었다.

“좋은 이야기에는 술이 빠질 수 없으니, 여관에 가서 한잔하자고.”

둘은 그렇게 이안이 묵고 있는 여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안은 이 술자리에서 에스테반에 대한 몰랐던 사실을 몇 개 알게 되었다.

하나.

에스테반은 술을 한 잔만 마셔도 고주망태가 될 정도로 주량이 약하다는 것.

“끅! 거기서 내가 학살자 조지의 목을 부여잡고 뭐라고 말했을 것 같나!”

“……네가 흐르게 한 피에 대한 대가는 죽음으로 치러라.”

“정확하군! 맙소사! 스콰이어 이안! 너는 정말 천재란 말이냐?”

“그야 같은 얘기를 10번도 더 들으면, 누구라도 외우지 않겠어요?”

“딸꾹. 그랬나? 그러면 다음 얘기로 넘어가지. 평화로운 마을에 학살자 조지라는 사내가…….”

“맙소사.”

둘.

에스테반의 주사가 같은 이야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것.

그날, 이안은 처음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에 대한 살의를 느꼈다.

이네스가 말리지 않았다면,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을지도 몰랐다.

‘이런 뒷 설정 같은 건 알고 싶지 않았어.’

이안은 곯아떨어진 에스테반을 업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난 에스테반은 이안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오며 소리쳤다.

“기상! 기사는 언제나 태양보다 먼저 일어나야 한다!”

“……좋은 아침입니다. 에스테반경.”

“어서 나오도록! 오늘부터 기사가 되기 위한 모든 걸 알려주겠다!”

이안은 어디까지나 임시 종자일 뿐이었지만, 에스테반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기간이 짧은 만큼, 그 시간 안에 모든 걸 가르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얼굴을 씻고 머리를 빗어라! 청결과 품위 유지는 기사의 기본이야!”

“밥을 많이 먹어라! 밥을 많이 먹는 것도 훌륭한 기사의 덕목이다! 못 먹겠으면 악으로라도 먹어!”

“먹었으면 뛰어라! 심장이 부서질 것 같을 때까지 뛰어! 기사라면 튼튼하고 뜨거운 심장을 가져야 해!”

이안은 귀에다 대고 고함을 고래고래 질러대는 에스테반의 말에 혼이 쏙 빠지는 기분이었다.

점점 에스테반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이해가 안 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에스테반은 이안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흠! 생각보다 체력도 좋고, 근력도 좋군. 신체가 단련된 정도로만 보면 형편없는데, 타고난 자질이 좋다 이건가? 오히려 좋다!”

이네스의 힘을 받아 튼튼해진 이안의 몸.

에스테반은 이안을 더 가혹하게 굴릴 수 있다는 사실이 기꺼운 눈치였다.

실제 제국 기사들이 받는 강도 높은 육체 훈련이 실시 되었고, 이안은 문자 그대로 죽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원래 체력 단련을 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빡세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이런 건 혼자 하는 것보다는 누군가 끌어주는 사람이 있는 게 효과적이니까요.]

사람들이 괜히 헬스장에 가서 PT를 끊는 게 아니다.

[그리고 훈련하는 방법이 제가 알던 거랑은 조금 달라졌네요. 200년 동안, 훈련 방법도 발전을 거듭했다는 거겠죠.]

에스테반은 아무런 생각 없이 이안을 몰아붙이고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루틴이나 영양 섭취 따위를 세심하게 체크하고 있었다.

그 점을 알아챈 이네스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바보 같아 보이는 사람이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확실하군요. 좋아요. 결정했어요.]

‘…….뭘요?’

[앞으로 상단이 출발할 때까지는 저와의 수련은 없는 거로 하죠. 지금은 에스테반 경과의 훈련에 집중해주세요.]

이안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

나흘 뒤.

스텔이 이끄는 상단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스테반은 자신의 애마, 레이야드에 올라타 일행의 선두에서 당당하게 걸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이안은 에스테반의 장창을 들고 걸었다.

‘더럽게 쑤시네.’

이번 나흘은 문자 그대로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육체를 단련한다니…….’

이안의 전생 현생을 통틀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훈련은 처음이었다.

그걸 어떻게든 버텨내는 자신의 몸이 더 어이없었지만.

지금도 온몸의 근육이란 근육이 다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래도 힘든 경험들이 으레 그렇듯, 끝내고 나니 묘한 뿌듯함이 느껴졌다.

‘이렇게 심장이 터져라 운동해본 것도 진짜 얼마 만이냐.’

노량진에 갇혀 있을 동안은 상상도 못 할 감각.

스멀스멀 미묘한 감정들이 솟아오르자, 이안은 양 볼을 짝― 소리가 나게 쳤다.

‘정신 차리자.’

코르디스까지는 꽤나 멀고, 위험 지대도 몇 번 지나게 된다.

그사이에 어떤 악랄한 이벤트들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코르디스까지라…….’

당장 생각나는 이벤트만 10가지가 넘는다.

하나하나가 지금의 이안에게는 몹시 위험한 이벤트.

‘게다가 왠지 예감이 안 좋아.’

에스테반은 사건 사고에 끝도 없이 휘말리는 사내다.

때문에 이번 상단 호위가 절대로 평탄하게 흘러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이안의 마음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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