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기사님은 얼마나 강하십니까
호위 임무가 시작되고.
에스테반과의 육체 단련은 중지되었지만 대신 이네스와의 검술 수련이 재개되었다.
“두 번째로 배울 동작은 찌르기예요.”
이네스는 검을 들어 올려 허공의 한 점을 정확히 찔렀다.
그 유려한 동작에 이안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와아…….”
“내려 베기가 가장 위력이 강한 공격이라면, 찌르기는 가장 날카로운 공격이에요.”
내려 베기는 강하지만, 넓은 선을 타격한다.
하지만 찌르기는 한 점에 모든 힘을 집중해 꿰뚫는다.
그렇기에 찌르기는 가장 날카로운 공격이다.
“하지만 찌르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요. 뭘 것 같아요?”
이안은 눈을 감고 상대를 향해 찌르기를 날리는 자신을 상상했다.
상상 속의 상대는 바로 제이드였다.
‘여기서 내가 찔러 들어간다면…… 아!’
의외로 답은 쉽게 나왔다.
“막으면 제가 위험해지는군요. 검을 회수하는 데에 오래 걸리니까.”
“정확해요. 검을 앞으로 내질렀으면, 반드시 회수하는 동작이 필요하게 되죠. 하지만 만약, 찌르기로 별 타격을 주지 못하면. 검을 되돌릴 때까지는 무방비 상태가 돼 버려요.”
강력한 만큼 위험도 큰 동작.
그렇기에 찌르기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만 해야 하는 공격이다.
“리스크를 줄이려면 원하는 곳을 정확히 찌를 수 있어야 해요. 저는 보통 급소를 살짝만 찌르고 빠지는 걸 선호해요. 심장을 더 깊게 찌르나 살짝 찌르나 죽는 건 똑같으니까요.”
살벌한 말에 이안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네스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손뼉을 부딪혔다.
짝! 소리와 함께 손바닥을 떼니, 안에서 빛의 정령이 생겨났다.
“내려 베기랑 같은 맥락이에요. 원하는 곳을 원하는 만큼 찌를 것. 더 가서도, 덜 가서도 안 돼요.”
“설마…….”
“불침번까지는 아직 시간이 넉넉하죠? 그러면 가볍게 6만 번 정도만 할까요?”
이안의 표정이 창백하게 굳었다.
***
“이봐요.”
“끄, 끄응…….”
“이봐요 종자님!”
“으응?”
누군가 어깨를 흔드는 감촉에 이안이 눈을 떴다.
머리를 빡빡 민 용병이 미묘한 얼굴로 물었다.
“자는데 왜 이렇게 끙끙거립니까? 식은땀도 흘리고.”
“……당신이 제 목숨을 구했어요.”
“네? 아무튼, 불침번 순서니까 얼렁 일어나십쇼.”
그러고는 황급히 이안에게서 멀어졌다.
검은 머리와는 엮이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용병들은 특히 더 미신에 민감하니…….’
이안은 알딸딸한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용병의 말마따나, 옷은 식은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6만 번을 시키고, 시간이 남는다고 6만 번을 더 시키다니.’
[강해지는 데에 지름길은 없어요. 오히려 이안은 말도 안 되게 좋은 조건에서 배우고 있는 거예요. 꿈속에서는 시간도 느리고, 체력도 소비 안 하고, 또 가르치는 사람이 저잖아요?]
‘그건 알고 있지만요.’
실제로 이안의 실력은 빠르게 늘고 있었다.
이안은 검집에서 성검을 뽑았고, 주위 나무를 향해 힘껏 내뻗었다.
후욱!
검 끝은 정확히 나무껍질 위에 멈췄다.
딱 이안이 원했던 지점이다.
간밤의 수련은 헛되지 않았던 모양.
스스로의 성취에 홀로 뿌듯함을 느끼고 있을 때,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상당히 훌륭한 솜씨군. 스콰이어 이안.”
“……에스테반 경. 저 때문에 깨셨나요?”
“아니. 기본적으로 전장에서는 깊게 자지 않는 편이다. 언제 어디서 기습당할지 알 수 없으니.”
에스테반은 엎어져 자는 레이야드의 품 안에서 꼿꼿이 앉아 있었다.
푸른 눈은 달빛을 반사해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이안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나사 빠진 인간이라도 이럴 때 보면 기사는 기사라니까.’
에스테반은 레이야드의 갈기를 부드럽게 쓸면서 물었다.
“스콰이어 이안. 검을 배운지는 얼마나 됐지?”
“글쎄요. 대충 열흘 조금 안 된 것 같은데요.”
에스테반이 보기 드물게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아주…… 대단하군. 방금 그 찌르기는 완벽하지는 않아도 제법 훌륭했다. 도저히 열흘 배워서 나왔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할 줄 아는 거라곤 내려 베기와 찌르기 뿐이지만요.”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다. 잡스러운 기교보다는 기본기를 갈고닦는 게 훨씬 값어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지. 좋은 스승을 두었군.”
[뭘 좀 아는 인간이군요.]
머릿속에서 으쓱이는 이네스를 무시하며, 이안은 에스테반의 얼굴을 살폈다.
에스테반의 눈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낮의 에스테반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리던 걸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라 착각할 정도였다.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새벽의 마력일까?
아니면 이게 에스테반의 본모습일까.
조금 혼란스러워하는 이안에게 에스테반이 말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내 얘기만 했던 것 같군.”
설마 에스테반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이안은 저도 모르게 이렇게 물었다.
“혹시 새벽 감성에 취하신 겁니까?”
“음?”
“아, 아닙니다.”
이안의 물음에 어리둥절해하던 에스테반은 밤하늘의 초승달을 보며 물었다.
“스콰이어 이안. 너는 무슨 연유로 북쪽으로 향하는 거지? 혼자 여행을 다니기에는 아직 어린 것 같다만.”
“코르디스에 입학하려 합니다.”
“코르디스라…… 혹시 귀족이었나?”
“아뇨. 평민입니다.”
“쉽지 않겠군.”
에스테반은 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아직 가문에 있었다면 추천장을 써주었을 텐데, 아쉬워.”
“아뇨.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경.”
“그래도 너라면 입학할 수 있다. 어려운 것과 불가능한 건 다르니까.”
에스테반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밤사이 갑옷에 맺힌 이슬이 후두둑 떨어졌다.
어느새 여명이 슬금슬금 밝아오고 있었다.
“내 명예를 걸고, 너를 코르디스까지 무사히 바래다주겠다.”
그렇게 말하며 웃는 에스테반의 모습은, 너무나 그림에 그린 듯한 기사의 모습 그 자체라.
이안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해가 뜨고.
에스테반의 눈에는 예의 그 광기가 다시 차올랐다.
“하하! 오늘은 식사가 아주 좋군!”
“어제랑 똑같은 육포와 비스킷입니다. 경.”
“뭐든지 마음먹기 달려있는 법이지! 기사라면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스콰이어 이안!”
에스테반은 질긴 육포를 호탕하게 씹어댔고, 이안도 별 불만 없이 보존식을 씹었다.
쥐나 벌레 따위를 먹을 때랑 생각하면, 지금은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다.
식사 시간은 조용했다.
에스테반과 이안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다들 긴장하고 있는 게 피부로도 느껴졌다.
‘이 앞부터는 치안이 안 좋으니까.’
위험지대.
제국의 영역이라고 모든 곳이 안전한 건 아니다.
지형이 험하거나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거나, 아니면 괴수들이 들끓는다거나.
이 앞에 펼쳐진 레지스 산맥도 그중 하나다.
험한 산세는 그 자체로도 위험이며, 산적들이 산맥 이곳저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산속에 서식하는 괴수들까지.
‘웬만하면 돌아가는 게 안전하지만…….’
그러면 최소 2주의 시간이 더 든다.
2주.
절대 짧지 않은 시간이다.
특히 상인에게는.
‘상행이 하루 길어질 때마다 드는 돈이나 기회비용까지 생각하면, 충분히 위험을 감수할 만하지.’
어쨌든 레지스 산맥에는 여러 이벤트와 퀘스트, 히든 피스들이 잠들어있다.
그것들이 플레이어가 초반에 오라고 설계된 게 아닌 것이 문제일 뿐.
이안은 우선 위험이 될 만한 이벤트들을 생각했다.
‘가장 만날 확률이 높은 건 역시 산적단이려나. 그다음으로는 푸른 갈기 루시녹. 피투성이 구울까지는 그나마 괜찮아. 포식자 그레이는 제발 안 만났으면 좋겠는데…….’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었다.
이겼을 때 얻는 이득이 없지는 않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안 마주쳤으면 했다.
‘내 뜻대로 되면 참 좋겠지만…….’
이안은 늠름하게 앞서나가는 에스테반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저놈이 함께 있으면 무조건 한두 개는 마주치겠지.’
산맥으로 들어서자 체감 기온이 확 내려갔다.
11월 중순.
산맥을 화려하게 색칠했을 단풍도 어느새 저물어, 갈색 낙엽만 바닥에 소복이 쌓여가고 있었다.
레지스 산맥에 들어서고부터는 용병들도 굳은 얼굴로 사방을 경계했다.
아직 초입이었지만, ‘위험지대’라는 이름은 괜스레 사람을 겁먹게 만들었다.
그렇게 상단 행렬은 길을 따라 쉬지 않고 움직였고, 해가 지기 전에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첫날은 별일 없이 무사히 넘어간 셈이었다.
***
레지스 산맥은 위험한 곳이지만, 그래도 살 사람들은 산다.
산적들이 그러했고, 화전민 마을이 그러했다.
목책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마을. 변변한 여관 하나 없는 이곳에서 상단은 숙박을 결정했다.
“마을의 중앙 공터에서 야영하면 됩니다.”
상행 책임자 스텔의 말에 용병들은 야영을 준비했다.
마을이 너무 작아, 상단 호위 인원들을 수용할 만한 숙소도 없었기 때문.
그래도 불평을 내뱉는 이는 없었다.
‘목책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지.’
그래도 저녁은 주점에서 먹을 수 있었다.
가격이 도시 물가보다 비쌌지만, 용병들은 맥주 한 잔의 시원함을 포기하지 않았다.
“…….”
용병들은 술을 마시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레지스 산맥에 들어왔다는 게 어지간히도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에스테반은 빠르게 밥을 먹고 나갔고.
이안도 부지런히 배속에 밥을 욱여넣던 와중에 누군가가 이안에게 말을 걸었다.
“이, 이봐요. 종자님.”
예의 그 대머리 용병이었다.
대머리 용병은 이안에게 말을 걸고 싶지 않아 하는 낌새였는데, 다른 용병들이 다 대머리 용병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억지로 떠밀린 것 같았다.
‘짬처리 당했구만.’
용병들은 이안을 껄끄러워하고 있었다.
생김새 때문에도 그렇고, 기사의 종자라는 신분도 그렇다.
기사는 대부분 귀족 출신이고, 그 종자도 보통 귀족이니까.
그렇다면 껄끄러움을 무릅쓰고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호기심에 이안이 턱짓하니 대머리 용병이 쭈뼛쭈뼛 말했다.
“종자님은 저 기사님의 종자 아니십니까.”
“말이 좀 이상하긴 한데, 그렇죠.”
“마, 말씀 편하게 하세요.”
“네? 전 이게 더 편한데요?”
“아 그런가요? 그러면 이런 질문이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잠시 뜸을 들이던 대머리 용병이 조심스레 물었다.
“기사님은 대체, 얼마나 쎄십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에 이안은 잠시 말을 잃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질문이 나오나 했더니…….’
[그만큼 두렵다는 거겠죠. 인간은 두려우면 의지할 대상을 찾으니까요.]
용병들은 에스테반에게 심적으로 기대고 있었다.
기사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는 일반인들. 특히, 전장에 설 일이 많은 용병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을 테니.
하지만 에스테반의 실력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몰라, 불안감을 가지고 있을 거다.
‘본인한테 직접 물을 수 없으니 나한테 물었다 이건가. 근데 조금 어렵네. 어떻게 설명하지? 게임이였으면 대충 숫자로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근력이 몇이니 체력이 몇이니 하는 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이안은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일단 1대1로 사자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네요.”
“사자……!”
“역시!”
사자라는 말에 용병들이 화색을 띠었다.
에스테반이 얼마나 강한지 체감이 되는 눈치였다.
일단 사자하면 뭔가 강한 이미지니까.
하지만 용병들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럼 그럼. 곰도 이길 수 있나요? 1대1로?”
“……방심만 안 하면 이기겠죠.”
“그러면 호랑이는요?”
“멍청아! 곰이 호랑이보다 더 세니까 당연히 이기지!”
“뭔 소리야. 곰이 왜 호랑이보다 더 세.”
“하 진짜. 모자란 새끼. 봐봐. 곰이 앞발을 휘둘러서 호랑이 턱주가리를 치면…….”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가 풀리고. 예상외로 이안의 귀족답지 않은 모습에 용병들이 느끼던 거리감도 만히 좁혀졌다.
애초에 귀족이 아니니까 당연한 거지만.
그러다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종자님. 그 기사님이 엄청 대단한 실력자라는 건 알았습니다. 그러면 그 기사님의 종자이신 종자님도 엄청난 실력자겠죠?”
“오오.”
“역시 그렇겠지? 귀족이시잖아.”
“하지만 검은 머리잖아. 귀족가에 태어난 검은 머리는 곧장 버려지거나 살해당한다고 들었어.”
“그래도 기사는 아무나 종자로 받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이안의 신분을 멋대로 넘겨 짚은 용병들은 저들끼리 속닥거리며 이안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의심 반, 기대 반으로 두 눈을 반짝이는 용병들.
차마 ‘사실 나는 임시 종자고 귀족도 아니야’라고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실력을 보여달라 이건가.’
이안은 고민했다.
여기서 용병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어 놔야, 나중에 혹시 있을 전투에서 말을 듣게 할 수 있다.
미리 호감을 사놔서 나쁠 게 없었고.
‘그냥 간단히 힘자랑을 할까? 아니. 그건 뭔가 부족해. 그렇다면…….’
이안은 검을 뽑고, 딱딱한 빵을 씹던 용병을 가리켰다.
“손 위에 빵을 올려두세요.”
“예?”
“어서요.”
“종자님이 들라면 들어 새끼야!”
“겁먹었냐!”
주변에서 고함을 질러대자, 지목당한 용병이 불안한 얼굴로 빵을 들었다.
“움직이면 안 됩니다.”
“예?”
이안은 눈을 감은 뒤, 그대로 질풍처럼 검을 내질렀다.
수없이 연습했었던 찌르기가 빵 중앙에 정확히 적중했다.
검에 빵이 꽂힐 정도를 깊되, 빵이 부서지지 않을 정도의 깊이로.
이안은 날렵하게 검을 회수했고, 검 끝에 찔린 빵을 회수하며 으스댔다.
모든 동작이 끝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한 호흡.
빵을 들고 있던 용병은 얼떨떨하게 자신의 빈손을 쳐다보았다.
“…….”
내려앉는 정적.
다시 눈을 뜬 이안은 빵을 베어 물며, 굳어 있는 용병들에게 말했다.
“이 정도?”
[제발 이안. 보는 제 얼굴이 다 빨개지네요. 저들이 이런 거 가지고 감탄할 것 같아요?]
이네스의 핀잔.
하지만…….
“우, 우와아아!”
“방금 뭐지?”
“뭔가. 뭔가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네스와의 예상과 달리 열렬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토록 용병들의 호감을 사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아가기에, 실력이 뛰어난 자들을 좋아한다.
인성에 문제가 어딘가에 하자가 있어도, 그들에게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안이 보여준 묘기 아닌 묘기는, 용병들의 눈을 현혹하기에 충분했다.
‘역시. 십이만 번이나 연습한 보람이 있네요. 그쵸?’
이안은 해냈다는 뿌듯함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용병들은 뭐가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제발 검술을 그딴식으로 사용하지 말아 주세요……!]
이네스만이 홀로 절규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