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마법
코르디스의 1학년 1학기 커리큘럼은 대부분 개론 수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코르디스가 재능있는 학생들을 모은 기관이지만, 학생들마다 개성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크게 나누면 기사, 정령술, 마법사로 나뉘고. 세부적으로 나누면 그보다 더 많아진다.
[평생 검을 쥐고 살아온 기사와 머리를 쥐어짜 마법을 펼쳐내는 마법사와는 사고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사람들은 서로 다르면 일단 싸우거나 배척하는 법이니, 그걸 방지하는 거죠.]
학생들은 재능에 상관없이 정령술, 마법, 검술에 대한 기초를 학습하고 직접 견학한다.
그렇게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진정으로 같은 학우로서 어우러진다.
…….라는 게 학사의 의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저야 뭐 기술을 배울 수 있으면 좋은 일이죠.’
게임 속에서는 코르디스의 수업을 들으면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령술 개론 수업을 들으면 ‘초급 정령술’을 얻는 식.
이는 플레이어가 코르디스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 이득 중 하나였다.
[이외에도 귀족이라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승마나 작문, 역사, 산수, 철학, 예절 등. 다양한 과목이 있으니 부지런히 공부하세요.]
‘승마 정도를 제외하면 하나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생각하는 사이. 교실 문이 열리며 정장을 차려입은 푸른 머리의 중년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검은 정장은 방금 풀을 먹였는지 아주 번쩍번쩍했는데, 한눈에 봐도 옷차림에 신경 써서 온 게 눈에 보였다.
이안이 의문을 품었다.
‘제대로 차려입고 오네요. 귀족 학교라 그런가?’
[어…… 저 때도 이렇지는 않았는데요. 보통 교수님들이 깔끔하게 입고 다니시지만 이렇게 차려입지는 않거든요.]
‘그래요?’
[예. 아마 첫 수업이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신경 써서 온 게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꽤 좋은 교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탁에 선 교수는 우선 강의실을 쭉 둘러보았다.
그러다 이안을 보며 노골적일 정도로 강한 시선을 주었다.
경계.
마치 자기 구역에 들어온 불청객을 보는 영역 동물의 시선 같은 눈빛이었다.
‘뭐지.’
영문을 모르는 이안은 의아할 따름이었다.
다른 학생들의 시선도 슬슬 이안에게 돌아갈 때쯤, 교수가 입을 열었다.
“한 학기 동안 기초 마법학 개론을 맡게 된 페이 험멜입니다.”
짝짝짝.
학생들이 의례적으로 박수를 쳐 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흡족하게 미소 지은 험멜이 이어 말했다.
“알다시피 이 과목에서는 마법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들을 배울 겁니다. 한 학기 동안 마법을 느끼고, 관찰하고, 이해하면서 멀게만 느껴지던 마법이 여러분께 좀 더 친근하게 다가왔으면 좋겠어요. 자. 여기서 질문! 마법의 4요소는 뭘까요?”
“네!”
그녀의 질문에 곧바로 손을 든 건 플로라였다.
험멜이 대답해 보라고 고개를 끄덕이자 플로라가 술술 답을 말했다.
“교감. 이해. 직감. 믿음입니다.”
“정답이에요.”
“오오.”
“대단하세요.”
아주 기초적인 상식이었지만 플로라의 추종자들이 가식적으로 호들갑을 떨었는데, 플로라는 한껏 턱을 치켜세우며 으스댔다.
솔직히. 조금 재수 없다고 이안은 생각했다.
어색한 미소를 지은 험멜이 설명했다.
“맞아요. 마법의 4요소라 하지만, 정령술이나 검술에도 비슷하게 적용되죠. 우선 교감.”
험멜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자, 허공에 주먹만 한 물 덩이가 생겨났다.
마법을 처음 보는 학생들은 생경한 모습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예를 들어 마법으로 물을 제어하고 싶으면 당연히 물을 많이 느껴봐야 해요. 그걸 우리는 교감이라 하죠. 긴 시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거나, 찰랑이는 호수에 발을 담가보거나, 물을 마시는 것도 하나의 교감방법이죠.”
학생 중 하나가 손을 들어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은 어떻게 교감하셨습니까?”
험멜은 그 말에 조금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희 가문의 저택 주변에는 푸르른 페이븐 대해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답니다. 어렸을 적부터 가슴에 바다를 품고 살아온 거죠.”
험멜의 설명에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감.
어려운 얘기는 아니다.
검사 중에서는 검에 익숙해진다고 잘 때도 품에 검집을 안고 자는 미친놈들이 많았으니까.
“다 이해하신 것 같네요. 그다음은 이해. 다른 말로는 통찰이라 하기도 하죠. 거기 학생은 물 하면 어떤 특성이 생각나나요?”
“네! 저요!”
험멜은 분명 이안을 쳐다보며 물었다. 하지만 플로라가 손을 들며 휘휘 젓자, 미간을 살짝 좁히며 말했다.
“네 플로라 학생. 대답해 보세요.”
“네! 물은 정해진 형태가 없습니다!”
“오오.”
“역시.”
다시 환호하는 추종자들과 으쓱거리는 플로라. 이 우스운 촌극에 험멜은 쓴웃음을 지었다.
“좋은 답이에요. 정해진 형태가 없다는 물의 특성은 아주아주 중요하죠. 가령…….”
품에서 빈 유리잔을 꺼낸 험멜이 그 안에 물 덩어리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손가락을 들어 물을 공중에 들어 올리자, 원기둥 모양의 물 덩어리가 둥둥 떠 있었다.
“여기서 변형을 줘서……!”
원기둥의 물 덩어리가 꾸물거리더니 그 형체를 바꿔가기 시작했다.
몸이 길쭉해지고 팔과 날개가 돋아나고, 날카로운 이빨이 생겨나고.
전설 속의 용이 그곳에 있었다.
“와아!”
“드래곤이다!”
꽤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수룡이었다.
마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이안도 험멜의 실력이 수준급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험멜은 수룡을 학생들의 머리 위로 날려 보내며 빠르게 설명했다.
“충분한 교감과 이해가 어우러지면, 번뜩이는 무언가가 여러분의 머릿속에 찾아올 겁니다. 그걸 우리는 직감이라 부르죠. 그 직감에 자신은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이 더해지면…… 마법이 탄생합니다!”
하늘을 유회하던 수룡의 몸이 팟―하고 터지더니 때아닌 부슬비가 내렸다.
아름다운 무지개가 교실을 수놓았다.
감탄하는 학생들을 보며 험멜은 싱긋 웃었다.
“방금 건 빛을 굴절시키는 물의 특성을 이용한 마법이랍니다. 멋있죠?”
“예!”
“마법, 재밌죠?”
“예!”
험멜은 간단한 설명과 시범만으로 순식간에 학생들의 관심과 학습 의지를 최대로 끌어올렸다.
숙련된 교육자는 이런 것인가.
“그럼 물의 성질을 정리한 논문을 읽어볼까요?”
쿵.
험멜은 두꺼운 종이 뭉치를 꺼내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첫날이니까 아주아주 특별히 100페이지만 나가볼까요. 어때요? 기쁘죠?”
살벌한 말에 즐거워하던 학생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곳은 코르디스.
대륙 제일의 교육 기관답게 그 학습량은 어마어마했다.
***
그 이후로도 여러 교수들이 들어왔는데, 하나같이 과할 정도로 잘 차려 입고 들어왔다.
보고 있던 이네스도 의아하게 느낄 정도였다.
[학칙이 바뀐 걸까요? 참관일 때나 입는 의상을 입고 있네요.]
게다가 공통적으로 그들은 이안에게 경계의 시선을 보내고, 이안을 시험해보려고 했다.
“이안 학생.”
“…….
“이안 학생!”
“컥.”
꾸벅꾸벅 졸고 있던 이안이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윗머리가 휑한 중년의 역사 교수는 그런 이안을 언짢게 보며 물었다.
“지금 졸고 있던 건가?”
“……잠시 명상 중이었습니다.”
이안은 횡설수설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건수를 물었다 생각한 교수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렇다면 제대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는 거겠지?”
“아, 예. 그렇죠.”
“그럼 이 문제에 관해서 설명해보게.”
이안은 얼떨결에 앞으로 불려 나갔다. 비웃음 가득한 학생들의 시선이 뒤통수에 꽂혔다.
이안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어, 그러니까. 문제가 정확히 뭐였죠?”
“이백 년 전, 그 당시 리벨 남작령에서 악마 군세와 치렀던 수성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보라고 했네.”
사실. 그 부분은 아직 가르치지 않았다.
그저 이안이 졸고 있는 걸 알아챈 교수가 엿 먹어 보라고 낸 문제였다.
‘어디 그 실력 좀 보실까.’
교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안은 멍하니 칠판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하지.’
당연히 이안이 알 리 없는 문제였다.
여기서 그냥 순순히 졸았다고 인정하고 돌아갈까?
하지만 그러기엔 이안이 망신당하는 걸 기대하는 저 눈빛들이 열 받는다.
이안이 넌지시 이네스에게 부탁했다.
‘이네스 님?’
[그래서 제가 수업 시간에 졸지 말라고 했잖아요. 안 알려줄 거예요.]
‘그러면 저 사람들이 절 비웃고, 마음이 아파져서 여기서 엉엉 울지도…….’
[당신은 정말…….]
이러니저러니 해도 부탁하면 들어주는 게 이네스의 장점이었다.
이네스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고 이안은 그걸 그대로 설명했다.
“리벨 남작령에서 있었던 수성전에 대해 설명하려면 그 당시의 남작령이 위치한 지형과 지리학적 특성부터 설명해야 합니다. 우선 남작령의 옆에는 두 개의 강이 있는데…….”
이안의 설명이 시작되자, 어디 한번 지껄여보라는 태도로 서 있던 교수의 얼굴이 점점 해괴해졌다.
그건 학생들도 마찬가지.
이안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디테일하고 박진감 넘쳤다.
한 가지 기묘한 점이라면…….
‘꼭 그 당시를 겪었던 것처럼 말하네.’
어쨌든 지루한 역사 수업보다는 훨씬 재밌었다.
듣고 있던 모두가 점점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때 결사대와 함께한 병사들의 마지막 전투에서 악마 군세를 무너뜨린 덕에, 수성전은 간신히 승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승리는 훗날 더 큰 사건으로 번지는데…… 예. 여기 까집니다.”
긴 긴 설명을 마치자 학생들의 벙찐 표정을 마주할 수 있었다.
솔직히 이안도 중간쯤부터 적당히 끊고 싶었지만, 자기 무용담을 설명하는 이네스가 너무 즐거워 보여 차마 말릴 수가 없었다.
당황한 교수가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어. 훌륭하군. 역사에 대단히 박식해.”
하지만 이내 자기 실수를 깨달았는지, 재빨리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중간중간 자신의 사견을 섞거나,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마치 사실인 양 넣은 부분이 너무 많아. 가령 리벨 남작령 수성전에 대한 기록은 꽤 많은 부분이 유실되어서, 병사들의 세부 편제나 규모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 이건 역사 수업이지 역사 소설 수업이 아니야.”
핀잔을 주는 교수.
이안은 머리를 긁적였다. 거기다 대고 직접 당사자한테 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아, 예. 그럼 저는 이만…….”
“잠깐.”
눈치가 빠른 사람이면 여기서 그냥 보내줬겠지만, 교수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이안을 시험하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이 문제에도 답해보게.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악마의 황도 침입 사건인데…….”
교수는 이후로 3개의 문제를 더 냈다. 그리고 이안은 3개의 문제 모두 트집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답변해냈다.
오히려 교수의 잘못된 지적에 역으로 반박해 교수의 체면을 완전히 구겨 버렸다.
뒤늦게 실책을 알아챈 교수가 상황을 급하게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이네스의 긴 모험담을 읊느라 수업 시간은 다 지난 상태.
그렇게 머리가 휑한 역사 교수는 귀신에 홀린 얼굴로 교실을 나섰다.
이안은 그 뒷모습을 의기양양하게 쳐다보았다.
만약 그가 근현대사를 물어봤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 사실을 교수가 알 리는 없었다.
***
마틴에게서 인원이 다 모였다는 소식을 들은 건 주말이었다.
“어. 생각보다 신청을 많이 했더라고. 그것도 다 신입생으로. 이상한 일이네.”
신입생들이 퀘스트를 받으러 몰려오다니.
마틴은 이 상황이 잘 이해가 안 되었다.
“그래도 원래 기다리고 있던 한 명은 2학년이니까. 알아서 잘 이끌어줄 거야. 그렇지? 로든?”
“어. 어…… 그, 근데 나 자신 없는데.”
이름을 불린 사내가 쭈뼛거리며 일어섰다.
등과 어깨가 굽고, 머리는 산발 머리. 죽은 생선을 연상케 하는 푸른 눈동자가 인상적인 2학년의 이름은 로든.
그리고 그 로든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머리 색이 검다는 것.
이안은 자신 외에 검은 머리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로든도 그 점이 신경 쓰였는지, 이안의 얼굴을 흘끔흘끔 곁눈질했다.
그러다 이안과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한심한 모습을 보이는 로든의 어깨를 마틴이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어차피 별것도 아닌 일이고. 너도 이제 이학년이잖아. 인마. 후배들한테 좋은 모습 보여야지.”
“으, 응.”
대답은 했지만 별로 자신은 없는 눈치였다.
마틴은 벽에 걸린 태엽 시계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근데 나머지 둘도 이 시간에 오라고 했는데…….”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기다리던 두 명이 들어왔다.
“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직 길을 잘 몰라서, 헤맸어요.”
머리를 짧게 친 건장한 체격의 청년. 그리고 갈색 머리를 길게 기른 호리호리한 인상의 소녀.
둘의 사과에 마틴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신입생이면 그럴 수 있지. 어쨌든, 사람이 다 모였으니 바로 갔다 와.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 말을 끝으로 마틴은 다시 서류 더미 속에 파묻혔다.
자치회 일은 주말에 나와 일해야 할 정도로 바쁜 듯 했다.
이안은 나머지 팀원들을 둘러봤다. 어색한 분위기에 어찌할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로든.
그리고 이안을 보고 친절한 미소를 짓는 청년과 소녀.
그런 둘을 보고 이안이 대뜸 말했다.
“연기가 어색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