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자유의 도시(3)
이안의 대답이 예상치 못했다는 듯. 카일이 뜸을 들였다.
“감옥……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혹시 아는 게 좀 있나?”
“코헨의 지하감옥은 유명한 곳이죠. 하지만 아만 가문에서 워낙 꽉 잡고 있는 터라, 내부 정보는 그리 많이 풀려 있지 않습니다. 아! 그래도 한 가지 재밌는 얘기는 있습니다.”
“재밌는 소문?”
카일이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목소리를 낮췄다.
“감옥이란 게 그리 돈 되는 시설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거야 뭐. 그렇지.”
죄수들을 먹이고 재우고 감시하는 것만으로도 돈이 들기 마련이다.
“근데 지금 코헨의 시장, 윌리엄 아만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돈에 미친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이 요즘 되는 대로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고 있답니다. 있는 죄 없는 죄를 다 만들어서 말이지요. 이상하죠?”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발전한 도시와 그 아래에 지어진 지하 감옥.
수상한 시장의 행보.
다행히도, 아직 이안이 알고 있던 지식과 다른 점은 없었다.
카일이 이어 설명했다.
“그래서 상인들 사이에서는 감옥에 뭔가 비밀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비밀이라면?”
“글쎄요. 잘은 모르지만, 일단 돈이 될만한 비밀일 것이고. 도시 하수도에 둥둥 떠내려가는 시체가 많아진 걸 생각하면 뒤가 구린 비밀이기도 하겠지요.”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다.
카일의 말마따나 코헨의 감옥은 철저한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건 쉽지 않다.
‘실제 게임에서도 부지런하게 발품을 팔아야 했지. 그러다 괜히 사건에 휘말려서 피도 보고.’
게임에서 코헨은 의도적으로 플레이어가 불쾌함을 느끼라고 만든 무대 같았다.
길은 복잡하고, 시비 걸릴 확률도 높은 데다가, 상대하는 적들도 만만치 않다.
코헨을 헤매다 어이없는 타이밍에 이벤트를 맞닥뜨려, 사망하고 삭제했던 캐릭터만 몇 개인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른 건 몰라도 성검을 찾기 위한 핵심 정보쯤은 기억하고 있다.
적어도 헤맬 일은 없었다.
그렇게 나름 만족스러운 식사가 끝나고, 카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동안 도시에 계속 머무실 거라는 말이시죠? 그렇다면 나중에 저희 상단 지부에 꼭 들려주십시오. 물건을 팔고, 마녀의 목에 걸린 현상금까지 받으면 섭섭지 않게 보상해드리겠습니다.”
“부탁하겠네.”
둘은 고급스러운 식당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둘에게 삐쩍 마른 아이들이 달라붙었다.
“제발 한 푼만 주세요!”
“3일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제발요!”
“동생이 아파요!”
꾀죄죄한 아이들이 몰려들자 카일이 얼굴을 찌푸렸다.
가게의 점원이 나와 아이들에게 윽박질렀다.
“이 새끼들이 저리 안 꺼져! 죄송합니다. 손님. 계속 쫓아내는데도…….”
“아니. 아니야. 이래야 코헨 답지.”
껄껄 웃은 카일은 적절한 액수의 돈을 꺼내 저 멀리 던져 버렸다.
“돈이다!”
“내꺼야!”
아이들은 감사 인사도 없이 돈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그 모습을 측은하게 보던 카일이 이안에게 충고했다.
“이 도시에서는 만만하고 부유해 보이면 뜯어먹으려 들죠. 경께서도 조심하십시오.”
“충고 고맙네.”
고개를 꾸벅 숙인 카일이 길거리의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이안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연금술사들의 공방에서 쉬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형형색색의 연기 덕에 밤하늘은 뿌옇기만 하다.
달도 보이지 않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스크나 두건으로 입을 가리고 다니고.
별로 마음에 드는 도시는 아니었다.
‘이네스 님은 코헨에 와보신 적이 있나요?’
잠시 기억을 되짚던 이네스가 답했다.
[악마의 군세가 대대적으로 대륙을 침공하던 시기에도 코헨만큼은 저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어요. 제가 있던 결사대라는 게, 제국과 교단의 지원을 많이 받던 터라. 도움을 받았다가는 도시의 자치권을 위협받을 거라 생각 한 거죠.]
예나 지금이나 결국 정치가 문제였다.
코헨은 제국이나 교단에서 간섭할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악마와 홀로 싸우는 걸 선택했다.
설령 방어에 실패해 도시가 명망하더라도.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놀랍게도 도시는 악마들의 군세를 상대로 오랜 시간을 버텼어요. 제가 대악마의 목을 벨 때까지요.]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도시의 저력을 얕볼 수는 없다.
성세를 이루던 찬란한 도시들이 얼마나 허무하게 짓밟혔던가.
[언젠가 듣기로, 도시가 버틸 수 있던 건 연금술 덕분이라 하더라고요. 저 때만 해도 연금술은 천하다 여겨졌는데, 아마 그때부터 귀족들도 연금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까요?]
연금술의 유용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건 바로 이안이다.
당장 코르디스에서 물약으로 힘을 증가시켜서, 이득을 보고 다니지 않았던가.
[어쨌든, 직접 와 보니 기분 나쁜 도시네요. 연기 때문에 달조차 안 보이는 하늘도. 뒷골목마다 풀린 눈으로 서 있는 사람들도. 그리고 지하에 있다는 감옥도.]
‘성검만 아니면 사실 올 필요가 없는 곳이긴 하죠.’
굳이 이 시기에 코헨에 온 이유는 별거 없다.
내년 여름이면 제국과 코헨이 싸우게 되고, 도시는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되면 별짓을 다 해도 성검의 조각을 모을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적어도 1년 안에는 성검 조각을 회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감옥에 직접 들어가야 하는데…….
[카일의 말대로라면, 시장이라는 작자가 무고한 시민들도 마구잡이로 감옥에 집어넣는 것 같던데. 감옥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쉬운 일 아니에요?]
‘문제는 그렇게 되면 어디에 수감될지 모른다는 거예요. 제가 아는 곳에 갇혀야 성검도 구할 수 있는 거고, 나중에 빠져나올 수도 있는 거죠.’
원하는 곳에 원하는 물건을 챙겨가려면 반드시 브로커를 거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브로커가 몇 없다는 것.
다행히 이안에게는 지식이 있다.
굳이 도시를 헤매지 않아도, 브로커와 접선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네스가 물었다.
[지금 바로 갈 건가요? 피곤하지 않아요?]
‘오면서 조금 자둬서 괜찮아요. 게으름 피울 이유는 없죠.’
이안은 대충 주위를 둘러보다 가까운 뒷골목으로 발을 들였다.
코헨의 밤거리는 어두웠고 뒷골목은 더더욱 그러했다.
뒷골목에 들어서자 성인 한 명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앳된 티가 남아 있는 사내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자, 오늘 얼마 치 벌었나 봐봐.”
“여, 여기요.”
아이들이 넝마 같은 주머니를 뒤져 한 푼 두 푼 구리 동전을 손바닥에 올렸다.
사내의 표정이 왈칵 찌푸려졌다.
“이게 다야? 진짜로?”
“네…….”
“거기 식당가는 돈 잘 벌리기로 유명한 곳인데, 겨우 이거라고? 주머니에 꿍쳐 둔 거 아니야?”
“아니에요!”
“진짜 이게 전부예요!”
“죄송해요. 용서해주세요.”
아이들이 아우성치자 사내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 니들이 이러면 내가 나쁜 사람 같잖아. 내가 너희들한테 억지로 돈 뜯는 거야? 응? 대답해봐.”
“아니요…….”
“그치? 아니지? 구걸할 장소도 내어주고. 어. 뒤도 봐주고. 그리고 너희 이거 필요 없어?”
사내가 품에서 자그마한 유리병을 꺼냈다. 누리끼리하고 투명한 액체가 출렁거렸다.
유리병을 본 아이들의 눈빛이 변했다.
“자, 잘못했어요!”
“이번 한 번만 봐주세요!”
“그러니까, 이거 마시고 싶으면…….”
거기까지였다.
드득.
이안은 일부러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밟아 기척을 냈다.
시선이 이쪽에 쏠렸다.
“넌 뭐야?”
긴장한 사내가 이안의 위아래를 훑었다.
그리고 안도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뭐야. 외지인이냐? 썩 꺼져. 앞으로 코헨의 뒷골목에는 함부로 발 들이지 말고. 험한 꼴 보기 싫으면.”
“코헨 주민들은 다 친절한 거 같아. 하나 같이 충고를 해주네.”
위협에도 이안이 물러서지 않자, 사내는 슬며시 품에서 단검을 뽑았다.
뒷골목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무기는 단검이었다.
‘아주 만났다 하면 무기부터 뽑고 보는구나.’
실소를 흘린 이안은 그대로 사내의 안쪽으로 파고들어, 사내의 손을 걷어찼다.
“끄윽!”
챙!
맥없이 떨어트린 단검이 땅과 부딪혔다.
이안은 그대로 사내의 팔을 뒤로 꺾어 힘을 주었다.
“끄…… 아파 아파 아파!”
손쉽다.
낮에 싸웠던 이들보다도 훨씬 약했다.
어느 조직에 속한지는 모르겠지만 말단인 듯했다.
‘하긴. 그러니까 코 묻은 돈이나 등쳐먹고 있는 거지.’
이안은 그대로 팔을 붙잡은 채, 사내의 품에서 노란 약물이 든 유리병을 챙겼다.
그리고 사내의 눈앞에 가져다 대며 물었다.
“이게 뭐야. 무슨 약이야.”
“아프다고 새끼야!”
“이게 뭐냐고.”
꽉!
이안이 힘을 더 주자, 사내가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그렇다고 딱히 마음이 약해지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 조금 열이 받은 참이었다.
뿌드득.
관절에서 무언가 나서는 안 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내가 비명에 가까운 말로 대답했다.
“아악! 그, 그냥 평범한 약이야! 코헨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거라고!”
“그 효과도 말해야지.”
“그냥! 그냥 기분이 조금 좋아질 뿐이야. 지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거라고!”
“이런 상황에서도 혀는 잘 굴러가네. 너는 어디 가서 굶어 죽지는 않겠다. 맞아 죽는다면 몰라도.”
이안은 사내의 품에서 묵직한 주머니를 꺼내, 멍하니 쳐다보던 아인들에게 던져줬다.
돈주머니를 건네받은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차피 니네 돈이야. 가서 맛이는 거 사 먹어. 이상한 거 사먹지 말고. 가라.”
저이들끼리 눈치 보던 아이들이 후다닥 어디론 가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던 사내가 비웃음을 흘렸다.
“푸, 푸하하. 아주 성자 납셨네. 저래봤자 어차피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뜯길 뿐이야. 병신아.”
“그래 잘 알겠고. 그것보다 내가 여기 지리가 좀 긴가민가해서 그런데, 길 좀 묻자. 이 근처에 제법 큰 도박장 하나 있지 않냐? 그거 안내 좀 해봐라.”
“…… 내가 왜.”
“안내하기 싫어?”
사내가 이안을 도발적인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나름 마음에 드는 눈빛이었다.
자존심 때문에 굽히지 않는 게 마치 이안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내는 이내 시선을 내리깔았다.
“하면 되잖아 새끼야.”
“반말은 하지 말고.”
퍽!
이안의 사내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
어느 도시든 도박장은 붐비기 마련이다.
코헨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높게 솟은 6층짜리 건물에는 도박꾼들이 분주히 드나들고 있었다.
‘6층이라니.’
성이나 학사처럼 특별한 건물도 아니고 겨우 도박장 따위를 이렇게 높게 짓다니.
두 가지를 유추할 수 있었다.
이 건물 소유주가 꽤나 돈이 많다는 것과 코헨이 주택난에 시달린다는 것.
땅이 부족할수록 건물은 더 높아지는 법이다.
“끄악!”
이곳까지 길 안내를 해준 사내를 바닥에 내리쳐 기절시키고.
이안은 당당하게 도박장 안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정문에 선 덩치가 막아서려 했지만 대충 돈을 찔러주니 순순히 들여보내 주었다.
안에 들어서자 하룻밤의 스릴을 즐기러 온 사람들과 그들을 벗겨 먹으려는 딜러들이 보였다.
역시 규모가 크다.
‘불법 도박장’이라는 말보다는 ‘카지노’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장소였다.
어디까지나 느낌이 그렇다는 거지만.
[으. 또 도박인가요? 이안, 도박은 이제 끊기로 약속했잖아요.]
‘아뇨. 이번만큼은 제가 원해서 온 건 아닙니다. 여기 윗대가리가 브로커거든요.’
[진짜죠? 거짓말하는 건 아니죠?]
이네스의 의심에 이안은 애써 외면할 뿐이었다.
이미 한번 전적이 있어 변명하기도 민망했다.
[이번엔 진짜로 믿어요. 진짜로요.]
‘네에…….’
이네스의 타이르는 듯한 어조에, 이안은 저도 모르게 슬며시 손에 쥐었던 돈 주머니를 도로 내려놓았다.
대신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너네 사장 어딨어.”
너무나 당당한 태도에 당황한 경호원이 저도 모르게 답했다.
“6층에서 회의를 하고 있으십니다.”
“그래? 알았어.”
“근데 누구신지…….”
“몰라도 돼.”
경호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 이안은 당당한 걸음걸이로 계단을 올랐다.
일부러 후드와 마스크도 벗었다.
직원들은 이안을 지나치며 고개를 갸웃했다.
“검은 눈에 검은 머리네. 재수 없게 스리. 누군데 올라가는 거야.”
“몰라. 근데 허락받은 거 아니야?”
“그런가?”
너무나 당당한 태도는 도리어 의심을 가지기 힘들게 만들었다.
덕분에 이안은 무려 5층까지 아무런 제지도 없이 올라갔다.
만약 5층이 출입 금지가 아니었다면 이안은 6층까지도 아무 탈 없이 올라갔을 것이다.
5층.
의자에 앉아 지루하게 앉아 있던 덩치가 이안을 쳐다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넌 뭐야 이 새끼야?”
이안은 씨익 웃었다.
***
“형님. 마일로 그놈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아주 골목 구석구석을 꽉 잡고 있어요.”
“시에서도 점점 과격하게 행동하고 있어요. 빨리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그래. 이렇다 할 뾰족한 수는 있고?”
상석에 앉아 있던 대머리 사내의 말에 아우성치던 부하 수십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 반응에 대머리 사내는 머리를 싸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 이대로 우리도 그 마일로 빌어먹을 자식한테 먹히거나, 제타 가문처럼 쫓겨나는 수밖에 없는 건가?’
고심이 깊어졌다.
부하들도 좋은 의견은 없는지, 누구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침묵. 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다못해 시끌벅적하기라도 했다면 좀 나았을 텐데.
어두운 미래와 맞물린 지금의 침묵은 너무나 숨이 막혔다.
‘아무나 아무 말이라도 좀 해보라고!’
깊은 짜증을 느끼며 누군가 침묵을 깨주지 않을까 속으로 바라던 그때.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쾅!
굉음과 함께 문이 박살 나고, 거대한 덩치가 회의실 안으로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