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고인물로 살아남기-75화 (76/222)

75. 감옥

“호크의 상태가……!”

안 그래도 반짝이던 호크에게서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무언가 상태가 이상하다.

이안은 저도 모르게 호크에게 손을 뻗으려 했다.

강한 열기가 손에 느껴졌다.

“피요.”

낯선 울음소리에 이안이 살며시 눈을 떴다.

손 위에는 호크가 앉아 한가롭게 부리로 깃털을 매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이전과 달랐다.

날카로워진 부리와 늠름해진 눈매.

원래 병아리인지 보라매인지 전혀 구별할 수 없었다면 이제는 제법 매의 형상을 갖추었다.

손바닥만 하던 크기에서 이제는 사람 머리통 정도로 커지니 그 자태가 꽤 우아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전의 귀여운 모습보다는 이쪽이 더 취향이었다.

이네스도 감탄했다.

[와. 어머니 나무의 잎사귀라는 게 생각보다 더 대단한 물건인가 봐요.]

이안은 조심히 손을 뻗어 호크를 어루만지려 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호크의 몸통을 통과해 버렸다.

“피요?”

“아직 실체가 있지는 않네요.”

[그 단계에 이르려면 몇 년은 더 수련해야 할걸요? 다만, 모습이 변한만큼 이전보다 더 뛰어난 움직임을 보여줄 거예요.]

고개를 끄덕인 이안은 곧바로 머릿속으로 명령을 내렸다.

푸드득.

날개짓과 함께 호크가 날아올랐다.

이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빠른 움직임이었다.

[정령을 부릴 수 있는 거리도 늘어났을 거예요. 한번 날려 보세요.]

“한번 멀리까지 날아봐.”

방안을 한 바퀴 빙글 돈 호크가 그대로 창문을 통과해 밖으로 날아갔다.

이안은 곧바로 눈을 감았다.

‘감각 공유.’

어두웠던 시야가 탁 트였다.

어느새 이안의 의식은 코헨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호크의 시선으로 보노라면 세상은 너무나 밝았고, 찬란했다.

사시사철 우중충한 코헨도 지금만큼은 매우 아름답게 보였다.

‘이게 원래 코헨이 되었어야 할 모습이 아닐까.’

어제의 전투를 모르는 시민들은 평온했다.

몇몇은 호크를 보며 손가락질하고 놀라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날다 보니, 코헨의 높은 건물들 사이에도 단연 눈에 띄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시청…… 이라 하기에는 영주성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건물.

이제부터 이안이 가야 할 곳이 바로 저 건물의 지하에 있는 감옥이었다.

“피요!”

어느새 손 위로 돌아온 호크가 기분 좋게 울었다.

“저랑 떨어져서 갈 수 있는 한계 거리는 아직 이 정도네요. 그래도 정보를 엿듣거나 정찰하거나 할 때 도움이 많이 될 거 같아요.”

다른 무엇보다 호크는 빛으로 이루어져 아무리 좁은 틈이라도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이안이 호크의 활용에 대해 이리저리 고민하고 있을 때.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이안의 대답에 방문이 열렸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잭과 흰 가운을 입은 여성이 들어왔다.

잭이 얼굴을 찌푸렸다.

“혹시나 하고 문을 두드린 건데, 설마 진짜로 정신을 차렸을 줄이야. 최소 사흘은 기절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럴 때 보면 신은 참 불공평한 거 같군.”

“그러는 너도 배 갈라져서 속에 있는 거 다 쏟았는데, 이렇게 목숨이 붙어 있잖아.”

잭의 상태는 빈말로라도 멀쩡하지 않았다.

어제 이안이 싸울 당시, 잭은 이미 살아 있는 게 용할 상처였고 한시가 급했었다.

하지만 마일로와 이안의 전투를 끝까지 눈에 새겨야 한다고 치료를 미뤘다.

덕분에 상처가 더 벌어져, 지금은 붕대에 칭칭 감겨 스스로는 거동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잭이 허세를 부렸다.

“하. 코헨에서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냐. 돈만 있다면. 그것보다 레이브, 빨리 시작하지?”

“안 그래도 그러려던 참이야.”

“레이브 공방의 책임자야. 연금술은 물론, 의예에도 조예가 깊으니 믿어도 좋아.”

이안은 다소 놀랐다.

공방의 책임자라 하면 더 나이 들고 관록 있는 이미지였는데, 눈앞의 여성은 기껏해야 3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시선을 눈치챘는지 레이브가 말했다.

“당신이 이안? 이래저래 우리를 도와줬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어.”

“내 상처를 치료해준 게 그쪽?”

“그래. 조금이지만 빚은 갚아야지.”

그리 말하곤 빨리 상처를 보여달라는 것처럼 손을 휘이 저었다.

이안은 옷을 벗었다.

레이브가 상처에 감겨 있던 붕대를 풀어냈다.

그러곤 감탄을 흘렸다.

“허. 당신 뭐, 괴물이야? 그 상처가 이렇게 빨리 아문다고? 혈관에 피 대신 약이 흐르는 코헨 사람도 이 정도는 아닌데…….”

“마일로 놈이 그렇게 푹푹 찔러댔는데도 멀쩡하군.”

옆에서 잭이 거들었다.

레이브는 학자 특유의 호기심이라도 동한 건지 이안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역시. 어제도 봤지만, 감탄 밖에 안 나와.”

“뭐가.”

잭도 고개를 내밀어 자세히 봤다.

“잘 봐봐. 칼날이 깊숙하게 베고 지나갔지만, 정말 위험한 혈관이나 장기는 모조리 피해갔다고. 쌈질하는 중에 다 계산했다는 거지. 넌 이런 거 할 수 있어?”

“…… 못 하지.”

“대체 어디 출신이야. 황실 기사라도 되나? 아니, 생긴 거 보면 그럴 것 같지도 않은데. 이제 와서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정말 믿을만한 사람인 거 맞아?”

이안을 진짜 의심한다기보다는 순수하게 학자로서 궁금해하는 느낌이었다.

뭐라 대답해야 하나 이안이 곤란해할 때.

잭이 적절하게 끼어들어 레이브를 쫓아냈다.

“진료 끝났으면 넌 이제 가. 공방 재건으로 바쁘면서 쓸데없는 데에나 관심 가지고 있어.”

“그 바쁜 사람 불러온 게 누군데. 아무튼, 다음에 또 보자고?”

팔을 휘휘 흔든 레이븐이 방을 나가 버렸다.

이제 방안에는 이안과 잭 단둘뿐.

자신을 바라보는 잭의 표정을 본 이안이 미리 선수를 쳤다.

“알았어. 고맙고 미안한 거 다 아니까, 시간 낭비하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흠. 크흠. 그렇다면야 뭐. 우선 이것부터 받아.”

잭이 품을 뒤져 단검 한 쌍을 건네주었다.

마일로가 사용하던 아티팩트인 ‘활공하는 단검’.

이안은 사양하는 말도 없이 단검을 받아들였다.

“좋네. 보는 것만으로도 베일 것 같은 기분이야.”

“날카로움이 유지되도록 힘이 실려 있으니까, 굳이 숫돌에 안 갈아도 될 거야. 다른 능력도 있는데 단검을 던지면…….”

팍!

이안은 설명을 기다리지 않고 팔을 휘둘렀다.

빠르게 날아간 단검이 벽에 깊숙이 박혔다.

“…… 말하는 데 도중에 무슨 짓이야.”

“이걸 이렇게 하는 건가?”

이안이 정신을 집중해 손바닥을 오므리자 단검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쑤욱.

그리고 이내, 벽에서 튀어나온 단검이 이안의 손에 되돌아왔다.

‘주인의 손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기능. 원래라면 마일로는 이 기능을 사용해서 변칙적이고 정신없게 공격해 왔어야 해.’

하지만 마일로는 약을 이용해 한계까지 신체 능력을 올렸다.

단검을 공중에서 요리조리 움직이며 싸우느니, 직접 손에 들고 싸우는 게 몇 배는 효율적일 정도로.

그렇기에 굳이 아티팩트의 기능을 쓰지 않았다.

이네스는 신비한 단검에는 큰 감흥은 없는지, 심드렁하게 말했다.

[던진 무기를 일일이 줍지 않아도 된다니, 편리한 기능이긴 하네요.]

어쨌든, 나쁘지 않은 수확이다.

언제나 검만으로 싸울 수 없는 노릇이고, 비장의 수는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좋았다.

이안은 요술 주머니 속에 단검 한 쌍을 집어넣었다.

마일로가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요술 주머니인가. 귀한 물건을 가지고 있군. 마녀들도 많이 못 만들어내던 물건인데…… 레이브도 물었던 거지만, 대체 정체가 뭐야?”

이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대답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것보다 거래 얘기부터 하자고. 나는 내 할 일을 다 했으니, 이제 너도 내가 원하는 걸 들어줘야지.”

“…… 감옥 말이군. 안 그래도 그 얘기를 하러 왔다.”

“난 반드시 3구역으로 가야 해. 그것 때문에 번거로워도 널 거치는 거고.”

게임에서 성검의 조각을 얻으려면 감옥의 3구역에 수감 되어야만 했다.

다른 구역에서도 성검을 얻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그러면 여러모로 일이 복잡해진다.

지금 이안의 목적은 이러했다.

감옥에 잠입한다.

성검의 조각을 찾는다.

조용하고 빠르게 탈옥한다.

그 과정에서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으면 최고였다.

3구역이라는 말에 잭이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3구역 3구역이라…… 거기서 찾을 사람이 있다 했던가?”

분명, 잭과 처음에 계약할 때 그런 핑계를 댔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지.”

“너 정도 되는 사내가 직접 찾으러 갈 정도의 인물이라니. 내가 알기로 거기 수감된 사람 중에서는…… 아.”

무언가 떠올랐는지, 잭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이안을 위아래로 살피더니, 뭔가를 납득 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렇게 된 거였어.”

“되긴 뭐가 돼. 너 혼자만 알지 말고 나도 좀 알자.”

“아무튼 알았다. 이제야 대충 상황이 이해되었어. 설마 녀석들한테 너 정도 되는 인물을 고용할 여력이 남아 있었을 줄은 몰랐지만. 아니, 고용된 게 아니라 자진해서 온 건가?”

“아니, 그러니까 무슨 얘기 하냐고 대머리야.”

하지만 잭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이안의 어깨를 두드려줄 뿐이었다.

“나도 준비는 필요해. 네 몸이 나을 때까지 생각하고 여유롭게 잡으면…… 이주일. 이주일 만 기다려줘.”

“뭐. 그 정도야 기다려줄 수 있지.”

“바로 준비하러 가보지. 이후에 또 얘기하자고.”

비장하게 말한 잭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이안이 물었다.

“안 나가고 뭐 해.”

“…… 휠체어를 밀어주던 레이브가 가버렸다. 네가 좀 밀어줘야겠는데.”

“…….”

***

이안은 도시를 걸었다.

큰 싸움이 있었고, 거리의 세력 구도가 완전히 바뀌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언뜻 봐서는.

이안은 뒷골목을 살폈다.

청년이고 아이고 할 거 없이, 모두 연분홍색 약병을 들고 있었다.

잭은 이제 대대적으로 자기들이 만든 약을 배포했다.

레이브가 만든 회심작으로, 그 부작용을 크게 낮춘 약이었다.

의존성과 부작용이 심하던 마일로의 약은 더는 유통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마일로의 편에 붙어 있던 공방들은 모조리 파괴되거나 레이브 공방에 기술을 뺏기고 흡수되었다.

잭은 이런 쪽에서 만큼은 철저했다.

‘잭이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요.’

[마일로가 죽었으니, 이제 그가 지고 있던 짐까지 잭이 짊어지게 됐죠.]

진짜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잭이 상대할 적은 윌리엄 아만.

긴 싸움으로 지친 잭이, 지금껏 온전히 세력을 보존한 아만을 이겨내는 건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게임에서는 언제나 패배했으니까.’

코헨에서 플레이어가 스토리적으로 관여할 부분은 적다.

어떤 선택지를 고르든. 어떻게 조직을 키우든 마찬가지다.

스스로 자멸하거나. 아니면 제국에게 먹히거나.

코헨의 마무리는 항상 멸망으로 맞이했다.

이번에는 다를까?

이번에 이안이 만들어낸 변수가, 대체 어떤 결과로 다가올까.

알 수 없다.

어쨌든 확실한 건, 이 도시의 결말을 맺는 건 이들이 할 일이지, 이방인인 이안이 관여할 부분은 아니리라는 것이다.

‘애초에 윌리엄 아만이라는 캐릭터는 게임에서는 등장도 안 했고요. 제가 뭘 어떻게 할 건덕지는 없죠.’

그저 이안은 만족할 뿐이었다.

지금 이안의 행동으로 도시가 조금은. 아주 조금은 나은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말이다.

이안은 고개를 들었다.

평소보다 하늘이 덜 흐릿했다.

싸움의 여파로 공방의 굴뚝에서 내뿜는 연기가 잠시 줄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날씨가 좋은 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안은 기분 좋게 거리를 거닐었다.

‘빨리 돌아가서 명상하고 싶네요.’

[스스로 배우는 자세, 아주 좋아요.]

이번 전투에서는 얻은 게 많았다.

특히 엄청난 집중 상태에 들어가 적의 공격을 예측하는 기술이 그러했는데, 아쉽게도 평소에는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그때는 경각에 달한 사람 특유의 초인적인 힘으로 간신히 가능했다 할까.

어쩌면 그 기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게 다음 경지에 나아가기 위한 발판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꾸준히 시간을 들여 연습한다면, 더 나아질 것은 확실해 보였다.

***

시간이 흘렀다.

계절은 어느새 늦여름에 접어들고 있었다.

무더위에 땀을 흘리며 단련하던 이안에게 잭이 다가왔다.

“이안. 날짜가 정해졌다. 사흘 뒤에 다시 죄수를 잡아넣을 거라더군. 그때 내가 접선한 간수를 통해 숨어 들어가야겠어.”

잭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켜주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수고했어.”

“다만 한 가지. 물건은 정말 작은 크기 아니면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 이것만큼은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하다.”

“그 정도쯤은 이미 알고 있었어.”

이안은 요술 주머니를 꺼냈다.

숨기고 들어가기에는 딱 적당한 크기.

이안은 그 안에 무기며 꼭 필요한 물건들을 주섬주섬 집어넣었다.

마침내 감옥으로 갈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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