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고인물로 살아남기-101화 (102/222)

101. 월안

코헨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바혼은 원수를 갚기 위해 마녀들의 어머니가 사라졌던 대초원으로 향했었다.

원수를 갚고 돌아와, 이안에게 입은 은혜를 반드시 갚겠다고 장담하던 그 나바혼은……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으으으.”

상처 입은 짐승이 낼 법한 울음소리가 나바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안은 새로 얻은 눈으로 나바혼의 가슴을 살폈다.

나바혼에게도 아직 영혼이 남아 있었다.

그의 영혼은 잔뜩 찌그러진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키히히. 놀라워! 이렇게 맛있는 냄새는 처음이야!”

어느새 나타난 마녀들의 어머니의 흉한 입가에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누렇게 뜬 눈동자는 이안을 쳐다보며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나바혼은 그런 마녀를 보호하듯이 위치를 옮겼다.

이안은 성검을 뽑으며 물었다.

“네가 이 친구를 이렇게 만든 거냐?”

“응? 둘이 아는 사이? 아이고 내 새끼! 이런 친구가 있었으면 말을 했어야지!”

마녀는 나바혼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마치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마녀가 샛노란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 너도 금방 내 아들로 삼아줄 테니까!”

퉁!

마녀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호수 바닥에 내리찍었다.

그러자 작은 파문으로 시작하던 흔들림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주위로 퍼져나갔다.

쏴아아아!

이안은 파도가 덮치기 전에 힘껏 뒤로 물러났다.

걸음이 제약되는 호수 바닥은 그리 싸우기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그때.

솟아오른 파도를 반을 가르며 나바혼이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그아아아!”

손에 든 건 예전에도 보았던 손도끼와 지팡이.

하지만 그 모습은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푸르른 기운을 뿜던 지팡이의 끝에는 짐승의 이빨이 빼곡히 박혀 있었고, 도끼는 검 보랏빛을 띠었다.

게다가 속도도 예전과 달리 훨씬 빨라졌다.

이안은 마녀가 나바혼에게 무슨 주문을 걸었는지 알아챘다.

‘광전사…… 이성을 잃은 대신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어.’

이안은 성검을 양손으로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나바혼이 양손의 무기를 번갈아 가며 휘두르며, 성검을 미친 듯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이안의 몸이 연신 뒤로 밀려났다.

[마녀랑 나바혼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나? 까다로운데.]

이안이 기억하기로 마녀의 어머니는 마흔아홉 가지의 주술을 다룬다는 설정이었다.

게임에서야 기껏해야 네 가지 정도를 선보였지만, 이곳에서도 그럴 거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애초에 성소에서 마주치는 건 예상외였으니까.

‘이번 변수는 나바혼 때문인가? 아니면 바톨 때문? 둘 다 게임에는 없는 캐릭이니…….’

변수가 생겨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하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문제는 이 상황을 이안이 극복할 수 있느냐다.

‘다른 사람들은…….’

두 부족의 전사들은 서로 얽히며 칼부림을 시작했다.

그중에는 괴물처럼 생긴 말에 올라타 검을 휘둘러대는 바톨도 있었다.

헬렝게 부족의 전사들의 숫자가 더 적었지만, 그들에게는 곧 마녀들이 가세했다.

마녀들이 초원의 부족들을 습격해 얻어낸 시체들까지 일어서자, 곧 전세가 팽팽해졌다.

‘스텔은…….’

스텔에게 다가간 건 다른 사제들이었다. 다짜고짜 공격을 날리던 이전과는 달리, 그들은 스텔에게 무어라 열변을 토해내고 있었다.

영혼의 상태를 보면 잔뜩 격앙되어 있지만, 스텔의 영혼에는 아주 자그마한 미동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눈에 띄는 건 대칸과 헬렝게의 족장.

두 초인은 조용히 검을 붙잡은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번 싸우기 시작하면 한쪽이 죽기 전까지는 결판이 나지 않을 것이기에, 지극히 신중한 모습이었다.

이안은 미간을 좁혔다.

‘결국.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건가.’

[나바혼은 분명 위협적인 상대지만, 진짜 위험한 건 마녀예요. 어떤 기상천외한 수를 쓸지 모르니…….]

‘어떻게든 해봐야죠.’

우선은 나바혼이다. 나바혼을 뚫지 못하면 마녀를 처리할 수 없다.

이안은 눈을 부릅뜬 채 나바혼의 움직임을 쳐다보았다.

‘빠르고 매섭지만, 전부 다 읽혀요. 너무나 잘 보인다고 해야 하나.’

새로 얻은 눈 덕분에 나바혼의 움직임이 모두 보였다.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멈출지.

어느 지점에서 힘을 주고, 가속하는지.

처음부터 모조리 읽어낼 수 있었다.

그만큼 이성을 잃은 나바혼의 공격이 단조로운 것이기도 했다.

‘보이는 것만으로도…… 경지가 한 단계 오른 것 같아요.’

깨달음을 얻은 바둑 기사와도 같은 기분이었다.

분명 숱하게 겪어왔던 상황이지만, 그동안 보이지 않던 수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걸 눈이 뜨인다고 하던가.

이안은 곧바로 검을 대각선으로 올려, 도끼를 걸어 위로 올렸다.

“그어……?”

도끼를 든 손이 올라가면서 나바혼의 가슴 쪽이 활짝 열렸다.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쭉한 게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이안의 팔꿈치가 나바혼의 가슴을 찍었다.

퉁!

‘아야. 무슨 돌덩어리라도 찍은 것 같네.’

단단한 피부에 막혀 큰 충격은 주지 못한 듯하다. 하지만 잠시 균형을 잃게 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나바혼의 몸이 기우뚱 넘어간 그때.

이안의 검이 번개처럼 내리쳐졌고, 나바혼의 오른 다리가 맥없이 잘려나갔다.

아무리 단단한 피부라도 제대로 휘둘러진 이안의 일격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그어어어!”

나바혼이 고통 어린 비명을 질렀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안은 쓰러진 나바혼을 지나치며 마녀에게 향했다.

주문을 외우던 마녀가 크게 당황했다.

“내, 내 새끼를 벌써……!”

돌연, 마녀가 식칼을 꺼내 자기 손목을 그었다. 후두둑 떨어진 피가 호수물을 물들이고, 이내 이안이 달려오던 곳마저 새빨갛게 변했다.

피 섞인 호숫물은 더는 아까와 같이 포근한 느낌이 아니었다.

끈적끈적하게 몸에 얽혀오는 소름 끼치는 기분.

핏물이 마녀의 손짓에 따라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키히!”

거친 물살과 함께 이안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몸이 뒤로 밀려 나갔다.

마녀와는 정 반대 방향. 그러니까, 나바혼이 서 있던 그곳이다.

우득. 드드득.

뒤쪽에 있던 나바혼의 몸속으로 핏물이 스며들고, 잘렸던 팔이 깔끔하게 붙었다.

“그어어어!”

팔이 잘린 게 화가 나는지 나바혼이 거칠게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마녀의 조종에 따라 나바혼이 딛는 대지만 핏물들이 길을 비켜주어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마녀의 실력은 이네스조차 경악할 정도였다.

[주술을 다루는 솜씨가……!]

이안은 곧바로 반격하려 했지만, 핏물이 다리에 달라붙어 움직임을 방해했다.

들고 있던 도끼를 내던져 버린 나바혼이 지팡이를 양손으로 붙잡고 힘껏 내리쳤다.

쾅!

이안은 검을 들어 막아내었다. 내리치는 힘이 어찌나 강한지 두 다리가 흙 속에 움푹 파묻혔다.

마녀가 환희에 차 말했다.

“잘했다. 내 새끼! 그대로 붙잡고 있어!”

마녀가 정신을 집중한 뒤, 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 호수의 모든 물이 한데 뭉치더니, 하늘에 둥실 떠올랐다.

거대한 핏빛 물방울이 저 높이 부유했다.

둥실 이동하던 물방울이 향한 곳은 이안의 바로 위.

이안의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는 이미 물방울이 빠르게 낙하하고 있었다.

좋지 않다.

저런 걸 얻어맞았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마녀가 외쳤다.

“키히! 죽지는 마! 내 새끼로 삼아줄 테니!”

어떻게든 버텨내던 이안은 흘끗 눈앞의 나바혼을 쳐다보았다.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이안을 내리찍는 나바혼에게는 이성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영혼은 여전히 고통스러워한다.

이안은 이를 악물었다.

“미안하다.”

이안은 발로 힘껏 차 나바혼을 밀쳐냈다. 그리고 생겨난 잠깐의 틈. 이안은 목에 건 브로치에 손을 가져다 댔다.

화아악!

섬광에 뒤이어 뜨거운 열기가 일대에 퍼졌다.

갑작스러운 열풍에 격전을 치르던 모두가 호수의 한 가운데를 쳐다보았다.

거대하게 뭉쳐 있던 호숫물이 화염 장벽과 만나 순식간에 증발했다.

자욱한 수증기에 주위에 퍼져나가 일대를 뒤덮었다.

“콜록콜록! 이게 뭐야!”

“안 보이잖아!”

“일단 무기부터 휘둘러!”

시야가 가려진 지금.

본격적인 난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게 신호가 된 듯.

그때까지도 서로를 탐색하듯 쳐다보던 두 초인이 땅을 밟았다.

전투가 무르익었다.

***

‘주위가 보이지 않아.’

사방이 핏빛 수증기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호크를 소환해도 별 의미 없을 터.

하지만 이안에게는 보였다.

호수 저편. 새까맣게 꿀렁이는 사악한 영혼이.

영혼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상황이 이상해지자 마녀는 그 뚱뚱한 몸을 이끌고 도망치고 있었다.

‘놓칠 수 없지.’

마침 마녀 덕에 호숫물이 전부 증발했다.

이제 이안의 걸음을 방해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안은 빠르게 호수를 질주했다.

그가 다가오는지는 꿈에도 모르는 마녀는 뒤뚱뒤뚱 도망치고 있었다.

이안은 그 무방비한 등에 성검을 내리꽂았다. 칼날이 마녀의 심장을 꿰뚫었다.

“카아아아악!”

가래 끓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마녀는 쓰러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심장이 그녀의 급소가 아닌 듯했다.

마녀는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반격을 위해 주문을 외우려 했다.

보였다.

그 어떤 주문도 결국은 믿음의 힘이고, 마음. 즉 영혼의 발현이다.

마음을 정확히 읽어낼 수는 없지만, 주문의 타이밍이나 범위 정도는 가늠할 수 있었다.

“얽혀라!”

마녀의 외침과 동시에 허공에서 가시나무 자라나 그녀를 넓게 에워쌌다.

한번 찌른 대상을 죽을 때까지 옭아맨다는 가시나무였다.

하지만 가시나무가 자라기 전, 그 미세한 틈을 이안은 이미 통과했다.

힘껏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이안은 생각했다.

‘심장이 급소가 아니었지. 그렇다면…….’

가시나무가 자라던 모양을 생각했다. 가시나무는 배 언저리부터 자라났다.

그곳을 가장 먼저 보호하고 싶다는 마녀의 무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안은 온 힘을 다해, 관절과 무게 중심을 최대한 이동하며, 될 수 있는 대로 허리를 돌려 검을 휘둘렀다.

어마어마한 힘이 실린 검이 가로로 휘둘러지고. 마녀의 허리를 너무나 부드럽게 훑고 지나갔다.

마치 그 중간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카…… 카아…….”

비명을 내지르던 마녀의 상체가 스르륵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다.

두 동강 난 마녀의 눈에서 생기가 빠져나갔다.

이안은 성검을 크게 휘둘러, 검에 묻은 피를 후두둑 털어냈다.

수증기가 가라앉고, 주위 상황이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마녀들의 어머니가 죽자 그녀가 일으킨 시체들 역시 흙으로 돌아갔다.

“와아아아!”

“마녀가 쓰러졌다! 몰아붙여!”

난전을 벌이던 샤카자이의 전사들이 기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안은 서둘러 스텔을 살폈다.

전장 한복판에서도 열변을 토해내던 사제들은 찌그러진 시체로 변해 있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그 가운데에서 스텔은 멍하니 서 있었다. 멍한 건 언제나 그랬지만 지금은 그 느낌이 다르다.

‘왠지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대칸과 족장의 싸움이다.

둘의 싸움은 일반인의 눈으로는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뒤늦게 들리는 소음이나 충격파만이, 둘이 격돌하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다행히 이안에게는 보였다.

새로 얻은 힘은 그들의 움직임을 그 끝자락이라도 보여주게 해주었다.

‘세상에.’

이제껏 본적 없는 싸움이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전투였다.

검광을 두른 대검끼리 충돌할 때마다 불티와 함께 주위로 충격파가 퍼졌다.

그 둘은 분명 언덕 위에서 싸움을 시작했지만, 지금 그 언덕은 호수보다도 더 낮아져 있었다.

이안은 눈 한번 감지 않고 그 모든 장면을 담았다.

작은 장면 하나라도 잊지 않기 위해 모든 집중을 발휘했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그들의 전투가 막을 내릴 때까지.

이안은 그저 제자리에 서서 충격 받은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도무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새 지평을 보았군요.]

이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 앞을 가로막는 벽이 또 한 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안

불길한 인상:

■■□□□□□□□□

주머니 털기:

■■□□□□□□□□

축복받은 신체:

■■■■■■□□□□

영웅의 검술:

■■■■■■□□□□

승마:

■■■■□□□□□□

예절

■■□□□□□□□□

빛의 정령술

■■■■■□□□□□

신궁

■■■□□□□□□□

월안(月眼)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