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고인물로 살아남기-105화 (106/222)

105. 페텔

이안은 습격해온 놈들을 살폈다.

아직 젊은 청년들 다섯이 각자 손에 조잡한 날붙이를 들고 있었다.

그 영혼에 떠오른 건 두려움과 적의. 그리고 탐욕.

식칼을 손엔 든 청년이 벽에 부딪혀 축 늘어진 동료를 보다, 외쳤다.

“젠장! 한스를!”

청년은 앞뒤 안 가리고 이안에게 달려들었다.

딱히 위협적인 상대는 아니었지만, 일단 무기를 들고 몰래 찾아온 순간 그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 한다.

이안은 너무나 간단히 청년의 팔을 잡아 가볍게 꺾었다.

우득!

뼈가 똑― 하고 부러져 힘없이 아래로 처졌다.

눈을 휘둥그레 뜬 청년은 뒤이어 찾아온 고통에 바닥을 굴렀다.

“끄아아악!”

“허, 헉!”

“팔이……!”

“멍청아! 상대는 맨 손이잖아! 한꺼번에 덤벼들어!”

한 청년의 외침에 나머지가 모두 달려들었다.

두렵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평생을 함께 해왔고, 앞으로도 함께할 공동체의 신뢰를 잃는 게 더 두려웠다.

한숨을 내쉰 이안은 앞서서 오는 순서대로 아까와 같은 꼴을 내주었다.

이안이 손을 뻗으면 어김없이 팔 하나가 부러졌다.

“끄악!”

“끄으…….”

그렇게 찰나의 순간에 청년들을 모조리 해치워 버린 이안은 생각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스텔을 노리는 교단 쪽 습격자일 줄 알았는데…… 그냥 도적만도 못한 마을 농부 수준이네요.’

[아마 집에 돌아온 농부들에게 우연히 마을에 찾아온 돈 많은 여행자에 관한 얘기를 들었겠죠.]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이안은 청년 하나의 머리를 붙잡은 뒤, 물었다.

“아, 아윽! 살려주세요…….”

“아니. 죽일 생각은 없고. 왜 칼 들고 찾아온 거야. 누구한테 얘기를 들은 거고.”

“그, 그냥 아버지께서 돈 많은 여행자한테 술 얻어먹으셨다고 좋아하셔서 친구들이랑…… 그냥 돈만 조금 훔쳐갈 생각이었어요! 해코지할 생각은 일 절 없었고요! 믿어주세요!”

이안은 비웃음을 흘렸다.

무기를 하나씩 들고 야밤에 찾아왔으면서 무슨.

아무리 조잡한 날붙이라도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넘치도록 충분한 법이다.

어쨌든 이네스의 추측이 옳았다.

하지만 아직 의문이 남았다.

“그러니까, 너희 아빠는 관계없다 이거지?”

“예? 예…….”

“그러면 부모들 몰래 벌인 일이라는 거네?”

마을 전체가 작당해 여행자를 털어먹기로 했다면, 좀 더 많은 숫자가 몰려 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청년들은 부모 몰래 자기들끼리 일을 벌였다.

좀 더 꿍꿍이가 있다는 얘기였다.

“돈을 훔쳐서 어디 쓸 생각이었는데.”

“그게…….”

“사실대로 말해.”

이안은 구태여 위협의 말을 내뱉지 않았다.

하지만 청년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괜히 숨겨 봤다 좋은 꼴을 못 보리라는 것을.

“페, 페텔에 있는 교단에서 병사를 새로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페텔? 여기서 북쪽으로 좀 가면 나오는 도시?”

“예에…….”

여기서부터는 앞선 오우거 이야기와 맞물린다.

페텔에 있는 교단의 성기사단은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성기사는 교단에서 다시 파견해주겠지만, 그들을 지원하는 병사들은 직접 페텔에서 육성해야 했다.

당연히 교의 병사인데, 아무 용병이나 받을 수는 없다.

교단에서는 젊은 청년과 소년들을 모집해, 시간을 들여 신앙적 교육과 무술을 가리켜 한 명의 어엿한 정예병으로 키워낸다.

[교단의 병사면 평민들 사이에서는 엄청나게 인정받는 직업이에요. 답답한 농부 생활에 싫증을 느낀 혈기 왕성한 청년들을 홀리기에는…… 충분하죠.]

다만. 교단의 병사에 지원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최소한의 무장은 직접 갖춰야 했기에 돈이 들고, 심지어 입단비도 따로 받았다.

그리고 그 입단비가 생각보다 비싸다.

교단에서는 어디서도 배우기 힘든 전문지식을 알려주니, 당연하다는 입장.

평생을 농부로서 살기는 싫었던 청년들에게는 너무나 간절한 기회였다.

하지만 낼 돈이 없다. 그렇게 골머리를 앓을 때, 마을에 부유한 여행자가 찾아왔다.

“그래서 내 돈을 털어서 거기로 도망치려 한 거고? 부모 몰래?”

“예에…….”

“신을 섬기는 병사가 되겠다는 놈이 할 만한 짓은 아닌데.”

이안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웃음을 흘리던 그때.

밖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한스! 어딨니!”

“대체 무슨 일이냐!”

처음 문을 따고 들어오려는 청년이 벽에 날아가 부딪혔을 때 난 소음을 듣고 마을 주민들이 잠에서 깬 모양이다.

이안은 쓰러져 신음하는 청년들을 대충 업고 여관에서 나왔다.

마을주민들은 다들 횃불과 농기구 따위를 들고 있었는데, 청년들의 팔이 모두 부러진 걸 보고 놀란 듯했다.

“엄마! 흐어어엉!”

“아이고 우리 아가! 이게 무슨 일이야!”

“저, 저 사람이! 팔을……!”

순식간에 마을 주민들의 마음속에 적의가 떠올랐다.

전후 사정이 어떻든, 결국 이안은 마을 청년들의 팔을 부러뜨린 나쁜놈이었다.

“저 검은 머리 놈……!”

“내 이럴 줄 알았지!”

여차하면 공격할 태세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평정을 지키는 이가 있었다.

상황을 살피던 노인이 주민들 사이에서 앞으로 한걸음 나왔다.

“아무래도 우리 아이들이 큰 결례를 범한 것 같소. 부디 용서해주시길.”

나이 지긋한 노인이 꾸벅 예를 표하자 주민들도 당황하고, 사과를 받는 이안 쪽도 기분이 미묘했다.

“촌장님 왜 그러십니까!”

“아이들 곁을 보게. 무기가 떨어져 있지 않나. 아마 밤에 몰래 쳐들어가 일을 벌이려 했겠지.”

주민들도 말을 잃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하니, 그들이 보기에도 상황 자체가 너무 뻔했다. 어떻게 트집 잡을 수 없을 만큼.

하지만 이성보다 언제나 감성이 앞서는 법.

그들에게는 이방인이 당한 일보다, 당장 매일같이 보던 청년들의 부상에 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잘못이니 보상을 요구할 텐데…….’

‘그냥 죽이고 입을 막는 게 낫지 않나?’

‘딱히 뒷배가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지극히 평범한 영혼을 지닌 농민들이었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도 지극히 평범하겠지.

하지만 촌장은 마을 주민들을 달랬다. 오래도록 한 마을을 이끌어 온 그는 눈치가 있는 편이었다.

‘무기도 뽑지 않고 아이들을 전부 제압했어. 주민들이 많이 다치거나 죽을 거다.’

여기서 마을에 더 피해가 나오는 건 촌장으로서 두고 볼 수 없었다.

촌장은 고개를 거듭 조아리며 사과를 표했다.

“용서해주십시오. 이 아이들이 잘못한 건 명백하지만, 자비를 베풀어 살려주시면. 단단히 교육시켜 놓겠습니다.”

이안은 착잡하게 촌장을 내려다보았다. 얼핏 보이는 감정으로는 진심으로 우러난 사과는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난동을 부리는 것도 괜스레 맘이 안 좋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저들은 평범한 농민이었으니.

‘견물생심이라고. 부득이하게 제가 부유하게 보였으니, 제 잘못도 아주 없지는 않겠죠.’

이안은 촌장을 일으켜 세웠다.

“좋습니다. 넘어가 드리겠습니다.”

“너그러움에 감사드리……!”

“다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생각도 없었다.

“말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 말이 끌 만한 수레도 있으면 좋겠고요. 페텔까지 가야 하니까 식량도 넉넉히 실어주세요.”

이안의 요구에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촌장은 곧바로 이안이 요구한 것들을 준비해주었다.

투박한 수레와 식량 적당히. 그리고 그에 얽매여 있는 순하게 생긴 늙은 말 한 마리.

이안은 만족스럽게 그것들을 쳐다봤다.

‘좋아. 안 그래도 짐과 스텔을 싣느라 흑마가 힘들어했는데, 돈 굳었네.’

꼭 군마가 아니라도 말은 귀하다.

거기에 수레와 식량까지.

겨울철인 걸 생각하면 식량의 가치도 낮지 않다.

이만큼이 마을 주민들이 준비할 수 있는 최대였다.

반대로 말하면, 이안이 딱 주민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요구한 셈.

‘괜히 과하게 요구했다가 싸움이 나는 건 싫으니까.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사람은 쓴맛을 한번 봐야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니.’

이기기야 하겠다만, 농민들을 때려눕히는 건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준비가 끝나자 이안은 다시 여관방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세상모르고 곤히 잠들어있던 스텔을 툭툭 쳐서 깨웠다.

부스스 떠진 스텔의 눈이 이안에게 향했다.

“가자.”

스텔은 눈빛으로 의문을 표했다.

왜 이렇게 일찍 떠나냐고 묻는 듯했다.

“나중에 설명해 줄 테니까. 일어나.”

“…….”

지시를 내리고 곧바로 나가려던 이안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이불을 덮은 스텔이 이안에게 강렬한 시선을 보냈다.

눈빛이 몹시도 진지하다.

뭔가 중히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살짝 긴장한 이안이 조심스레 물었다.

“왜 그래. 술 먹고 뭔가 변화라도 생겼어?”

굳게 닫혀 있던 스텔의 입에서 짧은 한마디가 나왔다.

“……물.”

아직 숙취가 남은 모양이었다.

***

아직 이른 시각이지만, 그렇다고 마을에 계속 남아 있기도 뭐한 일이다.

이안은 흑마와 마을에서 얻은 말을 수레에 매었다.

흑마는 새 동료가 조금 불만인 눈치였지만 심술을 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안은 수레의 앞쪽에 앉아 고삐를 쥐었다.

스텔은 그런 이안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이안은 덜컹거리는 수레에 몸을 맡기며 생각했다.

‘이제 성도에 가까워질수록 습격이 더 많아질 텐데…….’

이안이 기억하기로 성도에서는 사제들끼리의 내분이 일어난다.

그리고 내분 끝에, 사천왕 중 하나인 배교자가 나타나 플레이어를 궁지에 몬다.

‘여러모로 짜증 나는 놈이었지.’

일격 하나하나의 공격력은 생각 보다 버틸만하다.

하지만 싸우는 스타일이 몹시도 까다로워, 까다로운 보스로 취급 되는 녀석이다.

그런 흉측한 존재가 대체 왜 교단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성도에 당당히 숨어 있는지는 모를 일.

게다가 어젯밤, 주민들에게 주워들었던 소문도 신경 쓰였다.

‘오우거라…….’

이야기를 곰곰이 뜯어보면, 오우거 보다는 다른 존재가 개입했을 거라는 생각에 무게추가 쏠렸다.

게다가 사건의 여파가 적지 않았다. 당장 청년들이 이안을 습격한 것도, 따지고 보면 오우거 사건이지 않은가.

‘차라리 오우거면 다행이네. 다른 종류의 이벤트는 사양이야. 특히 성도 근처에서의 전투는 기본적으로 사제 한 명씩은 끼고 있으니까.’

다행히 사건이 벌어진 곳은 페텔과 성도 사이다.

일단 페텔까지는 별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뜻.

이안과 스텔은 늦겨울의 쌀쌀한 바람을 묵묵히 받아내며 나아갔다.

그리고 또 일주일.

저 멀리 보이는 평야에 도시의 외관이 눈에 들어왔다.

더 가까이 다가서자 스텔이 작게 입을 벌리며 놀라워했다.

그만큼 페텔의 벽은 웅장하고 거대했다.

스텔이 이안을 휙 돌아보았다.

굳이 듣지도 않아도 무엇이 궁금한 게 눈에 보였기에, 이안이 대답했다.

“페텔은 성도의 방패 역할을 하는 도시야. 게다가 옛날에는 초원에서 전사들이 약탈하러 오는 경우가 잦았지. 그래서 유독 성벽이 높은 거야.”

스텔은 새삼 이안을 대단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어떻게 그 모든 지식을 알고 있냐는 듯.

이안은 멋쩍게 웃었다.

사실 조금 전에 이네스에게 들은 내용을 그대로 읊었을 뿐이다.

도시 앞에는 까마득히 긴 줄이 서 있었다.

전부 축제에 맞춰 찾아온 여행자, 순례자, 그리고 상인들이었다.

‘이거 오늘 안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해가 지면 도시의 성문은 닫힌다.

곰곰이 줄을 세던 이안은 도저히 오늘 안에는 도시에 들어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냥 기다려야 하나. 1주일간 노숙해서 좀 편히 쉬고 싶은데.’

이안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줄을 무시하고 경비병들과 몇 마디 대화로 문을 통과하는 광경을 발견했다.

줄을 서고 있던 이들은 조용히 길을 비켜주거나, 심지어 기도까지 올렸는데, 자세히 보니 사제들이었다.

‘교단의 사제 신분은 그냥 통과할 수 있는 건가?’

그의 말을 증명하듯. 아까보다 훨씬 화려한 사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갔고, 그들 역시 경비병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가볍게 통과했다.

이안은 스텔을 내려다보았다.

“……?”

스텔도 그런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할 수 있겠지?”

스텔이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냐는 듯.

하지만 이안은 대답 없이 당당히 경비병에게 말을 몰아갔다.

그런 그들에게 줄을 서고 있던 여행자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

유독 날카롭고 은밀한 시선을 가진 사내가 스텔과 이안을 위 아래로 훑더니, 이내 성벽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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