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천사(2)
이전번의 깨달음으로, 이미 실력이 크게 상승한 이안이다.
이안은 천사를 가차 없이 몰아붙였다.
“강한 영혼. 천국을 위해 바쳐라.”
천사가 두 쌍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날개가 잠시 빛나더니 회색빛 광선이 이안을 향해 쭉 뻗어 나왔다.
콰아아!
빠르고 파괴적인 일격.
하지만 이안의 눈에는 이미 모든 게 읽히고 있었다.
이안은 절묘하게 땅을 굴렀다.
이안의 머리 바로 위를 지나간 광선은 애꿎은 다리에 직격했다.
쾅!
단단한 다리는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크게 흔들렸다.
성기사들과 병사들, 그리고 아래쪽에서 올라오던 괴한들 마저 잠시 싸움을 멈추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 광선을 쏘게 놔두면 안 되겠어.’
이안은 성검을 들고 천사와 맞붙은 뒤, 쉴새 없이 공격을 가해 거리를 벌릴 틈을 주지 않았다.
검을 맞대던 천사는 어떻게든 반격을 가하려 했지만, 수준 차이가 명확했다.
다대일로 덤벼들면 모를까, 천사 혼자서는 이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 점을 깨달은 듯.
맞붙기를 포기한 천사는 날개를 한번 크게 펄럭여 이안을 밀쳐낸 뒤, 하늘로 날아오르려 했다.
‘그렇게는 안 두지.’
이안은 다리의 난간을 밟고 뛰어올라 천사의 날개 하나를 붙잡았다.
생긴 것처럼 매우 딱딱한 날개였다.
대체 이걸로 어떻게 나는지 궁금할 정도로.
남은 세 장의 날개로 날아오른 천사는 불안정하게 비행하며, 이안을 떨어뜨리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다.
감정이라는 게 있는지 확실치 않지만, 천사도 당황한 듯했다.
“강한 영혼. 천국을 위해 바쳐라. 강한 영혼. 천국을 위해 바쳐라. 강한 영혼…….”
“알았으니까 좀 닥쳐.”
이안은 정신없이 몸이 뒤집히는 와중에도 침착함을 유지했다.
몸의 무게중심을 절묘하게 조절해 최대한 안정을 찾은 그는 곧바로 품에서 활공하는 단검을 꺼냈다.
‘천사의 약점은 날개.
이안은 날개를 한 손으로 붙잡은 채, 다른 손에 든 단검으로 천사의 날개를 찔렀다.
날개가 워낙 단단해 쉽게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같은 지점을 연달아 찌르자 단단한 날개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충격이 큰지, 천사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몸을 미친 듯이 떨어대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그.”
“고장났구만, 이거.”
이안은 요령껏 단검을 휘둘러 기어코 날개에 구멍을 뚫어주었다.
날개의 구멍에서 돌 부스러기 같은 게 후두둑 흘러나오더니, 천사의 몸에서 힘이 급격히 빠지기 시작했다.
이안은 그대로 천사의 날개를 잡아 천사의 머리를 다리 쪽으로 향하게 했다.
쿵!
힘을 잃은 천사는 그대로 힘을 잃고 떨어지고, 이안은 천사가 다리와 부딪히기 직전에 적당히 땅을 굴러 착지했다.
“맙소사. 우리들의 천사를 홀로 죽이다니…….”
사제 중 하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천사는 성기사조차 상대하기 버거워하는 존재.
그런 천사를 셋이나 불러들였다.
그것도 낭떠러지 위 다리에서.
그들은 이번 기습의 성공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 놈이 나타나 천사를 간단히 떨어트려 버렸다.
살아남은 고위 사제 중 핏발이 선 눈으로 외쳤다.
“저놈은 악귀다! 악귀가 우리들의 천사를 떨어트렸다! 저놈을 죽여 반드시 복수하라!”
“악귀…… 그렇군. 저 생김새! 악귀가 틀림없어!”
“감히 우리들의 위업을 방해하다니……! 악귀와 결탁한 저 배신자들을 모두 죽여라!”
“뭣? 배신자는 너희들이 아닌가!”
“우리는 저 악귀랑 아무 관련이 없다!”
도리어 배신자로 몰린 게르하르트는 사제들과 언쟁을 벌였다.
그 와중에도 아무도 이안이 악귀라는 걸 부정하지 않으니, 서글플 따름이었다.
‘그것보다 릭. 릭은 어딨지?’
이안은 빠르게 전장을 훑었다.
방패를 든 릭은 소년과 청년들을 한데 모은 뒤, 기도를 외우고 있었다.
성기사랑 싸우는 와중에도 천사들은 소년들의 영혼을 호시탐탐 노렸는데, 그때마다 릭은 놀라운 신성으로 그들을 저지했다.
상황을 알아챈 게르하르트도 말을 멈추고, 다시 전장에 가세했다.
그러고는 이안에게 외쳤다.
“악귀! 네놈의 실력은 인정한다! 이런 부탁, 절대 하고 싶지 않지만! 소년들을 부탁한다!”
“악귀는 누가 악귀야.”
이안은 훌쩍 뛰어 릭의 옆에 섰다.
“이안 님! 구하러 오셨군요!”
“오냐.”
“스텔 님은요?”
“잘 숨겨놨다.”
대답을 하면서도 이안은 계속해서 아래쪽을 주시했다.
대체 어떤 마법을 부린 건지.
아래쪽에서 점점 더 많은 병력이 절벽을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단단히 준비했구만.’
이런 지형에서 저 정도의 병력으로 기습이라니. 확실히, 실패하기도 어려운 계획이었다.
‘노리는 건 여기 있는 모두의 영혼인가. 안 된다 싶으면 릭만 데리고 도망쳐야겠어.’
무엇보다 싸우는 장소가 너무 안 좋았다.
동료를 하나 잃은 천사들은 하늘에서 비행하며 날개로 광선을 쏘아댔는데, 그때마다 다리가 크게 흔들렸다.
릭이 조금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튼튼한 다리라도 저런 거에 맞으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이안도 동의했다.
쉽사리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려면 무리를 해서라도 한쪽을 뚫어야 하는데…… 이안 혼자서라면 몰라도 소년들을 데리고 움직이면 피해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에도 전투는 점점 치열해져 갔다.
계속 추가된 병력 탓에 이제는 다리에 여유 공간이 없을 정도였다.
다만, 그 사이에서도 이안과 소년들 주위는 비어 있었다.
다가오는 족족 이안이 칼침을 먹여주자, 모두 겁을 먹고 거리를 벌린 탓이었다.
천사와 성기사들은 여전히 호각의 싸움 중인 와중.
점점 시간이 끌려가고 있던 와중, 이안은 잊고 있던 한 가지를 떠올렸다.
불안한 감각이 등을 타고 흘렀다.
‘잠깐, 이렇게 소란 피우고 피를 흘리면…….’
“우어어어어어!”
갑자기 들린 괴성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싸우던 양측은 서로를 쳐다보며 의심했다.
마치 또 무얼 준비했냐는 듯.
“우어어어!”
다시 한번 괴성이 들렸다.
그리고 이어서, 쿵쿵쿵 하는 커다란 발소리가 바위산 쪽에서 들려왔다.
그 발소리의 정체를 알아챈 건 이안뿐이었다.
“아이씨! 일단 휴전! 다리 건너편으로 넘어가자! 싸우더라도 안전한 땅에서 하자고!”
이안의 다급한 외침에 고위 사제 하나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하! 우리가 왜 그래야 하지? 어차피 우리의 승리는 기정사실인데?”
“아니, 일단 빨리 비키라고!”
그리 말하며 이안은 앞으로 달려나가 적들을 순식간에 베어 버렸다.
곧바로 사제들이 기적을 날렸기에, 이안은 다시 뒤로 물러나며 혀를 찼다.
릭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갑자기 왜 그러세요. 이안님.”
“맞았어.”
“예?”
“오우거가 습격한 게 맞았다고!”
“네? 일부러 그렇게 보이도록 꾸민 게 아니라고요?”
그 말을 하는 와중에도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윽고 바위산에서 4미터는 족히 넘을 흉측한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우오오!”
“우어어어!”
거인은 사냥감을 발견해 몹시 기쁘다는 듯, 하늘을 향해 함성을 질렀다.
그러고는 바위산을 전속력으로 뛰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린 적들도 웅성거렸다.
“오, 오우거다!”
“오우거라니…… 우리는 분명 오우거가 습격한 것처럼 꾸몄을 뿐인데……!”
“일단 저 악귀 말대로 다리 건너편으로 가야 해!”
“아, 아직 동지들이 다 안 올라왔다네!”
지휘체계가 정확히 갖춰지지 않은 조직인 듯. 본인들끼리도 의견을 통합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혀를 찬 이안은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렇게 된 이상 무력으로라도 뚫어야 했다.
“릭! 조심히 따라와야 한다! 여차하면 신성으로 좀 도와주고!”
“네! 맡겨만 주세요!”
사제들이 혼란에 빠져 있는 지금이 기회다.
앞으로 튀어나간 이안은 성검을 가로로 크게 휘둘렀다.
핏물이 튀었고.
검에 베인 적들은 수수깡처럼 맥없이 쓰러졌다.
‘뭐야. 편차가 너무 심한데.’
어떤 적은 제법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떤 이들은 기초조차 갖추지 못했다.
그야말로 오합지졸.
적 하나를 밀쳐 다리 아래로 떨어트린 이안은 뒤를 힐끔 봤다.
“우어어어!”
전속력으로 달려온 오우거는 고민도 없이 뛰어올라, 다리 위에 착지했다.
마치 아까 게르하르트가 뜀박질을 한 것처럼.
차이가 있다면, 둘 간의 무게 차이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소랑 달리, 두 절벽을 이어주는 다리는 잇따른 전투로 약해져 있었다.
드득.
나서는 안 될 소리가 나고, 튼튼한 바닥에 금이 쩌적 생겨났다.
그제야 적들의 의견도 통합되었다.
이게 진짜 머뭇거릴 때가 아니라는 걸.
“도, 도망쳐!”
“잘못하면 다리가 무너진다!”
“오우거가 둘이야! 사냥하는 것보다 다리가 무너지는 게 빠를 거야! 반대편으로 달려!”
그러자 꽤 웃기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아군이고 적이고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기 위해 무기를 바닥에 집어 던진 뒤, 반대편을 향해 사이좋게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촌극이 따로 없었다.
이미 앞서나가고 있던 이안과 소년들은 더더욱 속도를 올렸다.
안 그랬다가는 도망쳐 오는 아군이나 적군의 발에 치여 죽을 것 같았다.
이안은 짜증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왜 하필 이 시기에 저런 게 튀어나와서는!”
“아! 오우거는 암수 한 쌍이 굴을 파고 겨울잠을 자는데, 잠에서 깨는 봄에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닌 데요!”
“그래! 너 참 똑똑하구나!”
릭의 설명을 한 귀로 흘리며, 이안은 태양의 활을 손에 쥐었다.
저 앞에서는 성기사가 여전히 천사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천사는 이 중에서 유일하게 다리를 건너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 놈들이었다.
“영혼. 바쳐라.”
“천국을 위해서.”
이안은 활을 잡아당겼다.
봄 특유의 따뜻한 태양 빛이 활에 모여들었다.
릭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와, 와아. 그건 뭔가요?”
“위험하니까 뒤로 물러나라.”
다리가 위험할 정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유롭게 천사를 상대할 시간은 없었다.
‘혹시라도 다리가 무너질까 봐 안 썼는데…….’
이안은 활을 잡고 버티며 속으로 3초를 셌다.
너무 강하지 않아도 좋다.
천사들을 소멸시킬 정도면 충분하다.
셋, 둘 하나.
빛의 화살이 충분히 선명해졌을 때.
이안은 성기사들을 향해 외쳤다.
“앞에! 알아서 피해!”
“뭐?”
말을 마치자마자 이안은 가급적 활을 위쪽으로 들며, 시위를 놓았다.
얼떨결에 뒤를 돌아본 게르하르트와 성기사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파앗!
환하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눈부신 섬광이 천사들을 덮쳤다.
빛이 지나가고 남은 자리에는 천사였던 것으로 추측되는 돌 부스러기만 조금 남아 있었다.
“씁. 아파죽겠네.”
이안은 통증이 느껴지는 왼쪽 어깨를 주물렀다.
섬광이 다리에 직격하지 않게 각도를 조절하느라, 평소보다도 더 큰 힘을 써 버렸다.
“천사가 사라졌어…….”
“어쨌든 길이 뚫렸다! 모두 달려!”
이안의 외침에 모두가 온 힘을 다해 뛰었다.
바닥에 생긴 금이 위험할 정도로 퍼져나가고, 오우거가 쿵쿵 발을 울릴 때마다 다리가 더 강하게 휘청거렸다.
그러다……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모두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다리의 중간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무, 무너진다!”
“뛰어!”
“대체 어떤 새끼가 여기서 싸우자고 한 거야!”
가장 먼저 떨어진 건 오우거 부부였다.
“우어어어!”
오우거 부부는 저 깊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다리를 붙잡으려 해, 붕괴를 가속화했다.
하지만 오우거 부부는 결국, 구슬픈 비명을 지르며 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으아아아악! 신이시여!”
그다음으로 떨어지는 건 적들과 사제들이었다.
사제들은 신성한 채찍을 소환해 어떻게든 매달리려 했지만, 떨어지는 이들이 본능적으로 허우적거리다가 사제의 다리를 붙잡았다.
“놔, 놔라!”
사제는 필사적으로 말했지만, 당연히 놓을 리 없었다.
결국, 무게를 버티지 못한 사제와 적들은 오우거와 같이 저 아래로 떨어졌다.
“좋아! 바로 앞이다!”
이안과 소년들은 거의 절벽의 끝에 다다랐다.
릭과 이안의 지휘에 따라 소년들은 긴박한 상황에서도 서로 엉키지 않고, 질서를 지켰다.
소년들은 차례로 땅을 밟은 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눈물을 흘렸다.
‘좋아. 이제 남은 건 셋. 다 구출했어.’
유독 나이가 어려, 걸음이 느렸던 아이들이었다.
이안은 아이들을 받아주기 위해 팔을 벌렸다.
하지만 아이들의 몸이 갑자기 아래쪽으로 쑥 내려갔다.
“붕괴한다!”
쩌적.
무너져가던 다리 전체가 붕괴해, 절벽 아래로 낙하했다.
이안은 서둘러 팔을 뻗어 한 명을 낚아챘지만, 불운한 두 아이는 그대로 떨어져 버렸다.
지켜보던 이들이 모두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당장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고함을 지른 게르하르트가 미련 없이 절벽에 뛰어내렸다.
실로 개복치하르트라는 별명에 걸맞은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