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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의 고인물로 살아남기-126화 (127/222)

126. 거인의 포효

남겨진 동료들은 깊은 회의를 느꼈다.

그들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아예 이네스에 대한 기억이 깔끔히 사라졌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네스의 영혼은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고, 파편화된 기억들이나마 동료들의 머릿속에 남게 되었다.

결사대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황도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그런 그들을 성대히 환영했다.

악마를 무찌른 4인방은 영원토록 기억에 남을 영웅이자, 죽어서 천국에 올라 신의 옆자리에 앉을 성인들이라 외쳐댔다.

아무리 이네스에 대해 외쳐대도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제야 에릭 그린은 쓴웃음을 지으며 주저앉았다.

‘뭐가 천국이야. 우리한테는 그럴 자격이 없어.’

그러고는 곧바로 여정을 떠났다.

세상을 더 둘러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녀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던 대륙을 두 눈에 똑똑히 담아두고 싶었다.

긴 여행이었다.

이네스의 혼이 깃들었다는 성검을 찾아내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성검을 구별해낼 안목. 아니, 자격이 없었다.

기적적으로 찾아낸 하나의 성검 조각에 이마를 맞대고 제발 대답해달라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서럽게 울며 말했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때 에릭 그린은 생각했다.

세상은 불합리하다.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세상을 위했으며, 동료들을 원망하지 않던 그녀가 천국에 올라 행복해지지 못했다.

심지어 사람들은 그녀가 이뤄낸 모든 업적을 잊어버렸다.

에릭은 땅을 부여잡고 중얼거렸다.

“뭐가 신이고. 뭐가 천국이야. 진짜 숭배받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행복해져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드높은 저 천국의 방관자가 아닌, 모두를 위해 존재를 불사른 이네스야 말로 칭송받아야 마땅하다.

죄책감에 얼룩진 에릭 그린의 마음은 새로운 신을 만들어냈다.

이네스라는 신을.

***

배교자의 심장에 성검을 꽂자 알 수 없는 기억들이 이안에게로 흘러들어왔다.

또다시 환상인가?

‘아니야. 이건 이놈의 기억.’

이안은 떨리는 눈으로 배교자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이안은 이네스에 대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가끔 보여 주었던 외로움과 서글픔. 동료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이안이 더 강해져야 한다고 외쳐대던, 그 힘에 대한 집착까지.

‘이네스 님은 마지막에 동료들이 배신한 걸, 자기 힘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고 있어. 모두가 믿어줄 만큼 힘이 강했다면, 애초에 악마에게 흔들리지 않았다는 거겠지.’

동료들의 배신마저 자기 탓으로 돌리다니.

정말이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선한 사람이다.

“다행이에요. 이네스가 좋은 동료를 만났군요. 이번에는.”

배교자, 아니. 에릭 그린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이안이 이네스와 함께한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이안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배교자는 그저 이안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고.

게임에서 성도에서 벌이는 배교자의 난동은 플레이어가 꼭 참여하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실패로 끝나게 된다.

애초에 배교자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천국을 지상에 떨어트린다는 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인지.

그럼에도 배교자는 계획을 감행했다.

자기의 모든 힘을 바쳐가면서.

배교자가 중얼거렸다.

“은빛 성녀가 성도에 당도하면 거대한 재앙이 찾아올 것이다. 그와 함께 재앙을 종식 시킬 영웅도 함께하리라.”

배교자의 몸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순리를 거스르고 너무 오래 살아온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그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맺혔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직접 세상을 바꿀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이번 대 영웅들은 기대를 걸어볼 만하겠어요.”

이안이 다급히 물었다.

“이네스! 이네스 님은 어떻게 한 거야!”

“천국은 육신 없는 영혼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천국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지금, 이네스는 끌려가지 않기 위해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들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편하게 천국으로 올라갔으면 싶지만…… 그건 그녀의 방식이 아니겠죠.”

“그럼 빨리 의식을 취소해!”

“이미 진즉에 취소되었습니다. 머리에 느껴지던 지끈거림. 더는 안 느껴지시죠?”

확실히.

어느 샌가부터 몸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첨탑의 끝에서 뻗어 나가던 사슬 다발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메운 먹구름이 점점 걷혀나가고 있었다.

이네스는 금방 깨어날 것이다.

그렇게 이안을 달랜 에릭 그린이 외쳤다.

“새로운 영웅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 말을 에릭 그린이 하니, 어쩐지 농담이나 비꼬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아.”

이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의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네스는 원망하지 않는다 하나, 이안이 보기에 결국 이네스를 죽인 건 다른 동료들이다.

배신자.

이안이 가장 혐오하는 부류.

하지만 성검을 타고 흘러든 에릭 그린의 감정을 절절히 느낀 터라 차마 모진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안은 물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이네스 님에게 전해줄게.”

“허허. 참으로 자비롭군요.”

사람 좋게 웃어 보인 에릭 그린은 잠시 입을 뻐끔거리며 말을 고르다, 이내 차분히 말했다.

“그대와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전해주시길.”

“사과는 안 하고?”

“그런 건 자기만족일 뿐이겠죠.”

“그렇다면야 뭐.”

에릭 그린의 육신은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한 줌 남은 힘으로 에릭 그린이 마지막 말을 뱉었다.

“이네스를 부탁합니다. 완벽에 가까운 그녀지만, 마음이 여린 구석이 있으니까요. 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건 알지만…….”

이안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무어라 더 말을 하려던 에릭 그린은 곧 공중에 흩어져 버렸다.

낡은 로브만이 허공에서 한차례 펄럭인 뒤, 바닥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이안은 그 로브를 잡고 슬쩍 들어 올렸다.

아래에는 익숙한 모양의 투박한 검이 놓여 있었다.

또 다른 성검의 조각.

이안은 주저 없이 성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

꽈릉!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이 주위를 진동했다.

바위들이 마치 칼날처럼 솟아오른 가파른 협곡이었다.

“우와아―!”

어디선가 천둥을 뚫고 쩌렁쩌렁한 고함이 들려왔다.

이안은 게슴츠레 눈을 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까마득히 솟아오른 수십 개의 바위. 그 바위 위에는 집채만 한 인영이 서 있었다.

비바람이 너무 거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얼핏 봐도 평범한 인간들은 아니었다.

‘거인.’

꽈릉!

또 한 번 벼락이 내리꽂혔다.

그에 맞춰 거인들은 일제히 우렁찬 고함을 질러냈다.

“우아아아―!”

거인들의 목소리에 바위산이 흔들린다.

엄청난 성량이다.

이안의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거인들이 소리를 내지를 때마다 번개마저 그 궤적을 바꾸었다.

그 와중에 이안은 그런 고함들 사이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찾아냈다.

“으아아―!”

티 없이 맑고,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

뾰족 솟은 바위 중 하나에서 이네스가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야말로 으뜸이었다.

그걸 인정했는지, 거인들도 이네스가 한번 외치면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안은 고민했다.

‘이번에 얻을 능력은 천둥 거인의 포효였지.’

천둥 거인의 목소리에는 영혼을 뒤흔드는 힘이 있다.

단순히 고함을 지르는 것만으로 아군의 사기를 북돋우고, 적들을 공포에 빠트린다.

게다가 기술을 갈고닦으면 마법이나 주술, 신성 따위의 신비를 한순간이나마 흩어 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이네스가 악마의 공격을 손쉽게 흩어 버린 것도 이 목소리 덕분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하지. 이네스 님이 무아지경에 빠진 것 같은데.’

이네스는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천둥을 향해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검에 갇혀 있는 수백 년 동안 계속 이랬을까?

어쨌든 이안이 이곳에 들어왔다는 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바위가 너무 가파르고 높아서 저기까지 가다가는 분명 중간에 떨어질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고함을 질러 이쪽으로 이목을 끄는 방법뿐.

잠시 주저하던 이안이 있는 힘껏 소리쳤다.

“이네스 님!”

“우아아―!”

이안의 목소리는 거인들의 포효와 천둥소리에 맥없이 묻혀 버렸다.

“이거 진짜 쉽지 않겠는데.”

막막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안은 다시 목이 터져라 외쳤다.

“이네스 님!”

“우워어어―!”

“아이씨! 좀 조용히 해봐!”

그 뒤로도 이안은 내내 고함을 질러댔다.

얼마나 목을 혹사했느냐면, 문득 느껴지는 걸쭉한 느낌에 침을 뱉어 보니 피가 한 움큼 섞여 나올 정도였다.

“……이게 득음이라는 건가?”

하지만 여전히 거인들에 비하면 턱도 없었다.

‘애초에 신체 조건 자체가 너무 차이나. 거인이라 폐도 나보다 훨씬 클 테고.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야.’

당장 이네스가 다른 거인들을 압도하며 몸소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이안은 딱히 저들을 이길 생각은 없다.

어떻게든 목소리가 닿게 해 자기 존재를 알리기만 하면 그만.

이안은 다리를 구부린 뒤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폐와 목만으로 거인의 목소리를 뚫을 수 없다.

사용해야 하는 건 몸 전체.

이안은 몸을 배배 꼬아 온몸의 힘을 모조리 끌어모았다.

아랫배에서부터 시작한 힘이 가슴을 거쳐 성대에 전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이안은 펄쩍 뛰어오르며 모든 걸 토해내듯이 외쳤다.

“이! 네! 스! 님―!”

거인의 포효에 비하면 발끝에나 미치는 목소리.

하지만 달리 말하면, 발끝에는 닿았다.

“…….”

천둥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거인들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이안을 향하는 수십 개의 눈동자가.

그중에는 익숙한 시선도 있었다.

인영 하나가 바위를 걷어차, 이쪽을 향해 사뿐 내려왔다.

이네스다.

비에 흠뻑 젖고 왜인지 야성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네스가 맞았다.

“방금 그 목소리! 맘에 드는군요!”

“어. 이네스 님. 굳이 그렇게 소리치지 않으셔도 잘 들리는데요.”

“무슨 소리죠! 저는 지금 조용히 말하고 있는데!”

“아, 예. 어쨌든 잘 부탁합니다.”

“저도요!”

이안과 이네스가 손을 마주 잡았다. 이네스의 영혼 한 조각이 다시 돌아왔다.

***

이안은 다시 눈을 떴다.

몸 안에는 더욱 강해진 힘이 맴돌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웬만한 정예 기사들보다도 훨씬 강한 신체가 되었다.

혼자 만족스레 힘을 가늠하던 이안에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에요. 이안.]

‘이네스 님!’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있느라, 도저히 바깥에 신경 쓸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이안의 활약은 다 지켜봤답니다.]

‘저도 이네스 님의 과거에…….’

[그 얘기는 다음에 하죠. 아무래도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으니.]

그녀의 말대로, 주위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우선 의식에 동원되었던 사제들이 하나둘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교황 역시 있었다.

교황은 주위에 펼쳐진 참상을 둘러보고는 자기가 벌인 실책을 깨달은 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하지만 이내 에릭 그린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의식마저 실패로 돌아갔다는 걸 깨달았는지 입을 크게 벌렸다.

교황은 유일하게 멀쩡히 서 있는 이안과 멀리서 멀뚱히 지켜보고 있던 스텔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아니.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이안은 들고 있던 성검을 검집에 넣으며 짧게 말했다.

“악마를 토벌할 사람. 그리고.”

이안은 스텔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은 내 동료다.”

이안

불길한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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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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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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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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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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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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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정령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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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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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안(月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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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 거인의 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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