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실험
이안이 상의를 벗었다.
“옷이 타 버리면 곤란하니까 상의만 벗을게요. 가능하면 위쪽에 겨냥해주세요. 할 수 있으시죠?”
“……물론입니다.”
이를 악문 사용인은 조용히 마법을 준비하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혹여나 문제 생겨도 아무런 원망 안 할 테니 그냥 하세요.”
“……본인이 말한 겁니다.”
사용인은 손 위의 불덩어리를 키웠다.
그는 그간의 분노와 불만을 불꽃 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건방진 새끼.’
마음에 안 드는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가주를 데리고 인질극을 벌인 일이나, 대저택을 깔끔히 날려 버린 일이나, 가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플로라와 친한 점이라거나.
몇몇은 오해이기도 했지만, 그날의 일을 이안과 가주가 함구했기에 어쩔 수 없는 착각이기도 했다.
어느새 사용인의 손에 있는 불덩어리가 사납게 요동쳤다.
사용인은 그대로 불덩이를 들어 올려 이안에게로 던졌다.
‘이래 봬도 난 화염 비 켈린이라는 별명까지 있었던 사람이야! 뜨거운 맛을 보여주마!’
화르륵!
이안의 몸을 불꽃이 감쌌다.
요구대로 상체만 절묘하게 핥는 불꽃이었다.
켈린은 처음에는 만족했다.
얄미운 상대가 불타는 모습은 언제 봐도 즐거운 법이다.
하지만 곧 후회했다.
‘너, 너무 심했나?’
이안이 죽기라도 했다가는 대체 누가 사용인의 결백을 증명해주겠는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사용인은 급하게 불을 끄려고 했다.
“무, 물……!”
하지만 이내 이상한 점을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켈린은 이안을 관찰했다.
‘뭐, 뭐야.’
분명 불덩이에 닿으면 뜨거워서 몸부림을 치든, 고통에 비명을 지르든 무언가 반응을 보이기 마련.
하지만 불덩이에 휩싸인 이안은 그저 제자리에 서 있었다.
마치 불꽃이 아무렇지 않은 듯이.
그 놀라운 광경을 켈린은 입을 쩍 벌린 채 바라보았다.
이내 연료가 다한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연기가 걷히고 나타난 이안의 모습은 너무나 멀쩡했다.
아니, 멀쩡한 것도 모자라 생기마저 넘쳐났다.
이안은 손을 쥐락펴락하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확실히. 신체가 마법에 저항할 수 있게 되었어요. 불에 닿으니 체력도 차오르는 것 같고요.’
[이제 웬만한 불꽃 마법은 이안에게 해를 끼치기는커녕, 오히려 이롭게 느껴질 거예요. 불을 다루는 마법사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된 거죠.]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은 상당히 유용하다.
비단 마법사뿐만 아니라, 후반부에 상대하는 악마들이 사용하는 힘도 마법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꽃에서 오히려 힘을 얻는 이 능력.
‘플로라와 연계할 때 이게 없으면 귀찮아지지.’
화염 마법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다.
플로라는 ‘크레이 사가’ 최고의 화력을 자랑한다.
게임에서 플로라를 파티에 넣었다가, 소중한 파티원을 불에 태워 버리는 건 흔한 경험이다.
특히 전방에서 적을 상대해야 하는 이안 같은 사람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용의 가호만 있다면 걱정은 크게 줄어든다.
‘문제는 용의 가호가 어느 정도까지 화염을 막아줄지가 모른다는 거예요. 드래곤조차 죽인 플로라의 마법을 정통으로 맞으면 당연히 뼈도 못 남길 테니까요.’
중요한 건 가호가 어느 수준의 불꽃까지 막아주고, 이로운 효과를 주느냐다.
이안은 얼빠진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는 켈린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요.”
“……무슨 일이시죠.”
목소리가 침울하다.
자세히 보니 눈가에 습기가 묻어 있다.
아무래도 이안이 불꽃에 닿아도 멀쩡한 걸 보고, 마음에 꽤나 커다란 상처를 입은 듯하다.
살짝 미안해진 이안이 켈린을 격려했다.
“너무 상처받지 말아요. 과연 피에람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훌륭한 불꽃이었습니다. 게다가 제 요구대로 상체만 절묘하게 태웠잖아요?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잖아요.”
“……위로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 같은 머저리는 피에람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주제넘은 것이겠죠.”
“에헤이. 그런 거 아니라니까…….”
이안은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해 했다.
하지만 이내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자자. 그만 침울해하고, 아저씨보다 좀 더 실력이 괜찮은 사람을 불러와요.”
“예?”
“계속 실험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예…….”
떨떠름한 얼굴로 자리를 뜬 켈린이 잠시 뒤, 다른 사람을 데려왔다.
빼빼 마르고 화려한 의복을 걸친 중년이었다.
“가문의 서고를 관리하는 세바스 피에람입니다. 저를 찾는다고 들었습니다만?”
“이안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실험할 게 있는 데 협력이 좀 필요해서요. 이분보다 실력이 뛰어난 건 맞으시죠?”
세바스는 풀죽은 켈린을 힐끗 쳐다본 뒤, 코웃음을 쳤다.
“켈린은 분명 훌륭한 마법사지만 아직 저와 비교하기에는 많이 미숙하죠.”
“잘됐네요. 그럼 저한테 불덩어리를 날려 보세요. 기왕이면 상체에요.”
“예?”
세바스가 미간을 좁혔다.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켈린을 쳐다보자, 켈린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세바스가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세바스는 켈린보다 기회를 잡는 능력이 뛰어난 사내였다.
그는 아니꼬운 상대를 불태울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한때 화염 폭풍 세바스라 불리던 제 불꽃을 맞으시겠다니. 뜨거운 맛이 보고 싶으신 모양이군요.”
“빨리 오기나 하세요.”
“크게 다쳐도 전 모른답니다?”
세바스는 주저 없이 불꽃을 만들어 이안에게 던졌다.
아까보다 더 강한 화염이 이안의 상체를 감쌌다.
본인의 작품이 만족스러운지, 세바스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하지만 입꼬리가 이내 원 상태로 돌아갔다.
“뭐, 뭣이?”
불꽃이 걷힌 이안은 너무나 멀쩡했다.
게다가 그 피부는 타기는커녕, 오히려 윤기가 맴돌고 있었다.
대충 손을 휘저어 열기를 흩어낸 이안이 세바스에게 말했다.
“아저씨보다 좀 더 실력 있는 사람으로 불러와요.”
“이, 이이익!”
씩씩거리며 떠난 세바스는 바로 다음 사람을 데려왔다.
“한때 불꽃의 여인이라고 불리던 저 메이드 장, 앤젤라 피에람이 당신을 상대해드리죠!”
불꽃을 맞아낸 이안은 짧게 말했다.
“다음.”
“지옥의 요리사라 불리던 주방장……!”
“자기소개는 됐으니까, 좀 빠르게 갑시다.”
그런 식으로 이안은 점점 더 실력 있는 사람들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안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준 마법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불러오다 보니 뒤뜰에는 피에람의 사용인들로 북적거렸다.
시무룩해하던 켈린은 어느새 감탄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분들조차 어찌할 수 없는 강건한 신체라니.’
상처 입었던 마음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안이 생각보다 대단한 인물임을 깨달은 것이다.
다른 사용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몸이 저리 튼튼해.”
“근육만 봐도 평범한 사람이랑은 거리가 있잖아. 어우. 저 복근은 무슨…….”
“어머어머.”
어느새 이안에 대한 적의도 거의 사라졌다.
온 힘을 다해 화염 마법을 사용하니, 앙금조차 모두 태워 버린 것이다.
감정 변화가 격한 화염 마법사들은 쉽게 불타오르다가도, 금방 사그라지는 게 특징이다.
그들은 이내 이안에게 몰려들어 몸을 살폈다.
“정말 신기한 노릇이네. 불에 아예 내성을 가진 건가?”
“현실적으로 그건 아닐 것 같은데.”
“한번 만져봐도 됩니까?”
사용인들은 다가와 마법사 특유의 호기심을 빛냈다.
불만스럽게 노려볼 때는 언제고, 이제는 다가와 질문을 던져대는 꼴이 우스워 이안은 쓴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이안에 대한 앙금이 모두 풀린 것 같아요.]
‘딱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요.’
이안은 사용인들이 자기 몸을 연구하는 걸 그냥 내버려 두고, 혼자 생각에 잠겨 들었다.
‘생각보다 가호가 강해요. 아무리 방계라해도 피에람인데 불꽃을 전부 막아내다니. 기대 이상이에요.’
[드래곤이 지상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건 가호니…….]
‘연구할 부분이 많을 거 같아요. 다른 속성의 마법에 맞으면 어느 정도인지. 최대로 버틸 수 있는 화염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려면 플로라 정도는 데려와야겠는데요.’
막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모두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플로라가 이쪽을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었다.
“저택에 사람이 없잖아! 대체 뭐하길래 전부 이곳에 모여 있는 거야!”
“아가씨!”
“아, 그, 그게.”
사용인들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안은 그들이 억울하게 질타당하기 전에 앞으로 나섰다.
“내가 잠시 좀 도와달라고 했어.”
“뭐? 너도 여기 있…… 꺅! 왜 옷을 전부 벗고 있는 거야!”
플로라가 황급히 양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요란한 반응에 이안은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다.
‘아가씨긴 아가씨구나. 겨우 이 정도로.’
얼굴을 덮은 손가락을 살짝 벌려 이쪽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플로라에게 이안이 말했다.
“이제 다 큰 성인이 겨우 이 정도에 부끄러워하면 어떡해.”
“으으. 가까이 오지마.”
“어쨌든 잘 왔다. 마침 네가 필요했는데?”
“뭐?”
필요했다는 말에 플로라가 관심을 보였다.
이안은 스스로의 상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다 불꽃을 던져줘.”
“뭐? 뭐 잘못 먹었어?”
“여기 사람들에게도 도와달라 했는데, 아무래도 화력이 좀 부족하더라고.”
플로라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도 그럴 게 이안의 몸은 너무 멀쩡해 보였다.
도저히 불꽃을 받아낸 몸은 아니었다.
의심의 눈초리가 향해지자, 사용인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사실입니다 아가씨. 저희들 불꽃으로는 얕은 화상조차 못 입혔습니다.”
“뭐?”
“이번에 내가 또 특별한 능력을 얻었거든.”
모두가 그렇게 말하자, 플로라도 마지못해 수긍했다.
“알았어. 어느 정도 세기면 돼?”
“음. 저기 집사장님보다 좀 더 강한 정도?”
“그래?”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안 잡히는지 플로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주저하지는 않았다.
플로라의 손에 불덩어리가 생겨났다.
오늘 본 불꽃 중 가장 강렬한 불꽃이었다.
“어어. 잠깐…….”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이안이 황급히 플로라를 말리려했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플로라는 곧바로 불덩어리를 내던졌다.
날아간 불덩어리가 곧바로 이안의 상체를 덮쳤다.
“끄아아악!”
이안의 고통 어린 비명이 뒤뜰에 울려 퍼졌다.
***
“네가 시키는 대로 한 거거든?”
“알아.”
“하나도 죄책감 없거든? 아무렇지 않거든?”
“그래그래. 네 탓 안 한다니까.”
이안은 침대에 누워, 안절부절못하는 플로라에게 손을 내저었다.
예상보다 강한 불꽃이었지만, 덕분에 용의 가호가 어디까지 먹히는지 알 수 있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지?”
“그래. 멀쩡하니까 걱정말고 너 할 일 하러 가라.”
하지만 플로라는 방에서 나가지 않고, 도리어 자리를 깔고 앉아 버렸다.
어지간히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말로는 설득이 불가능할 것 같았기에 한숨을 푹 쉰 이안은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플로라에게서 신경을 끈 이안이 눈을 붙이고 휴식을 취하려던 그때였다.
“큰일이네!”
로드릭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짜고짜 들어온 로드릭은 인사도 없이 바로 본론을 뱉었다.
“폐하께서 영주들을 소집했네.”
“……무슨 이유로요?”
로드릭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전쟁.”
이안
불길한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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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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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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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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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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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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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정령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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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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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안(月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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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 거인의 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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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마지막 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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