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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의 고인물로 살아남기-176화 (177/222)

176. 지하미로(3)

‘하아. 귀찮게 됐네.’

이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미로에서 벌어지는 일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안은 이제 대외적인 이미지도 신경 써야 했다.

일단은 영웅이니까.

그 이름 덕분에 많은 혜택을 받았으니, 이름으로 인한 무게 역시 짊어져야 하는 법이다.

이안이 사제에게 말했다.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예. 사흘 전부터 용병들의 귀환하지 못하는 일이 크게 늘었습니다.”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나요? 미로에서 용병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는 많을 텐데요.”

아이벤의 지하 미로는 위험한 곳이다.

그 구조가 매우 복잡할뿐더러, 매일 밤 그 구조가 변하기까지 한다.

길을 잃고 헤매기에 십상이라는 뜻.

‘게임에서도 길 찾는 게 더럽게 어려웠지. 그래서 보통 1, 2 층에서 활동했고.’

게다가 ‘지옥의 입구’에서 튀어나오는 괴수들도 문제다.

지하 미로의 아래층으로 갈수록 더 강하고 영리한 괴수들이 튀어나온다.

얼마나 영리하냐면 5층에서는 괴수들이 미끼를 쓰거나 함정을 준비할 정도였다.

게다가 가끔 드문 확률로 일반적인 괴수보다 더 강한 돌연변이 개체가 튀어나오니, 자칫 방심했다가는 골로 갈 수 있다.

그런 장소에서 죽음이란 너무나 흔한 것.

오죽하면 미로에서 죽은 용병의 시체를 대신 찾아주는 직업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런 이안의 의문에 사제는 수긍했다.

“예. 맞습니다. 미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요. 그렇기에 이곳, 아이벤 지부는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은 헌금이 들어오고요.”

사람은 마음이 불안해지면 자연히 신을 찾게 된다.

미로에 들어가는 용병들이 교단에 유달리 많은 헌금을 내는 이유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숫자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많다는 것과…… 돌아오지 못한 대부분이 3층 이하로 탐사를 떠났던 이들이라는 겁니다.”

“……베테랑들이군요.”

일반적으로 미로의 3층 이하를 탐색하는 용병들은 베테랑으로 쳐주며, 베테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사망률은 낮아진다.

자기 목숨 정도는 스스로 챙길 수 있는 이들이라는 뜻이니까.

그런 베테랑들이 대거 돌아오지 못했다는 건 분명 무슨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돌연변이가 나타난 걸까요?”

“일단 추측하기로는 그렇습니다. 엄청나게 강한 돌연변이가 3층에서 배회하다가 만나는 용병들을 습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돌연변이 괴수를 본 사람이 있나요?”

“목격자는 없습니다만…… 지하 미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미로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하더군요.”

베테랑 용병들도 어찌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괴물.

이안은 게임 속에서 마주쳤던 돌연변이 괴수들을 떠올렸다.

‘분명 강하긴 한데…… 이렇게 여러 팀을 습격할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는데.’

게다가 목격자가 없다는 건 그 괴물과 마주친 이들은 도망조차 치지 못했다는 거다.

그 정도로 빠르고 강력한 적.

이안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조만간 영주님께서 조사대를 꾸릴 겁니다. 아이벤의 기사들과 베테랑 용병, 그리고 교단의 사제들이 참여할 예정이죠. 만약 이안 님께서도 괜찮으시다면…….”

사제가 이안의 눈치를 슬쩍 봤다.

이미 얘기를 시작한 순간 뺄 수는 없을 터.

이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도 상황을 봐 직접 조사를 하든, 조사대에 참여하든 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하하! 그래 주신다면 정말이지, 이보다 더 안심일 수 없겠군요.”

기뻐하는 사제의 얼굴을 보며 이안은 미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 뒤로 일행은 식사를 해결한 뒤, 교단에서 마련해준 방에 들어갔다.

방문을 닫자마자 플로라가 말했다.

“좋아! 그 괴물인지 뭔지! 우리가 해치우자고!”

“이번에는 진짜 실력을 보여주겠다. 괴물 따위, 내 도끼 한 방이면 충분하다.”

“……응!”

묘하게 의욕을 보이는 동료들.

아까 보인 추태를 하루빨리 만회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오늘 같은 상태로는 안 돼. 너희들은 내가 과제를 내줄 테니, 그 과제를 통과하기 전까지 미로는 안 내려갈 거야.”

이안의 선언에 동료들이 당황했다.

“과, 과제라니.”

“아까 건 실수였다! 누구나 실수는 하는 법이다!”

“……너무해.”

“씁.”

이안이 혀를 차자 아우성치던 동료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자. 지금부터 과제를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우선 플로라부터. 너는 열기를 완벽하게 제어하는 법을 연마해야 해.”

“그건 이미 할 줄 알아! 저번에도…….”

“이제 그걸 언제나. 항상. 날리는 모든 공격에 적용해야 해. 피부에 불꽃이 닿아도 뜨겁지 않을 정도로.”

몸에 닿아도 뜨겁지 않은 불꽃. 그게 가능하려면 어마어마한 수준의 정교함으로 열기를 통제해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 신경을 쏟는 만큼, 화력은 약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화력이 아니다.

‘어차피 큰 기술은 굳이 연습 안 해도 잘만 쓸 수 있어.’

그런 이안의 주문에 플로라가 불만을 표시했다.

“잠깐!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하는 소리야? 손에 닿아도 안 뜨거운 불이라니! 그런 게 가능했던 마법사는 역사 속에서도 손에 꼽힌다고!”

“마법사가 아니라도 그게 힘들다는 것 정도는 알아.”

“그렇다면…….”

“근데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이안은 플로라의 어깨를 붙잡고 진지하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당황한 플로라가 입을 뻐끔거리다 고개를 황급히 끄덕였다.

“다,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그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어!”

“그래. 믿고 있을게.”

“어……? 어.”

그제야 뭔가 속았다는 기분이 드는 플로라였지만 이미 늦었다.

이안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우마딜로.”

“말해라. 내가 할 건 뭐지?”

우마딜로가 내심 긴장을 숨기며 물었다.

“불에 내성을 기르는 법은…… 솔직히 힘들 것 같고. 보니까 넝쿨을 너무 마구잡이로 소환하는 것 같아.”

“마, 마구잡이…….”

우마딜로는 전사로서 아주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 감각 덕분에 우마딜로는 꽤 훌륭한 전투 수행능력을 보이지만, 반대로 그 감각에 너무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더 쉽게 말하면…….

우마딜로는 생각이 없다.

“지금까지라면 그렇게 되는 대로 싸워도 되었겠지만, 이제는 달라. 최대한 효율적이고 똑똑하게 싸워야 해. 앞으로는 넝쿨을 막 소환하지 말고, 플로라의 공격까지 계산해. 그러기 위해서는 플로라가 사용하는 마법을 다 눈에 익히고, 호흡을 맞춰봐야지. 할 수 있겠어?”

“효율적으로라…… 전투의 그 짧은 찰나 안에 계산을 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마딜로가 안 어울리게 약한 소리를 했다.

이안의 말은 평생동안 굳어져 온 습관을 바꾸라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해야만 해.’

이안이 이네스에게서 처음 만나고. 가장 처음 배운 것 중 하나가 바로 ‘끝까지 생각을 멈추지 마라’였다.

감각만으로 싸워서는 반드시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할 수 있을 거야. 너는 숲에서 가장 뛰어난 전사니까.”

“……비겁하다. 그렇게 말하면 할 수밖에 없지 않나.”

플로라에게 했던 것 그대로 우마딜로를 설득한 이안은 마지막 순서로 향했다.

스텔은 멍하니 고개를 들어 이안과 눈을 마주쳤다.

무감정하고 무기질적인 눈동자. 하지만 예전에 비해 조금이지만 감정의 빛이 어른거린다.

‘어떻게 하지.’

스텔에게 필요한 건 넓은 시야와 멀티태스킹 능력.

그 두 가지를 동시에 기르려면…….

“아. 그래. 너는 이제부터 매일 교회 종탑 위에 종이랑 펜을 들고 가.”

“……종탑?”

“응. 올라가서 길거리에 누가 지나다니는지 확인하는 거야. 여자, 남자, 청년, 노년. 이렇게 기준을 세워서.”

“알았…….”

생각보다 간단한 과제.

안심하던 스텔의 말을 이안이 끊었다.

“그걸 하면서 신성으로 기적을 부려. 아무거나 상관없어. 쉬지 않고 계속할 수만 있으면 돼.”

스텔이 입가가 조금 튀어나왔다.

조금 불만이 있어 뾰로통해진 모습이었다.

‘얘는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입을 내미는구나.’

스텔에 대해 또 새로 하나 배웠다.

“할 수 있겠어?”

“……어려워. 하지만 해볼게.”

스텔은 늘 그렇듯, 순순히 이안의 뜻에 따라주었다.

이안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짝!

이안은 손뼉을 한번 쳐 분위기를 한번 환기한 뒤, 힘을 주어 말했다.

“다들 성과가 나올 때까지 연습해줬으면 좋겠어. 답답한 마음은 알겠지만, 미로에 가거나 사냥을 나가는 건 그 후에 하자.”

“알았어. 근데 너는 그동안 뭐하게?”

플로라의 질문에 이안이 바로 답했다.

“나는 지금처럼 계속 검광을 수련할 거야. 아직 유지 시간이 너무 짧거든. 그때 흑기사를 처음 상대했을 때만큼만 나와도 좋을 텐데…….”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 이안. 너는 지금도 충분히 강하다.”

“그래. 고맙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 상황이 급하긴 했다.

아무리 새로 능력을 얻었어도 흑기사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검광이 필수니까.

“아무튼. 수련하면서 겸사겸사 아까 부탁받은 것도 조사해보게.”

“조사대에 들어가게?”

“여차하면 그래야지.”

“…….”

플로라가 불만족스럽게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 없어.”

“응?”

“조사대가 꾸려지기 전에 과제를 마칠 거니까. 이안의 동료는 우리야.”

갑자기 묘한 데에서 열의를 불태우는 플로라.

이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믿고 있는다.”

***

‘조사대라…….’

이안은 나쁘지 않게 생각했다.

흑기사가 습격하면 결국, 도시의 기사와 사제들과 함께 맞설 것이다.

미리 얼굴 도장을 찍어두고 손발도 맞춰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의문도 있었다.

‘그나저나 진짜 돌연변이 때문에 못 돌아온 걸까요?’

[왜 그러죠?]

‘게임에서는 이런 이벤트가 없었거든요.’

도시가 혼란에 빠질 정도의 강한 돌연변이 괴수가 등장하는 일은 없었다. 적어도 게임 속에서는.

이네스가 물었다.

[그렇다면 돌연변이가 아니라면 뭐라고 예상하세요?]

‘글쎄요. 당장 떠오르는 건…… 역시 사람이겠죠.’

언제나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인 법이다.

특히 보는 눈도 없는 저 지하 아래에서라면 더더욱.

여러 용병들이 짜고서 조직적으로 습격했다면 목격자가 없는 것도 납득되었다.

‘아무튼 정보가 더 필요해요. 혹시 그사이 미로에서 빠져나온 용병들이 있을 수 있으니, 알아보죠.’

이안이 발길을 향한 곳은 미로의 입구였다.

만약 용병들이 나왔다면,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건 분명 경비병들일 테니.

해가 진 뒤의 미로 앞은 상당히 으스스했다.

경비병들은 화로 앞에서 서서 굳은 얼굴로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미로가 심상치 않으니, 덩달아 긴장한 듯했다.

이안이 다가서니 경비병 하나가 말을 걸었다.

“이봐 형씨. 시간이 늦었어. 웬만하면 내일 아침에 다시오라고. 기왕이면 혼자서 오지 말고.”

“흐흐. 내 경험상 혼자 미로에 들어간 놈들은 오래 못 살지. 방금 들어간 놈도 오래 못 버틸 거야.”

위협적으로 말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안을 위해 건넨 조언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용병의 죽음을 지켜봐 왔을 테니.

이안은 넉살 좋게 준비해온 술을 내밀며 말했다.

“미궁에 들어가려는 건 아니고, 물어볼 게 좀 있어.”

“근무 시간에 술은 좀…….”

“잠시만. 저거 교단에서 직접 담근 포도주잖아.”

교단에서는 포도주를 담그는 문화가 있다.

그 역사만큼이나 맛이 깊어 상당히 비싼 게 특징.

이안이 웃으며 말했다.

“아. 역시 근무 중에 술은 안 되나?”

“자, 잠깐.”

경비병이 돌아서는 이안의 어깨를 붙잡고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그래도 역시 사람 성의를 무시하기는 좀 그렇지?”

“그럼! 그건 예의가 아니지.”

갑작스럽게 말을 바꾼 둘은 이안의 손에 들린 포도주병을 반쯤 빼앗듯이 가져갔다.

‘좀 못 미덥긴 해도 이렇게 대놓고 속물이면 원하는 답도 쉽게 얻을 수 있겠네요.’

속으로 쓴웃음을 삼킨 이안이 물었다.

“저녁에 미로에서 나온 사람은 또 없었어?”

“없어없어.”

“나온 건 한팀도 없어. 아무래도 다 당한 거 같아.”

“그것 때문에 용병들이 난리야. 당분간 일 쉴 거라는 놈도 많고.”

“영주님이 금방 움직이시겠지 뭐.”

그 세 취했는지, 경비병들이 묻지도 않은 말까지 나불거렸다.

조용히 얘기를 듣던 이안은 문득, 이들의 대화에서 한 가지 걸리는 점을 찾아냈다.

“나온 건 한팀도 없다는 건, 혹시 들어가는 팀은 있었다는 건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경비병 둘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팀? 팀은 아니고…….”

“웬 말을 탄 미치광이 기사가 혼자 미로로 돌격하던데.”

“푸흡. 그거 장관이었지. 말을 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미로로 들어가다니! 내 인생 그런 또라이는 처음이었…… 형씨는 별로 안 웃긴가?”

왠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인물. 이안이 급하게 물었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 다시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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