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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코인재벌-4화 (4/200)

4화

* * *

최수영이 갑자기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서더니 내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 오늘 집에서 나오기 전에 확인해 보니 넥시트 단가가 또 7만 원으로 올랐더란 말이죠. 혹시 그사이에 겁먹고 다 팔아치운 게 아니면 이제 자산이 28억이네요. 수호 씨? 오늘 저녁은 뭘 사주실 건가요?"

순간 향수인지 바디 미스트인지 모를 은은한 향기에 취해 '무엇이든지요!'라고 바보 천치 같은 말을 내뱉을 뻔한 걸 겨우 참아냈다.

"식사와 함께 와인을 하시겠어요, 아니면 와인은 2차로 따로?"

"대부호 김수호 씨가 사주는 거니 1, 2차로 나누는 게 더 이득이겠죠?"

"대부호라니! 놀리지 말아요. 수영 씨야말로 완전 금수저……."

아차, 금수저라는 말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내가 급히 말을 얼버무리자 최수영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내가 금수저라는 말 싫어한다고 해서 아차 싶었어요?"

"아, 네. 하하하. 제가 워낙 흙수저 출신이라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수호 씨는 흙수저 출신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네요? 저도 부잣집에서 태어난 걸 감추거나 할 생각은 없어요. 죄지은 것도 아닌데요, 뭐. 단지 학원에서만 좀 다른 선생님들이 시기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금수저 얘기 싫어하는 척, 겸손한 척하는 거예요."

"겸손한 척? 수영 씨 학원에서 본 모습이랑 다르게 엄청 솔직하시네요?"

"겸손한 척은 지금 수호 씨가 하고 있잖아요. 현금이 28억이나 있으면서 아직도 흙수저 타령이라니. 하하핫."

"이봐요, 최수영 씨. 코인은 원래 완전히 매도가 끝날 때까지 내 재산이 아닌 거 몰라요? 당장 내일 이거 다 휴짓조각 되면 지금 이 말들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요."

"이봐요, 김수호 씨. 수학 강사씩이나 되시면서 차트 볼 줄 몰라요? 아마 다음 주면 자산이 40억도 넘겠던데?"

"흐흠. 그건 그래요. 어쨌든 팔기 전엔 모른다는 소리죠. 근데 원래 이렇게 한마디도 안 지는 성격인가요?"

"왜 이래요. 같이 말발로 먹고사는 사람들끼리."

* * *

엄청 부자인 여자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소박하더라.

의외로 삼겹살에 소주를 즐기더라.

길에서 떡볶이를 먹어보곤 '아니? 이렇게 맛있는 걸 그쪽만 먹어왔던 거예요?'라고 하더라.

이런 설정은 드라마에나 나오는 것이었나 보다.

최수영은 나를 자신이 아는 스테이크 하우스로 데리고 갔는데, 코스도 아닌 것이 1인분에 30만 원이 넘었다.

원래의 나였다면 기겁을 할 돈이었지만 그렇게 끌려간 레스토랑에서 샤토브리앙을 먹으면서 최수영과 웃고 떠들고 있자 어느새 좀 부자가 된 실감이 났다.

그래. 나도 이제 곧 이런 것들만 매일 먹으면서 평생 즐겁게 살 수 있다.

이 넥시트코인만 적절한 금액에 잘 팔면 된다.

한창 식사를 하다가 최수영이 문득 넥시트코인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수호 씨. 나도 비밀이 하나 있는데. 말해 줄까요?"

"비밀이요? 뭔데요?"

"수호 씨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넥시트코인 좀 갖고 있어요. 만원 조금 넘을 때 샀죠."

"아, 정말요? 그런데 그날 분명 학원에서는 넥시트코인 처음 보는 사람 같았는데?"

"겸손한 척한 거예요. 하하핫."

보통 여자는 호호호 하고 웃지 않나?

웃음소리가 좀 특이한데 그게 또 참 듣기가 좋다고 생각했다.

"대단해요! 어떻게 알고 샀어요?"

"미국에 전문 트레이더 친구가 있는데 이거 심상치 않으니 없어도 되는 정도의 소액으로만 잠깐 샀다가 아차 싶으면 바로 팔아버리라고 해서 좀 샀어요. 그런데 팔려고 하면 떨어져서 그냥 두고 다시 올라서 팔려고 하면 또 떨어져서 그냥 두고 했더니 여기까지 왔네요?"

"그 없어도 되는 정도의 돈이 얼마였는지 물어도 될까요, 금수저 씨?"

"1억이요."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최수영의 말을 듣다가 씹고 있던 고기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물론 저 정도 부자에게 1억 정도는 없어도 되는 소액일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언제 갑자기 휴짓조각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이런 위험한 코인에 1억을 태워놓고 아직 그대로 들고 있어?

어제저녁만 해도 거의 70프로가 떨어졌었는데?

뭐 이런 강심장이…….

"미친. 아! 미안해요. 너무 놀라서 그만."

"괜찮아요. 하하핫. 어쨌든 덕분에 저도 돈 좀 벌었네요. 아, 팔기 전까진 내 돈이 아니라고 했던가요? 하긴. 지금도 폭등, 폭락을 반복하고 있으니까요. 언제 꺾여 내려가도 이상하지 않죠."

"그 트레이더 친구분도 엄청 벌었겠네요?"

"5만 불 정도 넣은 것 같던데, 다음 날 80퍼센트 익절하고 빠져나갔어요. 그 이후로는 재진입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역시 트레이더.

그게 바로 투자의 정석이지.

최수영 당신은 지금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거고!

가만, 아무 생각 없이 계속 들고 있는 건 나도 마찬가지인가?

"그럼 수영 씨는 만원 조금 넘을 때 1억 원어치를 샀으면 보유 수량이 거의 만 개 가깝게 되겠네요?"

"그렇죠. 8천1백 개 정도?"

"총발행량이 40만 개밖에 안 되는데 수영 씨랑 저랑 지금 거의 8분의 1을 가지고 있는 거네요."

"그렇죠. 지금 수호 씨랑 저랑 여기서 가지고 있는 물량 다 팔아버리면 이 코인은 당장 끝도 없이 폭락할걸요. 재밌겠다. 그쵸? 한번 해볼까요? 와, 우리가 그 말로만 듣던 세력이 되는 건가? 하하핫."

"아니요. 그랬다간 내일 사람 여럿 죽어 나가요. 그리고 사실 다음 주엔 개당 10만 원은 충분히 넘을 것 같아서요. 하하하."

"저도 농담이에요. 하하핫."

참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조금 설레기도 했고.

하지만 이때 난 전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넥시트코인의 8분의 1을 가지고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걸로 인해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바뀌게 될지.

* * *

11월 말일 개당 13만 원까지 올라갔던 넥시트코인의 단가가 12월이 되자마자 다시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12월 31일 이후 종잇조각이 될 수도 있는 넥시트코인에 대한 공포가 선반영된 결과였다.

나는 지금 학원 수업이 끝난 후 최수영의 차 안에서 함께 넥시트코인 시세를 확인하고 있다.

학원 건물 지하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최수영의 차는 파나메라였다.

"수호 씨, 12월 되자마자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6만 원도 위태위태하네요. 이제 그만 팔아야 할까요?"

"그러게요. 며칠 전 13만 원까지 올라갔을 때 뺄 걸 그랬나. 어느새 반토막이 났네요."

"재미 삼아 시작했는데 요즘엔 자꾸 이것만 들여다보게 되네요. 저는 이제 다 팔고 빠질까 봐요, 수호 씨."

"그것도 나쁘지 않죠. 수영 씨야 이 코인 해서 뭐 인생을 바꿔보거나 할 계획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하하핫. 언제부턴가 수호 씨랑 있으면 겸손을 떨지 않아도 돼서 좋아요. 맞아요. 이걸로 뭐 인생 역전할 생각도 아니었고 1억 투자해서 이 정도면 저는 만족해요. 지금도 4억 가깝게 벌었는데요, 뭐."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고 있지만 사실 너무 부럽다.

이렇게 큰돈이 널뛰기를 하는데도 그렇게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금수저 최수영이 너무 부러웠다.

나도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듯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요즘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다.

12월 중순쯤 넥시트코인이 급락하기 시작하기 전에 모두 현금화를 해서 부동산에 다시 투자해 흙수저 인생을 완전히 탈출할 계획이었는데 생각보다 급락이 빨리 찾아오고 말았다.

내 넥시트코인 평가 금액은 52억까지 올라갔다가 지금은 다시 24억으로 떨어져 있었다.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24억.

24억이 누구 집 애 이름이냐.

정신 차려, 김수호!

나도 지금이라도 빠지자.

그럼 서울에 아파트 한 채는 마련할 수 있다.

이 코인은 이제 더 떨어질 일밖에 안 남았어.

"수영 씨, 그럼 우리 지금 이거 다 매도해 버릴까요?"

"오, 수호 씨. 역시 박력 있어요. 하하핫. 그럼 우리 하나둘셋 하고 동시에 팔아버려요. 이제 넥시트코인 큰손 수호 씨까지 다 매도하고 나면 이 코인은 정말 끝도 없이 추락하겠네요."

"어차피 추락할 코인이에요. 좋아요. 자, 매도 준비!"

"하하핫. 준비!"

해맑게 폰을 톡톡 두드리고 있는 최수영과는 달리 내 손가락은 그리 가볍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며칠 전에만 팔았으면 50억인데…….

아니야, 정신 차리자.

고점은 잊자.

이 돈으로 강남 인근에 아파트 한 채 사고 천천히 다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거다.

그때 알 수 없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수영 씨, 잠깐만요. 저 전화가 와서."

"네, 받으세요. 근데 그동안에도 수호 씨 자산은 계속 줄어듭니다! 하하핫!"

내 자산만 줄어드나?

나 때문에 손을 멈추고 있는 당신 자산도 줄어든다고.

왜 이렇게 해맑아!

어쨌든 우선 전화를 받아보았다.

"여보세요?"

- 수호냐.

휴대폰 너머 들려오는 무미건조한 목소리.

허염환이었다.

"허염환! 뭐야, 너! 어떻게 된 거야! 번호도 바뀌고 주소도 바뀌고!"

- 수호야.

"어, 빨리 말해. 네가 준 넥시트코인 지금 급락 중이다. 이제 팔려고."

- 수호야.

"어, 그래. 빨리 말해. 아니다. 잠깐만 있다가 내가 다시 전화할게. 이거부터 팔고 나서 내가 지금 너 있는 곳으로 당장 갈게. 이 코인은 어디서 난 건지, 도대체 무슨 일인지 너한테 직접 들어야겠다."

- 수호야, 24억이면 네 인생이 바뀌냐?

"…무슨 소리야, 갑자기?"

- 내가 준 건 강남 집 한 채가 아니야. 진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야. 넌 내 말을 들어준 유일한 사람이니까.

잠시 뜸을 들이던 염환이가 말을 이어 갔다.

- 넌 항상 논리적이고 냉철했잖아. 잘 생각해 봐. 시가 총액 2천만 원짜리 코인이 애초에 상장이 될 수나 있는 일인지. 그중에 10분의 1이 어떻게 네 손에 들어갔는지. 그럼 끊는다. 이게 마지막 통화가 될 거다.

"무슨 소리야! 허염환! 야!"

끊어진 전화에 대고 소리치는 나에게 최수영이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수호 씨? 누군데 그래요?"

"잠깐만요, 수영 씨. 잠깐만 생각 좀 할게요."

그래,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갑자기 전화가 와선 장례식장으로 오라더니 이 녀석이 넥시트코인을 줬다.

가만?

그때 분명 이 자식이 택시 타지 않아도 된다고 했었고 강남에서 인천 장례식장까지 한 번에 가는 대리 콜이 곧바로 잡혔었지.

그리고 난 분명히 투잡 하는 걸 이 자식한테 말한 적이 없는데 나 일하느라 배고팠을 거라며 갈비탕을 시켜놨었고.

그리고 이 코인을 내가 받았을 때는 시가 총액이 2천만 원.

그중에 내가 가진 게 시총의 10분의 1인 2백만 원어치.

2천만 원짜리 코인은 애초에 결코 상장될 수 없다.

불나방들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든 바람에 지금은 겨우 잡코인 수준의 시가 총액이 되긴 했지만 사실 이 코인의 존재는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현실에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현실에선…….

메타버스.

제기랄.

그 자식 말이 맞는 거야, 뭐야 이거.

* * *

12월 2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40,000개]

[단가 60,000원]

[평가 금액 24억 원]

12월 2일 최수영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8,130개]

[단가 60,000원]

[평가 금액 4억9천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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